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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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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작도 기술이다" 번지 '제이미 로' 리드 컨셉 아티스트

정재훈,김수진 기자 (desk@inven.co.kr)
▲ '제이미 로' 번지 리드 컨셉 아티스트

IGC 2018이 진행되면서, 국내외 게임업계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연단에 올랐습니다. 돈으로도 사기 힘든 주옥같은 경험과 노하우들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가 이어졌죠. 그리고 그 중에는, 평소 통 뵙기 힘든 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헤일로'와 '데스티니' 시리즈로 IP 2타석 연속 홈런을 친 미국의 개발사 '번지'의 리드 컨셉 아티스트인 '제이미 로'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무려 18년째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내공을 쌓아 왔지만, 외부 강연에는 통 나서지 않으셔서 그간은 이름만 듣곤 했던 분이죠.

IGC 2018의 첫 날. '데스티니 개발에 컨셉 아트는 어떤 기여를 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마친 제이미 로 아티스트와 따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컨셉 아티스트'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될 수 있는 직업일까요? 번지라는 공룡 스튜디오에서 당당히 한 팀을 이끌어온 '제이미 로' 개발자와의 짧은 대화를 텍스트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관련 기사: [IGC2018] 컨셉 아티스트, 그리고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세계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오신것 같은데, 얼마만에 오신 건가요?

2008년에 잠깐 들어왔다가 이번에 온 거니까 딱 10년 만이에요. 제가 처음 이민을 갈 때도 그랬고 한국은 올 때마다 너무 많은 게 바뀌네요. 없던 도시가 생기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들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공항에 내려서 교통카드를 사려고 하니 점원분이 "여기서 사면 비싸니 저쪽에 가서 사시는 게 좋다"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고 따스한 분들인 건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제이미 로 아티스트가 기억하던 당시의 한국...


Q. IGC 2018을 통해서 한국의 개발자 및 게이머 분들과 만나셨어요. 강연 소감이 어떤가요?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제가 회사 안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뭔가 말하긴 하지만, 강연은 처음이거든요. 개발자로 일하다 보니 제 생활 루틴은 출근과 퇴근밖에 없어요. 이렇게 제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게임 팬분들도 만나고 하니까 뭐랄까... 참 귀한 기분이에요. 일상에서 잠깐 탈출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 IGC 2018에서 강연중인 제이미 로


Q. '번지'는 누구나 알아주는 큰 개발사잖아요. 어떻게 합류하게 된건지 궁금한데, 입사하게 된 과정을 말씀해주실수 있나요?

음... 제가 재미없게 말씀드릴 것 같아서 먼저 좀 죄송하고요. 진짜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어느새 번지에 있었어요. 미술을 공부할 당시 길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대학의 수도 적었고, 진학해도 나아갈 길이 그리 많지가 않았죠.

순수 미술은 취향이 맞지 않아서 그래픽 디자인 쪽으로 진학했는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은 회사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는데, 작업 중에 여러 게임사의 외주도 함께 맡아 진행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 '닌텐도'에 합류해 일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닌텐도에서 제가 막 활약할 여지가 그리 많지는 않았고, 그래서 옮긴 회사가 '아레나넷'이었죠. 그곳에서 '길드워2' 작업을 하다 보니 기회가 닿아 번지에 합류하게 되었고요.

▲ 인터넷에서 과거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Q. 원래부터 그림을 좋아하셨다고 했는데, 미술은 어떻게 시작하신거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짜 취미처럼 일했어요. 한국에 있을 땐 진짜 그냥 그리기만 했어요. 따로 배운 적은 없었죠. 저는 전형적으로 일하면서 배운 스타일이에요. 솔직히 조금 아쉬운 점도 있어요. 지금은 참고할 자료도 매우 많고,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공부할 방법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요즘 보면 20대의 아티스트가 과거 40대 아티스트나 보여줄 만한 작품을 그려내기도 해요.

저도 아마 지금 젊은 나이였다면 지금의 저보다는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죠.


Q. 재미있게도 해외 게임사에서 일하는 한국계 아티스트가 굉장히 많아요. 블리자드나 너티 독 같은 굵직한 회사도 말이죠. 한국계 개발자들이 아트 쪽에서 두각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기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한눈에 그 사람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술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기술이 있죠. 아트나 프로그래밍은 전자에 속해요. 포트폴리오만 확인해도 실력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후자에 속하는 기술들은 바로 알아볼 수가 없어요. 대인관계의 기술이라거나, 비즈니스 센스와 같은 것들은 쉽게 알기 힘들죠. 그러다 보니 한눈에 실력을 파악하기 쉬운 분야에 한국 분들이 많이 진출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강연에서 컨셉 아티스트가 겪는 여러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셨어요. 본인의 경험을 볼 때, 가장 자주 맞이하는 어려움은 어떤 종류인가요?

'배고픈 괴물과 못생긴 아기'죠. 창작에 들어가는 시간은 특정하기가 어려운데 꾸준히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있고, 그와중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도 가다듬어야 해요. 한번에 5~6가지 일이 들어오거나 하면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할지 늘 고민해야 하죠. 그 우선순위를 잡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Q. 게임 개발 과정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멋들어진 디자인을 만들어내도 게임 내에서 활용도가 적거나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티스트 입장에서 서운하거나 하진 않나요?

물론 처음에는 저도 속상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지금도 그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티스트들이 없는 것은 아니죠.

아티스트를 포함해 예술의 영역에 발을 걸친 모든 이들은 '오너십(Ownership, 자신의 작품에 가지는 자부심과 주인 의식)'에 굉장히 민감해요. 자신의 창작물이 남의 손에 의해 변경되거나, 고쳐지는 과정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게임 아티스트는 오너십에 민감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에요.

모든 작업물은 결국 하나의 게임을 위한 자양분이고, 게임이 출시되는 시점으로 작품들의 오너십은 게이머에게 넘어간다고 생각하고 체념해야 해요. 그전에도 개발팀이 아트를 기반으로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 오너십의 일부는 다른 팀에 넘어간다 봐야 하죠. 이런 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은 말씀드린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 좋은 그림도 결국 게임 개발을 위한 자료입니다.


Q. 컨셉 아티스트가 굉장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란 것은 이해했어요.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제로에서 결과물이 나오진 않을 테고, 어딘가에서 영감을 얻을 텐데 보통 어떤 과정을 통해 창작을 하게 되나요?

저는 창작도 '일종의 기술'이고 창의력도 노력 여하에 따라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딱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것이 아니란 뜻이죠. 원활한 창작을 위해 필요한 요건은 '마음속의 도서관(Library라는 표현을 사용)'을 넓히는 것이에요.

틈이 날 때마다 문화 콘텐츠를 접하고,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 해요. 컨셉 아트를 그리기 전 어떤 키워드를 들었을 때, 그 키워드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죠. 예를 들어 강연에서 제가 설명드린 '아함카라'를 작업할 때, 아함카라의 설정을 듣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거나 털이 보송보송한 토끼가 생각나 버리면 안 되잖아요?

컨셉 아티스트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개발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그림을 만들어야 해요. 이 말은, 그림이 게임과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는 뜻이죠. 어떤 감성이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소재를 머릿속으로 구상해야 하는데, 이건 결국 본인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곧 영감이고, 창작의 밑거름이 되는 거죠.

▲ 꾸준한 공부와 호기심이 영감의 비결


Q. 오늘 좋은 강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컨셉 아티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이 한국에도 많아요. 이런 학생들에게 '컨셉 아티스트로 가는 길'의 첫 걸음을 알려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수 있을까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같은 추상적인 내용보다는 현실적인 말씀을 드릴게요. 현재 번지의 컨셉 아트 팀은 전 세계에서 온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인재들을 뽑는 과정에서 전 매우 많은 이력서를 살펴보았죠. 게임 개발사가 컨셉 아티스트의 이력서를 볼 때는 단 하나, '포트폴리오'로 모든 것을 평가해요. 그리고 이 포트폴리오에서는 두 가지를 봅니다.

하나는 기초적인 그림 실력이에요. 그림의 기초는 생각보다 굉장히 쌓기 어려운 기술이에요. 그냥 많이 그려봤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림의 구도, 색채의 활용과 같이 기초적인 부분을 제대로 배워야 해요. 컨셉 아트는 결국 '메시지의 표현'인데 여기서 그림은 '표현'에 해당해요.

남은 하나는 '메시지'에요. 그림에 자신이 무얼 담았고, 그걸 담는 과정에서 어떤 소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는 거죠. 이 과정에 숙달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지식을 쌓고, 늘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죠.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컨셉 아티스트 중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머릿속에 대체 얼마나 다양한 지식이 들어있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놀라운 식견을 드러낸다는 점이었어요.

▲ 좋은 그림, 그리고 담긴 메시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물론 해외 게임사에서 일하려면 기초적인 언어 능력도 더해져야겠지만, 언어 능력이 포트폴리오보다 중요하지는 않아요.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죠.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깐깐해 보이는데... 많은 분이 용기를 갖고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IGC 2018에서 많은 분을 뵙게 되어 매우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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