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29일)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가 증인으로 직접 출석했습니다. 작년에도 증인으로 몇 개의 게임사 대표들이 증인 요청을 받았으나, 출석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기는 합니다.

게다가 '확률형 아이템' 이슈와 관련해서 증인 요청을 했던 것이기에 충분히 이슈가 될 만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게이머 모두에게서요. 국내 게임시장을 대표할 수 있는 게임사 대표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것인지. 그리고 어떤 파급력이 있을 것인지를 고려하면 당연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그리고 시작된 국정감사의 질의는 생각보다 싱겁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제대로 된 핀트를 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국회의원들이 게임에 보여주는 시선과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질문이 나온 것은 사행성의 정의였습니다. 직접적인 질문이기는 했습니다. '리니지M'을 콕 집어서 사행성에 관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서 '확률적 게임들'에 사행성이 있는지로 질문이 넘어갔습니다. 굉장히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입니다. 국감 현장에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요.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 이에 대한 김택진 대표의 답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을 도박으로 보는가의 문제였기에, 답변도 무겁고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었죠. 사행성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의 문제는 결국 도박을 어디까지 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법적인 정의의 문제니까요.

이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도박이 아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리니지M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BM을 택한 게임 전체의 문제로 둔갑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논의할 만은 합니다만, 김택진 대표 개인이 이야기하기엔 너무 크고 직접적이지 않은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비유와 사례가 있었다는 겁니다. 김택진 대표를 증인으로 세우고 엔씨소프트나 리니지M과 접촉 지점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다른 게임의 사례를 들고오거나 너무 피상적인 사례에 집중한 질문이 문제였습니다.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기보다는 겉만 훑고 지나간 느낌이 강하죠. 그렇기에 아쉽습니다. 차라리 이런 질문이었다면 게임사 대표보다는 게임산업협회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다만 워딩 하나는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아마 이슈는 될 겁니다. '배팅', '개평', '판돈' 등 전부 다 도박에서 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걸었습니다. 비유도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게임 = 도박'이라는 인식으로 고정화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굳이 확률형 아이템이 아닌 것들을 도박의 영역으로 포함될 수 있는 예시입니다.

1분이라는 시간 동안 슬롯머신과 게임에서의 상품(상자) 개봉을 비교하며 '사행성 = 배팅 단위 속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전체 채팅으로 출력되는 시스템 메시지를 '잭팟'에 비유합니다. 이건 괜찮았습니다.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임팩트도 있었고요. 그럴듯한 부분입니다. 게임이 김택진 대표와 관계없는 '그라나도 에스파다'라는 점만 빼면요.

개인적으로는 이래서는 안 됐다고 봅니다. 분명 조금 더 건설적이고 논의할 수 있는 주제들을 던질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게임사 대표, 국회의원, 문체부 장관이 한데 모인 자리입니다. 사행성의 정의를 가지고 질문하고 답변을 받을 것이 아니라, 자율 규제라는 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고 봅니다.

오늘 국감 현장에서 김택진 대표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총 세 명입니다. 손혜원 의원, 조경태 의원, 박인숙 의원이죠. 모두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어디까지가 적절한지를 질문하기보다, '게임 = 도박' 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질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게이머'의 입장은 자연스레 빠지게 됩니다. 아마 의원실 메일이나 홈페이지에 의견을 남겼을 게이머들의 고민과 의견이 말입니다.

다시 오늘 국감을 돌이켜보죠. 손혜원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두 의원의 의제는 결국 비슷합니다. 도박에 가까운 게임이라는 매체가 청소년 보호와 관계가 없는지, 대책은 있는지가 문제였다는 거죠. 이 질문에서 주인공은 게이머가 아니라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으로 한정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게이머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도 않고요. 초점이 다릅니다.

"0.0001%"라는 확률은 어디까지나 "이 정도 수치가 있으므로 게임은 도박이다"라는 개념을 돕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게임사 대표를 불렀다면 이 '확률', 그리고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답변을 받았어야 했다고 봅니다. 도박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건실한 논의를 시작할 기회를 잃게 됐습니다.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게이머의 의견은 인지하고 있는지. 어떤 것이 적정한 확률이라고 보는지. 수정은 할 것인지. 어떠한 부분에서 비판을 받는 것은 아는지. 제도의 개선 사항은 없는지. 논의를 확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비판했어야 좋았을듯 싶습니다. 아마 많은 게이머가 문체위에 속한 의원들에게 의견을 보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게이머들 에겐 내용 없는 그저 그런 국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요.

다만, 논의를 시작한다는 면에서는 그나마 일부 논의 거리가 나왔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손혜원 의원이 벨기에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 사례를 살펴본 것. 그리고 박인숙 의원의 질의 답변 중 '모바일 결제 한도'가 논의거리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논의해볼 만한 사례이므로, 짧게라도 내용이 나온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 됐거나 이제 국감은 종료됐고, 확률형 아이템은 자극적인 단어들만을 남긴 채 퇴장했습니다. 게이머에게 나온 이슈,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켜나간 국감. 앞으로는 좀 더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변했으면 합니다. 이슈와 워딩만 남길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