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8-11-0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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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아! 디아블로!

이두현 기자 (Biit@inven.co.kr)

기대치라는 게 있다. 지난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했을 때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환호했고 세상은 들썩였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제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팀 쿡이 아이폰XS Max를 공개했을 때는 그 정도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사양은 좋아졌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단순히 사양만 뛰어난 제품으론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긴 어렵다.

블리자드는 많은 게이머가 기대하게끔 만든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하스스톤까지. 블리자드는 자신들만의 게임을 공개하면서 게이머들의 기대치를 채워왔다. 정식 서비스 이후 결과는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다음 시리즈를 선보이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스타크래프트2가 그랬고, 디아블로3가 그랬다. 당시 게이머들의 기대감은 공개 영상을 발표하는 순간의 환호성으로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블리자드는 항상은 아니더라도 게이머의 기대를 채워주는 게임사였다.

내심 이번 블리즈컨에 '디아블로4'가 공개되길 기대했었다. 기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게이머들에게서 그런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블리즈컨의 행사 일정이 공개된 이후, 많은 게이머가 ‘디아블로' 세션이 가장 먼저,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이유’를 해석했다. 다양한 가능성과 그간 루머를 종합했고, 결국 '디아블로4'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건 블리즈컨 디아블로 세션이 시작하고 나서다. 진행을 맡은 와이엇 챙 선임 디자이너의 입에서 “everywhere”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이었다. '디아블로'와 '에브리웨어'를 접목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닌텐도 스위치’다. 그러나 이미 행사 당일에 출시한 게임을 지금 발표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하나. 모바일 버전이다. 지금 생각해도 에브리웨어가 언급된 순간의 블리즈컨 현장이 생생하다. 게이머들은 설마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어로. 그렇게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디아블로 트레일러가 재생됐고, '디아블로 이모탈'이 공개됐다.

'디아블로 이모탈' 트레일러 재생 이후, 두 가지 이질감이 들었다. 이질감은 게이머들의 현장 반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첫째는 영상 초반에 스플래시로 뜬 넷이즈 로고다. 넷이즈 로고가 뜨자 블리즈컨 현장은 약간의 탄식이 찼다. 둘째는 대륙풍으로 그려진 바바리안과 마법사가 노출되고서다. 디아블로 시리즈를 한 게이머들이라면, ‘디아블로 이모탈’에 등장한 바바리안과 마법사 일러스트에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트레일러가 끝나고서 착한 블리자드 게이머들은 박수로 보답은 해줬다. 다만, 어색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모바일 액션 RPG라니. 이미 대한민국과 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를 한차례 휩쓸고 간 장르가 아니었던가. 물론 어떤 신작이라도 모바일 액션 RPG라고해서 폄하되면 안 된다. 그러나 블리즈컨의 가장 중요한 발표가 모바일 액션 RPG라면, 얘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나왔던 모습과는 다른 걸 보여줘야만 한다. 단순히 출근길 지하철에서 바바리안으로 휠윈드를 돌 수 있다는 장점 외에 다른 모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와이엇 챙으로부터 그런 소개를 들을 수 없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붙잡았다. 블리즈컨 현장에서 트레일러 영상만 보고서 '디아블로 이모탈'을 평가하면 안 됐다. 어쨌든 블리자드가 내놓은 게임이었으니까. 기존 모바일 액션 RPG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마음을 다잡고 '디아블로 이모탈' 시연대로 향했다. 시연대에는 수백 대의 삼성 갤럭시 노트9가 있었다. 분위기 연출을 위한 붉은 조명이 정육점 고기 진열대처럼 쏟아졌다. 미리 찾은 게이머들이 먼저 '디아블로 이모탈'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었다. 모바일 게임 신작이 가득했던 지스타가 떠올랐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즐길 수 있었다. 게이머들은 계속해서 시연대로 들어서는데, 시연용 기기는 항상 여유로웠다. 건너편 '와우 클래식' 시연존은 사람이 가득 차 긴 대기 줄이 이어졌다. 디아블로로 추정되는 악마가 시연존 위를 장식했다. 아트에서 대륙풍이 느껴졌다. 디아블로2나 디아블로3에서는 느낄 수 없던 화풍이었다. 시연용 기기 앞에 서자 진행요원이 “사진은 찍어도 괜찮지만 영상은 안 돼”라고 영어로 말했다.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알던 디아블로는 이렇지 않았다

전제 조건 없이 '디아블로 이모탈'을 본다면, 잘 만든 모바일 액션 RPG다. 실제로 디아블로3의 액션을 모바일로 잘 담아냈다. 바바리안은 작살을 적들에게 잘 뿌리고 휠윈드를 잘 돌았으며, 수도승은 용오름으로 몬스터들을 잘 모았다. 수도승의 칠면 공격은 2% 부족한 연출이었지만 괜찮았다. 4인 파티 플레이는 자연스러웠고 가상 패드는 잘 인식했다.

그러나 전제 조건 없이 '디아블로 이모탈'을 바라볼 수는 없다. 어쨌든 블리자드가 블리즈컨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발표한 게임이니까. 그만큼의 기대치와 눈높이를 올리고 바라봐야 한다.

연출을 보니 언젠가 게임 개발자가 “유저가 알아차리기 힘든 순간은 저화질 그래픽을 사용해 최적화합니다”라고 말한 게 떠올랐다. 캐릭터가 뛰어다니는 순간을 보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게임 엔진으로 만든 그래픽임을 직감했다. 어디선가 많이 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년 전 한국 모바일 액션 게임에서 봤고, 얼마 전 중국 차이나조이에서 시연해본 게임과도 비슷했다.

그 게임들과 다른 점은 오로지 디아블로 IP 힘 덕이다. 디아블로는 세계 최고의 RPG 중 하나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흔한 모바일 액션 RPG에 원작 스킬이 연출됨으로써 특별함이 더해졌다. 이는 분명 모바일 액션 RPG로서 큰 장점이다. 액션 게임이 유저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독특한 스킬과 이펙트가 필요하다. 많은 액션게임이 실패한 요소이기도 하다. 반면 디아블로는 십여 년 간 쌓아온 스킬 노하우가 있다. 이것을 바로 모바일 게임에 접목할 수 있다는 건 기존 모바일 액션 RPG와는 차별된다.

수많은 감정이 오고가면서, 주위 외국인 3명과 파티를 맺어 데모 버전을 완료했다. 플레이 중 ‘자동 획득’과 ‘자동 장착’을 보고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디아블로 IP를 이식한 액션은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첫인상과 다르게 ‘디아블로를 했다’는 느낌을 받아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든 게임일까? 마음 속으로 많은 평가 기준이 생기고 사라졌다. 그때, 맞은편 백인 게이머와 눈이 마주쳤다. 그도 방금 '디아블로 이모탈'을 마친 듯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끄덕였다. 언어는 안 통하지만, 무언으로 같은 평가를 내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깨달은 바도 있다. 모바일 액션 RPG를 ‘자동 사냥’ 없이 즐길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점은 분명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모바일 액션 RPG의 경우, 잘 만들었음에도 결국 ‘자동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액션 게임인데 보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였을까. 반면, '디아블로 이모탈'은 자동 사냥을 없이, 오로지 가상 패드만 지원한다. 데모 버전이라 변경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자동 사냥’을 넣을 거란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디아블로 이모탈'의 성공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런저런 평가가 있겠지만, 매출 기준으로 보면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조금 더 나가면 모바일 액션 RPG로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 중국에 두터운 팬층을 가진 블리자드이고, 넷이즈와 협업하면 기록할 만한 매출 성과를 거둘 게 분명하다. 예상되는 매출로만 보면 블리자드가 공개한 라인업 중에서 하이라이트에 들만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기대했던 블리자드의 모습과는 다른 것도 분명하다.

'디아블로 이모탈' 공개 이후, 블리즈컨에서 본 게이머들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내 마음이 씁쓸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행사 시작 전 그들은 기대감에 차 있었다. 팬들의 표정이 바뀐 건 '디아블로 이모탈' 외에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신임 알렌 브렉 대표가 팬들의 표정을 읽기를 바란다. 이번 블리즈컨에서는 그 표정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 선입견인 걸까, 블리즈컨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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