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와 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오스)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2017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글로벌 챔피언십(이하 HGC) 파이널의 주인공이었던 젠지는 올해 HGC 파이널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본인들의 기량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젠지는 전신인 MVP 블랙 시절 템페스트-발리스틱스와 함께 국내 HGC 3강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2018년의 젠지는 단연 독보적이었습니다. 작년 6월 '리치' 이재원의 복귀와 10월 '노블레스' 채도준 코치의 선임이 이어지며 현재 로스터를 완성했고, 잠시 흔들렸던 올해 초에는 과감한 포지션 변경을 통해 다시금 최강의 팀으로 거듭났죠. 치밀한 전략과 꾸준한 노력이 더해진 결과, 젠지는 2018 HGC을 통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 앞줄 좌측부터 코치 '노블레스', '교차', 'Ttsst', '리치', '리셋', 뒷줄 '사케'

부쩍 쌀쌀해진 가을 오후, 강남에 위치한 젠지 사옥에서 젠지 선수들을 만났습니다. 휴가 일정으로 모든 선수와 함께하진 못했지만 '사케' 이중혁과 '리셋' 임진우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HGC부터 젠지와 자신에 대한 내용까지, 두 선수가 전하는 이야기를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Q. 반갑습니다. 파이널 이후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사케' : 저는 아직 시차 적응 중이에요. 또 지난 2년 동안은 파이널이 끝나면 GCWC(골드 클럽 월드 챔피언십)가 있어서 준비했는데, 올해는 대회가 없어서 심심하네요.

'리셋' : 시즌 기간 동안 신작 게임들이 많이 나왔더라구요. 천천히 하나씩 즐기고 있어요.


Q. 먼저 대회 얘기를 나눠볼까요. 난투 우승에 이어 파이널 2회 연속 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했어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사케' : 작년엔 난투 우승을 놓치고 파이널만 우승했었잖아요. 올해는 난투에 파이널까지 모두 우승하면서 HGC 최초의 기록을 세운 것 같아 매우 기뻤어요.

'리셋' : 작년 파이널은 '우승하고 싶다'라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줄곧 승승장구하다 보니 '우승할 것 같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어요. 그래도 파이널 최초 2연패라는 타이틀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올해 참가한 모든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HGC 페이즈1 이스턴 클래시에서 2위를 기록했어요. 이 부분이 아쉽진 않나요?

'사케' : 미드 시즌 난투나 파이널 같은 중요한 무대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올해 초에 한 번 미끄러진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패배를 통해 보완할 부분을 찾았고, 마음가짐을 다잡은 채 이후 경기에 임할 수 있었죠. 아쉽긴 하지만, 한 번의 패배를 통해 이룬 것이 훨씬 많기에 괜찮습니다.


Q. HGC 페이즈2 정규 시즌에서 미라클에게만 2패를 당했어요. 파이널에서도 미라클을 만났는데, 패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사케' : 이상하게 미라클전에서만 밴픽이 꼬이면서 패배했어요. 이 부분에 대해 팬분들도 많이 걱정했는데, 파이널 가기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큰 무대에서의 젠지는 다르거든요. 또 미라클전이 굉장히 중요한 매치였잖아요. 한 세트라도 지면 디그니타스와 결승 전에 만나게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젠지는 지지 않습니다.

'리셋' : 사실 미라클전에 앞서 다른 팀과 스크림을 할 때 똑같이 밴픽이 꼬였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큰 무대다 보니 저희가 조금 더 침착하게 할 수 있었고, 팀 호흡도 정리가 잘 돼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이후 파이널 4강에서 팀 리퀴드에게 풀세트 끝에 승리하는 위기를 겪었어요. 당시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리셋' : 팀 리퀴드랑 스크림을 많이 했는데, 정말 잘 하더라구요. 한두 세트는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또 1세트의 경우엔 다 이긴 게임을 저희 실수로 내준 거라 나머지 경기는 그냥 하던 대로 플레이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케' : '노블레스' 코치가 팀 리퀴드만 이기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침착하게 플레이하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5세트 전장이 브락시스 항전이더라고요. 저랑 '리치', '교차' 선수는 2016년 가을 챔피언십 4강에서 프나틱한테 브락시스 항전에서 무너졌었잖아요. 경기 시작 전에 이거 프나틱전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그러면서도 이겨내야 한다고 서로 다독이면서 경기에 임했어요.


Q. 반면 디그니타스와의 경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는데, 이를 예상했나요?

'사케' : 디그니타스 대 미라클 경기를 보는데, 디그니타스가 밴픽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결승에서 후픽인 저희가 마이에브랑 겐지를 무조건 밴해야 했고, 그렇게 되면 디그니타스가 디아블로를 가져가 좋은 조합을 완성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디그니타스가 겐지를 먼저 밴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저흰 마이에브랑 디아블로를 밴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경기가 생각보다 쉽게 풀렸어요.

'리셋' : 결국 디그니타스가 3세트에선 디아블로를 대체할 누더기를 가져갔잖아요. 실제로 'JayPL' 선수가 누더기로 좋은 플레이를 많이 펼치기도 했구요. 겐지 밴이 승리에 많은 도움이 많이 됐지만, 3세트 같은 방향의 게임이 계속 나왔다면 저희가 많이 어려웠을 거예요.


Q. 유독 이번 파이널에서 알라라크를 적극 기용하는 밴픽을 보였는데, 어떤 배경에서 나온 건가요?

'사케' : 다른 때와 달리 이번 파이널에 준비해 가져온 픽이에요. 팬분들도 모두 아시다시피 알라라크는 '리치'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잖아요. 밴픽을 할 때 '리치' 선수의 픽 차례가 되면 알라라크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노블레스' 코치가 알라라크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고, '리치' 선수가 할 수 있겠다, 믿어달라고 하면 쥐여주는 거예요. '리치' 선수가 알라라크를 워낙 잘 하다 보니 나올 때마다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리셋' : 알라라크가 지금 메타에서 굉장히 좋아요. 결승에서는 디그니타스가 매 세트 밴할 줄 알았는데, 2세트에서 한 번 풀어주길래 가져와서 승리했죠.


Q. 최근 디그니타스의 'JayPL'이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면?

'사케' : 'JayPL'과 저는 서로 잘 아는 친구예요. 나이도 비슷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구요. 또 17년도에 'Wubby'라는 짝꿍을 만나고, 'POILK'가 합류하면서 포텐셜이 터졌어요. 본인 스타일을 살리면서 굉장히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던 친구인데... 아무래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은퇴를 결정한 것 같아요. 굉장히 아쉽습니다.

'리셋' : 디그니타스가 리빌딩을 하면서 'JayPL'의 플레이가 눈에 많이 띄었어요. 단단하면서도 강력한 이니시에이팅을 가진, 선두에서 팀을 지휘하는 탱커였죠. 그렇게 잘했던 선수가 은퇴한다니까 아쉽네요.


Q. 대회 얘기는 여기서 마치고 주제를 바꿔볼까요. 먼저 젠지의 신사옥 시설이 상당히 눈에 띄는데요. 젠지 측의 지원이나 연습 환경에 대해 자랑한다면?

'사케' : 길게 말할 게 없어요.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리셋' : 사옥이 없었을 때도 완벽했는데, 사옥까지 생겨서 더욱 완벽해졌어요.

'사케' : 최고의 컴퓨터 장비 레이저와 편안함의 끝 시디즈 가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제공해주는 넷기어. 미래를 위한 투자 설계를 도와주시는 미래에셋, 이외에도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스폰서분들의 지원이 젠지의 완벽함 속에 녹아 있습니다.


Q. 지금 다섯 명의 로스터가 완성된 지 1년 반 정도 됐어요. 팀의 호흡이나 기량은 충분히 완성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케' : 처음에는 상당히 삐걱거렸죠. 특히 밴픽 때문에요. 그 부분만큼은 도저히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블레스' 코치를 데려온 게 성공적이었고, 포지션 변경도 젠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또 함께 오래 있다 보니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큰 마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지켜줄 건 확실히 지켜주고,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할 말은 하면서요. 이렇게 게임이든 생활이든 더욱 환경이 좋아지면서

'리셋' : '사케' 선수 말대로 작년에 '노블레스' 코치가 오면서 팀이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 팀 여기저기에 구멍이 있었다면, '노블레스' 코치가 그 구멍들을 메꿔준 거죠.


Q. 말씀을 들어보니 '노블레스' 코치의 역할이 상당한 것 같은데, 특히 어떤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나요?

'사케' : 일단 생활은 아예 노터치예요(웃음). 밴픽이 거의 99%인데, 'JayPL' 선수가 은퇴하면서 올린 글 내용처럼 히오스에서 밴픽은 정말 어렵고 부담되는 부분이예요. 작년 HGC 페이즈2 이스턴 클래시부터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밴픽을 했는데, 모두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밴픽을 맡아줄 코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팀원들이랑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이후 쉬고 있던 '노블레스' 코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고, 저희 사비로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파이널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던 거죠. 실제로 '노블레스' 코치 선임 후 결과가 매우 좋았고, 젠지에서도 이 이야기를 듣고 정식 계약을 진행하게 됐죠. 올해도 '노블레스' 코치 덕에 많은 우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리셋' : 대회에서 패배했을 때 이게 밴픽 때문에 진 건지, 플레이 때문에 진 건지 확실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만약 밴픽 문제로 패배한 거라면 처음부터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데, 그게 스트레스가 엄청 쌓여요. '노블레스' 코치가 그런 부담을 선수들에게서 지워주면서 더욱 좋은 플레이가 나오게 된 거죠.

'사케' : 외국팀들은 대부분 코치가 있는데, 국내 팀들은 대부분 코치가 없잖아요. 만약 본인들이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한다면 좋은 코치를 선임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걸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건 각 팀의 몫이지만요.


Q. 젠지는 전 세계 팀 중에서 가장 넓은 영웅 폭을 자랑하잖아요. 그것이 가능한 특별한 요인이 있나요?

'사케' : 밴픽이나 영웅 선택에 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전장이나 상대 조합에 따라 좋은 영웅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나오더라도 그에 맞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여러 영웅을 연습해 오는 거죠.

'리셋' : 특히 저희는 모든 포지션을 경험해 본 선수들이 많잖아요. 각자 어떤 영웅을 시키더라도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Q. 그럼 지금 포지션에 대해선 모두가 만족하고 있나요?

'사케' : 언제든지 준비돼 있는 A급 딜러 '사케'입니다.

'리셋' : 딜러가 재밌긴 한데... '리치' 선수가 하는 영웅을 제가 플레이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몇몇 영웅들은 스크림 때마다 '리치' 선수가 가져가서 연습을 많이 못 해요. 이번 파이널에선 한조가 그랬어요. 연습을 많이 못 했는데, 결승에서도 제가 한조를 해야 했던 거죠. 그 부분에서 부담이 좀 있었어요.

'사케' : 맞아. 스크림 때 진짜 불쌍해요.

'리셋' : '리치' 선수가 절대 안 비켜줘요(웃음).


Q. 현재 HGC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에 올랐는데요. 패배나 부진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사케' : 그런 건 일어난 후에 생각해도 될 일이라고 봐요. 저희도 처음부터 최고의 자리에 있던 게 아니잖아요. 몇 번 미끄러지면서 올라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리셋' : 저 같은 경우엔 한때 예선 탈락을 하면서 밑바닥에 있었던 적도 있기 때문에... 지더라도 그걸 발판으로 삼아서 더욱 성장하는 걸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저희보다 강한 팀이 생긴다면, 그 팀을 다시 누르기 위해 모두가 더 노력하는 상황이 나오지 않을까요.


Q.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어느 때인가요?

'사케' : 저희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을 때요. 팬분들이 많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인천에서 HGC 페이즈2 이스턴 클래시를 할 때 직관 와주신 분들이 대부분 저희를 응원해주시더라구요. 처음엔 게임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는데요. 인천까지 찾아와 주신 팬분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어요.

'리셋' : 저도 '사케' 선수와 비슷해요. 저희 팀 팬분들은 오프라인으로 찾아와주시기보다 온라인에서 조용히 채팅 치면서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요즘엔 직관 와주시는 팬분들도 많아지고 선물도 종종 받다 보니까, 그런 상황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항상 팬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Q. 나에게 히오스란?

'사케' : 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첫 번째 기회인 것 같아요.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고. 그 노력을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고, 앞으로도 더 큰 보답을 드리기 위해 더더욱 노력할 거예요.

'리셋' : 부모님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은 게임이예요. 이 길로 성공 못 하면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계속 믿어주시면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연 것 같아요. 어느새 제대로 된 프로게이머 타이틀을 달기도 했고, 옛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은 정말 성공한 거예요(웃음).


Q. 이제 인터뷰를 마칠 시간입니다. 마지막 인사 부탁드려요!

'사케' : 젠지에서 역사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전무후무한 역대 최고의 팀이 되도록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리셋' :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도 올해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승승장구할 테니까, 믿고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