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 CDPR 미하우 도브로볼스키 리드 게임플레이 디자이너
우 - 파베우 부쟈 커뮤니티 매니저

CD 프로젝트 레드(이하 CDPR)가 한국에 왔다. 게임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위쳐3 만든 그 회사 맞다. 지스타 컨퍼런스의 피날레를 장식할 두 개발자는 강단에 놓인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았다. 다리까지 꼰 채로. 건방져보이는 게 보통인 그 자세인데, CDPR 멤버라는 타이틀이 붙으니 이유있는 자신감쯤으로 비춰졌다. 실제 그들의 좌담회는 열정과 자부심이 철철 흘렀다. CDPR이 들려주는 CDPR 이야기. 핵심만 적었다.




- 개발자한테 가장 중요한 건 열정이다. 이게 없다면 개발에 몰입하는 단계로 진입이 안 된다. 몰입이 안 되면, 훌륭한 게임을 만들 수 없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열정만큼은 아니다.

- 플레이어가 진정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멋진 스토리,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게임에 담아내는 게 항상 우리의 관심사였다. '위쳐1'편부터 이것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출시한 '쓰론브레이커'도 마찬가지고.

- CDPR은 완성도에 있어 타협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최고의 품질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든다는 건, 바꿔 말하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개발뿐 만 아니라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시간이 부족할 경우라면... 그냥 완성 기한을 넘겨버리고 퀄리티를 올리는 게 낫다. 타협하면 결과물이 떨어지는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지 않나?

- CDPR이 초기 기획부터 완벽하게 잡고 개발 들어가는 회사는 아니다. 일단 비전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여러가지 시스템과 콘텐츠를 적용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완벽하게 만드는 데 규칙은 없다. 그냥 플레이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어차피 이보다 중요한 것도 없지 않나.

- 플레이어는 매의 눈을 갖고 있다. 특정 NPC가 원작 소설과 눈 색이 다르다는 피드백까지 받았다. 우린 원작 소설을 참고하며 '위쳐'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소설과 완전히 똑같은 게임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스토리의 확장성, 게임만의 상상력이 막힌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기에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야 게임에 어울리는 세계관이 나온다.

- 팬들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하다. 커뮤니티 담당자가 여러 커뮤니티를 돌며 관련 피드백을 통합해 문서화하면, 우리는 그 문서를 읽고 개발 방향을 그려나간다. 커뮤니티의 의견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는 셈이다.

- 우리는 트리플A급 싱글플레이 RPG를 만든 경험이 있다. 이 분야에선 개발팀 스스로 자부심도 강하고, 실제 결과물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위쳐 만들 땐 게임플레이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이라던가 설화 고증 등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한데 궨트 스탠드얼론 버전 때 피드백은 완전히 달랐다. 궨트는 멀티플레이 기반의 카드 게임으로, 우리가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분야였다.

유저들의 플레이 방식도 각자 달랐고, 몇몇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던가 당장 해결해야 할 버그도 있었다. 마치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임이 살아있는 유기체같이 보이더라. 피드백도 게임플레이나 밸런스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피드백을 다 게임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피드백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는 건 사실이나, 실제 반영하는 건 CDPR의 철학에 비춰본 다음이다.

- 궨트 스탠드얼론 버전은 유저들의 피드백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게임이었다. 시작은 위쳐3에 넣은 미니 게임이었고, 매우 적은 수의 개발인력이 투입됐다. 그런데 성공했다. 너무 큰 성공이었고, 내가 3년 전 CDPR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하루 100통 이상의 궨트 피드백이 왔다. 너무 재밌다, 위쳐3 본편보다 재밌다, 위쳐3 캐릭터보다 매력적이다라는 의견도 많았다. 위쳐3 만드는 데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막상 궨트 피드백이 이렇게 좋으니 솔직히 섭섭하기도 했다(웃음).

궨트를 따로 내달란 의견이 많아서 결국 시행하기로 했다. 물론, 개발 철학은 기존 게임들과 마찬가지였다. 재미를 최우선으로. 그 다음으로 운이 아닌 머리로 이기는 게임을 만들자, 스포츠적인 요소를 넣자는 생각을 했다.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을 개발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굉장히 많은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고 무사히 여러분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됐다.

▲ "궨트 스탠드얼론 버전은 팬들의 성원이 만들어낸 게임이다"


- 네러티브가 중요한 '위쳐'같은 게임을 만들 땐, 아예 별도의 스토리텔링 팀을 따로 꾸렸다. 개발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집필하고, 게임 적용할 때 또 검토하고, 필요에 의하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했다. 서브 퀘스트 적용하는데 이전까지 진행된 이야기와 안 어울리면 이전 것부터 다시 썼다는 뜻이다. 정말 고된 과정이었다. 새로운 스토리는 계속 들어가는데 작가는 항상 최고의 이야기를 써야만 했으니까.

- 우리가 게임으로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완벽하게 유저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냥 번역만 된 수준은 의미가 없다. 현지 국가 유저들의 니즈와 상황까지 이해해야 한다. 직역은 최대한 지양했다. 스크립트 작업 할 때도, 폴란드어와 영어 작업을 별도로 했다. 그래야 번역 과정이 수월하고, 직역을 방지할 수 있다. 내용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 개발 도중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면... 내가 일하고 있는데 한 동료가 와서 의견을 줬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내 생각에 그 의견이 영 별로라면? 그럼 우린 최대한 토론한다. 만약 그 녀석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면, 난 더 심도있게 논의를 한다(웃음). 물론, 내 생각에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대부분 직원들이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다수결에 따라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맞다. 그런데 사실, CDPR에선 이런 상황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의견을 별로 안 내고... 간혹 누가 의견을 냈다면, 진짜 괜찮은 의견일 경우가 대다수다.

- CDPR의 커뮤니티 팀에는 많은 국적의 직원들이 있다. 한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아, 캐나다 직원도 있고.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게 커뮤니티 팀의 대표적인 특징이고, 많은 문화가 공존하기에 의견도 다채롭게 나온다. 다만, 직설적인 의견은 거의 없다.

- 팬들은 우리가 만든 궨트에 변화를 원하지만, 동시에 항상 똑같은 모습을 바라기도 한다. 이 두 의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매우 어려웠다. 또, 어떤 플레이어는 매우 능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도 있다. 사실 우리는 게임을 너무 쉽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단순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두뇌 싸움이 가능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초기 궨트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려운 게임이었다.

쓰론브레이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트 팀이 테스트를 해봤는데, 깨라고 만든 걸 못 깨더라. 그래서 레벨 디자인을 대폭 수정했다. 다양한 난이도를 원하는 유저들이 있기에,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게 최우선이다.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 과거 나는 오토바이를 판매하는 딜러였다. 그때는 게임이 그저 취미였지만, 언젠가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CDPR에 입사하기 위해 정말 많은 게임을 했다. 주변에서 '굳이 그런 게임을 뭐하러 하냐'라는 소리도 들어봤지만, 난 게임으로 다양한 세계관을 경험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결국 그 경험은 입사에 매우 큰 도움이 됐다.

▲ "과거의 난 오토바이 딜러였지만, 게임업계 입사의 꿈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혹자는 게임은 폭력적이고, 게임을 많이 한 사람 역시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게임은 표현의 수단이다. 예술이자 문화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그 안의 이야기에 참여하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어떤 엔터테인먼트보다 몰입도가 강하다. 아니, 몰입 이상의 경험을 준다. 책도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그 안의 일원이 되도록 해준다.

-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지금 만들고 있는 그 게임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인지 생각해보라.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 입장에 서라는 의미다. 게이머 입장에서. 타협하면 안 된다. 내가 만든 이 게임이, 지금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퀄리티인지 다시 한 번 봐야 한다. 네러티브도 중요하다. 이게 탄탄해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에 쫒겨 만들면 안 된다. 시간이 모자라다면, 그냥 출시를 연기하는 게 낫다.

- CDPR에 입사하고 싶다면, 일단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CDPR 채용 사이트를 통해 제출해야 한다. 그럼 채용부서에 전달되고, 관련 정보가 나한테 넘겨진다. 그럼 우리가 원하는 이력과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선별한 후, 그 사람에게 '면접 보자'는 답변을 보낸다. 면접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 지원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다. 지원자는 담당 분야의 디렉터의 시험을 또 한번 통과해야 한다.

- CDPR은 지원자를 볼 때 게이머로서의 경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면접볼 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난 처음에 기술지원팀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관련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더니, '너 이력서 좋네, 채용하고 싶긴 한데 빠진 게 있다'더라. 뭐냐고 물으니, '너가 진짜 열정 넘치는 게이머라는 걸 증명하는 내용이 없다'라는 거다. 난 이게 중요한 건지 몰랐따. 기술지원팀이니 당연히 관련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CDPR은 지원자가 열렬한 비디오게임 매니아라는 걸 가장 중요하게 본다. 게임 회사니까 그런 건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이걸 말 안 했다고 기술지원팀에 낙방한 거다!



- 미하우는 원래 QA 출신으로, 평소에도 게임을 정말 많이 한다. 폴란드에서 한국까지 비행기 타고 오고, 버스도 타고 전철도 탔다. 이동에만 거의 30시간 걸렸다. 그런데 그 시간동안 미하우는 다크소울만 계속 했다. 잠도 안 자면서. 진짜 하드코어 게이머다. 미하우는 평소에도 게임에 관련한 지식과 경험을 계속 쌓는다. 수 년에 걸쳐 스피드런 게임도 하더라. QA 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쌓았고, 그 결과 지금은 리드 디자이너까지 올라섰다.

- CDPR에 입사한 후 부서 이동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잘 일하고 있던 프로그래머가 '저 아트디렉터 하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당연히 허락 안 해줄거다. 그런데 액션 게임 디자이너가 배경 디자이너로 변경을 원한다면 그건 괜찮다. 또, 궨트 개발팀인데 사이버펑크 개발팀으로 가고 싶다, 이러면 몇가지 요소를 체크해본 후 이동을 허락할 수도 있다.

- 게임 개발자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직업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요즘도 많은 e메일을 받는다. 당신들이 만든 게임을 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다.


11월 15일부터 11월 1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지스타 2018이 진행됩니다. 현지에 투입된 인벤팀이 작은 정보 하나까지 놓침없이 전해드리겠습니다. ▶ 인벤 지스타 2018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