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겜, 명작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게임, 신을 뜻하는 영단어 갓(God)을 붙여 최고의 재미를 제공하는 게임이란 뜻을 담고있다.그만큼 이 칭호를 얻은 게임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재미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에 불과할 뿐, 적절한 금액과 플레이 시간 그리고 남다른 세계관과 매력까지 겹쳐져야 비로소 '갓'의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올해 지스타 BtoB 전시관에서는 색다른 슬로건을 내세운 인디 개발사 '스퀴즈펍'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갓겜의 3요소로 '남자', '근육', 그리고 '대머리'를 꼽았다. 굵은 선으로 강렬하게 그려진 대머리 남성 캐릭터가 장절한 표정으로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었다.





▲ (좌) 스퀴즈펍 이상혁 대표 (우) 김주헌 PD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상혁 대표(이하 이상혁) : 스퀴즈펍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혁이다. 3명의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창업을 했지만, 과거 여러 차례 사업을 한 경력이 있어 내가 대표를 맡게 됐다.

김주헌 PD(이하 김주헌) : 스퀴즈펍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김주헌이다. 이상혁 대표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온 친구 사이다. 오늘 이 자리에 같이 못 온 다른 친구와 함께 정말 RPG다운 RPG 만들어보고 싶어 스퀴즈펍을 창업했다.


Q. 스퀴즈펍이란 회사명도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진다. 어떤 뜻을 담고 있나?

이상혁 : 야구에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란 게 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기고자 하는 플레이란 뜻이다. 우리는 스타트업인 만큼 성공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러한 갈증을 스퀴즈란 단어로 표현했고, 여기에 동료가 모이는 '펍(Pub)'을 붙여봤다. RPG에서 보통 동료 캐릭터들이 펍에서 만남을 시작하지 않나.

김주헌 : 사실 인(Inn, 여관)을 붙이는 것도 고민해봤는데, 어감이 영 이상해서 펍으로 바꿨다.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웃음).


Q. 회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상혁 : 앞서 말했듯 고등학교 동창 3명이 모여 RPG를 만들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 법인이 설립된 지는 1년 반 정도가 지났고, 그 이전에도 1년 반 가까이 모임처럼 운영이 됐었다. 당시 아무래도 다들 나이가 있다 보니, 회사를 다니던 상황이었다. 회사를 그만두지도 못한 채 짬이 될 때마다 모여 게임 개발을 이어갔는데, 정말 힘들었다. 스퀴즈펍이란 회사명이 사람을 짜낸다 해서 '스퀴즈'가 붙은 게 아닌가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주헌 : 과거엔 웹 개발자로 일했었다. 게임 개발사에서도 잠시 일했었는데, 어릴 적 꿈꾸던 진짜 RPG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어차피 어디서 일해도 힘들다면, 직접 창업해서 원하는 거 만들며 힘든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Q. 그렇게 탄생한 게 '덱&던전'인가?

김주헌 : 맞다. 우리가 어릴 적 즐기던 TRPG와 머드 게임의 방식을 많이 따왔다.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샌가 끝나버리는 '던전'이 아니라, 정말 매 순간 신중히 판단하고, 그리고 그 고민의 순간들까지 재미가 될 수 있는 '던전'을 만들고 싶었다. 과거 온몸으로 즐기던 TRPG가 그랬다. 화려한 그래픽 같은 건 없었지만, 모두가 모여 그 상황과 과정을 실감 나게 즐길 수 있었다.



Q. 솔직히 스타트업으로서 쉽지 않은 도전으로 보인다. 워낙 독특한 장르다보니 투자를 받는 것도 녹록치 않았을 것 같다.

이상혁 : 대표가 할 일은 구성원들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투자 지원을 받기 위해 참 많이 뛰어다녔는데,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 투자를 받지는 못한 상황이다.


Q. '덱&던전'을 접한 투자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상혁 : 솔직히 말하자면, 충격적이었다. 매출이 없는 회사가 어떻게 식구를 7명이나 거느리고 있을 수 있냐는 말을 들었다. 어떤 분은 RPG란 게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게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분이 많았다. 그 상황에서 스타트업은 캐주얼이나 키우기 장르의 게임만을 개발해야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김주헌 : 일단 서울과 부산의 투자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부산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도시라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금액도 서울과 비교하자면 3배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부산이 낮다.


Q. 그럼에도 개발을 이어왔다는 건 게임 컨셉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뜻 아닌가?

이상혁 : 투자를 받지 못했을 때도 이 게임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덱&던전만의 컨셉과 매력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이 게임은 결코 변질되서는 안 된다.

김주헌 : 작년 BIC에서 공모전 부스로 공동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많은 분이 '덱&던전'을 정말 즐겁게 플레이해주셨다. 어떤 분은 설문지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임이라고 손수 적어주시기도 했다. 그 순간,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게임을 만든다는 게 이런 즐거움을 갖다 준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Q. 본격적인 게임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덱&던전'은 어떤 게임인가?

김주헌 : 오늘날 대다수 모바일 RPG의 던전은 달려가다 3번 가량 전투를 치르고 끝나버린다. 어릴 때 즐기던 TRPG의 깊은 매력에 비하자면 너무 얕은 경험이다. 던전 중간에 겪을 고통,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설렘을 느끼는 순간도 올 것이다. 격렬한 전투에 지치면 휴식을 취하기도 해야할 것이고, 배고프면 밥도 먹는 게 진정한 '탐험'이고, 그걸 담아낸 공간이 '던전'이라 생각했다.

게임은 보다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물론 게임적 허용이란 게 있지만, 탐험의 재미를 느낄려면 과정과 현실감을 살려내야 한다. 당장 앞에서 몬스터와 치고박고있는데 어떻게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무기는 대체 왜 결코 부러지지 않는가?

우린 조금 불편하게 만들어 플레이어가 탐험의 과정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고기를 먹으려면 한 손의 무기를 내려놔야 하고, 무기는 쓰다 보면 부러진다. 삽이 없으면 무기를 희생해 길을 뚫어야 할 때도 있으며, 횃불로 직접 거미줄을 태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도 온다. 이렇게 던전이란 장소를 탐험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순간들을 담아냈다.

▲ 다양한 기믹이 모험가를 기다리고 있다


Q. 얼핏 다키스트 던전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주헌 : 실제로 다키스트 던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게 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다만, '덱&던전'이란 이름답게 우리 게임은 '덱'의 중요성이 한층 강한 편이다. 총 16장의 카드를 갖고 던전에 진입할 수 있으며, '무기', '스킬', '도구' 그리고 '회복' 아이템을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구'의 삽을 선택하면 막다른 길을 만났을 때 길을 파낼 수 있다. 만약 없다면 '무기'의 내구도를 희생해 길을 파내야 한다. '무기'와 '스킬'들도 각자 특성이 다르기에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Q. 아까 고기를 먹으려면 한 손의 무기를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어떤 뜻인가?

김주헌 : '덱&던전'의 캐릭터는 양 손에 도구와 무기를 쥘 수 있다. 정비 단계에서 카드를 오른손 혹은 왼손에 끌어와 장착시킬 수 있으며, 장착된 도구와 무기는 이후 전투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후 음식을 섭취하려면 한 손의 무기나 도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턴이 낭비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이게 진정한 탐험의 묘미라 생각한다.


Q. 참 보기 힘든 템포의 게임인 거 같다. 슬로건 역시 상당히 인상적인데, 어떤 뜻을 담은 건가?

이상혁 :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덱&던전'의 테스터분이 남겨준 평가 문구를 차용한 슬로건이다. 근육질의 남성 캐릭터가 게임 내에 많은 편인데, 그분이 이 부분을 꼽으며 '갓겜'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생각지 못한 포인트였는데, 왠지 마음에 쏙 들었다.

김주헌 : 우리 일러스트레이터가 근육질의 남성을 상당히 느낌 있게 잘 그린다. 진중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굵은 선의 모노톤을 선택했는데, 그림체가 아주 잘 어울렸다. 단신으로 던전에 쳐들어간다는 컨셉을 고려해보자면, 근육질의 대머리 남성 캐릭터가 제법 사실적으로 와닿기도 한다.

▲ 굵은 선으로 표현된 남성 캐릭터들


Q. 캐릭터가 전부 근육질의 남성인가?

김주헌 :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그런데 막상 외견에 비해 귀여운 사연을 가진 캐릭터가 많다. 메이지는 스승의 딸과 야반도주를 해버린 나머지 마법을 배우다 말았다. 이 탓에 전투 스킬을 발동하는 데 촉매가 필요하다. 암살자는 일찌감치 은퇴를 했던 인물이지만, 처자식의 생계를 위해 복직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Q. '덱&던전'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이상혁 : 오는 11월 20일에 북미 지역으로 먼저 런칭할 예정이다. 게임의 컨셉 자체가 북미와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후 반응과 피드백을 보고 한국 지역 런칭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물론 할 생각이 있지만, 게임 디자인을 한국 지역에 맞춰 다소 수정해야하진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덱&던전'을 기대하고 있는 유저들에게 남길 한 마디가 있다면?

이상혁 : '덱&던전' 소개 영상 끝에 있는 문구를 말씀드리고 싶다. “모험의 끝에서 롤플레잉 게임의 잃어버린 재미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