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엘게임즈 송재경 아키에이지 총괄PD

다시 아키에이지 총괄PD로 돌아온 송재경 대표. 그 후 약 반년이 지난 지금 그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서 그가 스스로 느꼈던 아쉬움 또한 엿볼 수 있었고,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도 개발자로서의 욕심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도 직접 코딩을 하면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깊기도 했다.

한편, 아키에이지는 6일, 15세 신규 서버 에안나를 오픈하고,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추가했다. 특히 송재경 총괄PD는 그동안 다소 후순위로 밀려있었던 게임의 내러티브에 집중해나갈 예정으로, 스토리의 확장을 중심으로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아직 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는 인상적인 멘트로 인터뷰를 마무리한 송재경 총괄PD. 오늘 인터뷰에서는 대표로서, 아키에이지 총괄PD로서, 그리고 개발자로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MMORPG가 가야할 길에 대하여
MMORPG에 대한 송재경 총괄PD의 철학

Q. 그동안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모바일 게임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었나?

송재경 : 그것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뭐랄까, 깨닫는다고 해야 할까. 물론 주변에서 보기엔 아닐 수도 있지만, 겸손해진 것 같다.


Q.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송재경 : 한 20년 전에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다(웃음). 요즘은 그렇지는 않구나, 생각이 든다. 가능하면 같이 일하는 젊은 개발자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한다. 시장에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게임과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과의 괴리가 있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이제 대중적인 것을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체적으로 많은 생각이 든다.


Q. 아키에이지를 19세 이용가로 출시한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을 그대로 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이번 청소년 서버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송재경 : 아키에이지를 출시할 때는 15세 이용가에 맞춰서 스스로 자기검열 하기보다는 19세 이용가로 하고 싶은 대로 개발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근데, 사실 아키에이지에 딱히 성인용 콘텐츠는 별로 없다.

요즘 들어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대중적이고 유저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들을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참신하고 다양한 요소를 많이 넣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른 게임에서 유저들이 익숙하게, 편안하게 느끼는 요소들도 사실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걸 굳이 다르게 만들겠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게임의 본질적인 요소와 관련된 새로움, 참신함이라면 당연히 지켜야겠지만, 장르의 공통적인 문법에 대해서는 다르게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기조하에 아키에이지도 15세로 만들어봐도 되겠다고 생각했고, 15세 이용가에 걸릴 만한 요소들을 덜어냈다.



Q. 다르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인가.

송재경 : 억지로라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는 그런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유저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남들과 달라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새로움을 추구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그렇게 생각이 변화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송재경 : 딱 하나의 계기라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는 게 제일 큰 것 같다(웃음). 모난 돌이 정 맞아서 둥글둥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PC MMORPG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있는 유저가 많다. 신작에 대한 소식이 나올 때마다 관심이 쏠리는데. 송재경 총괄PD가 바라본 감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송재경 : 몇년 사이 모바일 게임 위주로 시장 트랜드가 넘어가면서 몇몇 요소에 대해 싫증을 느낀 유저들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예전 스타일의 PC MMORPG를 원하는 유저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고.


Q. 최근 MMORPG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MMORPG가 장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송재경 : 10~15년 전 MMORPG가 흥할 시절에, MMORPG는 '노가다'가 많은 게임이었다. 사실 MMORPG의 본질적인 즐거움은 노가다가 아니고 여러 명이 함께 협력해서 얻는 성취감에 있다. 이는 다른 장르에서는 즐길 수 없는 MMORPG의 본질적인 요소다. 이러한 즐거움을 게임 속에 담기 위해 많은 장치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유저들은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모바일 게임의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지루한 부분들은 컨트롤이 힘들다는 이유하에 자동으로 할 수 있게 변화했다. 노가다의 문제가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해결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변화가 PC MMORPG의 갈 길을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템을 얻고 성장하는 데에서 느끼는 즐거움. 이 부분에서 PC는 모바일과 경쟁할 수 없게 됐다. 더이상 "한 달간 레벨업 하시면 진짜 재밌게 변합니다!"하고 말하는 건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만큼 이제 개발자들이 바뀐 시대에 맞춰 PC MMORPG가 나아갈 길을 고민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Q. 각 플랫폼에 맞춰서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뜻인가.

송재경 : 그렇다. 성장 위주의 콘텐츠는 모바일에서 똑같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빼고 보면 PC 시장에서 나아갈 길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또다른 요소를 이야기하자면, 게임 외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15년 전, 리니지로 치면, 몇십 명이 모여서 함께 단합대회를 하며 공성전을 준비하는 등의 에피소드가 많았다.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그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즐거움. IMF 직후라 더욱 그런 요소가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집단이 함께 얻는 성취감이라던가 조직에 속해서 얻는 안정감이 애매한 요소가 됐다. 나만의 생각일 수는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집단생활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까.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하기 위해서 나의 일정을 희생해 공성전에 참가해야 한다? 요즘은 본방사수도 안 하는 시대다. 나중에 따로 챙겨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상식인 시대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똑같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그에 맞춰 게임도 변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모바일 게임은 그런 게 없다. 편한 시간에 켜서 레벨업하다가 이동해야 하면 끄고. PC 플랫폼의 MMORPG도 이에 맞춰 디자인이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가 바뀌었다. 그에 맞춰 게임도 변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게임 속에 자신의 철학을 담는 편인지?

송재경 : 글쎄. 그렇다기보다는 게임을 소비할 유저들이 어떤 코드에 매력을 느낄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리니지 때는 조직이 주는 편안함을 담고자 했다. 어쩌다가 IMF와 맞물린 것 같고. 그 당시에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코드가 맞아떨어졌던 사회였다. 현실은 조금 공정하지 않을 수 있어도 게임 속에서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 플레이하는 시간에 맞춰서 레벨업이 되고 아이템을 얻고. 그만큼 강력해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와 별개로 게임 안에서 수백 명을 거느릴 수도 있고. '노력한 것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코드가 통했던 시대다.

요즘은 그런 코드는 거부당하는 것 같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는 있다. 열심히 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현실사회와 똑같은 이야기를 게임 속에서 이야기해봐야 와 닿지 않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한다고 잘된다는 건 어떻게 보면 거짓말이 됐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플레이하면 최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 유저 입장에서는 과금을 많이 하면 세지겠지, 하고 체념하게 된다는 거다.



Q. 요즘은 그럼 어떤 코드가 맞아떨어지는 시대일까 궁금하다.

송재경 : 재미없는걸 참고 견뎌내면 최강자가 되어 재밌어진다는 건 성공할 수 없는 코드다. 한 시간 동안 플레이했다. 근데 즐거웠다. 좋은 게임이다. 이 정도가 적절한 셀링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딱 플레이를 했을 때 그 시간이 즐거웠으면 되는, 이런 코드가 요즘 통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MMORPG의 기본 디자인은 그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꾹 참고 노력하면 즐거운 세상이 열린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판 즐겁게 플레이하고 결과가 주어지는 게임들에 비해 MMORPG가 다소 외면받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Q. 지금까지 원작을 기반으로 한 게임들을 개발해왔다. 이제 '달빛조각사'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데. '달빛조각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송재경 : 달빛조각사는 가벼운 소설이다. 무거운 주제의식이 담기지 않았고, 시작부터 가볍게 시작한다. '악으로 가득 찬 세계, 용사여, 힘을 내라' 같은 스토리가 아니다. 물론 주인공이 점점 성장하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 다르다. 가벼운 에피소드로 흘러간다는 특징이 있다. 카카오페이지에서 300만 다운로드를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뜻이다.

바람의 나라는 원작이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리니지는 그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었다. 아키에이지는 복잡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주제의식이 강렬하고. 달빛조각사는 다시 또 가벼운 느낌이다. 지금 보니 왠지 대중적으로 어필하고 싶다가 예술을 하고 싶다가, 하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다시, 아키에이지
다시 PD로 복귀한 송재경 대표의 비전


Q. 다시 아키에이지로 돌아가 볼까. 매달 꾸준히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송재경 : 올해 초부터 매달 업데이트하는 체제로 개편됐다. 내용이 적더라도 매달 업데이트 하자는 기조로 진행하고 있다. 대규모 업데이트는 여름, 겨울 성수기에 맞춰서 진행된다. 15세 서버 오픈과 함께 12월, 1월에 업데이트가 있을 예정이다.

아키에이지는 월별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름, 겨울 성수기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12월에는 게임의 내러티브에 집중한 업데이트로, 히라마 서부의 확장된 이야기를 다룬다. 과거 히라마 서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다루는 스토리 위주의 인던 형태로 15세 서버와 함께 추가될 예정이다. 1월에는 히라마 동부의 이야기를 확장해 나갈 예정으로, 새로운 성장 동선과 장비가 추가된다.


Q. 내러티브에 신경을 쓰는 이유를 들어보고 싶다.

송재경 : 게임을 라이브 서비스하면서 개발팀은 업데이트 준비, 버그 대응에 집중하다 보니 내러티브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일단 유저가 불편해하는 부분들을 해결해서 패치해야 하니까. 편의성 위주의 업데이트로만 진행되다 보니 망가진 요소들도 있다. 그런 부분을 복원해서 보다 아키에이지가 살아있는 세계, 그럴듯한 가상 현실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Q. 지난 7월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과금정책 밸런스가 가장 문제라고 짚은 게 떠오르는데.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지만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 방향성이 궁금하다.

송재경 : 과금요소를 아예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게임 내 노력과 과금이 밸런스가 맞도록 맞춰나갈 예정이다.

현장에서 보충된 내용에 따르면 아키에이지는 올해부터 유료 상품의 사행성 요소를 제거한 바 있다. 인게임 콘텐츠 내에서만 가챠요소가 들어가며 확률 표기를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전에 판매한 상품을 콘텐츠로 획득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며, 가치에 따라서 난이도 조정이 이루어진다.


Q. 라이브 서비스를 한 지 오래된 만큼 그래픽 개선에 대해 궁금해하는 유저들이 많다. 최근 리마스터를 진행하는 게임들이 많은데, 아키에이지도 계획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송재경 : 조금 올드해보이는 면은 있는 것 같다. 그래픽 개선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계획을 세워보고 있는 단계다. 정확히 언제 이루어질지 정확히는 말씀드리기 어렵다.


Q. 아키에이지에는 정말 많은 콘텐츠가 담겨있다. 근데, 처음 접하는 유저는 어떻게 게임을 플레이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개선해나갈 예정인지 궁금하다.

송재경 : 출시하면서 만들었던 초보유저 가이드는 그대로 있으나, 나중에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된 콘텐츠는 인게임에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고, 가이드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게임 초반 부분은 레벨업 퀘스트를 따라가면 되지만 그 이후에는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유저들이 많으니까.


Q. 방대한 콘텐츠가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신규 유저에게 아키에이지를 왜 플레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핵심은 모호해졌다. 어떤 요소를 집중해 신규 유저의 접근성을 높일 예정인지 궁금하다.

송재경 : 아키에이지는 방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부분이 흥미로운 요소가 될 거라 생각한다. MMORPG에서 만나볼 수 있는 콘텐츠는 대부분 아키에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를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방대한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생겼다. 게임 속의 자유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언제 유저는 자유롭다고 느끼는 걸까?

송재경 : 서비스를 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자유도와 유저들이 생각했던 자유도의 차이가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어떤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면서 진행하는 게임이 아니라 성장 구간이 지나고 나면 유저가 원하는 코스를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게임이 자유로운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해석이 달랐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키에이지에는 콘텐츠나 게임 구성에 대한 자유도는 충분히 있지만, 개별적인 행동에 있어서 자유도는 많지 않다. 바위를 굴려 몬스터를 죽인다든가 하는 게임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다양한 방법이 주어지는 자유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보면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목적을 이루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않나.

물론 이런 요소는 MMORPG에서는 잘 없긴 하다. 아키에이지가 집중한 자유도는 오픈 월드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집을 짓고 농사를 하고 싶다면 하고, 해상전을 즐기고 싶다면 즐기고, 크라켄을 잡고 싶다면 모험을 떠나고. 아키에이지는 주어진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해야 하는 게임이 아니다. 물론 이제 기술이 발전한 만큼 새 게임을 만든다면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같은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웃음).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 하고싶은 콘텐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키에이지의 '자유도'

Q. 동대륙과 서대륙, 원대륙까지 수많은 지역이 존재한다. 성장 구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찾는 지역은 정해져 있는데, 버려진 지역을 활용할 콘텐츠나 시스템적인 보강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송재경 : 이미 라이브를 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지역들을 새롭게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새로 만든다고 하면, 동선을 선형적으로 짜는 것이 아니라 갔던 지역을 다시 갈 수 있도록 설계해볼 수 있겠다. 한두 곳 정도는 리뉴얼해서 이벤트로 유저들이 다시 찾아갈 이유를 만들어줄 수도 있고. 고려해보겠다.


"아직 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개발자로서의 '송재경'


Q. 게임 개발 환경도 몇 년 사이 많이 바뀌었다. 1세대 개발자로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고 체감하는지 궁금하다.

송재경 : 과거와 비교해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생활 문화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게임 업계라는 것이 막 생기기 시작했던 당시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던 성장의 시대였다. 본인이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성공할 수 있는.

이제 게임 업계는 안정됐다. 좀 더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도 '직업같이' 됐고.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해도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 지금 와서 예전 시절의 이야기를 계속하면 '꼰대'가 될 뿐이다(웃음). 지금은 지금대로의 다른 로망과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보다 업계 역사가 좀 더 일찍 시작된 미국이나 일본을 참고해보면 되지 않을까. 성장의 기회는 많이 없어졌지만 반대로 멋진 게임들은 많이 만들어낸다. 한국 게임 업계도 이렇게 역사에 남을 만한 게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예로 들면 어떤 게임이었고, 다른 게임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게임성이 있었고... 이렇게 역사에 길이 남지 않나. 매출이 좋았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 말고, 이와 무관하게 멋진 게임성으로 유저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게임들이 개발되는 것. 이게 업계가 이제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목표는 젊은 게임 개발자들이 충분히 세워볼 만한 목표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어렵긴 하다. 사장이나 PD들과 싸워가며...(웃음). 야근을 더 하는지 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이런 게임도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임. 아, 너무 민족주의적인가(웃음)?



Q. 이전까지는 스타 개발자들이 있고, 그들이 전면에 섰다. 이제는 그런 스타 개발자를 보기 어려워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송재경 : 개발자를 일부러 감추거나 하는 건 아닌데.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는 개인기에 의존해서 게임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이제는 업계가 성숙해가면서 게임이 더이상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게임을 혼자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인디개발자는 있지만, 대부분 최소 30명부터 100명, 200명까지 개발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PD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개발 과정의 체계가 이루어지고 분업화, 팀 단위 개발로 변화했다. 중간에 PD가 바뀌어도 게임이 원활히 출시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개발자 송재경의 스탠스가 있을 것이고, 엑스엘 게임즈 대표 송재경으로서의 스탠스가 있을 것 같다. 두 스탠스의 비전을 듣고 싶다.

송재경 : 어떻게 보면 내적 갈등이기도 한데(웃음). 대중적인 게임을 만들어서 회사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개발자로서 사람들에게 명작 평가를 받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 두 요소가 갈등까지는 아니어도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물론 완전히 다른 목표는 아니다. 명작이면 대중적일 수 있으니까.


Q. 좀 근본적인 질문인 거 같은데, 게임을 개발하는 이유가 있다면?

송재경 : 딱히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고. 흘러 흘러 벌써 52세가 되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데. 내 성격일 수도 있다. 꼭 어떤 걸 해야지, 이루어야지 하는 분들도 있지 않나. 난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되는대로 살아가다 보니.... 게임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좀 더 일찍, 젊었을 때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크게 성공한 후 취해서 살다 보니 이건 아니었구나, 싶었던 부분들이 생겼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영화가 노래 가사와 내용이 잘 어울리게 배치를 했더라. 그중 '라디오 가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가사에 "아직 너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 감동받았다. 물론 내가 라디오라는 것은 아니지만(웃음).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아직 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