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크게 바뀐다. 보통 자신이 내린 선택의 옳고 그름은 그 길을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모험보다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미디어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도전과 모험을 권장하지만, 안정을 걷어차고 모험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실패가 두렵다. 물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 스포티비 아나운서 출신 게임 캐스터 채민준이 그중 한 명이다.

아나운서는 많은 이들에게 선망받는 직업이다. 채민준에게도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흘린 땀과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이룬 꿈을 접어두고, 채민준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것이 채민준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모험을 선택한 채민준 캐스터, 그와 직접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Q. 퇴사 이후 어떻게 지냈나?

퇴사한 지 10일 정도 지났다. 아프리카TV에서 '포트나이트 대표BJ 선발전' 중계 의뢰가 들어와서 퇴사 일자를 조금 더 앞당겼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포트나이트 중계를 무사히 마쳤고, 지금은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지내고 있다. 몬스터헌터 출시와 함께 구입했지만, 바빠서 하지 못하고 있었던 플레이스테이션4도 퇴사 이후 제대로 즐기고 있다. 최근에는 식음을 전폐하며 언차티드 콜렉션 시리즈를 1부터 3까지 격파했다.


Q. 스포티비가 개국한 2011년부터 8년 동안 스포티비의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퇴사 결정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거 같은데,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을 했지만, 더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3년 동안 프로리그를 정말 즐겁게 중계했다. 끝나고 돌아보니 '왜 그때 더 즐겁게 하지 못했나'라고 미련이 남을 정도로 그 시간이 그리웠다. 이후 몇 번이나 스포티비게임즈에서 출연 요청이 왔지만, 출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게임은 취미로만 하자'고 자신을 억눌렀다. 그렇게 항상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할 만큼 했다는 생각과 함께 '하루라도 어릴 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결심했다.

결혼한 입장에서 이런 선택이 쉽지 않았는데, 아내가 정말 많이 배려해줬다. 게임을 할 때나 개인 방송을 할 때 내 모습이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다며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 아내가 "돈 많이 벌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회사에 사표를 냈다.



Q. 퇴사 결정 이후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말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은데?

e스포츠 업계 관계자들은 잘 나왔다며 격려해줬다. e스포츠의 미래는 밝고, 게임 시장은 앞으로 계속 커지니까. 하지만, UFC를 비롯한 일반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셨던 시청자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앞으로 e스포츠에서 좋은 활동을 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해주신 분들께 내가 좋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여드릴 생각이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처음 스포티비에 입사할 때부터 걱정이 많으셨다. 당시 나도 잘 모르는 채널이었는데, 부모님도 모르시는 게 당연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나의 인지도가 조금씩 쌓였고 TV에서 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를 많이 믿어주셨다.

원래 아버지와 통화를 15초 내외로 짧게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랑 통화했는데, 3분 동안 말씀하시더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맞다"며 "걱정하지 않고 믿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잘 해봐라"고 말씀하셨는데, 확실히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았다(웃음). 그래도 부모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Q. 처음부터 e스포츠 캐스터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을 것 같다. 언제 처음 e스포츠 캐스터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프로리그를 중계하기 전까지 한 번도 게임 캐스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게임을 좋아했지만, 내가 게임 방송을 중계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처음 프로리그 중계 제의를 받고 걱정이 앞섰지만, 자신감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타이밍도 잘 맞았고 인복도 있어서 잘 융화된 것 같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큰 즐거움과 변화를 줬다. 그때도 e스포츠 중계를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즐겁게 지냈다. 프로리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해방구였다. 프로리그가 끝나고 스포츠 중계로 돌아왔지만, e스포츠에 대한 갈망은 잊혀지지 않았고, 오랜 고민 끝에 e스포츠 캐스터가 되기로 했다.


Q. 프로리그를 중계하며 뛰어난 개그감과 예능감을 선보였다. 스포츠 중계에서 그런 예능감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쉽지 않았나?

예능감을 터뜨리고 싶어서 나온 건 아니다. 그래도 한편으로 아쉬움이 있었다. 스포츠 중계에서는 격식이 필요하다. 웃기려고 하면 방송이 산으로 갈 수 있다. 더 좋은 방송을 위해 억누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UFC 중계를 하면서 많이 해소했던 것 같다. 확실히 e스포츠 중계에서는 재미 요소가 필요하다. 대신 중계진 사이의 호흡이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오버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고)인규와 (유)대현이 형이 잘 받아줘서 내가 재밌게 비친 것 같다.



Q. 3년 동안 e스포츠 캐스터로 일하며 느낀 e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나에게 프로게이머는 아이돌이었다. 프로리그 초반에 선수들에게 말도 잘 못 놨다. 두 번째 시즌 후반부터 서서히 말도 놓고 사석에서 같이 술도 마셨다. TV로만 봤던 프로게이머, 유명 해설자 등 동경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e스포츠를 중계한 기간이 일반 스포츠를 중계한 기간보다 훨씬 짧았지만, e스포츠를 중계할 때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나는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그런 관심이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 어렸을 때 목표 중 하나가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오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스포츠 중계를 했을 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는데, 프로리그 중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검색했을 때 내가 나왔다. 확실히 e스포츠는 나와 더 잘 맞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매력이 있다.


Q. 여전히 '유채꽃' 조합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유대현, 고인규 해설의 반응은 어땠나?

예전부터 술자리도 많이 가졌고, 단톡방도 있다. 셋이 맨날 얘기하는데, 대현이 형은 항상 나에게 "넌 e스포츠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 결국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하니까 두 사람 모두 굉장히 놀라더라.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거다"라며 응원을 많이 해준다.

나에게 인규와 대현이 형은 귀인이다. 게임으로 따지면 최정예 파티다. 우리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셋이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스타2 공식 리그 중계는 너무 큰 욕심인 것 같고, 뭐라도 콘텐츠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스튜디오도 차릴 생각이다. 아무래도 세 명 모두 유부남인데 집에서 하긴 힘드니까. 물론, 아직 뚜렷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Q. 과거에 중계했던 스타2를 제외하고 중계하고 싶은 종목이 있나?

다른 종목은 워낙 코어 한 팬들이 많고, 내가 뒤늦게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융화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못 하면 e스포츠 판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가 넘어야 할 허들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종목도 도전해보고 싶다. 스포츠 중계를 했을 때도, 해보지 않은 종목에 대한 중계 지시가 내려오면 열심히 공부하면서 중계를 준비하곤 했다. e스포츠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할 생각이다.

게임에 대해 모르면 안 되기 때문에 지금 다양한 게임을 접하고 있다. 그런 핑계로 식음을 전폐하며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다(웃음). 즐겨하는 게임은 스타2, LoL, 하스스톤이다. 최근에는 포트나이트 중계 때문에 포트나이트를 접했다. 건물 짓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나는 웬만한 게임에 흥미를 잘 붙인다. 예전에 모바일 게임이 새로 출시되면 전부 다운받아서 플레이하곤 했다. 한 가지를 오래 하기보다는 다양한 게임을 즐겨 하는 편이다. 게임 방송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회사에서도 틈이 날 때마다 게임 방송을 많이 봤고, 자기 전에도 본다. 노력이라기보다는 그냥 좋아서 보는 거다. 그게 e스포츠의 매력인 것 같다.



Q. 현재 LoL이 e스포츠 대세 종목 중 하나다. LoL 중계 계획은 없나?

LoL도 열심히 하고 있다. 골드1까지 찍어봤다. '탑신봉자'지만, 탱커를 좋아한다. e스포츠 캐스터가 해설처럼 게임을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관심은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LoL 중계를 준비하고 있다기보다는 LoL도 평소 즐겨하는 게임 중 하나다.

나의 중계 철학에 대해 말하자면, 선수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해설자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캐스터는 전체적인 그림을 읽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게임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어설프게 판단하지 않고 정확하게 알고 표현하기 위함이다.


Q. e스포츠에서 경력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중계진들이 많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곳인데, 잘할 자신 있나?

e스포츠 중계에서 흐름을 읽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위기를 이끄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수련해야 할 것이 많다. 아직은 약점이 많은 캐스터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e스포츠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

스트리밍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업은 중계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일이 별로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하나하나 일이 왔을 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은 일이 따라올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임할 생각이다.


Q. e스포츠 시장이 계속 커지는 추세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내가 퇴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스포츠 시장은 절대 축소되진 않을 것이다. e스포츠와 함께 e스포츠 중계 산업 또한 앞으로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e스포츠 경기장도 계속해서 새로 만들어질 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자리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Q.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원래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쉽지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3, 4년이 지났을 때, '왜 그때 시도하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는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아나운서를 도전한 것도 나중에 4, 50대가 돼서 후회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대신 도전을 했다는 것 자체도 나중에 삶에 큰 가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Q. 채민준 캐스터의 꿈은 무엇인가?

아직 회사를 나왔다는 것이 잘 실감이 되지 않는다. 마치 휴가를 나온 것 같다. 지금이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내가 한 선택에 후회 없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


Q. 끝으로 채민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퇴사하기 전에 나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따뜻한 곳에서 나온 만큼 내가 좋아하는 e스포츠에서 최대한 얼굴을 많이 비추며 열심히 활동하겠다. 팬들께서 좋아하셨던 예전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