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LCK의 시작을 앞두고 SKT T1과 그리핀의 대결은 정말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다. SKT T1은 국-내외의 수많은 LoL 대회에서 우승하며 대기록을 세운 전통 강호다. 지난 LCK에서 팀 명성에 걸맞은 결과는 내지 못했지만, 당시 최고의 성적을 냈던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다시 한번 기대를 불러모았다.

반대로, 그리핀은 떠오르는 신흥 강호라고 할 수 있다. 작년부터 챌린저스에서 올라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SKT T1이 작년 말 이적 소식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면, 그리핀은 LoL KeSPA컵에서 무실 세트 우승과 함께 올 한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팀이다. 확실히 다른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였기에 타 팀이 거뒀던 KeSPA컵 우승, 그 이상의 기세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그리핀과 SKT T1의 올해 첫 대결을 1월의 마지막 날 진행했다. 해설자부터 시청자들까지 이를 보는 많은 이들이 큰 기대를 안고 지켜봤다. 경기 결과는 그리핀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LCK에서도 무실 세트 연승 중인 그리핀이 강하다는 건 LCK 팬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됐다.

팽팽한 접전을 바랐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변함없는 SKT T1의 경기력이었다. 반복해서 나오는 픽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야심차게 꺼낸 챔피언의 플레이에는 불안함이 묻어나왔다. 게다가, 기존 SKT T1과 현 팀원만의 강점 역시 드러나지 않았다. 패배하는 흐름을 보며 지난 샌드박스 게이밍과 대결이 다시 한번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핀-샌드박스가 있는 상위권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 SKT T1 힘의 원천 '라인전' 어디로?


SKT T1이 오랫동안 강호로 불리운 이유는 라인전부터 상대를 압도해버렸기 때문이다. 킬 없이 무난한 그림 속에서도 어느새 유리해져있는, 상대 입장에서 무언가 변수를 만들지 않으면 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팀이었다. 많은 롤드컵-MSI 우승을 이끌었던 '페이커-뱅-울프'의 '포스' 역시 라인전 단계부터 나왔다. 최근 2년간 성적이 부진할 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올해 영입한 선수들과 함께 다시 그 시절의 희망을 떠올릴 법 했다. 작년 경기를 돌아보면 탑에서 딜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칸' 김동하, 봇 라인이 강한 KT 출신의 '마타' 조세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런 기대도 충분히 가질만 했다.

하지만 이번 그리핀전 1세트에서 그 힘의 원천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탑과 미드에서 라인이 밀리더니 CS 격차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17분까지 킬 없이 흘러가는 사이 미드 포탑 포블을 먼저 내준 것이다. 초반부터 '칸' 김동하의 우르곳이 딜 교환을 시도하며 상대를 눌러보려고 했으나 장기적인 라인전 단계에서 어느새 밀리고 있었다. 격차를 좁히려고 하자 '소드' 최성원의 사이온이 한타를 지배하며 공들여 가져간 CS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페이커' 이상혁의 라이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인이 밀리는 상황에서 시도한 로밍은 더 큰 독으로 작용해 포탑 방패 골드를 내주는 게 전부였다.

SKT T1은 불리한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교전을 시도는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어설프게 몸만 앞서서 들어간 교전에서 이길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리핀이 원하는 그림을 완성할 기회가 되고 말았다. 라인전 단계부터 밀려 답답한 경기를 펼친 SKT T1. 2세트에서 라인전을 좀 해결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 라인전'만' 이긴건가... 그 뒤는 없었다

SKT T1의 2세트 초반 라인전 단계는 이전보다 나은 것처럼 보였다. 탑에서 '칸' 김동하의 빅토르가 제이스를 상대로 준수한 딜 교환으로 초반 주도권을 잡았다. 라인을 밀어 넣고 먼저 움직이며 합류할 수 있었던 것. 미드에서는 '페이커' 이상혁의 이렐리아가 6레벨에 궁극기로 상대 갈리오를 끊어보려는 시도도 해봤다.

하지만 SKT T1의 노림수는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상대 정글로 들어가 합류 싸움을 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라인에서 압박한 뒤 합류 싸움을 이기려고 했으나 압박도 확실하지 않았고 합류하는 타이밍도 아쉬웠다. 챔피언 픽의 장점마저 살리지 못한, 많은 게 엇나가면서 돌이킬 수 없는 한타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 SKT T1의 합류는 빨랐으나...

미드 라인전에서는 이렐리아가 이미 궁극기와 점화를 이미 소모한 상태였다. 상대인 갈리오를 압박할 만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 9.2 패치의 이렐리아가 힘이 빠졌다는 걸 보여준 게 전부인 장면이었다. 반대로 '쵸비' 정지훈의 갈리오는 팀과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SKT T1과 이렐리아가 적 정글로 들어가 교전을 감행하면서 결국 무리한 플레이가 된 것이다.

탑-정글 역시 마찬가지로 픽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빅토르가 먼저 합류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갈리오-녹턴의 딜에 한 방에 쓰러질 정도로 무기력한 장면이 나오고 말았다. 상대 정글로 들어가는 플레이는 후반 캐리를 바라보는 빅토르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경기전부터 준비한 작전이라면, 차라리 난전에 강한 레넥톤을 가져오는 게 나아 보일 정도로 무기력한 빅토르의 모습이었다.

정글러 '클리드' 김태민의 올라프도 '타잔' 이승용의 녹턴에 비해 레벨에서 밀리는 상황이었다. 6레벨 이전 교전이야 주도할 수 있지만, 이미 녹턴은 6레벨을 달성한 상태였다. 녹턴-갈리오 궁극기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때, 교전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올라프를 잡았다면, 확실히 초반에 싸움을 벌이던가, 본인 레벨이라도 맞춰가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애매한 플레이로 레벨 격차가 나면서 순식간에 킬 스코어 5:0까지 벌어지는 상황이 나온 것이다.

반대로 '타잔'의 녹턴은 레벨링에 집중해 자신이 강해지는 타이밍을 앞당길 수 있었다. SKT T1 라이너들이 그사이에 상대를 압박해봤지만, 결과적으로 교전에 합류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탑과 미드에서 정글러 도움 없이 단단히 버텨준 그리핀 라이너들이 능력을 발휘한 장면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리핀은 개인기가 아닌 팀플레이와 합류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 밴픽, 챔피언과 조합 선택 이유 분명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2세트에 등장한 녹턴과 올라프의 구도는 이전 경기에도 나왔다는 거다. SKT T1은 두 번 연속 올라프를 꺼내 팀적으로 활용을 못 했지만, 그리핀은 담원 게이밍을 상대로 올라프로 승리한 적이 있다. 영상 하이라이트를 보면 알듯이, 당시 올라프는 6레벨 이전에 강한 타이밍에 과감하게 교전을 열어 킬을 챙겼다. 반대로, 녹턴이 6레벨을 달성하고 강해진 시점에는 역갱킹으로 아군의 뒤를 봐주면서 기회를 잡는 장면이었다. 아군 라이너의 연기를 바탕으로 상대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한 '타잔'의 올라프였기에 가능했다. '구원' 아이템 역시 좁은 지역으로 상대를 끌어들였을 때 아군 힐과 상대 딜이 모두 가능한 위치에 활용했다. 단순히 올라프라는 챔피언이 나쁜 게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클리드' 역시 리 신과 같은 자신의 손에 맞는, 팀적으로 어떻게 역할을 할지 아는 챔피언으로 그동안 승리를 해온 선수다. 이번 경기는 좋은 픽, 나쁜 픽을 넘어 게임 내에서 어떻게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알려줬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OP 챔피언을 먼저 가져오는 게 아닌, 자신들이 설계한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핀은 매 경기 다른 역할을 지닌 '타잔'의 챔피언에 맞춰가는 플레이를 했고, SKT T1은 확실한 선택을 하지 못해 나온 경기 결과였다.


▲ 지난 샌드박스와 대결에서도 봇 저격 밴이 나온 바 있었다


가장 시급한 점은 SKT T1이 봇 라인 집중 밴에 연이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샌드박스가 SKT T1을 꺾을 때 서포터 4밴을 강행해 승리했고, 그리핀전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봇 중심 밴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불리하더라도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줬던 SKT T1의 봇의 캐리력이 꺾이는 건 물론, 동시에 상체의 밴픽마저 손해 보는 그림이 나왔다. 그리핀이 다시 다수의 봇 밴을 할 것 같은 상황이 오자 SKT T1은 이전 경기까지 밴율 96%를 자랑하는 카시오페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리핀은 제이스를 시작으로 상체 싸움에 강력한 픽을 먼저 가져갔다. 결과적으로는 카시오페아는 라인전에서 밀렸고, 상체 합류전에서 제이스 대신 나온 빅토르가 힘을 발휘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밴픽부터 플레이까지 그리핀은 SKT T1보다 한 수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더라도 철저한 피드백과 함께 완벽을 추구하는 팀이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밴픽으로 특정 라이너-정글러에 힘을 주면, 팀원들이 픽에 맞게 자신의 플레이까지 조절해나갈 수 있는 팀이다. 더 무서운 건 다양한 스타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리핀의 기세의 끝을 더 알 수 없을 것 같다.

확실히 그리핀은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는 이유를 경기를 통해 증명해나가고 있다. 아직 다른 팀 역시 좌절할 만한 단계는 아니다. 다만, 밴픽에서부터 게임 내 플레이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최상위권을 노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