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지나고 열어본 메일함에는 반가운 연락이 와있었다. '동물의 숲'을 사랑하는 87세의 게이머, 오드리 할머니(Grandma Audrey)로부터 온 편지였다. 지난 1월 SNS를 통해 소개된 오드리 할머니는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을 3,500시간 이상 플레이한 게이머로, 그녀의 닌텐도 3DS에는 지난 4년간 아플 때를 제외하곤 매일 조금씩 플레이해온 결과가 담겨있다.

Grandma Audrey "안녕하세요, 한국의 게이머 여러분. 난 오드리 할머니예요!"

▲오드리 할머니 (Grandma Audrey)

오드리 할머니의 이야기는 손자, 폴 휴벤스(Paul Hubans)의 SNS와 영상을 통해서 세계 곳곳의 게이머들에게 전달됐다. 해당 트윗 내용은 거의 10만 개에 이르는 하트를 받고 2만 6천 번 이상 리트윗 되었으며, 이후 펀드레이저를 통해 오드리 할머니께 닌텐도 스위치를 선물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금도 수많은 게이머가 오드리 할머니의 게이머 라이프를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오드리 할머니의 이야기는 단순히 '할머니 게이머'가 특이했기 때문에 이슈화된 것은 아니다. 게임을 사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가져다준 따뜻한 감정의 힘이 컸다.

"내가 최근 본 영상 중에서 가장 순수한 영상이었던 것 같다."
"저 할머니는 정말 대단해! 다음 신작에는 오드리 할머니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해!"
"유튜브가 이 영상 하나로 날 나의 유년기 시절로 돌아가게 해줬어."
"정말 눈물이 났어. 우리 할머니는 8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릴 때 함께 닌텐독스를 플레이해주시곤 했거든."


개인적으로도 오드리 할머니가 직접 자신의 마을을 소개하는 영상에 담긴 할머니와 손자의 따뜻한 대화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영상에서 손자 폴은 조금 느릿느릿한 오드리 할머니의 플레이를 재촉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Grandma Audrey "저 캐릭터가 나란다."
Paul "귀엽네요! 할머니와 닮은 부분들이 보여요."

인터뷰 요청을 위해 폴에게 연락하자 정말 빠르게 답장이 왔다. 같은 미국땅이지만 서로 정반대 편에서 살고 있는 만큼 할머니와의 소통은 좀 느릴 수 있지만, 꼭 전달해주겠다는 친절한 답장이었다. 그 스스로도 게임 개발자인 만큼, 오드리 할머니의 이야기가 게임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기쁘다고 전했다.

Paul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최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슈도 많은데, (오드리 할머니의) 이 이야기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늦었지만, 미국의 동부에서 서부로, 그리고 한국까지 전달된 오드리 할머니의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긴 분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게이머로서 그녀가 '동물의 숲'을 통해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느껴볼 수 있는 따뜻한 답변이었다.

Grandma Audrey "예전부터 게임을 즐겨왔던 건 아니에요. 내가 50대 즈음이었을 때부터 게임을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손주가 비디오 게임을 소개해준 것이 계기였지요. 물론, 그전에도 직소 퍼즐이나 낱말 퍼즐을 맞추는 걸 좋아하긴 했지(웃음)."

▲오드리 할머니의 '동물의 숲' 활동 로그

할머니가 게임을 즐기게 된 것은 게임 개발자이기도 한 손자 폴이 그녀에게 비디오게임을 소개해주면서부터였다. 영상에서 할머니와 손자의 따뜻한 관계가 느껴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서로 먼 거리에서 살고 있고, 폴은 일 년에 한 번 정도밖에 할머니 댁을 방문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사실 거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가까이 살고 있어도 소통하지 않는 가족들도 많지 않은가.

수백만 사람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말에 조금은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 오드리 할머니. 영상과 함께 폴은 할머니의 프렌즈 코드를 공개해두어 방문하고 싶은 유저들은 방문할 수 있도록 해두고 있다. 실제로 할머니의 마을을 방문한 유저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실제로 방문한 유저들은 많았을까?

Grandma Audrey "몇 명이 방문했는지는 잘 모르겠네. 하지만 내 마을에 온 유저들을 만나보고 싶네요! 정말 신 나는 일일 거예요."

영상 속에 담긴 할머니의 마을에는 수많은 꽃으로 꾸며진 마당과 음식, 가구들로 가득하다. 왠지 창고형 인테리어를 선호하시는 듯한 모습에 문득 궁금해졌다. 할머니께서 '동물의 숲'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무엇일까? 그 속에서 인테리어의 이유를 들어볼 수 있었다.

Grandma Audrey "그 조그마한 동물들을 돕는 것이 즐거워요. 과일을 주거나 하면서. 내가 테이블 위에 과일을 올려두는 이유기도 한데, 가끔 동물들이 과일을 부탁하러 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를 위해 준비해두는 거야. 가구도 그렇게 해두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고 싶어하시는 할머니들의 따뜻한 마음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동물들을 위해 미리미리 먹을 것과 가구들을 잔뜩 준비해두신 모습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드리 할머니는 이와 함께 '동물의 숲'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의 집이 생각나서 재밌게 하게 됐다고 덧붙이셨다.

Grandma Audrey "('동물의 숲'을 하고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형의 집이 떠올라요. 꾸미고, 부수고. 그래서 플레이하는 것 같아. 그리고 매일 조금씩 다른 것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고."

어떤 동물은 마을에 두고 싶어서 붙잡기도 하고, 어떤 동물은 그냥 가라고 보내기도 하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마을을 만들어가고 계신다. 겨울에 등장한 눈덩이를 가지고 작년에는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올해는 그냥 발로 차서 치워두기도 하고. 마을의 이곳저곳에 만들어둔 것, 물건마다 어떻게 얻었는지, 하나하나에 이야기와 기억을 담아둔 것들을 설명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 외에 게임 속에 뭔가 더 추가됐으면 하시는 요소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Grandma Audrey "잘 모르겠는걸... 아이고, 이미 있는 것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단다."

라고 간단한 답변을 받아볼 수 있었다. 아이쿠, 너무 개발자와의 인터뷰에서 물어볼 법한 질문을 해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는 게임 속에 여러 가지 콘텐츠를 즐기는 것 자체가 바쁘기도 하지만, 하루에 게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균 플레이타임 1시간 25분, 할머니의 게이머 라이프는 사실 쉽지만은 않다. 더 많은 시간을 '동물의 숲'과 보내고 싶어도, 현실에서 할머니가 돌봐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Grandma Audrey "게임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사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 만큼 할정도로 여유로운 시간이 많지가 않아요. 나에게는 뇌성 마비 때문에 몸이 불편한 60세 아들이 있고, 그를 돌봐야 하는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진도는 조금 느릴 수 있지만, 오드리 할머니는 앞으로도 게임을 즐겨나가실 예정이다. '동물의 숲' 신작이 출시되기 전까지, 게이머들이 할머니께 선물한 닌텐도 스위치로 '레츠고! 피카츄'를 플레이하시면서.

▲오드리 할머니는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팬이시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오드리 할머니께 개인적으로 팁을 하나 여쭤보았다. 하나의 게임을 그렇게 오래도록,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Grandma Audrey "나도 끌리지 않거나 잘 모르겠는 게임이 많았어요. 자신에게 맞는 게임을 못 찾았기 때문 아닐까? '동물의 숲'도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는데(웃음). 근데 이제는 그만 플레이할 수가 없게 되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