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달콤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보니 동생이 분주하게 초콜릿을 휘젓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마카롱을 굽겠다고 온종일 매달려있더니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하나를 집으려 하니까 못생긴 거로 골라 먹으란다. 예쁜 건 남자친구 줄 거라고. 아, 발렌타인 데이구나.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줄 사람은 없었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임이 하나 있었다. 이름부터 핑크빛인 '보이프렌드 던전(The Boyfriend Dungeon)'. 2019년 출시 예정인 로그라이크+연애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킥스타터 목표 금액의 4배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여자친구도 (그리고 비둘기도) 만날 수 있는 게임이다.


초콜릿을 받을 예정이 없는 남자에게도 그렇겠지만, 줄 사람 없는 여자에게도 의미 없는 발렌타인 데이. 동생만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뭐, 덕분에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본 게임의 소개글을 쓸 기회가 생겨서 고마울 따름이다.

아, 근데 동생이 구운 마카롱, 맛은 있었는데. 딱딱해서 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흥.


쉿, 내 남자친구는 변신 중!
로그라이크+연애 시뮬레이션?

발렌타인 데이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게임이라는 점 때문에 조금 미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 소개하자면 '보이프렌드 던전'은 로그라이크와 연애 시뮬레이션을 조합한 게임이다. 던전에서의 모험을 하면서도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데이트도 발생하며, 문자를 통한 꽁냥꽁냥(?)도 가능하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보이프렌드 던전'이 어떤 게임인가. 던전에서 돈 벌어와 토끼 같은 남자친구를 먹여 살리는 게임인가 하니, 그건 아니다. (좋은데?) 던전에서 사용하는 무기 자체가 연인이 된다. 소환하거나 대신 싸워주는 형식이 아니라, 정말 무기가 남자친구다. 변신도 한다. 마법 소녀처럼.

▲문 크리스탈 파워★ 변신!

좋다. 이거다. 너무 예쁘다. 남자친구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마법 소녀 물을 좋아해 왔던 나의 취향을 적극 건드려주는 영상이었다. 좋은 것+좋은 것=정말 좋은 것 아니겠나. (갑자기 딸기+라면이 떠올랐지만 애써 잊는다.) 왠지 필요 이상으로 고퀄리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사실 진지하다고 할 수 없는 설정이지만, 게임의 연애 시뮬레이션은 꽤 진지하게 진행된다. 호감도에 따라서 무기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만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집에서 문자를 통해 연인과 대화하는 것은 물론, 게임 속 '어머니'도 등장해, 연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다만, 캐릭터들도 자신이 무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주인공인 나도 알고 있어서 대화할 때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데이트도 가능하다. 베로나 해변가 주변의 장소를 골라서 만날 수도 있고, 던전에서 모험을 하다가도 미니 데이트가 진행되기도 한다고. 이게 바로 전장에서 피어나는 사랑...!

▲데이트 가능한 인물과 던전을 확인할 수 있다.

The couple that slays together, stays together.
함께 (적을) 베는 커플은, 함께 오래간다(!).
- Kitfox Games

인게임에서 던전(Dunj)은 맵에서 갈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가장 처음 플레이하게 되는 던전은 베로나 쇼핑몰로, 괴물들에게 점령당한 장소로 되어있다. 그 외에도 클럽, 미공개 던전 등이 추가될 예정이라고. 던전마다 다른 타입의 몬스터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보스 몬스터와 새로운 무기, 로맨틱 스팟도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음악도 달라진다!

물론, 무기마다 플레이 방식도, 콤보도 달라진다. 도검은 좀 더 넓은 범위를 벨 수 있으며, 단검은 빠르고 좁은 범위의 공격, 에페는 정확도를 요구하지만 스턴을 걸 수 있다. 레이저 세이버는 콤보를 통해 원거리 공격을 추가로 가할 수도 있다.

▲무기마다 플레이 방식이 달라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시스템이지만, 왠지 남자친구/여자친구라고 생각하니 조금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또 다른 방식의 데이트 같다고 해야 하나. 던전을 돌면서 외로울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절로 생기는 무기에 대한 애착은 덤. 전투를 하면서 간간히 무기가 말도 건다.

"현실에서는 여러 명의 연인을 사귀는 것이나,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피곤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할만한 일을 넘어서 즐거운 일이 되죠!" - Tanya X. Short 디렉터


멋있...나? 남자친구/여자친구 후보들!
참고로 나도 쓰면서 힘들었다

자, 본격적으로 이제 미래 남자친구(혹은 여자친구, 혹은 그외.) 후보를 소개한다. 사람으로서의 외형과 특성은 물론, 무기로서의 특징도 확인해볼 수 있으며, 직업도 정해져 있다. 무기라서 직업이 무기인 줄 알았는데, 무기들도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다.

한편, 어떤 캐릭터가 자신에게 어울릴지 알려주는 간단한 테스트도 준비되어있다. 영어로 되어있지만 크게 어려운 내용은 없어서 해볼 만 하다. 세 번 테스트해봐서 세 번 다 똑같은 캐릭터가 나오면 운명이라고 생각하자.


"안녕, 예쁜이. 너 같은 사람을 던전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널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어."

먼저 옛 인도 대륙에서 사용된 도검인 선더(Sunder). 트레일러가 공개됐을 때부터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눈빛을 자랑한 캐릭터로, 클럽의 오너로 등장한다. 좋아하는 요소에 헤어 제품이 들어가 있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앞서 공개한 변신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장미꽃이 흩날리는... 조금 부담스러워서 설명하는데도 데미지를 입는 기분이다. 넘기자.



"어머, 너 너무 귀엽다! 무슨 일이니? 나에게는 말해도 된단다. 물론 네가 그러고 싶다면 말이야."

단검인 발레리아(Valeria)는 화가인 여성 캐릭터다. 사실 선더보다 발레리아에게 더 눈이 가더라. 그림 그리는 단검. 뭔가 아름다움과 날카로움을 모두 가진 느낌이 들지 않는가. 또한, 여행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지 변신하는 모습과 외형을 보면 외향적인 특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발레리아의 변신 애니메이션. 예쁘다.




"내 옆에, 하지만 너무 가깝지 않게 붙으라고. 길게 숨을 들이쉬고, 페리, 그리고 찔러."

금융인이자 에페인 아이작(Issac)은 진지한 모습이 매력적인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처음에 눈에 들어왔던 캐릭턴데. 명상과 철학을 좋아하고,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러운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 선더는 너무 개그캐(?)였다. 본격적으로 멋진 캐릭터가 등장해서 마음에 든다. 캐릭터처럼, 무기일 때도 정확도를 요구한다.



"저기. 나는 우리의... 우정을 말이지, 아직은 비밀로 하고 싶어. 너가 괜찮다면."

레이저세이버인 세븐(Seven)은... 이름이 낯익다 싶었더니 직업까지 케이팝 아이돌이다. 개발자가 아무래도 세븐을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지 팬클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파워업해서 화려하게 공격하면서도, 조용히 재충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레이저세이버와 어울리는 설정이다.



"으아! 수업에 늦겠어!"

글레이브인 소여(Sawyer)는 학생으로, 시와 게임을 좋아하는 캐릭터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논 바이너리 섹슈얼이라고. 찾아보니 스스로를 남자로도 여자로도 정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외형부터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여담으로 아까 언급한 테스트에서 동료 기자가 이 캐릭터만 세 번 나왔다고.



"야옹. 야옹."

앞서 소개된 캐릭터 외에도 킥스타터 목표 달성을 통해 네 캐릭터가 추가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연애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는 유일한 캐릭터인 고양이, 포켓(Pocket). 햇빛을 좋아하고 다른 고양이와 짝사랑을 싫어한다고. 짝사랑을 싫어한다니, 왠지 정말 고양이다운 특성이다. 귀엽다... 고없찐은 포켓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연락할게. 하지만... 좀 기다려줘. 99999999"

비둘기 연애 시뮬레이션, 하토풀 보이프렌드의 개발자가 디자인한 캐릭터, 로완(Rowan). 그래서 그런지 어깨에 새가 앉아있다. 낫이자, 사람이자, 비둘기인 캐릭터인가 했는데, 성별은 소여처럼 논 바이너리지만 새는 아닌가 보다.



"안녕, 귀염둥이. 날 추가해줘서 고마워."

외형부터 한눈에 마음에 든 레아(Leah). 가녀린 외모와 다르게 망치라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운동선수인 만큼 페어 플레이와 팀스포츠를 좋아하며, 반칙을 싫어한다고. 잘하라는 말보다 '너의 최선을 다한다고, 그리고 공정하게 하겠다고 약속해줘.'라는 대사가 멋있다!



"난 말이 별로 없을 수 있지만... 네가 함께해준다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추가된 캐릭터, 도끼... 여러모로 아주... 매력적이다. 그렇다. 이름은 디스코드에서 유저 투표를 진행해 정하는 중이라고. 음...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테스트를 통해 나온다면 당신의 운명이다. 난 안 나왔다.


충분히 아름다워졌을 때 출시된다
아, 역시 내 남자친구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프렌드 던전'의 개발사인 Kitfox Games는 이전부터 하이브리드 게임들을 개발해온 인디 스튜디오다. 선택지에 따라서 능력이 바뀌는 감성 로그라이크 '문 헌터(Moon Hunter)', 중세 경영 시뮬레이션 '슈라우디드 아일(The Shrouded Isle)'까지. Kitfox Games의 작품들은 아쉬운 점은 확실히 있지만, 아이디어는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의 신작 '보이프렌드 던전'은 여러모로 신경쓴 티가 많이 나는 게임이다. 사실 부드러운 변신 애니메이션이 인상 깊어서 하는 말이지만, 그외에도 캐릭터마다 부여된 스토리와 성격, 무기로서의 특징과 전투 플레이 방식까지 디테일이 눈에 띈다. 특히, 게임을 시작하면 먼저 플레이어의 성별과 외형을 고르게 되는데, 던전 플레이에서 구현된 모습이 정말 귀엽다.

▲기본 외형 외에도 던전에서 파밍한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다.

게임 콘텐츠 외에도 팬들을 위한 선물의 디테일이나, 콘텐츠를 반영해 제작한 OST 공개, 그리고 직접 칼을 제작해보러 대장간을 찾는 등, 개발자들의 애정도 느껴진다.

▲킥스타터 리워드로는 이런 것도 있다고.

두가지 장르를 혼합하면서 생긴 콘셉트인지, 무기가 남자친구라는 콘셉트에서 혼합 장르가 탄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인 것은 분명하다. 진지하지 않은 설정과 매력적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는 캐릭터까지도 재미있다. 그만큼 이번 작품은 좀 더 짜임새 있는 결과물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보이프렌드 던전'은 2019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 역시 내 남자친구는 아직 태어나지... 아니 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팀 페이지에는 '무기들이 충분히 아름다워졌을때 출시될 예정'이라고. 올해 발렌타인 데이는 아쉽게 넘어가지만, 최소한 크리스마스에는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분명 그때까지 현실은 시궁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