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 3의 리마스터 버전,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는 지난 블리즈컨 2018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 중 하나였습니다. 4K 그래픽으로 더 선명하고 생생해진 영상뿐만 아니라, 실사 등신대로 표현된 우서와 아서스, 제이나를 본 팬들은 환호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죠. 여기에 더 드라마틱한 구도로 재구성된 컷씬과 한층 더 진보한 그래픽은 팬들로 하여금 원래부터 기억에 남을 장면들을 더욱 더 선명하게 각인하게끔 했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등이 일부 공개되면서, 어떤 점에서 그래픽이 개선됐는지 부분부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단편적으로 공개됐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개선이 이루어지고 변화가 일어났는지 맥락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죠.

블리자드에서는 오늘(22일), 자사 사무실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시연회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에서 지난 블리즈컨 2018에서 공개됐던 '정화' 미션을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시연 버전을 공개했죠. 약 한 시간, 정화 미션 기준으로 세 번 정도 플레이 가능한 시간이었지만 시연 빌드를 직접 체험하고, 기존과 다른 부분을 미리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시연장 내에서 사진 촬영 및 캡처는 불가능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사뭇 다른 스타일을 취했지만, 기존의 느낌을 살려낸 그래픽


처음 블리즈컨 2018에서 공개됐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그래픽의 변화였습니다. 해상도나 모델링, 라이팅, 이런 복잡한 것들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선 스타일부터가 달랐습니다. 원작은 카툰렌더링 스타일에 가까울 정도의 쉐이딩에, 캐릭터의 비율도 8등신의 실사풍보다는 5등신에 가깝게 데포르메가 된 모델링을 보여줬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리포지드에서는 실사에 가까운 신체 비율에, 좀 더 섬세한 맵핑과 쉐이딩으로 인물들을 좀 더 현실적인 그래픽으로 구현해냈죠.

이는 트레일러에서 보였던 컷씬뿐만 아니라, 실제 인게임 그래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풋맨은 드워프도 아닌데도 짜리몽땅한 팔다리로 과장된 걸음걸이로 허우적대던 유닛이었죠. 그랬던 풋맨이 얼라이언스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갑옷을 멋지게 빼입고, 길어진 팔다리로 척척 가는 것만 봐도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트레일러 컷씬과 인게임이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인게임에서는 좀 더 텍스쳐를 단순화해서 직관성을 살렸다는 점입니다. 물론 예전보다는 확실히 텍스쳐가 많이 정교해져서 더욱 사실감 있게 느껴지긴 합니다. 어보미네이션(누더기 골렘)의 배를 한 번 클로즈업해서 봤는데, 꽤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있어서 또 다시 보기가 좀 꺼려질 정도였죠. 그렇지만 일반 뷰로 보면 그런 세부적인 부분까지 정밀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또 한 가지, 이펙트는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시연에서 볼 수 있던 특수 효과 중에서 눈에 훤히 들어올 만한 것은 불길이나 시체 수레의 포탄, 라이플맨의 총성, 공포의 군주의 캐리언 스웜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긴 했습니다. 파티클을 세세히 살펴보면 그 하나하나는 정교하게 처리를 했지만, 전체적인 윤곽으로 보면 기존의 스킬 이펙트와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거든요.

물론 기법을 다르게 적용했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펙트럼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거나, 좀 더 세밀한 광원효과가 엿보인다거나 하는 것들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그냥 지켜볼 때에도 '그래픽이 더 좋아졌네'라는 것도 확연히 느껴지도록 변화가 있긴 했죠. 그러면서도 기존의 느낌을 살렸다는 생각이 들게끔 리마스터를 진행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아크메이지의 블리자드나 워터 엘레멘탈, 파 시어의 체인 라이트닝이나 어스퀘이크, 드레드로드의 인페르날 같은 좀 더 화려한 스킬들까지 본 것은 아니라서 100% 그렇다고 하기는 이르긴 하지만요.



사실 실사처럼 정교하고 섬세한 렌더링이나 모델링은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관성을 놓치기 쉽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하죠. 다만 워크래프트 3의 경우는 원작이 꽤나 데포르메가 가해진 그래픽을 보였던 만큼, 실사에 가깝게 정교해진 그래픽으로 바뀌면 원작의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걱정이 기우였다고 생각할 만큼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는 이 문제는 훌륭하게 처리했죠.





■ 기본기는 동일, 그러나 변화를 준 인터페이스


또 한 가지 가장 큰 변화는 하단 인터페이스창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워크래프트 3의 하단 인터페이스는 영웅의 아이템창을 제외하면 스타크래프트와 상당히 유사한 구성입니다. 좌측 하단에 미니맵, 유닛 초상화, 유닛 설명, 영웅 아이템창, 그리고 유닛 컨트롤 명령 및 건물 건설 명령이 있는 창으로 구분이 되어있죠.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에서는 순서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모양새나, 창 안의 아이콘 배치도가 상당히 달라졌죠. 특히나 영웅과 관계된 메뉴들이 상당히 개편된 모습입니다. 좀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 MOBA 게임과 비슷해진 느낌입니다. 원래 아이템창은 키패드의 모양새에 맞춰서 3X2, 즉 세로로 길게 놓인 형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개편에서는 2X3의 가로로 긴 형태로 변경이 되면서 MOB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창의 느낌이었죠. 그 외에도 유닛 컨트롤창도 명령 아이콘들을 좀 더 가로로 늘어서 배치한 형태였기 때문에, 이질감이 좀 느껴졌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인터페이스 자체가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진 데다가 아이콘도 그만큼 작아져서 직관성이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기존에는 프레임으로 확실하게 인터페이스 간 구분을 지었던 터라 구분이 좀 더 쉬웠지만,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에서는 프레임을 최대한 걷어낸 터라 좀 더 직관성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는 기존의 워크래프트 3와 비교했을 때의 문제이긴 합니다. 어느 정도 하다보면 익숙해졌거든요. 그리고 적어도 현재 MOBA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쪽이 더 익숙할 정도로, 그런 유형의 게임에서 채택하는 인터페이스들의 느낌이 많이 녹아있었습니다.

사족으로 하단 인터페이스에 관계된 건 아니지만, 체력바를 항상 위에 보이게 하는 옵션을 시연 빌드에서는 적용하지 못하는 게 좀 낯설었습니다. 물론 Alt키를 누르면 체력바가 위에 뜨는 건 동일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옵션을 기본적으로 켠 상태에서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죠. 그 외에 인터페이스에 관련되서 추가로 어떤 옵션이 생겼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메뉴창 자체가 잠겨있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인터페이스 부분을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닛 편성이나 단축키 등은 기존과 동일했거든요. F1, F2, F3로 영웅을 선택하거나 스페이스의 디폴트가 본진이라는 점, 최대 12기의 유닛을 부대 지정할 수 있다는 것 등등은 똑같았죠. 단축키도 동일하기 때문에, 이미 워크래프트 3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도 금방 하던 대로 플레이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 부대 지정 유닛 수 제한이나, 단축키 등은 기존과 동일합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맞춘 캠페인 맵 개편 및 수정


"캠페인의 맵 개편 및 일부 수정이 있을 것이다."

이미 인터뷰에서도 언급이 된 부분이긴 합니다. 그래봤자 얼마나 바뀌었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캠페인을 플레이해본 결과, 상당히 많이 바뀔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다만 이 바뀌는 캠페인 맵의 모습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기준으로 맞췄기 때문이죠.

원래 '정화' 미션 맵은 시작 지점이 1시 방향이고, 중앙에 있는 도심을 기점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동선이 짜여진 맵입니다. 중앙에서 11시, 6시, 5시로 한 번에 이동할 수는 없고 11시, 6시, 5시로 순차적으로 거쳐서 가도록 짜여있었죠.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버전에서 '정화' 미션의 맵은, 이때의 비극을 재현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옛 스트라솔름' 던전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옛 스트라솔름 던전처럼 6시 지점에서 시작하고, 스트라솔름 정문을 거쳐서 위쪽으로 올라간 뒤에는 중앙에서 각 구역으로 샛길을 따라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맵의 디테일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동선의 모양새는 옛 스트라솔름의 던전 맵이 금세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 WOW 옛 스트라솔름 인던 맵, 캠페인 맵과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동선이나 생김새는 유사합니다

그 외에도 미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닛 구성도 달라졌습니다. 원래 정화 미션에서는 아케인 생텀, 워크샵을 건설할 수 있었고, 모탈 팀, 프리스트, 소서리스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버전에서는 캐슬까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지만, 병영만 건설이 가능했습니다. 자연히 나머지 유닛을 사용하지 못하고 풋맨, 라이플맨, 나이트만 활용할 수 있었죠.

▲ 캠페인에서 생산 가능한 유닛 종류도 달라졌습니다

원래 이 미션이 대부분 나이트 위주로 활용하기는 하지만, 유닛 구성이 달라진 게 체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트가 앞에서 어보미네이션과 구울을 저지하는 동안 마법 공격 유닛인 프리스트와 소서리스로 헤비 아머인 어보미네이션을 딜해서 녹이는 플레이가 가능했거든요. 프리스트의 깨알 힐이나 디스펠, 소서리스의 슬로우 등도 꽤나 유용한 스킬이고요.

이런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보니 체감 난이도도 비교적 높았습니다. 물론 제가 유닛 컨트롤이나 상황 판단이 원래부터 안 좋았던 것도 있지만, 원래 쓸 수 있던 유닛을 못 쓰고 플레이하면 아무래도 말 몇 개 빼고 장기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죠.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갑자기 집에서 뜬금없이 특수 유닛들이 등장했습니다. 네크로맨서 특수 유닛은 그냥 성가신 정도지만 특수 어보미네이션은 디지즈 클라우드 데미지가 생각보다 꽤 높아서 풋맨으로는 접근하는 것마저 위험할 정도였습니다. 체력도 높아서 죽이는 데 꽤 시간이 오래 걸렸고요. 다만 맵의 동선이 짧아졌기 때문에 실질적인 플레이타임은 엇비슷했습니다.



■ 더 섬세해진 컷씬과 연출


사실 이 부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겁니다. 이미 공개된 트레일러에서 한 층 진보한 카메라 구도와 연출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이번에 언급할 부분은 패배했을 때의 연출입니다. 기존에는 캠페인에서 패배하면 하단 인터페이스 바로 위에 등장 인물 대사가 몇 줄 뜨고 패배 메시지가 뜨거나, 혹은 바로 패배 메시지가 뜨는 게 전부였습니다.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에서는 여기에도 인게임 연출을 삽입했습니다. '정화' 미션의 경우, 실패하게 되면 아서스와 그 부하들이 밀려들어오는 스컬지를 맞아서 싸우다가 전부 전사하게 되죠. 이 영상 중간중간에 말가니스가 그 낮게 깔린 음흉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는 대사를 계속 읊조리는 건 덤입니다. 듣다보면 짜증이 날 정도로 계속 도발하다보니, 노스렌드까지 원정 떠나는 아서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이번 시연 빌드는 영어로만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한국어로는 대체 어떻게 이걸 살릴 지 궁금해졌습니다.


▲ 공개된 것만 비교해도 확연히 차이가 느껴집니다

▲ 그리고 말가니스는 안 그래도 계속 도발하는데 게임오버되면 더 신랄하게 독설을 퍼붓습니다



■ 짧았던 시연 버전, 그래서 확인하지 못한 것들


이번 시연 빌드는 딱 정화 미션 하나만, 그것도 영문 버전으로만 제공이 됐습니다. 자연히 한국어화가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한국어 버전 트레일러도 공개가 된 데다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의 선례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한국어화, 더빙까지 제공되는 건 거의 확실합니다.

다만 이번 한국어화가 어디까지 진행이 될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유닛명을 원어 발음을 한국어로 적어놓을지, 아니면 유닛명이나 스킬명 등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처럼 우리 말로 바꿔서 적용할지 말이죠. 예를 들자면 어보미네이션으로 적냐, 누더기 골렘으로 적냐 이런 식이죠. 앞서 이야기했던 다양한 유닛들이나 마법들, 심지어 건물까지도 이미 한국어 번역이 다 끝난 상태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유저들은 여기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죠.

여기에서는 워크래프트 3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기존 워크래프트 3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적었습니다. 출시 때에는 과연 이대로 표기가 될지, 아니면 번역이 된 채 적힐지는 미지수입니다.

그 외에도 BGM이 어떻게 리마스터될지는, 체크하지는 못했습니다. 유닛과 스킬의 사운드는 기존과 거의 비슷했지만, 일단 처음 게임 메뉴에서 들린 BGM은 조금 다른 느낌인 것은 확인 가능했습니다. 다만 기존 워크래프트 3는 게임 내에서 각자가 선택한 종족의 테마곡이 들리고는 하는데, 이번 시연 빌드에서는 그 테마곡이 들리지 않았거든요.


사실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는, 리마스터인 만큼 게임플레이에서 크게 변화는 없었습니다. 물론 미션 하나만 갖고 이야기하기엔 성급한 감이 있지만, 적어도 기본기는 그대로였죠. 영웅 중심에, 낮은 유지비 혹은 높은 유지비 시스템, 여전히 동일한 부대 지정 최대 인원 수, 단축키 등등은 바뀌지 않았거든요.

여기에 기존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더욱 정교하게 바뀐 고해상도의 그래픽은 기존에 워크래프트 3를 플레이했던 유저로서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 퀄리티 때문이 아니라, 스타일을 바꾸었는데도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거든요. 다만 바뀐 하단 인터페이스나, 그 외에 아직 확인 못한 것들이 있어서 일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족 밸런스 같은 것을 논하기에도 너무 제한되기도 했고요. 아마 이런 것들은 나중에 공개가 될 테고, 그때 가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