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 리뷰는 고난의 길이다. 음압이 얼마고 저항이 얼만데 드라이버 유닛이 몇 미리에 이러쿵 저러쿵... 성능을 설명해봐야 외계어처럼 들릴 뿐이고 제대로 공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 비싼 걸 도대체 왜 사냐?'는 핀잔을 가장 많이 듣는 분야 중의 하나가 스피커, 헤드셋, 이어폰 등의 음향 기기. 누군가는 만원짜리 헤드셋도 만족하면서 쓰지만, 또 누군가는 100만원을 넘는 이어폰도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취향의 전쟁터.

좋은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줘 봐야 듣는 사람의 스피커가 엉망이면 의미없는 일. 말그대로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 불여일청이다. 아무리 말로 글로 심지어 영상으로 설명해봐야 결국 소리는 직접 들어봐야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이 소리가 과연 얼마만큼 좋은지 숫자로 딱 정해서 전달할 수 있다면 리뷰가 참 쉬울텐데. "이 6만원 짜리 헤드셋 좋은가요?", "제가 들어보니 45,680원 어치 음질이니 안 사시는게 좋겠네요."

▲ 수 많은 게이밍 헤드셋 중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게이밍 헤드셋. 배틀로얄의 인기에 힘입어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참 고르기가 난감하다. 싸구려는 좀 그렇고 뭔가 좋아 보이는 제품은 1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 PC방 헤드셋은 대부분 3만원 이하의 보급형이다. 그나마 장비 좀 제대로 갖췄다는 PC방에 가면 5만원 중반대의 헤드셋이 아~주 간혹 보이지만 시끄러운 PC방에서 제대로 헤드셋의 품질을 확인하기 어렵다.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게이밍 헤드셋은 브랜드로만 따져도 열 개가 넘는다. 대형 마트 가서 헤드셋으로 음악 들어봐야 그게 다 그거 같아 잘 모르겠고, 성능이 어떤지도 잘 모르는데 그냥 비싸면 좋으려니 믿고 사야할까?

있다. 다양한 고품질 게이밍 헤드셋을 직접 써 보고 또 실제로 게임 속에서 성능이 어떤지 소리까지 체험해 볼 수 있는 청음샵. 심지어 자신의 취향이나 지갑 사정에 따라 어떤 게이밍 헤드셋이 좋을지 상담까지 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상주하는 매장. 게이밍 헤드셋 테스트 존을 갖춘 청음샵 '셰에라자드'.

셰에라자드는 20년 역사를 가진 오디오 전문 쇼핑몰 '소리샵'에서 운영하는 200평 규모의 청음 매장으로, 음향을 사랑하는 리스너들은 꼭 방문해 보아야하는 매장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스마트 오디오'라는 무난한 이름이었으나 청담동으로 이전하며 공모를 통해 지금의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 음향 매장에 가면 한번쯤을 볼 수 있는 자르 에어로불 스피커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 '셰에라자드'처럼 매일 새로운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오디오의 성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천 개까지는 안되겠지만 평소에는 구경조차 힘든 최고급 스피커와 헤드셋들로 매장을 가득 채워 놓은 곳이라 눈과 귀가 호강이다.

압구정로데오 역에서 5분 거리. 개방된 형태의 전면 유리창으로 실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셰에라자드의 첫인상은 정갈한 고급스러움. 솔직히 문을 열기 전에 입구 컷 당하는게 아닐까 잠깐 고민했다. 미리 연락이야 했다지만 내가 여기 들어가도 되나 싶은 기분. 그래도 들어가니 반갑게 맞아준다.

일단 오기 힘든 곳을 왔으니 매장 구경 먼저. 깔끔한 매장의 안쪽에는 리스너들의 경지(?)에 따라 3개의 청음실이 마련되어 있다. 스피커의 종류와 가격대에 따라 완벽한 음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기에 편안히 앉아서 최고급 수준의 소리를 감상하면 된다.

"최고급 스피커는 본체의 성능 못지않게 제대로 된 음질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는 게 중요합니다. 청음실 곳곳에 있는 나무판이나 벽 장식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위치와 재질에 따라 소리를 흡수하거나 반사해 보다 완벽한 음향을 구현해주도록 계산되어 있습니다."

매장 안쪽의 청음실은 Hi-Fi, 최소한 홈 씨어터를 위해 준비된 곳이다. 기왕 청음실까지 온 김에 소리를 들어봤는데 잔잔하면서도 웅장하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클럽 비트도 아닌데 심장도 살짝 두근대고. 이 맛에 최고급 스피커를 사나 싶어 물어봤는데 가격을 듣고 나니 잠깐 음악과 손잡고 가출했던 정신이 귀가했다.

▲ 매장 안쪽에는 홈시어터 관련 제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 GIYA G1. 억소리나는 가격대의 제품부터


▲ 헛기침 한번쯤을 해줘야 할법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피커에 기스라도 날까봐 무서웠던건 아니다. 내가 2일전에 치킨만 안 시켜먹었어도... 라는 아쉬움과 함께 재빨리 원래 용건이던 게이밍 헤드셋 존으로 향했다. 안에 들어가니 컴퓨터 2대가 바로 보인다. 한쪽의 벽을 차지한 게이밍 헤드셋이 아니라면 게이머들의 아지트 같은 친숙한 느낌.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에는 게이밍 헤드셋으로 음악을 먼저 감상해 봤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전문가 기준에서 보면 음질이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테스트 해보니 다른 점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음향을 감상하는 헤드셋과 달리 그냥 용도가 다른 제품. 그래서 게이밍 헤드셋은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평가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깔끔하게 정돈된 게이밍 헤드셋 존

셰에라자드의 게이밍 헤드셋 테스트 존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보다 완벽한 소리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수천만원짜리 스피커 음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넓은 거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게이밍 헤드셋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건? 게임이었으니까.

"수천만원을 넘는 스피커의 음질을 제대로 느끼려면 음향에 최적화된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게이밍 헤드셋은 당연히 게임을 해봐야 성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준비해 게임을 설치했고 게임 속의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밀폐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대였는데 입소문이 퍼지고 친구와 같이 오는 분들도 많아서 파티플레이도 가능하도록 두대로 늘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일반 헤드셋과 분야가 다르다는 뜻. 음악 감상과 소리 구현에 최적화된 헤드셋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게이밍 헤드셋은 좋게 평가하기 어려운 제품이다. 그러나 게임에 필요한 것은 음질보다는 공간 감각의 구현이다. 물론 음질까지 좋으면야 금상 첨화겠지만.

"음향 감상용 헤드셋이 총소리를 진짜 원음처럼 현실적으로 재현해준다면, 게이밍 헤드셋은 총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구현하는게 우선입니다. 그래서 음질보다 방향과 공간 감각을 먼저 살립니다. 음향 감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총소리 깔끔하게 들으려고 게이밍 헤드셋 쓰는건 아니잖아요."

▲ 매장 한켠에 마련된 게이밍 헤드셋 테스트 존


▲ 성인 남성 3~4명이 함께 들어가도 넉넉한 공간에

▲ 테스트용 PC가 2대 있다

▲ 콘솔 유저를 위한 PS4까지...!



플랜트로닉스, 에이수스(ASUS), 하이퍼X, 젠하이저, 오디지... 한 쪽의 벽면에는 유명 브랜드의 게이밍 헤드셋들로 가득하다. 입점하는 제품들은 셰에라자드의 전문가들이 먼저 소리를 들어보고 가져온다. 때문에 여기 있는 제품들은 사서 손해볼 정도로 허술한 성능의 제품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나는 PC방 기본 헤드셋도 좋다고 쓰는 막귀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전문가가 느끼는 가성비는 어떨지 궁금했다. 지금 당장 N포탈에 '게이밍 헤드셋'만 검색해 봐도 다양한 가격대에 수 백 종의 헤드셋을 볼 수 있다. 속된 말로 여기 있는 이 놈들, 돈값을 하는 물건일까?

"결국 소비자 스스로의 판단이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이어폰에 10만원을 쓰면 미친 놈 소리를 들었지만 요즘은 100만원 정도는 되어야 그런 소리를 듣거든요. 음향에 투자를 하는 분들도 예전에 비해 늘어났고 그만큼 대중화되었습니다. 설 명절 등이 되면 용돈 모아서 몇십만원짜리 게이밍 헤드셋을 사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인데, 어느 정도 선까지는 투자한 금액만큼 확실한 차이가 납니다."

▲ 테스트 존 벽면에는 여러 브랜드의 게이밍 헤드셋이 구비되어 있다

▲ 여기 있는 제품들 전부 마음대로 테스트 할 수 있다

게이밍 브랜드가 많다보니 어떤 헤드셋을 선택해야 할지도 궁금하다. 게이밍 헤드셋 브랜드 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들은 보통 비슷비슷하다보니 제품 정보 만으로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게이밍 헤드셋 브랜드마다 일정한 차이가 있을까?

"음향용 헤드셋도 브랜드마다 소리에 차이가 있듯이 게이밍 헤드셋도 브랜드마다 약간씩 장점이 다릅니다. 플랜트로닉스는 마이크가 강점이라 친구들끼리 팀챗을 자주 한다면 추천합니다. 돌비 애트모스 기술이 기본 지원되는 것도 장점이구요. 에이수스 ROG, 특히 센츄리온은 공간 감각을 살리는데 집중한 제품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구요.

하이퍼X나 젠하이저 같은 브랜드의 제품들도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편이고 각자 디자인, 무게, 활동성 등 외적인 부분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디지 모비우스 등 고급 게이밍 헤드셋도 가져다 놨는데, 솔직히 먼저 추천해 드리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성능이야 당연히 뛰어나지만 학생에게 50만원 짜리 헤드셋을 사라고 하기는... (웃음) 직접 써보고 나면 10만원 중반대가 잘 나가는데 그 가격대 모델들이 가성비가 좋은 편입니다."


▲ 구비되어 있는 헤드셋은 대부분 10만 원 이상의 제품으로

▲ PS4에 최적화된 특허를 보유한 플랜트로닉스의 RIG 500 PRO 부터

▲ 에이수스의 리얼 7.1 서라운드 센츄리온

▲ 북미권에서 큰 인기몰이 중인 하이퍼X

▲ 고가의 게이밍 헤드셋 추천 시 한번쯤은 거론되는 커세어까지

▲ 이 모든 제품을 마음대로 테스트해볼 수 있다

▲ 단순히 소리만 듣는게 아니라 실제 게임하면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

게임을 해보면서 다양한 게이밍 헤드셋을 써 볼 수 있다. 관심이 많은 게이머라면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인데, 솔직히 첫 인상은 샵이 너무 고급스러운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셰에라자드에서 게이밍 헤드셋을 체험해 보려면 뭔가 절차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예약은 필수는 아닙니다. 다만 좌석이 2개라서 가급적 예약을 하셔야 헛걸음을 안하실 것 같네요. 충분한 테스트를 위해서 1시간 청음을 보장해 드리고 있어서 선약이 있으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약 없으면 좀 더 쓰셔도 되고, 운영이 까탈스럽지는 않으니 부담없이 방문해서 물어보시거나 전화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인벤 게이머 분들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 청음샵이자 판매점이기 때문에 청음 이후에는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 고가의 헤드폰 전문 제조사인 오디지에서 출시한 모비우스도 볼 수 있다

▲ 우수한 마이크를 가진 플랜트로닉스 제품들

▲ 다른 헤드셋보다 가볍다는 장점도 있다


▲ 이밖에 다양한 헤드폰과 이어폰이 전시되어 있다





▲ 음향 기기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구미가 당길 셰에라자드, 한번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