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S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민 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FPS 게임 중 하나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처음 세상에 선보인 인물로, 이후 '택티컬 인터벤션', '러스트' 등 독창적인 스타일의 FPS를 개발하며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아, 지금은 펄어비스 소속입니다. 펄어비스의 신규 프로젝트 중 하나인 '프로젝트 K'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죠.

GDC 현장에서 만난 민 리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펄어비스가 이번 신작에 거는 기대만큼이나 민 리 역시 큰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아쉽게도 아직 '프로젝트 K'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FPS라는 장르에 갖고 있는 애정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아버지는 현 FPS 트렌드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다음 세대 FPS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쩌면, 그의 대답 안에 곧 만나보게 될 '프로젝트 K'에 대한 약간의 힌트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 펄어비스 '민 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Q. 지난해 3월,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만든 민 리가 펄어비스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업계에서 화제가 됐는데, 입사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펄어비스 정경인 대표와 이전부터 알고 지냈다. 7년 전, 난 '택티컬 인터벤션'이라는 게임을 만들고 있었는데, 당시 정경인 대표는 우리 게임의 투자사에서 근무중이었다. 그때 인연이 시작되어 개인적으로도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난 페이스펀치라는 캐나다 게임사에 들어가 '러스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2016년인가 17년 즈음 정경인 대표한테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해보자고.

당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펄어비스 개발팀을 만나봤는데,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커보여 결국 입사까지 이어졌다. 나 스스로도 여기 팀원들과 함께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는 점에 매우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


Q. 아직 '프로젝트K'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할 단계는 아니라고 들었다. 대신 '어떤 수준의 게임이다'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트웍 퀄리티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추후 공개될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으로 예상한다. 나도 밸브나 페이스펀치 같이 훌륭한 개발사에서 일을 해봤는데, 펄어비스에서 만들고 있는 이번 작품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펄어비스는 업계 최고 레벨의 아티스트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Q. 언리얼 토너먼트, 퀘이크3 아레나 시절 세계 슈팅 게임 장르의 중심은 하이퍼 FPS였다. 그 시대를 끝낸 게 민 리가 만든 카운터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배틀로얄이 슈팅 장르의 중심이 됐다. 이러한 FPS 장르 트렌드의 변화를 지켜본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들어보고 싶다.

말한 그대로 FPS의 트렌드는 변화해왔다. 개인적으로는 총을 쏜다는 기본 전제 하에, 시대가 변하면서 서브 카테고리가 붙은 게임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거 유행했던 장르가 사라진 건 아니다. 하이퍼 FPS도 여전히 수요층이 있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그 게임들이 역사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여전히 카운터 스트라이크, 레인보우 식스: 시즈를 플레이한다. 배틀로얄 장르는 내 취향이 아니다. 아마 나같은 게이머는 지금도 많을 거다. 입맛대로 FPS를 즐기는 시대가 됐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한편으로 보면, 배틀로얄 장르의 유행이 FPS 장르 자체의 인기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클래식 FPS엔 큰 관심 없지만 배틀로얄 장르를 즐기는 게이머도 상당히 많다. 총 잘 못쏴도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까. 그덕에 FPS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유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개발자 입장에선 좋은 현상이다.


Q. 그렇다면, FPS 개발자 민 리가 생각하는 FPS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예측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 타 장르와 결합된 형태의 FPS가 대중화되지 않을까 싶다. FPS를 기본으로 RTS 혹은 RPG 같은 요소가 섞인 게임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 "다른 장르와 결합된 형태의 FPS가 점차 대중화될 것"



Q. 민 리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 강연을 봐도 자신의 FPS 철학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민 리가 생각하는 FPS 장르 게임의 핵심은 무엇인가.

FPS라는 장르 안에서 본다면, 일단 멀티플레이 경험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 과거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20~30명 정도가 같이 하는 게임이었다면, 최근의 배틀로얄은 100명 가까운 인원이 한 장소에서 플레이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경험의 차이를 인지하고, 그에 맞춰 디자인하는 게 중요하다.

FPS 게임 개발에서 중요한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핵 방지에 신경써야 한다. 수많은 개발사가 서드파티 해킹 솔루션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른 장르의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FPS는 핵 제대로 못 잡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Q. 예전에 FPS 게임 개발 관련한 서적을 찾아본 적이 있다. 기억나는 내용 중 하나가 '오브젝트 배치를 비롯한 맵 디자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맵 디자인의 중요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맵 디자인이 좋은 편이었는데, 이는 개발팀의 능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피드백을 받고, 조금씩 개선해나간 결과 수많은 유명 맵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펄어비스에서도 맵 디자인과 관련해 이런저런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다만, 이런 건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레인보우 식스: 시즈 같은 게임에선 맵 디자인이 매우 중요한 게 사실이다. 적팀과 만나는 지점이라던가 동선을 다 분석해야 하니까. 그 반면, 배틀그라운드처럼 맵이 정말 큰 게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타트 지점이 항상 바뀌고, 이에 따라 전투 발생 지점도 그때 그때 다르다. 클래식 FPS와는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Q. 펄어비스는 자체 엔진을 사용한다. 프로젝트K를 유니티나 언리얼, 소스 엔진으로 만든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자체 엔진의 경우 아직 MMORPG 외 장르에서 검증이 안 됐다. '잘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우려도 든다.

자체 엔진에 대한 검증은 내가 펄어비스에 입사 후 맡은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하다. 자체 엔진을 FPS 게임 개발에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금도 사내 엔진 개발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Q. 최근 출시된 FPS 중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게임이 있다면?

친구들과 레인보우 식스: 시즈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고 있다. 만약 혼자 플레이한다면 '배틀필드1'을 열심히 했을 것 같다. 그런 방대한 규모의 전장에서 수많은 장비와 함께 싸우는 전투 시스템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배틀필드는 단순한 슈팅 게임을 넘어, 차량, 전투기 조종을 비롯해 매우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킨 좋은 작품이다. 다만, 워낙 다수 대 다수로 전투가 중심이다보니 잘 못하는 유저와 같은 팀이 되면, 게임 시작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 민 리는 배틀필드1(위)와 레인보우 식스: 시즈(아래)를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Q. 그렇다면, 민 리의 신규 프로젝트는 그런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게임이라고 봐도 될까.

결국 매치메이킹 시스템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도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중이다.


Q. 밸브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 게임사에서 근무한 뒤, 펄어비스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조직 운영 및 기업 문화 면에서 그간 근무했던 게임사와 비교해 인상깊었던 점이 있다면?

밸브는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회사다. 그리고 나도 그곳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만들며 이름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 때문에 '명성의 희생자'가 된 느낌도 받았다. 밸브가 워낙 잘 나가는 회사다보니,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이 부족하다 싶으면 개발 승인을 잘 내주지 않았다.

펄어비스는 다소 리스크를 안고 가더라도 개발팀을 믿고 밀어주는 분위기다. 덕분에 조금 더 창의적인,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 이런 점에서 현재 근무 환경에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다.


Q. '민 리'라는 이름을 믿고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지금 펄어비스에서 일하고 있느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게임 개발자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특히 펄어비스는 뛰어난 개발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개발자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리소스도 충분히 가진 회사다.

참고로 내가 펄어비스에서 '프로젝트 K'를 진두지휘하는 것처럼 외부에 알려져 있는데, 난 그냥 여러 개발자들과 함께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뛰어난 인력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만큼, 나도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못지 않게 유저들 역시 '프로젝트 K'를 많이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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