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처드 카릴로 유비소프트 토론토 디렉터

게임 기획자로서 개발에 임하게 되면, 여러 가지 도전에 부딪힌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도전을 꼽자면 팀을 관리하는 것이다. 팀원들의 의견이 갈리거나, 혹은 각 부서 간의 업무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비전에 대한 팀원들의 신뢰도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게임 개발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비소프트 토론토의 리처드 카릴로 디렉터는 자신이 EA, KAOS 스튜디오, 유비소프트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번 GDC 2019 강연에서 카릴로 디렉터는 자신이 경험에 근거해서 기획자가 갖춰야 할 자세와, 기획자가 경시하기 쉬운 소프트 스킬에 대해서 설명했다.

카릴로 디렉터는 우선 게임 기획자는 게임을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종종 기획자는 자신이 기획한 게임을 마치 자신이 혼자 생각해낸 것이며, 또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그가 지나왔던 스튜디오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부분 게임의 큰 흐름은 기획자가 지시하고 이것을 다른 팀원들이 메워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것이 곧 기획자가 그 게임의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 기획자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이를 설계해나가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기획자가 팀원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카릴로 디렉터는 기획자들이 남의 의견에 부정적인 어조나 마음가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종종 기획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종류의 말을 하고는 한다.

대표적인 것이 "내가 기획자니까, 내 일을 하는 거야", "내가 제일 잘 알아", "피드백만 줘, 기획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모두가 동의한 기획이야", "날 믿어" 같은 말들이다. 이 말 중 몇 개는 그냥 스쳐지나갔을 때는 별로 신경을 안 쓸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타인과 벽을 쌓는 종류의 말이다. 되짚어서 생각하면 그 숨은 의도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넌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말해달라", "네 피드백이나 발언은 듣고 싶지 않다", "널 신용하지 못하겠다" 이런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무의식적으로 한 말로 팀원과 벽을 쌓을 수도 있다

기획자 입장에서는 이런 지적을 들으면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기획자는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을 짚는 역할이고, 아트나 프로그램 등 실무 부서는 자신과 관련된 일 위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지나쳐서 그 실무 멤버들이 바뀌어도 자신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업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이 흐름이 한 번 흐트러지고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이를 보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카릴로 디렉터는 조언했다.


전체적인 흐름을 짚는다는 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 흐름의 끝에 있는 목표로 사람들을 유도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자들은 팀에게 영감을 주고, 같이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카릴로 디렉터는 동료와 함께 목표를 설계하고, 기획을 다른 개발팀과 같이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기획자들 입장에서는 과연 팀원들이 자신이 정한 목표를 믿어줄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마음가짐과 말부터 바꿔볼 것을 권유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기획자니까, 내 일을 하는 거야"라는 말 대신에 "내 일은 비전을 갖고 이 게임을 같이 만들 팀을 지원하는 것이야"라고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최고라는 것보다, 팀원이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탓이라고 돌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피드백을 받았을 때 단순히 "피드백만 줘, 해결책하고 기획, 문제만 제시하지 말고"라는 식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그 피드백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한 방에 뭐든 날려버릴 수 있는 총을 원해"라는 말이나, "이 게임은 포인트가 없어"라는 말은 밸런스가 어긋나거나 굉장히 추상적인 말이다. 이를 그냥 들었을 때는 기획자로서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팀원들이 이렇게 하는 말을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카릴로 디렉터는 강조했다. 말을 잘 해야 하는 직군과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럴 필요가 없거나 언어 표현 방면으로 조금 부족한 팀원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든 사례는 카릴로 디렉터가 '스타링크 - 배틀 포 아틀라스'를 개발할 때 팀원에게 받았던 피드백이다. 그 역시도 처음에 화를 냈지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를 유념하면서 자신의 게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무엇이 문제이고, 특히 어떤 점을 고쳐야 할지 물었다. 그 결과 각각 "내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내 액션이 게임 속 세계에 어떤 영향을 못 미치는 것 같다"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다만 이를 유려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 모든 팀원들 말을 다 잘하는 것이 아닌 만큼, 그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피드백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항상 질문을 던지고, 피드백을 받은 것에 대해서 반문하면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문제를 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인 만큼, 그들을 자신의 뜻에 옹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카릴로 디렉터는 귀기울여 듣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말이 단순히 호들갑스럽게 OK를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팀원들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그러한 기회를 주다보면 팀원들이 한꺼번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개중에는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혹은 자존심이 상하는 말도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단순히 "피드백만 주고, 기획과 솔루션은 주지 마"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는 뜻과 맥이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동의한 기획이야"라고 말하는 것의 이면에는 "이건 너도 동의했으니까, 너도 따라야 해"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있다.

이런 압박감이 계속 되면 의사소통은 이어지지 않고, 결국 팀원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카릴로 디렉터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인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드백을 받을 때는 기획과 솔루션, 그 외에 다양한 것들을 다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팀원이 있다는 말은 이미 그 게임은 자신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뜻이고, 자연히 팀원들도 그 작품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기획자는 팀원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팀원들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라는 뜻은 아니다. 혹은 팀원들에게 맹목적인 옹호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보다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아도 괜찮다고 느끼게끔 해야 비로소 신뢰가 쌓인 것이라고 카릴로 디렉터는 강조했다.

기획자는 게임의 전체적인 윤곽을 훑어보고 설계하기 때문에 게임을 곳곳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모르는 범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왕왕 있다. 실제로 카릴로 디렉터도 '스타링크' 개발 당시, 워 미터 기능의 산출 방식을 대략적으로 알았지만, 좀 더 개선된 방향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어떤 부분부터 살펴봐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때 레벨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들이 수치가 변동하는 조건을 지적해줬고,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 조언을 따라서 개선했을 때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기획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숨어있을 수 있다

그렇게 대안을 찾고 변경할 때 무조건 자신의 뜻을 굽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내와 이해를 갖고 팀원들의 말을 경청하라는 것이다. "나를 믿어"라는 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너를 못 믿겠어"라는 뜻이 무의식 주에 숨어있다. 이보다는 "나는 너를 믿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팀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카릴로 디렉터는 조언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의견 다툼이 일어나거나, 팀의 불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임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 모였고, 그 열정이 중간중간에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종종 감정적으로 대해서 자신의 길을 막으려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카릴로 디렉터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개발자들 가운데에서 그 누구도 자신의 게임이 잘못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으며, 나름 다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열정을 갖고 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각기 다를지라도, 한 번은 이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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