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로봇의 등장으로 꿈의 크로스오버라고 불리는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로봇 만화 마니아들의 관심과는 달리 일본 내수용, 그것도 분명하게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시리즈였다. 2016년, 결국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메인 프로듀서 테라다 타카노부는 일본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 공략을 공식 선언했다.

그 첫 작품인 오리지널 시리즈 '슈퍼로봇대전 OG 문 듀웰러즈'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판권 작품이 총출동하는 슈퍼로봇대전 V, X까지 한국에 정식 출시됐다. 공식 한국어화와 함께 마징가나 겟타의 파일럿이 우리말을 하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1년이라는 기간을 간격으로 3개의 판권 작품이 연속으로 출시되며 문제가 생겼다. 짧은 개발 기간을 두고 출시일을 맞추다 보니 질적인 하락이 지적됐다. 실제로 글로벌 판권작 2편인 슈퍼로봇대전X는 자가 복제의 끝을 보여주는 연출과 밋밋한 스토리로 혹평을 받았다.


3번째 작품인 '슈퍼로봇대전 T' 출시 전에도 비슷한 우려가 터져 나왔고 이는 비슷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X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면, T는 현재 자원으로 최대한의 퀄리티를 만들어 낼 방향만은 분명히 짚어내고 있다.


최고거나, 최악이거나
극과 극을 오가는 전투 연출, 중간은 없나요?

슈퍼로봇대전은 데포르메 된 5, 6등신 로봇들의 현란한 움직임과 원작 만화 속 기술들을 보는 전투가 핵심이다. 특히 정지 화면을 넘어 관절이 움직이고 음성이 도입된 슈퍼로봇대전 α 이후 전투의 완성도가 게임을 평가하는 큰 기준이 됐다. 이 점만 놓고 본다면 슈퍼로봇대전 T는 좋게 줘야 60점 수준의 작품이다.

최근 작품들의 공통적인 단점으로 지적받는 연출 널뛰기는 그 어느 작품보다 심하다.

원작 이상의 연출을 보여주는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무한궤도 SSX'나 컷인과 로봇 연출을 절묘하게 섞어낸 벨빈의 하이퍼 오라베기 등 새롭게 제작된 전투 연출 대다수가 어느 때보다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작품 특성상 밋밋한 전투 구현이 예상됐던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접목한 연출로 눈요깃거리를 더했다.

하지만 가오가이가의 경우 몇 개의 절제된 모션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술 대부분이 정지된 컷인 몇 장으로 대신한다. 그것마저도 이상한 비율로 오프닝과 함께 뜨거워진 가슴에 찬물을 끼얹는 수준이다. 당시에는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던 3DS 슈퍼로봇대전 BX의 가오가이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마징가 형제나 스페셜 참전 작품인 진겟타 드래곤도 아쉬운 전투를 보여준다.

▲ 같은 용자 로봇이지만 인형 뽑기처럼 움직이는 가오가이가와 자연스러운 마이트가인.

Z 시리즈부터 이어져 온 연출 재활용도 여전하다. 출시 간격을 좁히며 작품간 연출을 다시 쓸 수 있는 작품의 비율도 자리를 잡았다. 슈퍼로봇대전 T의 경우 기존의 연출을 따올 수 있는 작품 비율이 약 60%에 이른다. 물론 원작 애니메이션을 완벽하게 구현해 큰 개선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연출을 재활용하더라도 일부를 수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주 세기 건담이나 마이트가인처럼 큰 변화 없이 3, 4 작품을 연속해서 등장한 작품의 신선함은 분명 떨어진다.

또한 연출 퀄리티가 높은 작품 중 일부는 원작에서 구현된 무장이 대거 삭제된 채 게임에 참전하기도 했다. 역대 시리즈 무장의 총집합을 보여준 마징가 인피니티는 대차륜 로켓펀치나 발사되지 않는 아이언커터 등이 게임에 구현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일부 작품은 주역 캐릭터임에도 3개 정도의 무장만 보유하기도 했다.

이런 한정된 연출은 빠듯한 개발 기간에 따른 제약이 원인이다. 윙키 소프트를 시작으로 반프레스토, 에이아이 등이 충분한 개발 기간을 두고 제작했던 것과 달리 사실상 유일한 슈로대 개발팀이 된 B.B. 스튜디오는 매년 출시 연기 없이 1년 주기로 판권 작품을 찍어냈다. 결국 적당한 재활용과 개선, 그리고 이를 상쇄할 신작 연출로 적당한 선의 연출 마지노선을 그어낸 셈이다. 팬들이 아직은 살 만하다고 느끼는 수준 말이다. 팬 입장에서는 게임을 구매하고 즐기면서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 무장 수는 적지만 연출은 확실한 동방불패 마스터 아시아.


5등신 로봇이 어렵다면 리얼 사이즈로
전투부터 스토리에 전천후 활약하는 컷인

허술한 로봇 연출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진은 원작 감성을 더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중 하나가 전투에 쓰이는 리얼 컷인이다. 아기자기한 로봇 움직임을 보는 맛은 떨어지지만, 움직이는 리얼 사이즈 컷인 그래픽으로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을 더했다.

몇몇 연출에 쓰인 컷인은 적을 멋지게 처치한 후 그럴듯한 자세를 취하거나 주역 파일럿이 확대되는 정도로 마무리되지만, 로봇보다는 주역 캐릭터 하나하나가 더욱 인기 있는 레이어스의 경우 연출 절반 이상을 컷인으로 채웠다. 특히 FHD 급 해상도로 다시 그려진 합체 마신 무장은 원작 애니메이션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

전투 컷인이 풍성해지며 이를 활용한 페이스칩도 다양하게 구현된다. 페이스칩이 부족해 박력 넘치는 기술명을 외치면서도 줄곧 온화한 표정을 짓는 캐릭터에 탈력 걸리는 일도 많이 줄었다.

▲ 리얼 사이즈 컷인을 적극 활용한 마법기사 레이어스의 로봇들.

인터미션 연출은 더욱 진화했다. 비록 알파처럼 눈을 깜박이거나 입을 벙긋거리는 애니메이션까지는 없지만, 스토리를 표정과 대사 한 줄 대신 다양한 이벤트 컷으로 그려냈다. 건담을 부르는 도몬이나 서로 우주 해적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노리는 스파이크가 하록과 서로 총과 칼을 겨누는 장면 등을 특별한 컷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대부분이 다시 쓰일 일 없는 특수 이벤트 이미지라는 점에서 몰입도도 높아진다.

인터미션의 연출 강화는 한층 진화한 스토리 구현에도 도움을 준다. 애니메이션에서 만날 수 있던 장면을 새롭게 재해석된 이야기들과 함께 커다란 컷인을 내보내는 것은 전작인 슈퍼로봇대전 X에서 일부 확대되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쓰임새가 더 많아졌다.

앞선 스파이크와 하록처럼 크로스오버 이벤트 외에도 초반부 건 X 소드의 반에게 무뢰한 처치를 부탁하는 웬디와의 이벤트나 G 건담의 도몬과 레인, 그리고 마법기사 레이어스의 에메로드 공주와 자가토의 포옹 장면 등 원작 팬들에게 익숙한 장면들이 특별한 CG로 구성됐다.

▲ 다양한 크로스오버 이벤트를 CG와 함께 만날 수 있다.

이번 작품은 연출에 기댄 외적인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이야기 진행이 많이 정돈됐다. '슈퍼로봇대전 V'는 우주전함 야마토 2199를, '슈퍼로봇대전 X'는 마신영웅전 와타루를 메인으로 세우고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 느낌이 강했다. '슈퍼로봇대전 T'는 특정 작품에 편애가 느껴지는 진행보다는 비교적 고르게 다양한 애니메이션 이야기들을 풀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슈퍼로봇대전만이 해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의 크로스오버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절했다. 10년 전 기계수와의 전투로 영웅이 된 코우지가 건버스터 팀의 특별 코치로 나서고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제네럴 컴퍼니 영업 계장 키노시타는 애사심이 뛰어난 주인공과 콤비를 이룬다.

▲ 이벤트를 위해 그려진 1회성 CG도 다양하게 준비됐다.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하는 초반에는 이런 다채로운 교차 설정으로 이야기의 잘 섞이게 돕는다. 중반부터는 크로스오버 이벤트는 살짝 덜어내고 원작들의 주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들이 섞인 상태이기에 마치 하나의 작품인 양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또 후반까지 고르게 스토리 분배가 이루어졌다. 그간 원작 에피소드를 너무 일찍 털어내 똑같이 생긴 오리지널 로봇들만 적으로 등장하는 기존 작품의 단점도 개선됐다.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신찬점작들 위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마이트가인처럼 자주 등장한 작품들은 이야기 품을 덜어내는 등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한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크로스본 건담 강철의 7인 스토리를 이번에도 아꼈다는 인상과 함께 기체 참전만 이루어졌다는 점 정도다.

▲ 크로스본 건담은 이번에도 스토리 비중 없이 그냥 '크로스본' 했다.


답을 찾은 난이도와 답이 없는 BGM
1작품 1곡의 벽까지 무너진 배경음악

해외 진출과 함께 처음 시리즈를 접하는 플레이어가 많을 수 밖에 없었던 '슈퍼로봇대전 V'는 지나치게 낮은 난이도로 제작됐다. 슈퍼로봇대전 T 역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정신기 등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다수 포함해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쉬운 편이다.

그나마 익스퍼트 모드가 적당한 난이도의 슈퍼로봇대전에 대한 갈증을 채운다. 특정 스테이지를 넘기면 처지 보상 자금이 높아지고 개조와 캐릭터 강화로 되려 게임이 쉬어지는 점은 여전하지만, 적이 강하게 등장하는 익스퍼트 모드는 전작 이상의 전술을 요구한다. 수리, 보급 기체가 무의미한 낮은 난이도와 달리 공격 몇 번에 종잇장이 되는 아군의 장갑을 고려해 수비 위치와 정신기 소모량을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최근의 슈퍼로봇대전이 무개조 플레이, 정신기 없이 플레이 등 유저 스스로 난이도를 개척해나가는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코어 유저가 만족할 수 있는 높은 난이도의 연이은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

▲ 익스퍼트 모드에서는 개조, 성장이 부족하면 병사 A와도 혈전을 벌여야 한다.

반면 최근 게임의 전체적인 난이도가 낮아지며 슈퍼로봇대전은 전략 게임의 특성보다는 캐릭터 육성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도 많아졌다. 캐릭터에 다양한 특성을 추가하는 TacP 도입으로 어떤 캐릭터든 1인분은 할 수 있게 됐다. 또 격추, 레벨업 등으로 추가 효과를 내는 ExC로 성장 가속도가 붙는다.

제한이 없어진 서브오더의 추가도 성장에 속도를 더한다. 출격수에 밀려 전장에 나서지 못하는 일명 '갑판청소유닛'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브오더는 이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 전장에서 복귀한 주력 파일럿을 서브오더를 통해 격추수를 더해 더 빠르게 에이스로 만드는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 서브오더 최대 참가인원이 늘어나 성장이 탄력을 받았다.

슈퍼로봇대전 T는 PS4와 닌텐도 스위치 총 2기종으로 출시됐다. PS Vita가 대응 기기에서 빠지며 전체적인 이미지 퀄리티는 상승했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BGM은 아쉽다. 작품별 BGM은 기존 출시작의 경우 몇몇 작품을 빼면 대부분 1개 내지 2개에 그친다. 전작들에 등장했던 BGM도 줄었다. 특히 낙원추방의 경우 기본 구성에 작품 전용 BGM이 없는 상황까지 나왔다.

물론 기본 배경 음악은 유저가 기기에 음원을 직접 추가하는 커스텀 BGM의 도입으로 중요도가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는 보안 등 여러 이슈로 변경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심심한 느낌으로 전투을 맞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다이남코는 다양한 원곡이 포함된 프리미엄 애니송 한정판을 내놓았지만, 국내에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또한 음원 저작권에 따라 애니메이션 원곡도 국내에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커스텀 BGM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기본 부실한 수와 팡파르를 연상케 하는 BGM의 퀄리티도 아쉽게 다가온다.

▲ 배경음악이 1곡인 작품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 보컬이 포함된 원곡을 사용할 수 있는 한정판. 국내에는 판매되지 않는다.


방향을 찾은 슈로대, 지금은 잠시 쉬어야 할 때
꼭 1년 주기로 나올 필요가 있을까

슈퍼로봇대전의 의의는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다양한 로봇 만화 주인공들이 한데 모이고 이를 조작하고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 있다. 이런 특징은 슈퍼로봇대전을 그 어떤 크로스오버 작품보다도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게 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PV 공개에 기뻐하고 때로는 아쉬워하면서도 출시일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그런 감정 말이다.

하지만 매년 큰 변화 없이 반복되는 연출. 그리고 SRPG를 넘어 슈로대라는 장르(본인들은 시뮬레이션과 드라마를 접목한 '시뮤라마'라고 표현)로까지 굳어져 버린 시스템은 기대라는 감정을 점차 무디게 한다. 또,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나뉘며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로봇 만화를 본 플레이어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연출이 부실하고 스토리가 빈약해도 기술명을 같이 따라 외치는 열혈만으로 플레이하지 못하는 게임이 된 셈이다. 결국 잘 다듬은 짜임새, 꼼꼼한 만듦새가 더욱 중요해졌다.

▲ 이제 팬들은 겟타 빔이 손가락에서 나가지 않는 것도 알고 겟타 빔을 외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최근 글로벌 출시 작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전투는 화려해졌고, CG나 스토리 역시 많이 가다듬었다. 한정된 개발 기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선택하고 집중할 판단력이 더해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번 작품까지는 팬이라면 구매해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성장한 판단력과 개발력을 더 오랜 기간 다듬는다면 어떨까? 반다이 프라모델의 출시 시기를 맞춘 신 참전작들로 마치 자사 상품 홍보용 게임이라는 느낌이 짙어진 슈퍼로봇대전. 다음 작품은 잠시 숨을 고르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의 개발을 기대해본다.

▲ 여러모로 이번 작품 최고의 연출은 트라이더 G7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