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패자 인터뷰, 소통, 그리고 건전한 팬문화
김홍제 기자 (desk@inven.co.kr)
패자는 말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과 못지않게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과정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노력이 없어도 정당한 방법을 통한 승리라면 문제 될 게 없다. 노력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 승리로 가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기 때문일 뿐이다. 그만큼 승리와 패배, 결과로 대부분을 판단하는 세계이기에 패자는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라도 패배했다면 입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패자에게는 냉정한 비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긍정적인 비판은 언제나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좋은 자양분이 되지만, 최근에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맹렬한 비난의 칼을 세우는 팬들이 꽤 많아졌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느낌이다.
게임단 관계자들은 SNS를 통한 소통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팬'이라는 절대적인 이름하에 얼토당토않은 루머나 항의가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군다나 성적이 좋지 못한 팀들은 낙엽 한 장도 조심하는 말년 병장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하려 하며, 필요 이상으로 몸을 사리고 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소통의 부재, 건전한 팬들과도 거리감이 멀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LCS의 경우 정규 시즌에도 승자팀과 패자팀 구분 없이 원하는 인터뷰이를 요청할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하는 건 오롯이 팀의 선택이고, 실제로 패배한 팀이 인터뷰는 응하는 경우도 간혹 있으며, 반대로 TSM처럼 승리했어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LCK가 LCS처럼 매번 패자 인터뷰를 고려하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단 한 번,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패자팀이 되더라도 팀의 수장인 감독이 의무감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면 어떨까. 이번 시즌 부진한 성적을 거뒀던 kt 롤스터와 진에어 그린윙스, 젠지 e스포츠, 아프리카 프릭스 모두 마지막 경기에 패배해 이렇다 할 인사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성적 여부를 떠나 한 시즌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 정도만 건네도 팬들은 자신이 해당팀을 응원하는 이유를 되새기게 될 거다. 팬과 게임단 사이의 오해도 지금보다는 덜 쌓일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국내 프로야구나 농구도 경기마다 패배 팀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진 않는다. 그래도 리그의 끝을 향해가고 있는 시점이나 중요한 경기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패배 팀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창구가 존재했다. LCK 결승전과 같은날에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렸던 2018-2019 SKT 5GX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열렸다.
인천 전자랜드는 울산현대 모비스에게 3점 차이로 패배했고, 유도훈 감독은 간단하게나마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문제점은 무엇이었으며, 남은 경기에 대한 각오와 포부에 대해 밝혔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한국 시리즈에서는 패배팀 감독 인터뷰를 짧게나마 진행했다.
이에 대해 게임단 관계자 및 코칭 스태프도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팀 관계자 A는 "패배한 팀을 매 경기, 혹은 선수들 인터뷰는 다소 부담스럽고 가혹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경기 이후나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 두 번 정도는 팀의 책임자인 감독이 인터뷰할 자리가 마련 되는 건 좋은 방법인 것 같고,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동의했다.
라이엇 코리아 측 관계자 역시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이슈다. 팀들과 상의하에 팀마다 시즌 마지막 경기 때는 승자, 패자 구분 없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패자는 말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최후의 한마디 정도는 패자에게도 말할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그들의 목소리에 무차별적인 비난보다 귀 기울여 경청해 주는 것도 올바른, 건전한 팬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비판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비난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악성 팬들이 활개 치는 모습을 덜 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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