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가 몇 인분을 해야 이기는 거야!' LoL 유저라면, 본인이 캐리한 판에서 패배했을 때 이런 말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겁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티어 올리는 법’이라는 글과 영상을 보면 충분히 접할 수 있습니다. 남 탓하지 말고 더 캐리할 것. 말로는 정말 쉽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요. 인터뷰의 주인공인 아프리카 프릭스의 ‘기인’ 김기인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경기로 보여주고 있는 프로게이머입니다.

팀이 힘든 상황에서도 ‘71인분-기인분’을 해내는 장면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죠. 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를 해내는 것. 그렇다고 잘 성장했다고 무리하지 않는, 바람직한 플레이가 무엇인지 보여줬답니다. 그런 '기인'은 실력과 정신력 부분에서 모두 프로다운 면모로 아프리카 프릭스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을 사로잡았죠.

롤드컵과 승강전이라는 두 극단적인 무대에 서봤고, 게임 내에서도 가장 무거운 역할을 짊어져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기인'은 흔들리지 않았는데요. LoL의 '모범 답안' 같은 그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Q. 반갑습니다. 스프링 스플릿이 이후 어떻게 보냈나요?

평소 못했던 게임인 오토체스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났어요. 요즘에는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도 하고 있고요.


Q. 작년에는 많은 세계 대회로 정말 바쁜 일정을 보냈잖아요. 성적을 떠나서 여유있는 스케줄을 선호하는 편 인가요.

개인적으로 여유 있는 일정을 좋아해요. 어떤 일이든 시간을 정해놓고 하면 억지로 짜내는 듯한 느낌을 받더라고요. 대회 역시 자유롭게 하는 게 저랑 잘 맞겠죠. 그런데, 아직 여유롭게 못 해봐서 기량이 더 오를지는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Q. 쉬는 기간에 LCK 스프링 플레이오프 봤나요? 탑 라이너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반 시청자의 입장에서 플레이오프를 봤는데요. 간단하게 ‘저 팀이 이런 거 잘하네, 이건 좀 아쉽네’ 정도 평하면서 봤던 거 같아요. 탑 라인 대결은 집중적으로 보진 않았고, 어떤 챔피언을 쓰는지 정도 봤어요. 크게 놀랄만한 픽이 탑에서는 안 나와서 무난했다고 봅니다. 탑 라인전에서 솔로 킬이 나오던데, 게임 양상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은 못 준 거 같습니다. 오히려 봇이나 다른 곳이 불리한 게 더 크게 작용하더라고요. 탑 라이너 입장에서 솔로 킬을 내고 게임을 지면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거죠.


Q. 요즘 개인 방송을 방송할 때 '테디-룰러' 선수와 친하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친해졌죠?

SKT T1 ‘테디’ (박)진성이 형은 제가 에버8 위너스에 있을 때 숙소에 한 번 놀러 온 적이 있어요. 젠지 ‘룰러’ 박재혁 선수는 아시안게임 때 친해졌어요. 제가 방송을 키면, 두 선수가 듀오 하자고 귓속말이 오더라고요. ‘폰’ 허원석 선수는 잘 몰랐는데, 마찬가지로 듀오하면서 알게 됐죠. 다들 게임 내에서 서로 잘 맞는 것 같습니다.


Q. 부계정으로 방송할 때 '기인'과 본계정으로 랭크 할 때가 어떻게 다릅니까.

아무래도 방송을 할 때는 채팅창을 계속 확인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니까 집중을 못 할 때도 있죠. 그래도 크게 차이 나진 않아요.


Q. 작년 '테디'를 보면 지금 '기인'의 모습과 겹친다는 의견이 있어요. 하위권 팀의 에이스라는 점은 같잖아요. 그런 '테디' 선수가 최근 우승까지 했는데, 어떤 심정이 들던가요.

작년 진성이 형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작년에 우승을 못 했거든요. 아쉽게 스프링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죠. 저도 우승할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놓치다 보니 아쉬움이 컸어요. 올해 진성이 형이 우승하는 거 보니까 배가 아팠습니다. 진성이 형이 우승 후 저한테 “기인아 나 우승했어. 칭찬해줘”라는 메시지가 왔는데, 차마 대답은 못 하겠더라고요. 결국, 제가 대답 안 해줘서 삐쳤더라고요.



Q. 스크림과 솔로 랭크를 할 때 어떻게 다르게 임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스크림은 팀원과 말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잘못 죽으면 피드백이 들어오기 때문에 제대로 합니다. 반대로, 솔로 랭크는 들어가서 허무하게 죽고 그래요. 스크림과 비교하면 막 한다고 봐도 될 정도죠. 새로운 픽도 솔로랭크에서 먼저 연습해보고 스크림에서 꺼내요.


Q. 솔로 랭크에서 본인의 KDA가 4/0/1 때와 0/4/1 때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요?

KDA는 크게 신경 안 써요. 실질적으로 상대방과 내가 얼마나 성장 차이를 벌려놨는지가 더 중요하죠. 이 정도 차이가 났으면 속으로 '내가 얼마나 활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반대로 망하고 시작했을 때는 버티면서 최대한 팀한테 기대는 수밖에 없죠.


Q. 탑 라이너의 캐리력에 '한계가 있다-없다'에 대해 말들이 많아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탑 라이너가 캐리하려면, 상대와 우리 팀 픽 조합이 잘 맞아야 해요. 상대 조합을 상대할 때, 내가 활약하기 좋은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때 캐리력이 상승하죠.


Q. 어떻게 탑 라이너가 됐고, 지금은 탑을 선택한 것에 만족하고 있나요.

그냥 LoL 첫 시작을 탑으로 했어요. 포지션을 고를 때 가장 위에 있잖아요.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탑에 가고 싶었어요. 탑 라이너로 프로 생활하는 것 역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미드를 했으면 게임하기 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아마추어 시절에 미드를 한 적이 있거든요. 미드가 게임을 풀기 좀 더 편해 보이더라고요.


Q. 작년에 롤드컵 우승시 라이즈 스킨을 가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애정이 남다른데요. 솔로랭크 라이즈 승률이 하위권인데, 프로들은 라이즈를 잘 다룹니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요?

라이즈라는 챔피언 자체가 초반만 좀 버티고 성장을 하면, 사이드 스플릿과 한타에서 모두 괜찮다고 생각해요. 팀 게임에서는 그 위력을 알기에 팀원들이 잘 맞춰주죠. 팀원들이 상대 위치를 파악해주기도 하고요. 반대로, 솔로 랭크에서는 초반에 마나가 많이 부족한데, 그때 라인을 밀다가 갱에 당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Q. 대회에서 미드에 선 적이 많아요. 미드 라인전 역시 준수하던데, 솔로 랭크로 단련한 건가요.

미드 라인이 솔로 랭크에서 심심할 때마다 하던 포지션이긴 해요. 그래서 딱히 역할 변화에 부담은 없었죠. 경기에서도 챔피언 상성에서 제가 크게 밀리는 경우도 없어서 힘들진 않았습니다. 챔피언 상성만 좋으면, 어떤 선수가 오더라도 큰 압박감은 없더라고요.


Q. 팀에서 본인한테 미드-탑 포지션에 원거리 딜러 베인-루시안부터 탱커, 브루저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겼는데요. 모두 소화하기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미드를 할 때 부담감이 있었어요. 다시 탑으로 가서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한 번 미드 베인으로 캐리해서 승리해보니까 재미가 들려서 부담감이 사라졌죠. 앞으로도 상황만 된다면, 재미있게 다양한 픽으로 경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Q. LCK 팬들이 아프리카 프릭스에 대해 '기인 원맨팀'이라는 말을 해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LoL은 팀이 잘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원맨팀'이라는 말이 팀에 정말 안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팀이 전체적으로 잘 해줘야 게임을 이길 수 있죠. 아프리카 프릭스가 이긴 판 역시 팀원들이 잘해줘서 가능했던 경기였고요.


Q. 대회에서 다른 라인이 터지면서 본인이 힘도 못 써보고 끝나는 경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마음을 달래죠?

어떻게 뭘 하기가 힘들죠. 그냥 마음을 다잡고 다음 경기 하자는 마음가짐뿐입니다.


Q. 반대로 본인이 잘 성장한 경우, 무리를 잘 안 하더라고요. 더 캐리하지 못하면 질 거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LoL이라는 게임이 잘하는 사람은 끝까지 잘해야 유지가 되거든요. 킬을 몰아서 가져간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 게임이 터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선을 지키려고 합니다. 무리를 안 해도 이길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죠.



Q. LCK 선수 화면을 보면 슈퍼플레이를 하고도 다른 선수들과 달리 무덤덤하더라고요.

저는 슈퍼플레이를 해도 큰 감흥이 없어요.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거든요. 그냥 팀원들과 콜만 하는 거 같아요. 평소에도 특별히 뭘 잘했다고 흥분하는 편은 아닙니다. 성격이 느긋한 편이기도 하죠.


Q. 스크림에서 의도대로 안 풀리면서 연패할 때도 있을 텐데, 게임 내에서 남을 탓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스크림을 연패를 하면 좀 멘탈이 나갈 때가 있는데, 그냥 뭐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잘해야지. 프로게이머이기 때문에 남 탓은 하면 안 되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남 탓을 하는 순간, 서로 신뢰가 깨지잖아요. 팀원을 탓하면, 코치님-감독님들에게 피드백이 들어오기도 하죠.


Q. 그럼, 누구한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화는 안내더라도 부탁은 하나요?

팀 피드백에서 안 좋은 말이 나오면 장난식으로 말은 하는 편이에요. 상대방이 기분이 안 상하도록 그냥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는 편이에요. 물론, 상대방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요.


Q. 평소에도 화를 잘 안 내는 것 같은데, 정말 화가 나면 어떻게 행동하나요.

근데 제가 화가 정말 많이 나더라도 웬만하면 남한테 화를 잘 안 내는 편이거든요. 그냥 혼자 알아서 푸는데… 아프리카 프릭스에 들어와서 아직 화를 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못 참을 거 같으면 딱히 무슨 생각을 한다기 보다는 그냥 대화를 안 하려고 해요. 그 순간 만큼은 잘 안 하죠.


▲ '기인' 아칼리 슈퍼플레이, 하지만 패배했던 KZ전 (출처 : LoL eSports VOD)

Q. 킹존 드래곤X를 상대로 봇에서 혼자 아칼리로 다이브를 받아친 경기가 있어요. 슈퍼플레이를 하고도 아쉽게 패배했는데, 그 경기에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슈퍼플레이를 했다고 아쉽진 않았어요. 그 판은 다른 장면에서 한 순간 판단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걸 졌다고 생각해서 그게 더 기억에 남네요. 개인적인 아쉬움보다는 게임적으로 아쉬운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Q. 그리고 이제 감독님 말로는 기인 선수가 국가 대표 작년에 다녀오고 더 성장한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좀 본인한테 변화가 생겼나요?

마음가짐의 변화보다 아시안게임에서 경력이 많은 형들과 함께 게임하면서 배우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 내적으로 좀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Q. 해외에서 경기를 작년에 해봤잖아요. LCK 무대와 또 다른가요.

맞아요. 처음 출전한건 리프트 라이벌즈였는데, 거기서 제가 다리우스로 슈퍼플레이를 했을 때 사람들이 환호해주던 기억이 남네요. 너무 떨리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때부터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더 나가보려고요.


Q. 큰 해외 무대가 긴장되진 않았나요?

처음 대회를 하기 전에 정말 긴장했어요. 해외팀과 대결할 때는 또 국가를 대표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게감도 좀 있죠. 그런데, 방음 헤드셋을 쓰다 보니까 마음이 안정되면서 긴장이 풀리더라고요. 헤드셋이 참 좋은 것 같아요(웃음)

▲ 세계 강호와 어깨를 나란히... 아쉬움이 컸던 2018 롤드컵

Q. 많은 세계 대회를 경험해봤는데, 이 대회만큼은 꼭 다시 출전하고 싶다는 대회가 있다면?

그래도 역시 롤드컵이 가장 아쉬운 것 같아요. 지난 롤드컵 때 적어도 4강은 가고 싶었는데, 일찍 떨어지다 보니까 아쉽더라고요. 다시 출전하게 된다면, 4강은 넘어보고 싶어요.


Q. 아프리카의 전 관계자에 따르면 "'서밋'이 다른 팀이었으면 작년에도 잘 했을텐데, '기인'이 잘해서 출전을 못 했다"는 말을 했거든요. 본인도 '서밋'과 경쟁하면서 성장했다고 봅니까.

이제 제가 아프리카 처음 들어갔을 때 솔직히 정말 못했어요. 그런데, '서밋' (박) 우태 형과 1:1 연습을 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죠. 제가 타이밍과 운이 좀 더 좋아서 출전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안정적인 스타일로 잘하는 것 같아요.


Q. 프로게이머 '기인'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작년까지는 팀에 형들이 많아서 많이 기댔던 것 같아요. 올해 스프링은 형들이 대부분 나가고 후배들이 들어왔잖아요. 팀원들이 각자 자신의 것 챙기기에 바빴어요. 그래도 프로 생활을 오래 하면 프로 마인드도 좀 성장하지 않을까요.


Q. 이제 스프링이 끝났으니까 시즌 절반이 지났어요. 본인이 생각한 목표는 어디까지인가요?

스프링 스플릿에서도 ‘최소 5등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섬머 스플릿이 한 달 좀 넘게 남았는데, 연습 기간 동안 열심히 해서 섬머 때는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