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되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 첫 번째 DLC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야 '전설의 목소리' 보이스팩. 블리자드는 그간 '스타크래프트2', '히어로즈오브더스톰' 등에서 게임 내 캐릭터의 목소리를 딴 아나운서 보이스팩을 종종 공개했는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서는 게임 내 캐릭터의 목소리를 따지 않고 아예 한국의 대표 해설진 세 명의 목소리를 가져왔다.

5월 2일, 삼성역 인근의 블리자드 사무실에서 '전설의 목소리' 팩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간담회는 보이스팩 녹음에 참여한 엄재경, 김정민 해설위원과 전용준 캐스터가 모두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간담회는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대표의 축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전동진 대표는 "'전설의 목소리' 보이스팩은 블리자드와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대한민국 이스포츠를 이끌어온 세 명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담긴 아나운서 패키지다. 세 분이 모두 너무 바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세 분 모두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앞으로도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이스포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대표

'전설의 목소리' 보이스팩은 '이스포츠'라는 개념이 처음 태동할 때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엄재경', 프로게이머로 시작해 현재도 왕성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김정민' 해설, 그리고 이스포츠 업계의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전용준' 캐스터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상품 구성은 각 해설위원, 캐스터 당 하나의 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패키지를 하나로 모은 '합본 팩'을 구매할 경우 세 해설위원/캐스터가 동시에 나서는 보너스 음성 팩을 적용할 수 있다. 보이스팩은 게임 내 다양한 상황(아군이 공격당할 경우, 자원이 모자랄 경우 등)에 맞춰 재생되며, 이는 시스템 메시지를 따라가기 때문에 캠페인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에 적용된다.

전동진 대표의 인사와 보이스팩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엄재경, 전용준, 김정민 세 사람의 소감 발표가 이어졌다.

▲ 좌측부터 김정민 해설, 전용준 캐스터, 엄재경 해설

엄재경 해설: 어떤 소감을 말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게임 중계에서는 손을 떼고 온게임넷 심사위원과 만화가로서의 활동만 이어가고 있었는데, 좋은 제안이 와서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재미있겠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내 인생의 절반 정도를 수놓은 게임이다. 그것에 내 목소리를 입힌다는게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가. 영상 촬영과 녹음 작업 모두 즐겁게 임할 수 있었다. 더불어 오랜만에 추억을 공유했던 이들과 식사도 하고 여러모로 인생에 깊이 각인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용준 캐스터: 스타크래프트는 나를 아나운서에서 게임 전문 캐스터로 바꿔준 계기이었으며, 동시에 게임 캐스터로서 나의 생활에 대한 보상이 되어주는 게임이다. 지금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좋지 않으면 혼자 과거의 중계 영상을 보면서 힘을 얻고는 한다. 이를테면, 나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과거가 바로 스타크래프트다.

재작년 리마스터 출시 행사를 광안리에서 진행할 때 사회를 맡으면서 그 과거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나아가 이번 DLC를 작업하면서, 현재를 벗어나 미래로 향하는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것 같았다.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김정민 해설: 90년대 말부터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모호하던 시절부터 게임을 즐겼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게임 내에 내 목소리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영광이다. 앞으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내 목소리를 팬들이 기억해줄텐데, 이게 나에게 큰 선물 아니겠나.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블리자드 코리아에 감사하고, 스타크래프트를 꾸준히 즐겨온 게이머분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길 바란다. 이번 보이스팩은 말 그대로 보이스팩이지만, 스타크래프트에 무언가가 추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무언가가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첫 타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 Q&A

보이스팩에 참여한 세 사람의 소감과 보이스팩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기자들과의 Q&A 세션이 진행되었다. 답변에는 보이스팩 녹음에 참여한 엄재경, 전용준, 김정민 세 사람과 블리자드 코리아 관계자가 참여했다.

Q. 세 분 모두 각자의 멘트나 해설에 각자의 스타일이 담겨 있는데, 녹음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엄재경 해설: 옛 중계 그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것? 녹음 당시에 맞는 멘트는 우리가 직접 쓰지 않았다. 블리자드 코리아에서 미리 대본을 준비해 줬는데, 그 대본을 보는 순간 누가 봐도 '아 이건 엄재경의 파트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내 말투를 적어놨더라.

물론, 대본을 그대로 따라 읽지는 않고 더 자연스럽게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창 스타리그 해설을 진행하던 그 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게끔 노력했다. 거기에 깨알같은 재미를 조금 더 더하려고 했는데, 이건 잘 될지 모르겠다.(웃음)

전용준 캐스터: 엄재경 해설 말대로 대본을 받는 순간 이건 내 대본이구나 싶었다. 거기에 내 나름의 느낌을 더해서 녹음을 진행했다. 오늘 아침에 TV를 보는데, '프리미엄 프라이빗 서비스'라는 문구가 나오더라. 그걸 보는 순간 내가 녹음을 진행할 때 추구한 방향을 압축하면 딱 저 문구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껏 엘리트 중의 엘리트, 최고 중의 최고들의 경기만을 해설해왔다. 그걸 이제 모든 게이머들에게 맞춰서 이면중계하듯 들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더빙했고, 이런 내 마음이 잘 전달되기만 바랄 뿐이다.

김정민 해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풀어가려고 고민했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 자문자답해가며 녹음을 진행했다. 이런 내 의도가 잘 전달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용준 캐스터: 대본을 보는 순간 내 목소리가 들리는 그런 느낌이라 해야 할까. 사실상 대본은 상황 이해를 위한 설명서였을 뿐, 필요하진 않았다. 대본에 나와있는 상황을 나는 이미 수천, 수만 번 겪었고,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빙으로서의 난이도는 아마 최하위였을 거다.(웃음) 대본은 엔지니어와의 호흡을 위해 필요했을 뿐, 필요한 대사는 이미 내 삶과 인생의 곳곳에 알알이 박혀 있어 톤과 멘트, 라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엄재경 해설: 녹음 당시 내가 꽤 감기가 심한 상황이었는데 이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팬들이 기억하는 내 목소리는 몇 경기가 진행되면서 이미 소리를 지르고 질러 쉬어버린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임요환 선수와 관련된 다큐를 진행할때도 PD가 그 목소리가 필요하다며 일부러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게 했는데,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되었다.



Q. 세 사람 모두 '시그니처'라고 할만한 멘트가 있다. 가령 전용준 캐스터 하면 특유의 랩 있지 않나.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퉁퉁퉁'과 같은 것들. 그런 대사들도 포함되어 있나?

엄재경 해설: 뭐... 있을까? 있을 거다.(웃음) 딱 뭐라고 말하기는 힘든데 분명 있을 거다.

전용준 캐스터: 이번에 블리자드에서 투자를 많이 했다. 더빙도 녹음하고, 영상도 촬영하고, 제작 팀의 규모도 꽤 컸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게 느껴졌다. 당연히 들인 만큼은 뽑아야 하지 않겠나?(웃음) 뭐가 들어 있는지 정확히는 말을 못하겠지만, 5월 3일이 되고 직접 들어 보시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정민 해설: 기획한 사람들부터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겜잘알'들 아닌가. 녹음 분위기 조성부터 다양한 이스포츠 밈의 활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팬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멘트가 이곳 저곳에 들어가 있다.

▲ '용준랩' 일부도 들어가 있다.


Q. 녹음 과정은 세 분이 한 번에 진행한 건가?

블리자드: 세 분이 함께 녹음을 진행한 부분도 있다. 이번 보이스팩은 총 네 가지 팩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하나가 세 분의 목소리가 한 번에 담긴 합본 팩이다. 이 팩은 세 분이 한 자리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Q. 스타크래프트 이스포츠 팬이라면 아마 고민없이 합본 팩을 구매할 것 같다. 하지만 단일 팩으로 나와있는 만큼, 자존심이 어느 정도 걸려 있을 텐데, 본인 목소리 팩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나?

엄재경 해설: 희소성? 아마 내 목소리 듣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거다.(웃음) 그게 내 목소리 팩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통 주변에는 그냥 합본 팩 사라고 한다. 그래야 나도 좀 업혀 갈 것 아닌가?(웃음)

김정민 해설: 주변에는 합본팩이 제일 낫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만의 장점을 꼽자면 역시 지금 스타크래프트를 진행하고 있는 현업 해설위원의 생생한 목소리가 아닐까?

전용준 캐스터: 지금까지 함께 이스포츠 씬을 만들어온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이제 전설적인 수준에 이른 선수들이 나한테 고맙다고 말하더라. 나는 그냥 일을 한 건데 경기를 중계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내 목소리가 선수들도 고마워하는 목소리다.(웃음)

그 목소리가 이제 여러분들을 위해 풀린다. 최고의 캐스터가 진행하는 모든 게이머들을 위한 프리미엄 프라이빗 서비스! 그게 내 목소리 팩의 장점이다. 그리고 이번 전설의 목소리 팩에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듣기 싫은 목소리는 빼버리면 그만이다.

엄재경 해설: 분위기가 뭔가 홍보를 더 해야 하는 분위기인것 같아서 두 사람이 말하는 동안 생각을 좀 해봤다. 합본팩 이름이 '전설의 목소리' 아닌가. 전설은 말 그대로 저어어어어~ 옛날부터 내려온, 그러니까 음... 최초에 이스포츠에 누가 있었냐? 하면 바로 내가 있었다. 이스포츠가 발아하기 전, 완전히 씨앗이었던 시절에 바로 나 엄재경이 있었다.

자녀들이 게임하면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아빠 이건 누구야?'라고 물어보면 '이 목소리가 이스포츠의 시작이었다'라고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웃음)

김정민 해설: 내 목소리는 실리를 위한 목소리다. 내가 프로게이머를 2006년에 은퇴했는데, 프로게이머들은 경기 전에 항상 예전 경기를 돌려본다. 그러면서 내가 칭찬받은 부분과 혹평받은 부분을 살피고, 이를 보완해나간다. 내 목소리는 이걸 실시간으로 해준다. 친숙한 목소리로 자신의 플레이를 보완해준다는 것. 그게 내 보이스팩의 가장 큰 메리트다.

▲ 희소성의 매력


Q. 엄재경 해설은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려줬는데, 다시 해설위원으로 복귀할 생각은 없나?

엄재경 해설: 다른 종목은 몰라도 브루드워면 될 것 같다. 옛날처럼 엄청나게 열정적인 포지션은 맡지 못하겠지만, 옆에서 적당히 흥을 돋워 주는 정도의 보조 캐릭터는 될 수 있을거다. 근데 이거도 누가 불러 줘야 하는 거지...

개인적으로 이번 녹음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데, 스타크래프트의 생명은 확실히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보이스팩의 경우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지 않나. 해설위원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번 보이스팩이 흥행하지 못한다면 모르겠지만, 잘 된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DLC가 추가될 수 있으리라 본다.


Q. 그냥 넘어가려다 도저히 궁금함을 못 참아서 질문하는 건데, 영상에서 엄재경 해설은 왜 하반신에 팬티만 입고 있는 건가...?

엄재경 해설: 아... 물어볼 줄 알았다.(웃음) 영상을 본 지인들이 다 그걸 물어보더라. 이게 사실은 현실 반영이다. 실제로 우리가 중계할 때는 바지를 딱히 신경을 안 쓸 때가 많다. 어차피 카메라에 잡히는건 상반신 아닌가. 여름에 덥고, 냉방이 잘 안되고 그럴 때는 위에만 양복을 갖춰 입고 아래는 반바지를 입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영상 내에서는 고무줄 반바지를 입은 건데, 트렁크가 살짝 보이더라. 깨알같은 재미가 된 것 같아서 부끄럽다기보다는 재미있게 생각한다.

▲ 문제의 팬티


Q. 마지막으로, 이번 녹음이 실제로 녹음을 진행한 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어볼 수 있나?

전용준 캐스터: 가수분들이 엘범을 내면 어떤 기분일지 이번에 알게 된 것 같다.게이머들이 원할 때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엘범 내에 다양한 곡이 들어가 있듯이, 이번 보이스팩에도 상황에 맞는 다양한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여러 게이머분들과 끊임없이 함께할 수 있는 엘범의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모든 게임, 이스포츠업계에서 일하는 해설위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영광된 순간이 바로 인게임에 우리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가장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담되는 노출은 게임 공식 홈페이지에 노출되는 것이다. 게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생태계의 한 면에서, 중심인 게임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게임 내에 목소리가 들어간다는 말을 듣자 마자 다른 조건은 묻지도 않고 수락했다. 목소리를 최대한 많은 게이머에게 알리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해설위원과 캐스터에게는 가장 큰 영광이다. 이렇게 기회가 오니까 하게 된 거지, 역으로 우리가 돈을 준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많은 게이머분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는 중. 김정민 해설은 "세 사람에게 잔소리듣는 기분"이라는 평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