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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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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게이머는 많아지는데 왜 게임 '인식'은 그대로일까?

정재훈 기자 (Laffa@inven.co.kr)


명백히 난 게임을 좋아한다. 나이가 서른을 넘어가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꾸준히 게임을 한다. 어렸을 때라고 달랐을까.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았다. 게임을 한다고 야간자율학습을 도망친 게 한두 번이 아니고, 게임만 하는 내 모습에 분노한 부모님이 박살 낸 게임 패드도 여럿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작성하던 자기소개서 취미란엔 게임의 자리가 없었다. 그냥 어쩌다 한 번 읽는 `독서`, 그리고 찾아 듣지도 않는 `음악감상`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시절 게임이 그랬다.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면 뭔가 약해 보이고, 없어 보였다. 좋아했지만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 못하던 것이 십수 년 전 게임의 이미지였다.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오늘날 게임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냥 가끔 하는 취미, 친구들이 같이할 때 종종 하는 취미. 이게 게임이 가진 이미지의 현주소다. 누구나 즐기지만, 자랑스럽게 말하지는 못할 취미.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의 소장인 이장주 박사는 이 점에 주목했다. 오늘날 대중이 `게임`을 대할 때 생각하는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게임이 목표로 해야 할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미 게임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심리학적 견해로 풀어낸 바 있는 그는 지난 3월,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를 주제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장주 박사와 연구진은 청소년과 직장인을 아우르는 게이머층과 인터뷰를 통해 게임이 가진 이미지의 표본을 추출했고, 이를 통해 게임이 드러내는 이미지의 현주소를 정의했다. 보고서를 완독한 후, 구로에 있는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로 직접 찾아갔다. 보고서는 꽤 넓은 영역에 대해 다루고 있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보고서로는 다 전달하지 못한 이장주 박사의 소감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관련 링크: 디지털 게임 이미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

▲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이장주 박사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
연구의 목적, 과정, 그리고 결과.

Q. 연구 주제가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다. 게임과 관련된 연구 주제로 다양한 소재들이 많을 텐데, 이미지를 연구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있는가?

`이미지`는 이미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다뤄지는 주제다. 심리학과 마케팅에서도 이미지를 주된 주제로 삼아 문제에 접근한다. 한 번 생각해보자. 게임에도 분명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하지만 대중이 느끼는 게임의 이미지는 중독, 폭력성, 사행성 등 좋지 못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계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의 절대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모순의 이유를 찾고자 했다.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든, 혹은 게임을 플레이하든, 이 모든 행동에는 구체적인 동기와 모멘텀이 존재할 것이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게임`이라는 소재가 가진 이미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추출해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 게임업계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뤄졌다.


Q. 연구 과정을 보니 매우 많은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꼭 지키고자 했던 포인트가 있는가?

한 명을 인터뷰하면서도 최대한 다양한 반응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 연구는 게임에 대한 어떤 특정한 편견을 배제하고 이뤄져야 했다. 가령, 연구자인 내가 게임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게임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내세워서도 안 됐다.

또한, 일반 대중보다는 게임을 꽤 오래 플레이하는 헤비 게이머층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과 그냥 일상 대화를 하듯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핵심 속성과 단어, 이미지를 추출했다.


Q. 청소년층의 속마음을 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연구 중에 어려운 일은 없었나?

당연히 청소년층의 속마음을 끄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내가 청소년이 아니지 않나?(웃음) 하지만 심리학적 연구 기법에는 피험자의 심리를 끌어내는 여러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너는 왜 게임이 좋니?"라고 물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대답만이 나온다. 그런 대답들은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이들이 그렇게 말하기에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접근을 달리한다. `투사 기법`이라고 하는 과정인데, 연상되는 색상이나 동물 등의 이미지를 물어보고, 이 표본을 추출한다. 이렇게 하면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말로 표현할 정도로 구체화하지는 않았던 상념`들이 추출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서 무의식 속에 잠든 이미지를 표면 위로 드러냈다.

▲ 실제 인터뷰 내용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Q. 연구 결과 중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게임이 다른 여가 생활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선호도`이다. 실제로는 게임을 많이 하지만 게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뜻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택`이라는 단어로 초점을 맞춰보자. 모든 선택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긍정적 선택`이다. 여러 좋은 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선택`인데 이는 가장 `덜 나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가 문화는 대부분 `부정적 선택`을 따라간다. 실제로 `게임`을 가장 좋아하는 여가로 꼽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겠지만, 헤비 게이머 중에도 게임 외에 다른 여가를 더 좋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여가 하면 우리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게 여행, 구기 운동 이런 건데 실제로 이걸 다 하기가 힘들다.

여행? 요즘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여행 갈 시간이 어딨나. 직장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구기 운동? 이것도 사람이 모여야 하는 건데 다들 학원 가고 뭐 하고 한 명씩 빠지면 혼자 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은 다른 어떤 여가보다도 `접근성`이 뛰어나다. 그나마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건데, 사실 이렇게 플레이하는 게임도 부정적 선택의 산물 아니겠나. 그러니 만족감을 줄 수 없는 거다.

▲ 게임은 활동으로서의 선호도가 낮은 편이다.


Q. 요컨대 여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인가?

사회의 인식이 그렇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노는 것은 죄다`라는 인식이 있었고, 이런 인식이 많이 희석된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노는 것을 `게으름`으로 받아들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가`라는 개념은 굉장히 실존적인 영역이고, 또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가의 상대 개념은 `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급여 생활자들에게 `일`이란 대부분 `남의 일`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의 일 해주고 돈을 버는 거다. 그런데도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고, 돈을 버는 이유는 그것으로 `내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하려고 여가를 소홀히 한다면 그게 내 삶을 바쳐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부르짖는 이유는 이렇듯 단순히 정치적,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실존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


Q. 그런데도 게이머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접근성` 때문이라기엔 설명이 부족한데, 오늘날 게이머의 수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한 다른 해석이 있는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종 영양분을 비롯한 생리적 필수요소도 필요하지만,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정신적 기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정신적 기둥을 쉽게 말하면 `제 잘난 맛`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 `내가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어.`, `내가 못생기긴 했지만, 머리는 좋아`, `나는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못났지만, 운동은 끝내주게 해` 이런 생각들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이걸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가치 확인(Self-affirmation)`이라고 한다. 자신에 대해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지각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자신의 다른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자기 상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게임 또한 지금의 청소년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자기 가치 확인의 수단이 된다. `나는 그래도 게임은 잘하니까`와 같이 평면적인 접근도 가능하지만, `내 친구 중에선 내가 탱킹을 제일 잘 하지`, `슈팅 게임 피지컬은 내가 제일이야`와 같이 한층 복잡한 가치 확인도 가능하다. 싸고 저렴하고 접근성 좋으면서 심리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가?
게임이 지향해야 할 이미지, 그리고 그 이후

Q. 이번 연구를 살펴보면 현재 게임의 이미지는 `재미`, `즐거움`, `접근성` 등이고, 앞으로 지향해야 할 이미지의 키워드는 `자유`이라고 결론지었다. `자유`이라는 단어를 꼽은 이유가 있는가?

사람을 포함해서 근육과 의지를 갖춘 모든 생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자 한다. 게이머도 게임을 원해서 선택하는 이가 있고, 게임 외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아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룹이 있다. 그리고 이 게이머들의 욕구 이면에는 `자유`를 향한 동경이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행동에 수많은 제약을 받는다. 금전적 문제일 수도, 혹은 사회적 규범과 얽힌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하여튼 원하는 모든 것을 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면 그건 자유가 아닌 방종이라고 흔히 말하지 않나? 게임은 현실에 비해 이런 제약이 적다.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방종과는 다르다. 온라인 생태계 또한 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고, 나름의 규범이 있다. 게임 내에서 트롤링 하면 바로 신고당하고 욕먹고 하지 않나. 정리하자면 게임은 현실보다 더 자유롭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동시에 나름의 규범을 따르는 책임이 적용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갖는 한도 내에서 누리는 자유를 `자율`이라고 부른다.

▲ 이장주 박사가 제안한 방향성은 '자유'


Q. 이런 `자율성`이 게임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주려면 실제로 긍정적인 사회 효과를 보여야 할 텐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에는 생리학적인 접근을 해 보자. 게임을 주로 소비하는 청소년기 남학생들은 그 시기에 테스토스테론이 무지막지하게 뿜어져 나온다. 흔히 말하는 남성 호르몬인데, 이 테스토스테론은 청소년의 활동성을 큰 폭으로 증진하고 에너지를 준다. 먼 옛날, 사냥과 전투가 일상이던 시기에는 굉장히 유용한 역할을 하던 호르몬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냥을 하고 전투를 벌이는 청소년이 어디 있겠나? 어쩔 수 없이 청소년들은 이 테스토스테론이 주는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규범 내에서 해결책을 찾고, 자신의 방법대로 이를 통제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람의 몸이 꽤 잘 속는다는 것이다. 현실이든 가상이든, 시각적 정보는 사람의 몸에 영향을 준다. `VR` 또한 이런 현상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고무 손 실험` 또한 좋은 사례다. 가짜 손과 감각을 동기화한 후 통증 실험을 진행하는 것인데, 이 실험의 의의는 사람의 감각이 인체 외부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게임이 이런 `감각의 착각`을 주수단으로 사용하는 문화 콘텐츠다. 지금의 청소년들이야 전혀 모르겠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본드를 불고 가스를 흡입하는 청소년층이 큰 사회적 문제로 다뤄졌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 `스타크래프트`가 나오면서, 본드를 부는 청소년들에 관한 기사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더불어 청소년층의 흡연율과 음주율, 우울증도 게임이 퍼진 이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임 때문에 세상이 망하고, 청소년들이 잘못된 길로 빠진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게임이 세상을 좋게 만든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시대적 상황과 그 결과를 바라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대다수 청소년이 착하게 잘 자랄 수 있는 이유가 뭐겠나? 이런 식으로라도 충동을 해소할 수 있어서 선함을 유지하는 것 아니겠나?

▲ 감각을 속이는 '고무 손 실험'


Q. 연구 보고서 내에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이 게이머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의견이던데, 추론 과정이 어떻게 되는가?

불만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에 따른 `근원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로 결정이 된다. 예를 들어 레이싱 게임을 즐길 때, `운전 자체의 재미와 경쟁으로 인한 스릴`을 원한다면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목적이 오로지 `승리`라면 승리하지 못하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확률형 아이템의 근본적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이건 확률을 공개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고, 확률이 높으냐 낮으냐의 문제도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불만의 심리적 근원은 내 선택과 의지가 나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자유가 침해당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Q.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뭔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놀라웠던 결과가 있는가?

뻔한 현실인데 그간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게임` 하면 흔히 하는 생각이 `수출 효자`, `대한민국의 강력한 문화 콘텐츠`와 같은 인식이다. 게임의 경제적 효과를 부각하는 이미지인데, 사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실효성이 굉장히 낮았다. 실제 게이머층은 국산 게임이 외화를 얼마나 버는지, 해외에서 어떤 반응을 얻는지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신뢰하지도 않을뿐더러 큰 관심이 없었다.


Q. 게임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자기 생각과 다른 연구 결과를 마주해야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게임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고찰해본 바가 있는가?

모든 사물과 콘텐츠, 가치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혼합되어 있다. 산삼 녹용도 적절한 법제 없이 마구 섭취하면 위험하지 않나?(웃음) 결국 사물을 볼 때 긍부정을 결정하는 것은 `어느 쪽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똑같은 세상을 대하면서도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은 나뉘지 않나?

게임 또한 마찬가지다. 게임 또한 긍정적인 사회 효과와 부정적인 사회 효과를 모두 보여준다. 다만, 게임을 대하는 개인이 긍부정 중 어느 쪽에 관심을 두고 게임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갈린다. `나`의 입장에서는 게임이 만들어내는 부작용들이 청소년들이 성장하면서 숱하게 치는 여러 사고들이 게임이라는 수단을 통해 드러나는 거라고 본다. 게임이 없었을 때도 그 나이 그 또래들은 온갖 사고를 치면서 자아를 성립하지 않나? 그렇게 사고를 치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면, 그때는 게임을 대하는 자신만의 게임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 게임의 경제적 효과를 부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Q. 앞서 말했듯 게임이 지향해야 할 이미지의 목표로서 `자유`를 말했다. 그렇다면 `자유` 이후 게임이 또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 것 같은데 게임이 사라져야 한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주장한 컴퓨터 과학자 `마크 와이저(Mark Weiser)`는 그의 세 가지 철학 중 하나로 `사라지는 컴퓨팅(Disappear Computing)`을 내세웠다. 컴퓨터가 보급되고, 사회 전반에 퍼진 후, 어느 순간이 되면 모두가 컴퓨터를 잊을 정도로 사회에 동기화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 '사라지는 기술'을 주장한 마크 와이저

스마트폰이 가장 가까운 사례다.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는 누구나 이 작은 기계에 놀라움을 표했지만, 오늘날 스마트폰은 그냥 일상이 되어 버렸다. 누구에게나 스마트폰이 있고,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를 게임이냐고 보는가?`이라는 질문에 `나의 세계에서 내가 주인이 되는 것`까지라고 답한다.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나와 상호작용하는 문화 콘텐츠 아닌가. 얼마 전 어떤 작곡 AI를 봤는데, 내 기분에 맞춰서 음악을 즉석에서 편곡해서 들려주는 AI였다. 이는 음악이라는 매체에 게임적 요소가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문화 콘텐츠에 소비자의 의사가 개입되는 순간 게임의 특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5G 시대가 열리면서 동시에 늘어난 대역폭과 데이터 수용량은 이와 같은 일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만들 힘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로 스포츠 중계를 듣고, 내가 원하는 줄거리의 드라마를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의 내용을 AI로 바꾸는 미래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서비스 중인 인터랙티브 드라마나 통신사에서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우는 스포츠 경기의 360도 관람, PC 게임의 스트리밍화 등이 이와 같은 발걸음의 일환 아닌가.

스마트폰이 어른의 손에서 유치원생의 주머니로 가는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모든 문화가 소비자 개인의 기호에 맞춰지고, 게임의 특성을 띠게 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게임은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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