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웃으면?
'바나나킥'


넌센스 퀴즈를 던지면 이제 '아재개그'라며 야유를 받기 마련이지만, 사실 누구나 속으로 '이건 몰랐는데?' 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말장난이지만, 한국어 단어를 조합할지, 외국어를 섞을지, 의성, 의태어를 사용할지, 그 모양새를 표현할지, 어떻게든 문제를 낸 '아재'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머리를 굴려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장난이 재미있는 이유는 생각의 폭을 벗어나는 곳에 해답이 있기 때문이고, 몰랐던 부분이라기보다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소름 돋는 공포설이 재미있는 이유도 그렇고, 탐정 수사물이 흥미로운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올해 초 출시된 퍼즐 게임 'Baba is You'가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칙은 간단하다. 'You'가 'Win'에 닿기만 하면 된다. 한가지, 맵 위에 있는 타일들은 'is(은/는)'를 통해 성질이 바뀔 수 있다. 'You'가 무엇인지, 'Win'이 무엇인지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유저가 스스로 승리의 조건, 퍼즐의 룰을 만들 수 있다.

간단하지만 생각의 사각지대를 건드리는 'Baba is You'.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핀란드의 1인 인디게임 개발자, 아르비 테이카리(Arvi Teikari)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Baba is You' 개발자, 아르비 테이카리


Baba IS "규칙을 재정렬하는 게임"
게임잼에서 탄생한 'Baba is You'


Teikari "'Baba is You'는 48시간 동안 진행된 게임잼에서 처음 구상했던 프로젝트에요. 그때 기본적인 콘셉트는 전부 정해진 상태였죠. 게임잼에서 우승하면서 'Baba is You'가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Baba is You'가 우승을 차지했던 2017년 코펜하겐에서 진행된 노르딕 게임잼의 주제는 'Not There'이었다. 모호한 주제인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던 주제였고, 테이카리 개발자는 그중에서도 'Not'이 가지고 있는 논리 연산자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Not'은 부정의 의미가 있는 요소로, 의미를 거꾸로 뒤집는다. X라는 논리를 반대로 뒤집을때 우리는 앞에 Not을 붙인다. 게임잼의 주제 'Not There'을 보면, [There이 아니다] 또는 [There의 반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Not에 대한 콘셉트는 퍼즐 게임으로 녹아들어갔다.

Teikari "'얼음은 녹지 않는다(Ice Is Not Melt)'라는 명제로 인해 용암 옆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 조각. 이런 콘셉트가 떠올랐어요."

▲"얼음은 녹지 않는다"라고 정하면? 게임 속에서 얼음은 용암 옆에서도 녹지 않는다.

게임 로직 자체가 게임의 일부분이 되는 퍼즐게임. 'Baba is You'는 게임의 논리를 직접 바꿔나가는 게임이다. 승리의 규칙부터 'You'는 무엇인지, 물 위는 걸을 수 있는지, 벽은 막힌 부분인지 지나갈 수 있는지. 벽이라면 당연히 지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Wall is Stop'이라는 명제에서 'Stop'만 빼버려도 벽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콘셉트는 단어와 아주 기본 문장 구조인 [A is B]를 사용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Teikari "논리식과 논리 연산자는 대부분 'And', 'Or'과 같은 단어로 표현돼요. 'Baba is You'는 논리 규칙을 재정렬하는 게임이고, 그만큼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직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문장에도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갈 수 있고,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어요. 다만, 게임은 번역하기 어려워졌지만요."


Not에서 시작된 이러한 아이디어는 다양한 퍼즐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됐다. 테이카리 개발자는 매 턴마다 선택이 중요하고, 그리드를 기반으로 한 퍼즐 게임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소시지를 밀어서 그릴 위에 올려야 하는 게임, '스테판의 소세지 롤'이나, 맵의 구조에 맞춰 밀어내며 이동해야 하는 '스네이크버드'나 '젤리 노우 퍼즐', 크기에 맞게 눈덩이를 굴려야 하는 'A Good Snowman Is Hard To Build' 등을 언급했다.

Teikari "앞서 말한 게임들은 모두 매 턴의 선택이 중요한 게임이고, 그리드를 기반으로 한 퍼즐 게임이에요. 'Baba is You'를 구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 게임들이에요. 사실 아이디어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게임의 콘셉트와 플레이 방식 외에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캐릭터 'Baba'다. 'Baba IS You'일때 움직이게 되는 캐릭터로, 토끼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Baba'는 뭘까?


Teikari "Baba는 원래 안테나가 달려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구상했던 캐릭터였어요. 그런데 2018년 게임잼 버전을 공개한 후에 인디 게임 개발자인 제이슨 보여라는 친구가 로봇을 염소와 비슷한 귀여운 캐릭터로 팬아트를 만들어줬더라고요. 그 팬아트를 보니, Baba를 귀엽게 만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죠."

한편, 테이카리 개발자는 'Baba'와 'Keke'라는 이름은 부바키키 효과(Bouba/Kiki Effect)에서 따왔다고 덧붙였다. 부바키키 효과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이름이나 단어가 완전히 임의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어느 것이 부바이고, 어느 것이 키키일까?

Teikari "흐물거리는 모양과 뾰족한 모양을 보여주고 어느 것이 부바(Bouba)이고, 어느 것이 (Kiki)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동글동글한 모양에 부바라는 이름을, 뾰족한 모양에 키키라는 이름을 붙이는 현상이에요. 캐릭터 이름을 정하면서 이 실험이 떠올랐고, Baba와 Keke가 만들어졌어요."


Puzzle IS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Baba is You'의 퍼즐 설계는?


'Baba is You'는 어렵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바고, 벽은 멈춰있고, 깃발은 승리다"라는 이해하기 쉬운(?) 명제를 상황에 따라 "나는 벽이고, 승리는 바바다"라고 바꿀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벽은 당연히 지나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명제에 따라서 지나갈 수 있게 바뀌기도 하고, 플레이어가 스스로 벽이 되기도 한다. 'Baba is You'가 어려운 이유는 익숙한 것을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과 연관시켜야 한다는 점에 있다.

Teikari "'Baba is You'는 벽, 열쇠, 돌과 같은 익숙한 오브젝트의 의미를 보통은 관련이 없는 것과 연관시키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해요. 또한, 퍼즐이 반복적이지 않기 때문에 매 레벨마다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요소를 이해해나가야 한다는 점도 게임의 난이도를 높여주죠."

그럼 'Baba is You'의 퍼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테이카리 개발자는 단어와 그에 대한 아이디어를 조합해 흥미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한 기믹을 먼저 구상하고, 이를 활용해야 하는 맵을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테스터들의 피드백이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동료 개발자인 알랜 하젤덴(Alan Hazelden)이 디자인한 레벨도 있다고.

Teikari "먼저 게임 속에 있는 단어들과, 단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조합해서 흥미로운 인터랙션을 구상해보는 편이에요. 대부분의 퍼즐이 이렇게 만들어지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조합이 떠오르면 구상한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레벨디자인을 역설계 합니다. 이를 통해 모든 레벨이 색다른 요소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콘셉트의 놀라움도 극대화되죠."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해결방법도 서로 다른 것을 떠올리게 된다. 색다른 아이디어가 들어간 레벨이라도, 플레이어들이 그 부분을 떠올리고 활용할 수 있으려면 보다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Baba is You'는 이 부분에서 설계가 잘 이루어져 있는 편이다. 개발자가 의도한 특정 상호작용을 활용하도록 구성되어있으며, 의미 없이 방치되는 문장도 없다. 퍼즐을 설계하는데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Teikari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은, 플레이어가 게임 시스템에 대해서 디자이너만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퍼즐을 설계하면서 난이도를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디자이너는 게임 시스템의 디테일을 모두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무엇이 '명확한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크게 왜곡되어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요소들로 구성된 게임 속에 놓인 플레이어는 어떤 부분을 활용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게임 속에 놓여있는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어떻게든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는 쓰이겠지, 하고.

따라서 쓸모없는 요소가 포함될 경우, 자칫 플레이어로 하여금 아무런 수확 없이 오랜 시간을 잘못된 조합을 시도하는데 허비하게 할 수도 있다.

Teikari "퍼즐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어떤 접근방식들이 가능할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위와 같은 가짜 요소들을 활용하는 퍼즐도 있지만, 'Baba is You'에서는 그러한 가짜 요소 자체가 재미있지 않은 이상 배제하고 있어요."

그럼 퍼즐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을까?

Teikari "앞서 말한 원칙들을 잊지 않고 계속 염두에 두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명확하지 않거나 재미있지 않은 아이디어를 쳐내는 것도 어려웠죠. 애착을 두고 만든 레벨 콘셉트 중에서 불공평하거나 직관적이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고 나서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설계가 잘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때때로 유저들은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버그일 때도 있고, 허무하게 끝나는 지름길일 때도 있다.

▲앞서 나왔던 같은 맵이지만, STOP을 없애지 않고 스스로 벽이 될 수도 있다.

특히 'Baba is You'는 매 레벨마다 생각해야 할 색다른 요소를 고려하며 설계된 만큼 새로운 명제와 메커니즘을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허무한 지름길 플레이는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다. 또 다른 생각의 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플레이에 대해서 테이카리 개발자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Teikari "의도된 해결방안만큼이나 흥미롭고 색다르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초반 레벨에서 의도되지 않은 해결책들은 게임 메커니즘의 여러 가지 새로운 부분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따라서 초반 단계에서 발견된 기술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대안들은 그대로 놔두는 편이에요. 반면 후반 레벨에서는 조금 엄격하게 구성합니다. 게임 내 퍼즐들이 독특한 해결책을 담고 있고,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새로운 부분을 탐구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Teikari IS "유저들을 즐겁게, 놀라게 하고 싶다"
1인 개발자, 아르비 테이카리


개발자 테이카리가 개발한 게임은 'Baba is You'외에도 다양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해 작지만 재치있는 게임들을 개발해왔다. 대부분 게임잼에서 개발한 작품이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아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Baba is You' 전에 개발한 'Environmental Station Alpha(이하 ESA)'는 현재 스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Teikari "게임을 개발해온 지는 약 16~17년 정도 됐어요. 게임 대부분은 미완성으로 끝났는데, 완성된 작품들도 약 1시간 분량의 작은 프로젝트가 전부였죠. ESA는 제가 개발해서 출시까지 한 첫 작품이에요. 지금은 그 후속작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테이카리 개발자는 앞으로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1인 개발자인 만큼 'Baba is You'에 대한 작업량을 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최소한 프로젝트 하나는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Teikari "1인 개발자로 개발하고 있는 만큼 어려운 점은 있어요. 먼저, 게임을 개발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툴이 한정된다는 점이죠.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Baba is You'는 MP2 게임즈를 통해 여러 가지 플랫폼으로 이식될 수 있었고, 제가 사용하는 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회사라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1인 개발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모든 부분을 혼자 해야 하는 만큼 인터뷰가 부담될 수 있기 때문인데, 언제나 개발자에게 넉넉한 시간과 여의치 않다면 거절해도 괜찮다고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다.

Teikari "게임이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수많은 연락과 이메일, 다양한 이벤트까지 혼자서 소화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혼자이기 때문에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요. 지금도 쌓여있는 이메일이 정말 많아요(웃음)."

'Baba is You'는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인디게임 페스티벌 2018(IGF 2018)에서 최고의 디자인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고 언급한 테이카리 개발자. 그는 게임잼에서 시작한 자신의 프로젝트가 이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Teikari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것 같아요. 게임잼에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IndieCade나 게임스컴에서 출품했을 때도 그 가능성을 볼 수 있었고요.


하지만 성공하기 어려운 미니멀한 디자인과 퍼즐게임이라는 특성 때문에, 흥미로운 콘셉트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잘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어요. 흥미로운 인디게임들이 출시 이후 잊혀져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테이카리 개발자는 어떤 게임들을 만들어나가고 싶을까.

Teikari "전 플레이어를 놀라게 하는 게임들을 좋아해요. 'Baba is You' 게임 디자인의 가장 큰 의도도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면서 그 속에 있는 메커니즘을 보고 놀라고, 즐거워서 웃음 짓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요.

아, 한국 유저들에게도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요. 'Baba is You'가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기쁘고, 트위치에서 한국 스트리머들의 방송을 볼 때마다 정말 즐거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