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없나 보다. 15일 새벽, 오버워치 리그 시즌2 스테이지3에서 상하이 드래곤즈가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버워치 리그의 상하이 팀에 대해 들어본 이들이라면, '해가 서쪽에서 떴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즌1 40전 전패라는 e스포츠 최악의 기록을 보유한 상하이가 한 걸음씩 성장해 이뤄낸 놀라운 반전이었다.

결승 상대는 시즌1부터 중요한 순간마다 앞에 나타난 샌프란시스코 쇼크였다. 쇼크는 상하이의 시즌1 마지막 경기에 나타나 4:0으로 압승을 거두며 전패 기록에 확실하게 못을 박은 바 있다. 이후, 쇼크는 시즌2에서 세 번 연속으로 스테이지 결승전에 올라갔고, 이미 우승 경험까지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상하이가 올해 처음으로 스테이지2 PO에 올라 기쁨에 차 있을 때, 바로 탈락시키며 좌절을 준 팀이기도 하다. 대세인 3탱-3힐 조합의 정점인 쇼크는 무실 세트 전승이라는 견고한 '방패'로 상하이의 '총구'를 틀어막았다. 경기 스코어처럼 쇼크가 상하이를 압도하는 흐름은 올해도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상하이의 걸음은 PO 진출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스테이지3 결승까지 올라가 쇼크를 다시 만나게 됐고, 누구에게도 깨지지 않던 쇼크의 '방패'를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상하이는 악몽과 같았던 이전 시즌, 이전 스테이지 PO의 패배를 가장 멋진 우승으로 극복해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해왔던 상하이의 스타일로 대세 메타인 '33-솜브라 고츠' 등을 넘어섰기에 더욱더 값진 승리였다. 상하이와 비슷한 딜러 중심 체제를 선택한 팀들이 모두 쇼크를 넘지 못할 때, 상하이만 유일한 승자로 남았다. 그리고 본인들의 선택이 새로운 메타라는 것을 입증한 경기였다.

놀라운 건 한 시즌 만에 리그 최하위 팀이 변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주전 로스터의 큰 변화가 있었지만, 이들 역시 오버워치 국내 대회와 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그 변화를 완성하기까지 상하이 드래곤즈 게임단과 선수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시즌1부터 쉬지 않은 로스터 교체
만만치 않았던 '메타의 벽'


상하이를 시즌1부터 지켜본 팬들이라면, 이번 우승 소식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40전 연패를 하는 중에도 꾸준히 한국인을 영입하고 로스터를 교체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그 중에 가능한 모든 변화를 시도했지만, 패배라는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상하이는 이전보다 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기존 중국 선수들 자리를 모두 한국인으로 교체한 것이다. 시즌1 40전 전패팀이 드디어 리그에서 첫 승을 거뒀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시즌2까지 이어질 뻔한 연패를 끊어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

물론, 이번 로스터 변화 역시 PO 진출이라는 결과까진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연이은 패치와 신 영웅 합류 소식에도 3탱-3힐을 쓰는 대세 메타가 쉽게 변하지 않았기에 그렇다. 점점 더 견고해지는 '33' 조합에 상하이 팀원들의 장기인 딜러 조합은 쉽게 등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상하이의 시대는 멀게만 느껴졌다. 상하이는 주전 로스터의 6명 중 4명이 콩두 판테라 출신이다. 컨텐더스 KR 결승을 아쉽게 준우승으로 마무리하고 리그로 올라온 팀원들이다. 그리고 이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항상 높은 곳에 있던 팀이 있었다. 바로 밴쿠버 타이탄즈(러너웨이 1기)다. 컨텐더스 KR에서 당당히 우승한 뒤, 팀원 모두가 리그로 함께 올라와 스테이지1마저 우승을 거둔 팀이다. 그렇게 두 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것만 같았고, 상하이 선수들은 한동안 이들의 활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상하이는 꾸준히 자신의 길에서 한 걸음씩 전진했다. 자신 있는 딜러 체제를 부산과 같은 특정 맵에서 꾸준히 꺼내온 것이다. 그러던 중 상하이가 자신들이 딜러전에서 강하다는 점을 확인한다. 바로 시즌 초반부터 대부분의 맵에서 딜러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청두 헌터즈와 대결을 통해 말이다. 상하이가 딜러 대결에서 압도하는 그림이 나온 것이다. 탱커인 '감수' 노영진을 제외한 주전 선수들이 모두 2부 컨텐더스 출신인 팀원들인 만큼, 청두전 승리는 자신들의 장점이 1부 리그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본격적인 한 우물 파기
시행착오로 완성한 상하이의 무기

앞서 청두와 딜러 대전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상하이는 스테이지2부터 다시 한 번 과감한 결단에 나선다. 바로 많은 딜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당시 우승팀 역시 '33'을 주로 활용하는 밴쿠버-샌프란시스코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걸었다.

첫걸음은 역시 순탄치 않았다. '영진' 진영진이 둠피스트와 정크렛을 활용할 때, 상대의 수비에 연이어 막히는 장면이 나왔다. 당시 해설자들이 "왜 교체를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답답한 공격을 이어가기도 했다. 완벽한 것 같았던 '띵' 양진혁의 파라는 LA 발리언트 '카리브' 아나의 수면총에 잠들었고, 수많은 솜브라의 해킹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결승전에서 '디엠' 배민성이 솜브라로 겪은 힘든 순간을 다른 팀원들 모두가 시즌 중에 경험해왔다. 그렇게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상하이는 딜러 조합을 완성할 수 있었다.


▲ '띵+디엠' 빈 틈 없는 수치

상하이의 완성형 체제는 빈 틈이 없었다. 시즌2 전반을 두고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딜러 조합의 핵심은 역시 '띵'의 파라다. 위 이미지에서 보듯이 압도적인 파라 능력치를 자랑했고, 이를 자신의 과감한 플레이로 완성할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도 과감하게 상대 입구로 파고들어 포화를 쓰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승부의 쐐기를 박는 플레이로 얼마나 '띵' 파라가 자신감이 넘치는지 알 수 있기도 했다. 많은 파라들이 포화를 쓰다가 추락하는 반면, 확실히 리그 1위 파라답게 과감할 때와 사릴 때를 정확하게 아는 '띵'이었다.

'띵' 파라의 수치 중 유일하게 순위가 떨어지는 결정타는 팀 동료인 '디엠'이 독보적인 리그 1위로 담당하고 있었다. 올스타전 위도우메이커 1:1 대결의 우승자답게 그 에임을 리그 경기에서도 선보였다. 결승전에서 두 발의 총알로 두 명을 순식간에 잡아내는, 큰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디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번 스테이지3에서 '디엠'의 다른 새로운 역할 중 하나는 솜브라였다. 원래, '띵'이 솜브라 담당이었으나 파라-솜브라를 같이 꺼내는 메타의 변화로 '디엠'이 맡게 된 것이다. 솜브라라는 영웅은 많은 프로게이머들도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영웅이다. 경기의 관점과 중심이 앞 라인에서 상대의 뒷 라인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디엠' 역시 결승전에서 먼저 잘리거나 EMP 활용으로 고생하긴 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EMP를 아끼다가 아군이 최대한 활약할 수 있는 구도에서 EMP를 쓰면서 솜브라로도 PO에서 제 역할을 해내려고 했다. 그렇게 새로운 상하이의 체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결승전의 '그 선수'는 '영진'을 빼놓을 수 없다. 둠피스트로 견고한 쇼크의 수비 라인을 헤집어 놓았다. 특히, 쇼크의 핵심 카드인 '라스칼'의 바티스트를 무력화하면서 조합을 바꾸도록 강요했다. '영진'의 둠피스트 역시 팀원과 함께 치고 들어가는 타이밍이 이전보다 확실히 날카로워진 듯했다.

쇼크의 변화에도 '영진'은 활약을 이어갔다. 브리기테와 로드호그로 안정감을 더 했고, 파르시 대결에서 로그호그의 존재감이 확실히 빛났다. 결승전에서 누구보다 안정적인 플레이로 '최효빈' 로드호그와 명품 승부를 벌였다. 가끔씩 먼저 끊기며 불안했던 '영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 좌측부터 '감수-코마-루피'

이런 상하이의 딜러들의 화려함 뒤에는 유일한 메인 탱커 '감수'와 두 명의 힐러 '루피-코마'가 있었다. 상하이는 다수의 딜러를 뽑은 만큼 다른 팀보다 힐러-탱커의 숫자가 부족했다. 그런데도 묵묵히 세 선수가 제 역할, 그 이상을 해줬기에 상하이의 딜러들이 더 자유롭게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3에서는 '루피' 양성현이 아나로 활약했다. 적절한 수면총과 나노강화제로 팀 전반에 활력소 같은 역할을 해낸 것이다. 젠야타를 주로 쓰던 이전보다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메인 탱커 '감수' 역시 레킹볼-오리사로 든든하게 버텨줬다. 레킹볼은 홀로 상대의 어그로를 끈 뒤 살아나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고, 오리사로 로드호그-위도우메이커 등과 합을 맞추는 역할을 했다. 예전부터 해왔던 윈스턴-라인하르트와 다른 옷도 잘 소화해낸 것이다. 홀로 딜을 받아내는 모진 경기 속에서도 '감수'는 평온한 표정을 잃지 않았고, 첫 우승과 함께 제대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결승전의 또 다른 주역으로 '코마' 손경우의 메르시를 뽑을 수 있다. 단단한 플레이보단 화끈한 킬로 데스를 만회하는 상하이의 딜러 조합은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줄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는 말이다. 이런 플레이는 아군을 살릴 수 있는 메르시가 있기에 가능했다.


▲ 핵심을 짚는 '코마' 메르시의 부활

여기서 '코마'는 메르시로 상황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아군을 찾아서 버프를 주거나 살리는 플레이가 결승전 중요 순간마다 나왔다. 모두가 쓰러진 상황에서 탱커처럼 파고들어 단 한 명을 살려낸다. 부활해서 2킬을 만들어내는 '감수'의 오리사, 거점을 밟고 빠질 수 있는 '디엠'의 솜브라가 불리한 경기 양상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경기 전반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기에 짧은 순간에도 나올 수 있는 정확한 판단이었다.

확실히 결승전은 풀 세트가 나온 만큼 한 끗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상대인 쇼크도 새로운 로스터부터 다양한 조합까지 준비해왔기에 어떻게 마무리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쇼크가 3:0에서 3:3까지 따라온 저력이 어마어마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승부는 역시 상하이가 우직하게 갈고 닦은 무기로 결정났다. 이번 시즌 당장의 성과가 나기 힘든 딜러 중심 전략을 끊임없이 시도한 결과물이었다. 그 속에 넘어지고 쓰러졌던 상하이의 많은 경험들이 녹아들어가 있었다. 한번 방향을 잡고 나서 걸어온 길은 흔들리지 않았고, 서로의 슈퍼플레이로 팀원의 아쉬운 부분마저 채워나갔기에 또 가능했던 일이다.

상하이는 e스포츠에서 상징적인 팀이 됐다. 그리고 절망적인 최하위팀이 이번 우승으로 오버워치 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전히 많은 경쟁 속에서 아쉬운 성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상하이의 메시지는 희망이 될 수 있다. 시작부터 최고가 아닐지라도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고, 그게 결과적으로 정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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