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와 문화연대는 오늘(21일), ‘문화의 시선으로 게임을 논하다’를 주제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에서 공동으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문화적 관점에서 게임과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대해 논의를 이어갔다. 게임이 왜 놀이문화가 아닌 '중독'의 대상으로 취급받게 되었으며, 문화와 관련된 헌법 규범에서 볼 때는 어떻게 비추어지는지에 대해 연사들이 발표를 한 이후 질의응답과 참가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세미나 시작에 앞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의 황성기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해 현재 민관협의체가 구성됐지만,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의 문제를 문화적으로 봤을 때 심각하다고 본다. 그래서 놀이문화, 헌법 규정에 봤을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또한 민관협의체가 중독, 질병이라는 편협된 시각이 아닌 문화라는 시각에서 보기를 바란다"고 개최 취지를 밝혔다.

세미나에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과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토론에는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김영진 인천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경혁 게임평론가, 계인국 고려대학교 정부행정학부 교수가 참여했다.



■ 왜 게임을 '놀이'가 아닌 '중독'으로 몰아가는가?


▲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게임과 관련된 논의를 할 때, 유달리 게임'만' 중독으로 연결이 되는 현상에 대해서 지적했다. 특히나 청소년과 관련해서 청소년의 게임 = 공부를 안 한다라는 연상관계가 거의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지적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게임이 비생산적인 활동이라는 인식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돈인 사회에서, 게임 같은 놀이 즉 비생산적인 활동은 배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콘텐츠 수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게임은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기술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을 예로 들었다. 게임을 이야기할 때 주로 IT, 4차 산업의 기수라고 언급하지만 그런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런 만큼 기존의 것에 익숙해진 세대에게는 거부감을 줄 수밖에 없다. 또 이 기술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 알 수 없는 만큼, 섣불리 투자하거나 거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특성도, 기성세대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기존의 매체는 선형적인 스토리텔링 구조인데, 게임은 상호 작용도 있고 지속적인 업데이트도 가능한, 다방향에 지속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신기술 기반이라는 불확실성까지 갖고 있는 만큼, 기존층이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의 수익성, 생산성,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8년 콘텐츠산업 통계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게임업계 종사자는 81,932명으로 문화산업 종사자의 12.7%를 차지했다. 전체 콘텐츠 수출액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67.2%로 가장 높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규제해야 하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말하고는 한다. 2011년 강제적 셧다운제 등 헌법상 권리 침해나 중복 규제 논란이 있을 법한 법이 통과됐으며, 최근의 중독 논의까지 그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 게임산업이 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만, 그럼에도 부정적인 시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종임 위원은 이런 현상을 규제뿐만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우선 주류 문화에서 게임을 어떻게 조명하는가, 그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TV 예능이나 프로그램에서도 PC방 등을 부정적인 공간, 혹은 어떤 공모가 이루어지는 공간 등으로 설명한다. 혹은 기성세대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공간, 그 정도로만 조명한다. 즉 겉핥기식으로만 보고 게임을 하는 유저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명하지는 않는다. 좀 더 나아가면 문제 대상 혹은 게임 회사의 성과, 프로게이머의 연봉, 이 정도만 언급될 뿐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종임 위원은 게임 유저가 담론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그곳에서는 어떤 룰도 없이 그저 의견이 중구난방으로, 소비적으로 배출되고 있다. 그러다가 미디어에서 이용하기 좋은 것들만 선별되어서 재확산되고, 문제적으로 비추어진다.

중독 외에도 여러 거대 담론의 일부로 게임이 언급되지만, 그 안에 있는 유저가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특히 이번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등재되면서 유저의 게임 선택권이나 유저와 게임, 유저 간 상호작용, 가상현실 시대의 콘텐츠 등 다양한 논의 대신 중독 논의로만 포커스가 맞춰지게 됐다.

게임이 비생산적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놀이'라는 것을 다르게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놀이는 문화학적으로 보면 사실은 참여자들이 규칙을 수행하며 과정을 경험하는 집단적인 행위. 참여자들을 연결하는 연결적인 행위다. 또한 놀이의 공간과 일상의 공간은 가면 갈수록 모호해진다는 것도 설명했다. 옛날에 길거리에서 놀 때도 분필선 하나를 그으면 놀이공간이 됐다가, 그 선이 지워지면 일반 도로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지금 모바일, 컴퓨터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 스마트폰, 컴퓨터은 게임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놀이, 특히 게임을 비생산적이고 중독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이는 놀이가 갖고 있는 특성 떄문이라고 설명했다. 놀이는 기존의 코드를 깨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질서에서는 문제적으로 보는 무의식적인 기저가 작용해서 이를 막고자 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노동력, 돈, 시간이 중시되기 때문에 놀이를 이를 좀먹는 요소라고 보았다. 여기에 최신 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게임은, 기술의 불확실성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기성 세대에게 더욱 더 부정적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게임은 그렇기 때문에 문화로서 더욱 잘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임은 간접 경험, 체험을 한 층 더 폭넓게 가능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계가 모호한 슈퍼텍스트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모바일용, TV용, 유튜브용, 그런 게 명확히 구분되어있지도 않고, 처음과 끝 그리고 그 경험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지도 않다. 마치 포켓몬 GO나, VR 게임처럼 때로는 현실과 가상 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그 환경도, 일상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지적했다. 특히 90년대 후반, IT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관련 업계를 집중 육성하면서 PC가 필수 학습 요소로 자리잡았는데, 그러면서 게임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PC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게임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지적했다.

▲ PC의 보급과 발전, 게임은 서로 연관 관계가 있다

놀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게임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게임이 타겟이 되기 바로 직전, 97년 청소년 보호법 때는 만화가 주요 타겟이었다. 그래서 여러 만화가들의 작품이 지탄을 받았고 심지어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 전에는 대중음악, TV 프로그램이 지탄을 받았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학업 스트레스나 교육 제도로 인해서 놀이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 적대감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놀이 문화, 게임에 대한 포비아는 단순히 한국 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총기 난사 사건의 책임을 폭력적인 게임으로 돌리는 등,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 게임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가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해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용어도 통일되어있지도 않고 진단 기준도 혼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이용장애로 인한 부정적인 현상 그 이후에 대한 연속적인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렇듯 게임에 대해서 단순히 중독되어서 그렇다, 정도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이종임 위원은 강조했다. 문화는 단순히 사전적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태계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유저가 주류 사회에서 게임에 대해서 터놓고 말할 수 있고, 비평할 수 있고, 다양하게 말할 수 있는가 되물으면서, 이것이 가능해지고 좀 더 폭넓은 담론이 가능할 때 비로소 게임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문화 관련 헌법 규범에서 봤을 때,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는 옳은가?

▲ 박종현 국민대학교 교수

박종현 국민대 교수는 게임이 새로운 문화라는 점을 최근의 졸업식에 빗대서 설명했다. 현재 졸업식은 단순히 졸업장을 받는 자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축하하면서 뽐내는 어떤 퍼포먼스의 장처럼 변모했다. 그러면서 이를 정리하고 관리해야 하는 학교 입장에서는 귀찮아졌지만, 그것이 그 세대에는 새로운 흐름이고 문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에 대해서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나라 헌법에서 이전부터 말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게임이 문화라는 논의가 수용됐을 때, 어떤 이점을 갖게 될까? 또 질병 코드가 논의되고 과잉 규제나 중첩 규제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박종현 교수는 우선 헌법에서 문화에 관련된 조항들을 살펴보았다. 총 네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전문과 11조의 평등권 조항은 기본적인 문화 창조의 자율성을 전제하는 조항이다. 그리고 문화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9조와 69조는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헌법학자들은 우리 헌법이 직접 이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화국가원리를 인정한다고 보고 있다. '원리'는 직접 명시되지 않더라도, 그 외 다른 헌법 조항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최고 기준이기도 하다.

문화국가원리는 문화를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된 개념이다. 비스마르크의 문화 진흥 정책 이후, 국가에서 문화 산업에 후견인이 되어서 지원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 이전 시대에는 기조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나 헌법학자들, 법학자들은 이런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다고 결과를 얻었으며, 이에 문화 창작의 자율성을 최고 규범에서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를 주창하게 됐다.

문화국가원리에서 국가는 문화예술의 창작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며, 이를 보장해야 한다. 즉 국가가 이에 개입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다만 문화영역이 자본 같은 비권력체계에 의해 잠식당해서 소수 문화가 잠식되거나 하는 등, 자율성이 진정 보장되지 않을 때 개입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최소한, 혹은 직접 개입이 아닌 다른 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법학에서는 문화민주주의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게 됐다. 모든 국민이 문화의 소비자이자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국가가 개개인의 창의성과 자기 결정권을 적극 지원하고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 영역에서 소외될 수 있는 계층도 생산 계층이 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받아야 하며, 그런 참여를 통해서 사회 참여, 민주주의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를 토대로 문화의 복지라는 개념까지 나왔으며, 이 개념이 헌법의 원리에도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헌법에서 직접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판례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학교 근처 극장 운영에 대해서 보건복지법 위반이라고 소송이 났던 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에서 불일치 판결이 난 근거를 들었다. 문화국가의 원리를 볼 때, 개별성과 고유성,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 관점에서 볼 때 각 문화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직접적이고 조정적인 개입은 지양해야 하며 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문화를 조성하는 식으로 해결책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문을 통해 명시가 됐다.

이는 과외금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문에서도 동일하다. 즉 국가는 개입하더라도 공정성, 중립성을 확보해야 하며, 차별이나 특혜를 줘도 안 되고 문화에 대해 직접적이고 조정적인 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등,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에서 문화를 접근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게임에 대한 대표적인 판결로 브라운 대 EMA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2005년 미성년자에게 폭력적 게임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는데, 이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에서는 예술문화로 향유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차등 없이 최대한의 보호를 누려야 하며, 어떤 특정 콘텐츠를 더 폭력적인지 논할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을 문화로 보고 있으며, 이를 헌법재판소 판례 및 법령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게임이 문화라고 인정받으면, 어떤 헌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남는다.

▲ 게임 역시도 문화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에 기준한 판례 및 법령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박종현 교수는 국가가 게임에 대해 원칙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율성이나 다원성이 침해되거나, 비국가적 주체에 의해 문화가 위협받거나 공공복리를 위해서 개입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때도 창조를 위한 참여의 기회나 접근권은 모두에게 자유롭고 균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그런 취지에서 볼 때 셧다운제 등 게임접근금지법은 문화국가원리라는 측면에서 위배될 여지가 있다고 봤다. 또한 문화콘텐츠의 과도한 이용은 게임에만 있는 사례가 아닌데도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시도가 입법화되면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2013년 신의진 전 의원이 주도한 게임중독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게임에 대해서 논의할 때 보호와 자유라는 측면에서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법학계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그에 대해서 박종현 교수는 원칙을 강조했다. 국가는 문화에 대해서 자유, 그리고 편견없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특정 문화가 다른 문화와 차별적으로 적용받지 않도록 다양한 방향에서 섬세하게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심층 토론



▲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편집위원 - 게임 문화론은 현 단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게임을 문화로 보는 시각은 게임에 대한 혐오감, 공포를 줄여주고 게임의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이야기하는 효과는 있다. 그렇지만 게임 문화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업계와 학계에 편중되어있다. 또한 게임을 문화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국내 게임 업계에 대한 유저들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문화이기에 보호받아야 한다는데, 모든 문화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나? 모든 게임이 그렇게 보이고 있나?

또한 게임 문화론도 이분법적인 시각에 근거하는 만큼, 한계도 명확하다. 게임은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있다. 누가 만들고 향유하느냐에 따라 기술도, 문화도, 중독 대상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질병 등재와 관련해 의료계 VS 게임계 구도도 경계해야 한다. 의료계 안에서도 찬반이 나뉘고, 게임계에서도 입장이 다르지 않나. 중독론을 주장하는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다 짚으면서, 그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세대 연구팀의 과몰입 메타 연구가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게임에 대한 논의는 어떤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향유하는 당사자인 유저가 직접 말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줘야 한다. 부정론, 중독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보다는 더 폭넓게 다각도에서, 또 전략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 이경혁 게임평론가

이경혁 평론가 - ICD-11과 관련해서 WHO의 결정 자체를 음모론으로 가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한 과몰입 메타분석 연구에 참여했던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최근 5년 간 논문 연구에서 중독(Addiction)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도 "이게 맞나?"라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래서 이용장애, 게이밍 디스오더 이런 식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언론을 보면 종종 이를 중독이라고 번역해서 낸다. 주류 미디어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도 우리가 흔히 게임을 생각하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나, 이렇게 생각한다. 많이 보지 않았나. 셧다운제, 게임중독법 시도, 게임 폭력성 실험 등. 단편적이다.

ICD-11을 읽어보면 게임이용장애 외에도 다른 분야들이 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건강, 질병, 그 외에 웰빙이라는 측면도 포함해서 이야기를 한다. 총체적으로 보면 게임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의학에서는 이렇게 볼 수 있지 않나? 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게임은 문화도 될 수 있고, 여러 가지도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간의 연구나 경험을 토대로 보면, 문화적인 게임을 이야기하는 층에서는 게임 이용자의 실태, 실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숙자 혹은 취약계층이 싸게 밤을 보내기 위해서 PC방에서 줄창 앉아서 게임하는 것이 장기화됐을 때 발생하는 문제라던가,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나? 애들이 왜 버스 타면서 모바일 게임을 붙잡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 있나? 그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돌린다. 선언만 하고, 실질적인 도움이나 실천, 상황 분석은 없다.

ICD-11 등재로 인해 촉발된 싸움에서, 게임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질병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부정적인 문제까지 들여다보고 이를 포괄해서 연구를 해야 한다. 문화는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다.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필요하다. 그에 대해서 논의와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김영진 인천대학교 교수

김영진 교수 - ICD-11 게임이용장애 등재로 우리 사회 특유의 게임 사회 특유의 게임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막연한 부정적 관점이 촉발되지 않았나 싶다. 이미 부모님 세대에서는 줄곧 있어왔는데, 거기에 불을 지핀 셈이다. 그러다보니 논의의 생산성이 함몰됐다.

헌법에서는 문화국가원리가 규정되어있고, 게임에 대한 규제나 관점도 헌법의 해석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질문들이 있다. 게임 문화가 어느 분야에 포함되어있으며, 게임 문화가 어떤 쪽을 지향해야 하나? 또 문화영역에서 국가 개입이 한정적으로 허가되는데, 게임에서 정책적 지원이 가능한가? 앞에서 취약계층이 밤을 지새는 용도로 사용된다고 했는데, 그런 계층에 대한 지원도 가능한지, 또 질병코드화됐을 때 이용장애 치유부담을 산업체에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헌법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유형의 놀이는 과도하면 부작용이 나오기 마련이다. 테니스나 운동도 그렇지 않나. 그것도 일괄적으로 질병이라고 명명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낙인화라고 인식될 텐데, 여기에 대해 문화적 주체성을 갖고 도입하고자 하는가? 그런 의문을 던져야 한다. 그러면서 이런 여러 사항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추구해야 한다.


▲ 계인국 고려대학교 교수

계인국 교수 - 커피가 몸에 이롭나, 해롭나는 신문을 볼 때마다 바뀌어있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그게 커피가 몸에 좋다 나쁘다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더라. 그 안에 다양한 팩트들이 존재하며, 이들을 토대로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한 결과다. 몸에 어떤 물질이 들어갔을 때 좋은지 나쁜지 단편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걸 그냥 모르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계속 파고들면서 좋다, 나쁘다, 반론에 재반론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 비판이다.

게임도 이와 같다고 본다. 게임이 좋다, 나쁘다, 이런 것은 연구를 통해 계속 파고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만 그로 인해서 문화국가의 원리가 훼손되면 안 된다. 문화를 법적으로 적극 규정하는 것은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문화로 인해서 부정적인 것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단순히 규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법을 만들 때는 어떤 결과를 보고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증거를 기반으로 해서, 원인부터 결과까지 살펴본 뒤에 만들어야 한다. WHO의 결정은 증거가 될 여지가 있다. 그에 반하는 다른 증거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다른 놀이 문화는 중독이라 규정하고 있냐고 말이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휴식을 죄악시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빗대서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게임산업이나 프로게이머는 어떤가. 이 영역도 자본주의 아닌가. 자본이 개입되고 있지 않나. 단선적이고 단편적, 프레임을 짜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팩터들을 살펴보고, 이를 근거로 이야기해야 한다. 법적 규제도 마찬가지다. 문화국가원리를 따졌을 때 어떤 부분에서 규제가 필요하고, 어떤 부분에서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다차원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이종임 위원 - 게임은 무엇이다, 라고 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실제로 게임과 관련된 문제들은 다른 문제들과도 연결되어있다. PC방 난민 문제는 주거 문제나 취업, 실업 문제와도 연결이 되어있지 않나.

다만 청소년 이야기를 하는데, 예전 PC방 이전에는 만화방이 타겟 아니었나. 대여점 있을 때는 중고등학생들이 만화책 보면서 길거리를 걸었는데, 이제는 모바일로 옮겨간 것 아닌가. 그런 것들이 계속 있어왔는데, 왜 유달리 게임만 이렇게 대상이 되고, 중독 논의까지 있나?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 박종현 국민대학교 교수

박종현 교수 - 브라운 대 EMA 판결 당시 연방대법원장인 엘레나 케이건의 이야기로 마치고자 한다. 판결을 내린 직후 휴정기 때, 미국 언론에서 판결을 내린 근거를 물었다.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했다고 밝혔다. 하나는 게임의 폭력성의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각종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게임이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폭력적 게임이 폭력성을 유발한다 말할 수 없었다. 또 앞으로 어떤 연구가 나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었기에, 폭력적 비디오 게임 판매를 금지한 캘리포니아 주의 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과학적인 연구를 수용하고, 정책적으로 반영할 때 그 결과를 어느 정도로 수용해야 하나 의견이 분분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떤 큰 흐름, 대강의 맥락이 나오지 않고 팽팽하게 연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법이나 국가권력이 개입해선 안 된다. 케이건 대법원장은 그 원칙을 지킨 것이다.

또 비디오 게임과 폭력성이 인과가 있다고 하면, 1차적으로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주체는 국가가 아니다. 그 역할은 가족, 부모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 케이건 대법원장이 그 판결을 내린 마지막 근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