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이다. 어떤 프로게이머는 "PO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한 해 농사를 잘 마무리 짓지 못한 기분이 든다"고 이 시기를 표현했다. 이번 가을 역시 올 2019년을 대표할 만한 성적을 거두는 시기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도 올 시즌 가장 중요한 이들을 앞두고 있다. 리그의 시즌 PO, 그랜드 파이널, 그리고 오버워치 월드컵이란 가장 큰 행사다. 매 경기가 중요한 시기다. 그 무게와 중압감, 책임감 속에서 프로게이머들도 긴장해 제 플레이를 못 펼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강자는 이런 시기에 힘을 발휘한다. 오버워치 월드컵은 3연속으로 한국이 우승하며 당연한 듯 보이지만, 매번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이 빛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버워치 리그 출범 시즌 역시 한동안 부진하던 런던 스핏파이어 역시 마지막에 무서운 저력을 발휘했기에 우승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많은 딜러들이 있었다. 나아가, 2-2-2 역할군 고정과 함께 딜러 역량이 점점 중요해지는 상황, 지난 스테이지4부터 다시 딜러를 전담하게 된 이들의 활약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위기론과 악조건 속에서도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딜러들이다.


런던 '프로핏'
극복의 파라, 여전히 날 선 트레이서


런던은 작년과 올해 모두 시즌 중반에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시즌은 스테이지1 우승 후 점점 성적이 내려가 최하위권까지 떨어진 바 있다. 올해는 스테이지 PO권에 진출했지만, 강팀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2-2-2 역할군 고정과 함께 다시 떠오를 것이라는 스테이지4 역시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고전했던 게 런던 스핏파이어다.

그런데, 런던은 가장 중요한 가을의 시즌 PO에 달라진다. 작년에도 그렇게 시작해 그랜드 파이널까지 우승하더니 올해도 시작부터 무언가 남다르다. 시즌 플레이-인 토너먼트에서 상하이 드래곤즈를 만나 승리한 경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상하이는 자신들을 우승 카드인 파라-둠피스트가 다시 떠오른 상황에서 막강한 경기력을 자랑하는 듯 했다. 그런 상하이를 상대로 풀 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는 저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역시 '프로핏' 박준영이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핏'은 시즌 중에 '1인자'는 아니다. 국가대표 최종 멤버로 뽑힌 적도 없다. 하지만 시즌 PO만 되면, 시즌1 챔피언 딜러의 모습이 돌아온다. 잠깐의 휴식 기간이 만들어낸 변화가 아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내공이 시즌 PO만 되면 제대로 폭발하는 느낌이다.

상하이 전에서 '프로핏'은 많은 걸 보여줬다. PO에서 '프로핏'은 항상 파라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왔다. 시즌1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약점이었던 파라 플레이를 극복하고 MVP를 수상했으며, 이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는 리그 최정상급 파라로 유명한 상하이의 '띵' 양진혁이었다. 비행 고도 자체부터 다를 정도로 7세트까지 '띵'이 압도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8세트 3R에서 드디어 '띵'과 파르시 싸움에서 넘어섰다. 먼저, 메르시부터 끊은 뒤 파라까지 제압하는 그림으로 시즌 PO 진출을 확정지은 것이다. 게임 중반부인 3세트에서는 상대 핵심 카드인 파르시(파라-메르시)를 자신의 트레이서로 제압하는 장면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승부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 승리를 확정짓는 제대로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프로핏'이다.

▲ 트레이서로 파르시 제압? '프로핏'(출처 : OWL 유튜브)


서울 '플레타'
늦은 국가대표 합류-메타 변화 넘어선 'Flex' 딜러

▲ 우측 두 번째 '플레타' 김병선

런던과 함께 시즌 PO의 막차를 탄 팀은 서울 다이너스티다. 서울도 런던과 마찬가지로 스테이지4에 있었던 우려와 달리 더 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상대인 광저우 차지 역시 상하이처럼 '네로-에일린'의 파라-둠피스트가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서울보다 스테이지4에서 큰 기대를 받는 팀이었지만, 플레이-인 토너먼트 1경기의 경기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변화의 시작은 딜러진이었다. 한동안 아쉬웠던 딜러진이 자리를 잡으면서 활약하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츠'의 둠피스트-리퍼가 날뛰었고, '플레타'가 메이와 같은 영웅으로 노련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플레타' 김병선의 이런 능력은 2018 국가대표 시절부터 잘 드러났다. 모든 것이 급하게 돌아가던 시기였다. 메타도, 국가대표 로스터 변경도 말이다. '플레타'는 3-3 메타로 바뀌던 시절에 투입돼 딜러가 아닌 힐러 브리기테를 주로 잡았다. 예선전에서 투입되지 않고 본선부터 합류하면서 합을 맞출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국가대표인 '플레타'를 이런 악조건으로 막을 수 없었다. 한 팀이 된 듯한 브리기테의 움직임을 선보이면서 칼 같은 합을 선보였고 세 번째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작년에 이루지 못한 팀의 시즌 PO 진출까지 일궈냈다. 많은 팀원들이 나가고 로스터 변화도 있었지만, 결국 '플레타'가 시즌 막바지에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잡았다. 이제 서울에는 개인 기량으로 무장한 신예들과 루나틱 하이 시절부터 활동해온 노련한 힐러 '류제홍-토비'가 있다. 현시점에서 '플레타'는 많은 면에서 이들의 중심에 있다.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리그 성적을 내야하는 시기다. '플레타'는 다시한번 많은 것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뉴욕 '플라워'
부상-공백-늦은 리그 활동, 또한번 반전 필요


앞선 두 팀과 달리 뉴욕 엑셀시어는 미리 시즌 PO에 안착한 팀이다. 시즌 중에 꾸준한 성적으로 대서양 디비전 1위를 일찌감치 달성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뉴욕의 스테이지4 성적이 3승 4패 15위로 심상치 않다. 3-3 메타일 때는 뚜렷하진 않아도 꾸준히 잘해온 반면, 2-2-2 고정 이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딜러진의 부진이 크다. 이전까지 뉴욕에게 든든한 딜러진이 자랑이었다면, 이제는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다. 최근 경기를 보면 개인 기량부터 호흡까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버렸다. 누군가는 확실히 중심을 잡고 일어서주지 않는다면, 스테이지4 기량 그대로라면, 큰 희망을 갖기 힘들어 보인다. 스테이지4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던 런던-서울이 플레이-인 토너먼트에서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듯이 뉴욕도 PO에서 달라져야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가능성은 '플라워' 황연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아직 모든 맵에 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주전으로 등장해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모습이다. 스테이지4 초반에는 아쉬운 면도 있었다. 팀합적으로 아쉬운 플레이가 자주 나오면서 아쉬운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점점 개인기량과 팀 합적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가장 많이 출전한 '넨네'가 흔들렸기에 '플라워'가 뉴욕 딜러진의 마지막 남은 희망과 같다.

'플라워'에게 이런 기대를 가진 건 2017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보여준 기량 때문이다. 손목 부상과 팀 LW의 문제로 오버워치 프로씬에서 공백 기간이 길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7 오버워치 월드컵에 등장해 놀라운 경기력으로 많은 우려를 자신의 손으로 걷어냈다. 위도우메이커를 대회 대세 픽으로 만들어놓을 정도로 위력적인 저격 솜씨였다. 미국 딜러들의 공격이 매서웠지만, '플라워'는 이를 뛰어넘는 딜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에도 2017년도와 같은 반전이 필요하다. '플라워'가 활약했던 시기는 꽤 오래전이다. 리그 출범 이후 나이 제한으로 리그에 합류부터 늦었고, 3-3 메타에 밀려 활약할 시기를 못 잡았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 뒤늦게 리그에서 출발했지만, 이번 PO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가장 큰 반전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아키텍트'
큰 무대에 어울리는 국가대표 증명의 시간


위 딜러진들과 반대로 스테이지4에 등장해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딜러가 있다. 시즌2에서 항상 결승권을 유지했던 샌프란시스코 쇼크에서 활동하는 '아키텍트' 박민호다. 스테이지3까지 출전 기회를 잘 잡지 못했지만, 스테이지4에 들어와 최강팀에 어울리는 기량을 발휘하는 중이다. 시즌1부터 넓은 영웅 폭에 전문성까지 더 해진 선수로 어떤 경기에 나오더라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많은 경기에 나오진 않았지만, 올해 국가대표로 선발된 만큼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선수기도 하다.

아쉬운 건 하나다. 큰 무대 경험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시즌1에서 주전일 때는 스테이지 PO에 진출하지 못했고, 이번 스테이지3 PO에서는 단 한 세트 밖에 경험이 없다. 그 경기마저 패배를 기록했기에 아직 중요한 무대에서 활약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시즌 PO에 나서게 된 것이다.

앞서 많은 국가대표들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아키텍트'는 순수 기량으로 보여주면 된다. 이번 시즌 최상위권 샌프란시스코에게 큰 위기는 없었다. 시즌 전반의 흐름 그대로라면 3연속 스테이지 PO에 진출한 샌프란시스코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힐 수밖에 없다.

대신, 최고의 팀인 만큼 쟁쟁한 팀원들과 주전 경쟁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팀 내부적으로 주전 로스터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다양한 로스터를 기용하는 샌프란시스코는 매번 승리를 이어갔기에 순탄한 행보를 걷는 듯 보인다. 하지만 '라스칼' 김동준의 표현에 따르면 "시즌 준비 기간에 주전 로스터 경쟁이 오버워치 리그 활동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할 정도로 주전 경쟁부터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최고의 샌프란시스코 로스터 사이에서 빛나는 것 역시 힘든 싸움이다.

그리고 '아키텍트'는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아왔기에 딜러 메타가 왔을 때 자신을 내세울 수 있었다. 리그 입성 후 힘겹게 얻은 팀의 주전이자 국가대표의 기회이기도 하다. 남은 건 정크렛-겐지-리퍼-한조 등 다양한 영웅으로 슈퍼플레이를 펼친 자신의 기량을 PO에서도 보여주는 것 뿐이다.

이들 외에도 PO에는 리그 신예 딜러들이 급부상 중이다. 애틀란타 레인의 '어스터'는 자신의 손으로 팀의 스테이지4 1위 달성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밴쿠버 타이탄즈의 '학살-스티치'를 비롯해 LA 글래디에이터즈의 '디케이', 항저우 스파크 '갓즈비' 등 PO 진출한 딜러들이 모두 쟁쟁한 가운데, 어떤 선수가 살아남을 것인가. 앞서 언급했던 네 명의 딜러 역시 모두 잘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위기를 극복하면 좋겠지만, 우승자는 한 명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누구일까. 많은 이들의 빛을 한몸에 받을 딜러가 6일부터 시작하는 오버워치 리그 시즌2 PO를 통해 가려진다.

■ 2019 오버워치 리그 시즌2 PO 일정

1일차 9월 6일(금)
1경기 밴쿠버 타이탄즈 vs 서울 다이너스티 - 오전 8시
2경기 항저우 스파크 vs LA 글래디에이터즈

2일차 9월 7일(토)
3경기 뉴욕 엑셀시어 vs 런던 스핏파이어 - 오전 8시
4경기 샌프란시스코 쇼크 vs 애틀란타 레인

이미지 출처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