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조재읍은 1991년생으로 내년이면 앞자리가 3으로 바뀐다. 2와 3의 차이. 어떤 이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어떤 이에게는 굉장한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 묘한 숫자다. 아마, 프로게이머라면 더욱 그렇다. 본인은 3이라는 숫자에 정말 개의치 않아도 주변에서 필요 이상으로 격려와 우려라는 포장으로 형식적인 안부를 건넨다. 신경 쓰지 않았던 이들조차 자신의 머릿속에 없는 생각이 주입된다.

과거 스타1 시절에는 나이에 정말 민감했다. 20살만 되도 엄청 뛰어난 실력이 아닌 이상 프로팀 테스트를 볼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A급의 20살과 B급의 17~18살이 있다면 웬만해선 후자를 택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 나이라는 걸림돌 앞에 좌절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이영호도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kt 롤스터 시절 전성기보다 지금의 이영호가 더 잘한다는 말도 많고,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워3의 장재호, 철권의 무릎, 전문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으나 DPL(던전앤파이터 리그)에는 40대 게이머도 대회에서 활약한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발전 가능성과 군입대로부터의 자유로움, 피지컬 등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나이가 많음으로 인해 생기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더군다나 팀 게임에서 맏형이 해야 할 역할을 때론 대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조커' 조재읍도 마찬가지다. '조커' 조재읍에게는 LoL 게임 내 지표나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리더쉽과 오더 능력, 팀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위기일 땐 팀원들의 멘탈을 챙기는 능력이 있다. 2019년 샌드박스와 조커가 걸어온 길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아쉬움이 묻어나는 한 해였다.


Q. 정규 시즌이 끝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나?

팀 휴가가 9월 30일까지다. 다른 팀에 비해 긴 편인데, 그때는 다음이 있었다. 섬머에서 잘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아쉬움이 크지 않아 즐겁게 휴가를 보냈다면, 이번 휴가는 2019 시즌이 마무리된 것이라서 아쉬움이 아직도 크다. 그래서 휴가 기간임에도 숙소에 남아서 개인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아쉬움과 뒤숭숭한 기분을 잊게 해주는 건 연습뿐이다.

그리고 요즘 솔로 랭크가 재밌다. 시즌 중에는 솔직히 재미로 하지 않는데, 요즘에는 순수하게 게임이 재밌고, 실력이 느는 걸 느끼고 있다. 서포터를 위주로 하긴 하지만, 가끔 원딜 루시안이나 자야, 시비르 등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을 사용한다. 가끔 탑도 하는데, 탑 쉔은 조금 하는 것 같다. 선픽일 때 서포터 밴을 하면서 쉔 서포터인 척도 한다(웃음).



Q. 아쉬움이 크다 했다. 전체적으로 2019 시즌을 돌아보자면?

아마 사람들의 시선과 비슷하지 않을까? 과정 자체는 좋았으나 마무리가 항상 아쉬웠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처음치고 정말 잘했어'라는 분들도 있고, '마지막이 너무 아쉽다'라는 분들도 있다. 나 역시도 뭔가 과정은 좋았지만 결과물을 만들지 못해 아쉽다.

스프링 시즌에 처음 합류할 때부터 자신감이 있었다. 팀원들도 그랬다. 그런데 섬머 시즌에는 뭔가 스프링을 겪으면서 LCK화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가끔 드는 생각이 '스프링 시즌처럼 더 공격적이고 화끈한 플레이를 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섬머 시즌이 승, 패나 최종 성적은 더 좋았을지 몰라도 경기력은 스프링 때가 좋았다고 본다.

높은 순위에 있을수록 중위권이나 중하위권 팀들을 상대로 소극적이고, 지키고자 하는 운영을 했고, 뭔가 지키기에 급급했다.


Q. 가장 아쉬운 건 롤드컵 선발전일 것 같다.

선발전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 경험 부족이나 긴장감 등 여러 요인으로 정규 시즌 샌드박스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멘탈적으로나 환경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었고, 좋은 교훈이 됐다.


Q. 아마 '조커' 조재읍의 2019년을 떠올리면 기적의 바론 스틸이 1순위가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그것도 유미로 빼앗았으니. 사실 우리팀이 승강전에서 바루스도 스틸한 적도 있고, 이게 운이라면 운인데, 뭔가 계속 이어지면 실력이 아닌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0%다. 뭐라도 해야 한다.


Q. 그렇다면 가장 아쉬웠던 경기나 가장 짜릿한 경기는 뭔가?

가장 짜릿한 경기가 먼저 떠오르는데, 스프링 시즌에 SKT T1과 승리했을 때다. 쓰레쉬와 드레이븐 조합을 꺼냈는데, 내가 상대의 빈틈을 보고 점멸을 사용해 이즈리얼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뭔가 공격적이고, 변수를 만들기 위해 뭐라도 계속 해보려 했는데, 섬머 때 경기를 다시보면 너무 사리더라.

가장 아쉬운 경기는 담원 게이밍과 섬머 시즌에 유미-이즈리얼 조합으로 패배했던 경기다. 당시 담원에서 세주아니-야스오를 꺼냈는데, 밴픽보다는 내 실력이 부족해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픽도 물론 좋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플레이했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



Q. 예전 이력을 찾아보니 2015년 LCB 대학생 배틀 윈터 시즌 우승 경력이 있더라.

대학생 배틀 당시에는 정글러였다. 꽤 공을 들여서 대회를 준비했는데, 막상 정글 포지션이 비더라. 그런데 정글러나 서포터나 비슷한 면이 많다. 정글러 시절에도 라인을 조정하고, 오더 위주로 플레이했다. LCK 데뷔 이후 같은 참가했던 팀원들이나 학교 친구들에게 많은 연락이 왔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 고향에서 알던 누나가 있었는데, 지금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제자들을 통해 내 소식을 접해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어머니 모임에서도 내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웃음).


Q.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해외 활동에 대해 고려해본 적은 없나?

내가 4~5살만 어렸어도 해외로 떠날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딱히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나이와 별개로 이제 겨우 LCK에서 한 시즌을 활동한 신인 선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우승이나 롤드컵 진출 등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일단은 LCK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게 우선이다.


Q. 롤드컵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평소 해외 리그는 자주 챙겨보는 편인지?

중국이나 유럽 리그는 많이 챙겨보는 편이다. 시즌 중에도 최소한 하이라이트는 거의 다 챙겨봤다. 유럽에서는 G2와 프나틱, 중국은 FPX, RNG, IG정도? 북미는 팀 리퀴드를 주로 봤다. 팀 리퀴드의 경우 정말 안정적이고, 견고한 느낌인데, 지금 더 발전했다.

북미가 중국이나 한국, 유럽에 비해 약한 인식이 있는데, 그래도 1위팀은 한 방이 있다. 이번 롤드컵에서 팀 리퀴드는 주목할만하다.

그리고 G2와 프나틱 경기를 많이 봤다. G2와 프나틱은 서로 경쟁하며 시너지가 생겨 크게 발전한 팀들이라고 생각한다. 한 지역에서 독보적인 한 팀이 생기면 발전이 좀 더디고, 메타 수용도 느리다고 생각하는데, G2와 프나틱은 최고의 라이벌로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아마 G2와 그리핀의 대결은 스타일이 정말 달라서 재밌는 경기가 예상된다. 그리핀이 초반만 잘 넘기면 승산이 있지만, G2는 정말 초반에 뭘 할지 몰라서 그런 점이 통하기만 하면 오히려 싱겁게 G2가 승리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핀이 큰 무대에 약하다는 평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그런 걱정들을 모두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잘할 거라 믿고 있다.

프나틱은 G2에 비해 결코 밀리는 팀이 아니다. 결승에서 승승패패패를 당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번 롤드컵에서는 더 강해진 멘탈로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 같다. 오히려 기본기는 프나틱이 G2보다 낫다고 본다. C조가 정말 핫한데, 누가 올라가고, 떨어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중국에서 RNG를 정말 좋아하는데, 최근 메타에서 바텀 캐리가 가능한 몇 되지 않는 팀이다. 현재 폼이 매우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RNG 바텀에게는 묘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4대 지역 3시드 중에서는 클러치 게이밍의 행보도 궁금하다. 그룹 스테이지까지만 무난히 진출하면 정말 변수를 만들 팀이라는 생각이 든다.

FPX는 중국 1위니까 당연히 기대가 되고, 그냥 잘한다. 도인비는 현존하는 선수 중 변수 창출 NO.1이다. FPX안에 G2가 있는 느낌? 담원 역시 기대되는 팀이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고, 경기를 치르면서 급성장이 가능한 팀 같다. 운만 따라주면 정말 일을 낼 것 같다. 우리가 아는 담원의 모습이 나오기만 한다면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넘어 그룹 스테이지도 충분히 통과할 것이다.

Q. 내년이면 서른이다. LoL에서 30대 게이머는 없기에 주변에서도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할 것 같은데?

나이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오히려 주변에서 그런 말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없던 걱정이 생겼다. 아마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앞서 활동했던 선수들을 보고 걱정하는 거지만, 모두가 다 같은 행보를 가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확실히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 비해 노력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긴 한다. 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긴 하다.


Q. 프로게이머가 아니라도 무언가 해보고 싶은 일이나 도전을 앞두고 나이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의 경우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딱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그 1년 동안 내가 목표로 하던 성과를 이루지 못해서 포기하려 했는데, 우연히 꾸린 팀으로 챌린저스 코리아에 도전해 여기까지 왔다. 대부분이 스스로에게 객관적이기 쉽지 않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면, 무조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나? 다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객관적인 가능성도 필요하다. 이것만 있다면 일단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믿고 추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