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이브 온라인 -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가상세계
  • 강연자 : 힐마 페터슨(Hilmar Petursson) - CCP 게임즈 / CEO
  • 발표분야 : 포스트모템
  • 강연시간 : 2019.11.15(목) 14:00 ~ 14:50
  • 강연 요약: 지난 16년 동안 이브 온라인은 단일 세계 MMO 게임 디자인 및 기술의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이 강연에서 CCP Games의 CEO 인 Hilmar V. Pétursson은 수십 년에 걸쳐 성공한 라이브 게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사항과 플레이어와 개발자 모두에게 이브 세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 일반적으로, MMORPG를 주제로 강연에 나서는 개발자들은 대부분 게임 내 시스템에 대한 소개나, 기술적인 설명, 혹은 기획 과정 들을 설명한다. MMORPG의 개발 분야는 너무나 넓고 깊으며, 최대 두 시간이라는 강연 시간에 이를 모두 설명하는 과정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개발 과정 중 일부나, 어느 일정 시점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풀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CCP의 대표이자, '이브 온라인'의 창시자인 '힐마 페터슨'의 강연은 이런 일반적인 강연과는 완전히 다른 궤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이브 온라인'과 게이머들의 현실에서의 삶을 함께 이야기했다. 이브 온라인의 게이머들이 어떤 추억을 얻었고, 어떤 게이머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CCP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나아가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MMORPG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지가 이번 강연의 주제였다.


    ■ 16년의 서비스 - '이브 온라인'이라는 이름의 세계

    이브 온라인의 개발사인 CCP는 아이슬란드의 수도이자, 작은 항구도시인 '레이캬비크'에 위치해있다. 한국 기준으로는 사실 중소규모의 항구도시 수준의 규모를 가진 도시이다. 20년 전의 힐마 페터슨은, 이 레이캬비크의 한 지하실에서 '이브 온라인'의 초안을 구상했다. 그 전까지, 아이슬란드의 게임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힐마 페터슨과 그의 동료들 중, 누구도 게임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으며, 누구도 게임 개발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 등 뒤의 도시가 레이캬비크의 모습

    개발 과정은 어려웠지만, 덕분에 이브 온라인은 그 어떤 게임과도 다른 독특한 색채의 게임으로 태어났다.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에버퀘스트, 와우로 이어지는 RVR 중심의 판타지 MMORPG의 구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 이전 시기의 MMORPG인 '울티마 온라인'과 비선형적 콘텐츠 구조를 갖춘 온라인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16년 간, 이브 온라인은 서비스를 이어왔다. 이 기간 동안 이브 온라인 내에서 온갖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고, CCP는 다른 여러 게임사와는 전혀 다른 논리로 이를 조율해왔다. 일반적으로, 게임 내에서 사기나 타 유저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일정 선을 넘게 되면 개발사측이 이를 방지하는 대책을 세우거나, 제제를 가한다. 초보 유저를 배려하기 위해 PVP가 제한된 공간을 만든다거나 하는 식이다.

    ▲ 이브 온라인의 개발 기조

    하지만 이브 온라인은 이런 유저 간 분쟁을 철저히 그들의 손에 맡겼다. 현실 세계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덕목이지만, 어딘가에서는 약자에 대한 괴롭힘이 늘 일어난다. CCP는 이브의 세계가 게이머들에게 또 하나의 세계가 되길 바랐고, 시스템의 권한을 벗어나는 부정행위(외부 프로그램 사용 등)을 제외한 모든 것을 허용했다. 사기, 강도, 간첩질을 비롯해, 게임 내에서 시스템적으로 가능한 모든 행위를 플레이어의 자유와 선택으로 돌렸다.

    이러한 운영 정책은 곧 게임의 전체적 난이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게임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오랜 기간 게임 속에서 만들어진 유저 간의 암묵적 룰이나, 그들만의 사회 질서가 신규 유저들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런 방관형 운영 정책이 단순히 게임의 부정적 영향만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브 온라인의 세계 속에서 게이머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세계를 주물렀고, 자신들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




    ■ 인간 관계 - 이브 온라인의 가장 강력한 콘텐츠


    CCP는 이브를 서비스하면서 늘 '이브 온라인'이라는 세계의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게임 내 경제의 안정을 위해 경제학자를 투입해가며 균형을 맞췄으며, 게이머가 언제나 새로운 콘텐츠를 플레이하거나, 게임에 지겨움을 느끼지 않도록 끝없는 순환을 의도했다. 이브 온라인 내에서 '상실'은 불현듯 찾아오며, 또한 굉장히 쉽게 찾아온다. 수 개월 공들여 돈을 모으고, 시간을 투자해 구매한 함선이 단 한순간에 터지고 알거지가 되는 일은 이브 온라인을 플레이하며 한 번 쯤은 겪는 일이다.

    ▲ 첫 상실은 게임을 그만 두느냐 마느냐의 기로가 된다

    많은 게이머가 이 시점에 좌절을 느끼고 게임을 그만두지만, 그럼에도 CCP는 따로 돈을 내고 가입하는 보험 시스템을 제외하면 어떤 보호 장치도 만들어두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가혹함은 이브 온라인의 세계의 또 다른 면을 드러냈다.

    굉장히 많은 게이머들이 실수나, 불운으로 인해 상실을 맛보지만, 그 중 많은 게이머는 다시 재기에 성공한다. 기존의 게이머들이, 이렇게 좌절에 빠진 게이머를 도와 다시 게임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MMORPG에서 게이머는 위기를 겪지 않는다. 그간 모아온 재산이나 장비가 증발할 처지에 놓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하지만 '이브'의 게이머들은 이런 상실을 숱하게 겪고, 그 과정에서 다른 유저들과의 교류를 쌓는다.

    ▲ 게이머는 이브 온라인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복수심, 우정, 고마움, 두려움, 스릴, 그리고 소속감까지, CCP는 이브 온라인을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굉장히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끼길 바랐다. 이브 온라인에서는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함선 관리를 잘못하거나, 기업의 비밀이 유출되어 치명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를 돕고, 교류하며, 이브 온라인의 유저들은 이브 온라인 밖의 현실에서도 서로를 알아갔다. 심지어 힐마 대표는 이렇게 만난 커플의 결혼 주례를 서기도 했다.

    이렇듯, CCP의 운영 정책은 엄청난 허들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감정의 교류'라는 무엇보다 강력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16년 간 이어진 게임을 해 오면서 게임 내 대부분의 콘텐츠를 경험한 게이머의 수도 적지 않다. 심지어 그 엄청나게 넓은 성계를 모두 탐험한 게이머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게임을 이어가는 이유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라는 무엇보다 강력한 콘텐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고독의 시대 - '게임'은 사람을 고독하게 하는가?


    "게임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들 합니다"

    힐마 대표가 강연을 이어갔다. 그는 오늘날, 수십년 전, 젊은 세대의 친구 숫자는 평균 7명에 달했지만,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친구 숫자는 고작 1.2명에 불과하다며, 지금 이 시대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런 시대상을 두고 볼 때, 이브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인간을 더욱 고립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까?


    힐마 대표는 "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공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세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친구와의 물리적 거리가 얼마나 먼지,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그리고 만날 때 얼마나 강렬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지이다. '이브 온라인'의 세계 속에서, 물리적 거리와 빈도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원할 때 다른 이를 만날 수 있으며, 이들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고, 서로를 도우며 강력한 유대감을 만들어간다.

    나아가, 이 가상 세계에서의 경험은, 현실에서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이브 온라인을 플레이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이들로 인해 현실 사회 생활의 개선을 느낀 사람은 수없이 많으며, 게임 속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을 성공한 후, 자신감을 얻어 현실에서도 성공을 거둔 사례도 존재한다. 심지어, 게임 내 무역 콘텐츠를 정리하다가 스프레드시트의 전문가가 되버린 사연은 커뮤니티에서 너무나 흔한 이야기이다.

    ▲ 이브 온라인 덕에 힘을 얻은 수많은 사례들

    오늘날, 이브 온라인의 세계는 CCP가 꿈꾸는 이상적인 또 다른 세계이다. 난이도가 어렵다는 피드백에도 적응은 도와줄지언절 게임의 필러 시스템은 바꾸지 않는 이유. 16년이 지나도록 모든 공간을 PVP로부터 자유로울수 없게 유지하는 이유. 그리고 사기를 당한 유저가 이를 신고해도 당한 사람 잘못이니 잊으라 하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게이머는 이브를 플레이하며 좌절을 겪고,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으로 좌절을 이겨낸다. 그리고, 그런 유저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힐마 대표가 이브 온라인 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을 메인 토픽으로 한 시간의 강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이다.




    11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진행되는 인벤게임컨퍼런스(IGC X G-CON) 취재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IGC X G-CON 2019 뉴스센터: http://bit.ly/33N9v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