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이더 리그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대회다.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해온 선수들이 있고, 쉽게 깨지지 않는 징크스들이 쌓여갔다. 최상위권 승부가 점점 굳어질 법한 시기, 카트라이더 리그에 기존의 틀을 깰 만한 새 얼굴이 등장했다. 경력 많고 유명한 선수들이 모두 모인 개인전 결승전이라는 자리에서 뚜렷한 개인전 경력이 없었던 락스 게이밍의 이재혁이 이번 시즌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재혁의 행보는 놀라운 그의 질주 만큼 거침 없었다. 많은 이들을 가로막은 징크스나 저주를 넘어섰고, 첫 야외무대 결승이라는 긴장감 역시 그를 누르지 못했다. 거칠 것 없는 그만의 패기로 2019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카트라이더 시즌2의 우승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쿨재혁'으로 불리는 이재혁은 부담스러울 법한 프로 무대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변을 내렸다.



Q. 카트라이더 리그 개인전 우승자가 됐다. 막상 우승자가 돼 보니 기분이 다른가?

우승하니까 평소 연락하지 않던 친구들까지도 "축하한다. 열심히 응원한다"는 연락이 오더라. 심지어 학교 후배들한테도 친구 추가 후 연락이 오더라. "같은 학교 다니는 이재혁 선수 맞나요?"라며 묻더라. 커뮤니티에도 '안양에 황제가 탄생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우승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겠더라. 우승자가 된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Q. 많은 카트라이더 선수들이 유망주로 이재혁을 뽑더라. 본인은 이렇게 개인전에서 우승할 줄 알았나?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승전 당일에 일어나자마자 나도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우승자 출신인 박인재 감독님에게 우승하면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고, 계속 우승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감독님은 못 들은 척하더라(웃음). 결승전 스크림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또 다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 앞이라 긴장할 줄 알았는데, 떨지도 않고 평소랑 똑같이 했던 것 같다.


Q. 이전 시즌과 이번 시즌 확실히 성적부터 다르다. 어떤 면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나?

이전 시즌까지 개인전보다 팀전에 집중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아쉽게 팀전이 상대적으로 일찍 떨어졌다. 4강에서 빨리 떨어져서 개인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이 가장 크다. 확실히 개인전과 팀전에서 필요한 능력이 다르다. 내가 팀전에서 가장 앞서고 있더라도 스피드보단 팀 워크가 더 중요하다. 내가 앞서가면서도 다른 팀원과 호흡도 맞아야 하니까.


Q. 결승전 당일에는 후반부에 본인이 흔들릴 때, 감독님의 도움에 대해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을 해줬는가?

감독님이 나에게 매판을 처음처럼 생각하라고 했다. 그 말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이전 경기를 되돌아보면 그동안 잡생각이 정말 많았다. 사고가 나거나 실수를 한 것에 내가 영향받고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다른 차와 부딪히는 것부터 어떻게 버텨야 할지 생각하고 있더라. 그래도 결승전에서는 감독님의 말 덕분에 처음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시 다잡고 임할 수 있었다.



Q. 결승전 개인전에 문호준-유영혁-박인수부터 떠오르는 한화생명e스포츠의 신예들까지 만만치 않은 선수들이 많았다. 결승전의 무게에 위축되진 않았나?

오히려 나에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더 컸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야외무대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번이 나에게 첫 야외 결승전이었고, 오랜만에 다시 결승에 올라왔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시즌 개인전에서 떨어지고 이번 시즌은 팀전 4위로 마무리해 아쉬운 인식을 바꿀 만한 좋은 시기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우승하면 멋진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이 기회를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Q. 결승전 '퍼플라인의 저주'가 있었는데, 드디어 깨졌다. 그런 저주나 징크스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리그를 예전부터 봐왔던 입장에서 결승에서 퍼플 라인은 우승을 못 한다는 저주를 내가 깨보고 싶었다. 박인재 감독님도 선수 시절에 이 저주를 깨기 위해서 애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면서도 마음에 남더라. 그렇게 내가 대회에 나가면 이 기록을 깨보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가져왔는데, 이렇게 내가 깨서 기쁘다. 나에겐 아직 특별한 징크스는 없는 것 같다. 징크스가 생긴다면, 그것 역시 나 스스로 극복해보겠다.


Q. 팀전이 아쉽게 끝나면서 개인전만 남은 상황이었다. 개인전 준비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나?

개인전마저 떨어진다면, 이번 시즌 통째로 아쉬움만 남을 것 같았다. 이전 시즌에 그럼 경험을 해봤기에 이번에는 개인전을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났다. 개인전이 팀전보다 개인의 명예는 높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연습은 샌드박스에서 제안이 와서 함께 했다. 우리가 팀전을 도와주는 대신, 샌드박스 팀이 나의 개인전 연습을 도와줬다. 샌드박스에 개인전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많기에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덕분에 서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본다.



Q. 우승을 50% 정도 예상했다고 들었다. 예상한 50%의 이유와 그렇지 않은 50%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혹시 모를 '퍼플 라인의 저주'가 의식되긴 했다. 하지만 개인전 결승에 올라온 선수 중에 절반 이상이 팀전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팀전의 상금이 더 높아서 다들 팀전에 더 집중할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개인전에서는 내가 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마지막 1:1 대결의 분위기와 긴장감은 다른 개인전과 또 달랐나?

솔직히, 경기 전에는 박도현 선수가 올라올 줄 몰랐다.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점점 '이 선수가 올라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전 경기에서 1:1 상황에서 어떻게 대결할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1:1 대결을 펼칠 때 박도현 선수가 내 바로 옆에 앉아 긴장했지만, 앞서 머릿속으로 대결 구도를 생각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Q. 학업과 프로게이머 생활을 병행한다고 들었다. 일정 관리나 연습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팀에서 일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줘서 연습에만 몰두하면 된다. 학교와 연습실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해서 잠을 줄이긴 했다.


▲ 락스 랩터스 공식 포즈?

Q. 이제 어엿한 우승자다. 우승자로 다음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듣고 싶다.

목표는 팀전과 개인전 모두 우승하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 개인전에서 우승했다고 자만하지 않겠다. 열심히 임해서 목표를 노려보도록 하겠다.


Q. 카트 라이더가 오랫동안 대회를 이어온 만큼 유명한 선수들이 많다. 꼭 넘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샌드박스 게이밍의 박인수 선수다. 작년까지 같은 팀에 있었으나 박인수가 선수가 우승 휩쓸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나 역시 실력적으로 자신이 있었는데, 아쉽게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앞으로는 박인수 선수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더 나아가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하게 해달라.

팬분들이 많이 응원해줘서 항상 감사하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