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CES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히 디지털 마술쇼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술의 발전과 보급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올해는 아이디어 몇 스푼 첨가한 출품작이 특히 많았다. '우리 미래는 이럴 거예요'가 아닌, '이런 미래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묻는 듯 했다.

핵심은 '기술의 개인화'다. 5G 통신망 보급, AI 기술의 발전이 비로소 열매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로봇, 자동차 산업 분야는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비전을 그릴 수 있게 됐다.






AMD vs 인텔
CES에서도 여전했던 두 공룡의 라이벌 의식

CES 소식 중 게이머들이 가장 기다렸던 내용이 아닐까 싶다. AMD와 인텔, 컴퓨터 CPU 분야의 두 거성은 올해 나란히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인텔은 신형 모바일 CPU '타이거 레이크(Tiger Lake)'를 최초 공개했다. 첫 10나노 기반 CPU인 아이스 레이크의 후속작이다. 10나노 플러스 공정을 거쳤고, 인텔 Xe 외장 그래픽 최적화를 통해 성능도 크게 끌어올렸다. 그레고리 브라이언트(Gregory Bryant) 인텔 수석 부사장은 "Gen12 그래픽 채용으로 두 자리수 이상의 성능 향상을 체감할 수 있다"고 구체적 수치를 덧붙였다. 타이거 레이크에는 전송속도가 USB3 대비 최대 4배 빠른 '썬더볼트4' 인터페이스도 통합된다. 상용화 이후 모바일 하드웨어의 급성장이 예견되는 이유다. 인텔 타이거 레이크는 올해 하반기 정식 출시 예정이다.

한편, 인텔은 파트너사와 공동 개발을 통해 폴더블 및 듀얼스크린 PC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CES 2020 현장에선 폴더블 OLED 디스플레이 폼 펙터인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를 선보였다. 액정 자체가 반으로 접히는 타블렛 PC를 생각하면 쉽다. 접었을 때는 12인치, 폈을 경우엔 17인치까지 확장된다.


▲ 호스슈 벤드가 탑재된 노트북은 이렇게 쓴다.


AMD는 이번 CES에서 경쟁사 대비 더 많은 신제품을 선보였고, 그 중심엔 Zen 2코어 아키텍처와 라데온 내장 그래픽이 포함된 AMD 라이젠 4000 시리즈 모바일 프로세서가 있었다. 해당 프로세서를 탑재해 더 얇고 가벼워진 게이밍 노트북을 2020년 1분기부터 만나볼 수 있다.

아울러 AMD는 RDNA 아키텍처 기반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지원하는 라데온 RX 5600 시리즈 제품군도 함께 선보였다. 7nm 공정 기술 기반으로 설계된 AMD 라데온 RX 5600시리즈는 고대역폭 PCIe 4.0 기술과 고속 GDDR6 메모리를 지원하며, 성능과 전력 효율을 모두 잡았다는 게 AMD의 설명이다.

▲ IT 여신으로 칭송받는 리사 수 대표가 자사의 프로세서를 선보이고 있다.


인텔과 AMD가 컴퓨터 CPU 산업의 라이벌이라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예상대로 이번 CES에서도 서로에 대한 경쟁 의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AMD는 노트북용 최상위 프로세서인 라이젠7 4800U 프로세서를 공개하며 "전 세대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의 성능이다. 스레드 하나만 사용한 테스트에서 인텔 코어 i7-1065G7 프로세스 대비 최대 4% 빠르고 멀티스레드 테스트에선 최대 90% 이상 높은 퍼포먼스를 냈다"며, "그래픽 성능에선 28% 이상 앞선다"고 강조했다. 또한, 라이젠7 4800H의 경우, 경쟁사 대비 39% 향상된 게임 물리 시뮬레이션 성능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인텔은 CES 기간 중 라스베가스에서 '리얼 월드 퍼포먼스' 행사를 개최하고, 자사 프로세서와 AMD 라이젠 프로세서를 직접 비교한 결과를 공개했다. 인텔 측은 "노트북에 탑재되는 i7-9750 프로세서는 AMD 라이젠7 3750H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보여줬다"며, "같은 게임을 실행할 때 초당 20프레임 이상 차이가 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AI 소프트웨어 업체들과의 협력은 물론, 새로운 그래픽칩셋 Xe를 통해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제품을 개발할 것이라 강조했다.



종합 컴퓨터 부품 제조사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대만의 MSI는 300Hz 주사율 노트북 GS66, GE66을 최초 공개했다. 두 제품 모두 RTX 그래픽카드가 탑재됐고, 세계에서 가장 얇은 0.1mm 팬 블레이드가 장착된 것이 특징이다. MSI는 이번 CES의 게이밍 및 콘텐츠 크리에이션 분야에서 10개의 혁신상을 받았다.

▲ 게이밍 노트북이 두껍다는 건 이제 편견이다.


조텍(ZOTAC)은 자신들의 강력한 무기인 미니 PC를 출품했다. 새로운 라인업인 인스파이어 스튜디오(Inspire Studio)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한다. 65W의 8-core 인텔 코어 i7 프로세서와 데스크탑용과 동일한 조텍 게이밍 지포스 RTX SUPER 그래픽카드가 장착되어 작지만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토니 웡(Tony Wing) 조텍 CEO는 “우리는 미니PC 폼 팩터의 창시자이자 선구자다. 작은 크기, 뛰어난 에너지 효율성, 유연성은 미니PC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이제 성능도 데스크탑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 말했다.
▲ 지포스 RTX SUPER가 탑재된 조텍의 미니 PC, '인스파이어 스튜디오'.


가전의 왕 TV, 발전의 끝이 없다
그런데 가격은...

콘솔 게이머인가? TV는 중요하다. 태어나서 콘솔 게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그래도 TV는 중요하다. 일상에 가장 밀접한 가전 제품의 중요도를 깎아내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CES의 꽃은 가전제품이었고, 그 중심엔 TV가 있었다.

올해 LG전자는 자사 부스에서 주력 제품인 OLED TV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이번 CES에선 마치 커튼처럼 위에서 아래로 화면이 내려오는 롤 다운(Roll Down) 기술을 처음으로 공개해 참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LG전자는 "5만 번 이상의 테스트를 거쳤고, 하루 8번 작동 기준으로 17년 간 사용해도 문제없다"며 기술에 자신감을 보였다. 롤 다운 기술 특성상 롤 업(Roll UP) TV보다 공간 활용성도 높다.

다만, 보급 시기를 예상하긴 이르다. 작년 CES에서 최초 공개한 롤 업 올레드 TV도 출시일이 올해로 미뤄졌다. 가격은 아직 공개된 적 없지만, 최소 수천만 원 이상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롤 다운 TV 보고 감탄하기는 했지만, '얼른 사고 싶다'라는 생각까진 안 든 이유다.

▲ 액정으로 시선 사로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LG 부스.

▲ 롤업, 롤다운 TV의 조화는 마치 음악 이퀄라이저 바를 보는 듯 했다.


삼성전자는 베젤리스에 집중했다. 인피니티 디자인을 채용한 삼성 QLED TV는 전면의 99%를 오롯이 디스플레이로 채웠다. 베젤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실사용 시 눈에 띄지 않는 수준에 근접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줄어든 건 테두리뿐 만이 아니다. 이번 CES에서 공개된 제품의 두께는 15mm로, 지난 2019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TV들보다 더 얇다. '삼성 전자의 QLED는 두껍다'는 LG전자의 공격을 의식한 결과로 보이지만, 태생적으로 백라이트가 없는 OLED TV의 두께(약 7mm)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 베젤 최소화에 집중한 인피니티 디자인 TV.



현대자동차, 우버와 손잡고 '하늘길' 연다
당연히 비행기보단 싸겠죠?

작년 CES의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와 '자율주행'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올해는 하나 더 추가됐다. '하늘'.

현대자동차는 "다가올 10년 이내에 현실로 만들 것"이라며, 자신들이 바라보는 미래 도시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 라이프 구현을 위한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까지 총 3가지 솔루션이 핵심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UAM이다. 간단히 말해 '개인용 비행체'로, SF 영화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생각하면 쉽다. 현대차가 내놓은 예상 디자인은 자동차보단 헬기에 가깝지만, 하늘을 개인용 이동 경로로 바라본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9월 UAM 사업부를 구축하고 美 항공우주국 출신 신재원 박사를 영입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CES 2020에서 "현대차는 이동 시간의 혁신적 단축으로 도시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세계적 운송 네트워크 기업 '우버(Uber)'와 파트너십을 체결, 본격적으로 도심 항공택시 개발의 첫삽을 펐다.

현대차가 공개한 항공택시 'S-A1'은 날개 15m, 전장 10.7m로, 조종사 포함 총 5명이 탑승할 수 있다. 프로펠러의 수직기류를 통해 활주로 없이도 이착륙이 가능하다. 최대 비행 거리는 100km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상용화 초기에는 조종사가 필요하지만, 자동비행기술이 보급된 이후에는 자율비행이 가능하도록 개발할 것"이라 설명했다.

▲ 솔직히 아직은 헬기 같다.

▲ 현대차가 꿈꾸는 미래 도시 콘셉트.


게이머들에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친숙한 日 전자기업 소니도 올해 CES에서 자동차를 공개해 참관객의 시선이 집중됐다. 정식 명칭은 '비전-S' 콘셉트로, 4도어 자율주행 순수전기차다.

소니는 자사의 이미징, 센싱 기술을 활용해 신뢰성과 안정성을 모두 잡겠다는 계획이다. 내장 기술인 '세이프티 코쿤(Safety Cocoon)'은 주변을 360도로 감지해 다양한 주행 상황을 빠짐없이 체크한다. 12대의 카메라, 33개의 센서가 탑재되어 주변 교통량은 물론 탑승자까지 모니터링한다. 각 시트에는 별도의 음향 시스템이 탑재됐고, 차량 내 스피커는 30개 이상으로 극장 못지 않은 음질을 들려준다는 게 소니 측의 설명이다.

▲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도 괜찮아보였던 비전-S.



AI 로봇
드디어 갖고 싶은 것들이 보인다.

인간을 돕는 로봇은 매년 CES의 단골 소재였지만, 올해는 좀 더 현실적인 모습이다. AI의 발전이 두드러지자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로봇 산업도 대중화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로봇은 삼성전자에서 공개한 '볼리(Ballie)'였다. 이름답게 공 모양, 야구공보다 약간 더 크다. 사용자를 인식해 따라다니고 TV, 휴대폰, 청소기 등 주요 스마트기기와 연동해 집안 구석구석 홈 케어도 가능하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 부문 사장은 CES 기조연설 무대에서 '볼리'를 시연하며 "볼리는 인간 중심 혁신을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로봇 연구 방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CES에서 공개된 프로모션 영상을 보면 바로 이해된다. 편리한 건 둘째 치고, 일단 귀엽다.


▲ 솔직히 귀엽다.


LG전자는 셰프 봇 '클로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볼리만큼 귀엽진 않지만, 주방에서만큼은 클로이가 더 끌린다. 로봇 팔 한 쪽에 불과하지만 요리 주문 받고, 조리하는 데는 문제 없다. LG전자는 "소프트웨어 모션제어 기술과 스마트 툴 체인저 기술이 탑재되어 다양한 형태의 조리기구를 떨어뜨리지 않고 집을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LG전자는 CES 현장에 클로이의 요리를 직접 먹어볼 수 있는 테이블 전시존을 마련,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 "주방 일은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누구나 한 번쯤은 반드시 겪어보았을 절체절명의 위기를 구제해주는 천사같은 로봇도 등장했다. 생활용품 제조업체 P&G가 선보인 '차민(Chamin)'이 그 주인공. 이륜형 바퀴를 탑재해 턱만 없다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녀석이 '화장지' 배송에 특화되었다는 것. 현세대 인류 대다수가 느껴보았을 절망감을 우리 후세에게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동명의 두루마리 화장지 제조업체에서 직접 개발한 로봇이기에 왠지 모를 신뢰가 더해진다.

▲ 테잌 마이 머니 플리즈.


그리고... 범상치 않은 것들
그렇다. 영화에서 보던 그것들이다.

오직 실용성만 놓고 출품작을 가린다면 CES는 참 딱딱한 행사였을지도 모른다. 서문에서 말했듯 이번 CES가 특히 즐거웠던 이유는 개발자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참신한 제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추려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게임을 즐긴다면 어떤 느낌일까. 조만간 그 미래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프랑스 AI 스타트업 넥스트마인드(Next Mind)는 뇌파로 VR/AR 게임을 할 수 있는 AI 헤드셋을 출품했다. AI 알고리즘을 사용해 사용자의 뇌파를 체크하고 명령어로 전환해 기기에 입력한다. TV 채널 변경은 기본이고, 간단한 구조의 게임도 플레이할 수 있다. 훗날 뇌파 해석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다면, 의자에 팔짱 끼고 마주 앉아 서로 인상 쓰면서 노려보기만 하는 프로게이머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 사용자의 뇌파를 체크하는 AI 헤드셋.


국내 배터리 제조사 '리베스트'는 자사의 플렉시블(Flexible) 배터리를 들고 CES를 방문했다. 말 그대로 휘어지는 배터리로, 현존하는 플렉시블 배터리 중 면적 대비 용량이 가장 크다. 굽히는 부분에 대한 제한도 없다. 무선 VR 기기에 적용된다면 유의미한 수준의 소형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드론,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함은 물론이다. 리베스트는 이 제품으로 CES 2020 혁신상을 수상했다.

▲ 실용성이 느껴지는 디자인.


미국의 로봇 공학 개발업체 사르코스 로보틱스(Sarcos Robotics)는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로봇 수트를 선보였다. 가디언 XO(Guardian XO)라는 이름의 이 수트는 최대 8시간까지 작동하며,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약 90Kg의 짐을 한 손만으로 번쩍 들 수 있다. 현재 사르코스는 델타 항공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수트가 상용화될 경우, 항공기 유지 보수 작업에 우선적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 강하고... 아름다워요


개인적으로 올해 CES 출품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삼성의 '네온(NEON)'이었다. 삼성리서치 아메리카 산하 연구소 '스타랩'에서 개발했으며, 삼성 측은 네온을 로봇도 비서도 아닌 '인공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실제 사람과 유사한 감정과 지능을 보여주며,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진짜'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스타랩은 "네온은 비서가 아니다. '헤이 네온'이라 부르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반응한다."고 말했다. 즉,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소통을 주고받는 AI 친구인 셈이다. 이거 어쩌면, 영화 'HER'의 사만다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 '네온' 소개 영상영상 (출처 - Good Content | Tech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