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서 이름과 현실이 잘 맞지 않는 사례를 꼽자면 하나둘이 아닙니다만, 최근을 보면 '서브컬쳐'가 그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쁘장한 캐릭터가 무더기로 등장하고, 이 캐릭터가 아예 근본이 되어버리는 미디어는 분명 10년 전만 해도 '모두의 문화'라고 하기엔 부족했습니다. 좋아하는 이들은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아예 관심조차 없는, 말 그대로의 '서브컬쳐'였죠.

하지만, 지금은 사뭇 다릅니다. 일부가 향유하던 이 독특한 문화는 점점 대중 문화의 하나로 편입되었고, 오늘날은 지하철 역에서 이런 게임들의 광고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도 대다수 대중이나 업계 관계자들은 '서브컬쳐'라는 겸손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런 '미소년,소녀 중심의 캐릭터 기반 미디어'는 이제 대중 문화의 일부라 봐도 모자람이 없죠. 이제는 '어디까지가 서브컬쳐인가?'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수준입니다. 일단 이번 기사에서는 늘 하던대로 '서브컬쳐 게임'이라는 정의를 쓰긴 하겠습니다.

그만큼 요 몇 년간 게임업계의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과거 1년에 하나 정도가 등장했고, 그마저도 꽤 독특한 도전으로 여겨졌던 장르이지만, 이제는 출현 빈도가 꽤 높아진 상황이죠. 올해에도 이런 흐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연초부터 두 종의 게임이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카운터 사이드
류금태 PD의 또다른 도전


먼저, 첫 번째 선수 '카운터사이드'입니다. 현실세계인 '노멀사이드'와 이에 대응되는 이면세계인 '카운터사이드'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PMC의 이야기를 담은 수집형 전략 액션 RPG이죠. 뭔가 장르명이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요즘 시대의 장르 구분은 별 의미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개발사를 먼저 봅시다. 개발사는 '스튜디오비사이드', 개발사 대표는 대한민국 서브컬쳐계의 아이코닉한 인물인 '류금태' PD입니다. 클로저스의 총괄 PD를 역임했고, 여러 강연을 통해 서브컬쳐 게임에 대한 열정을 과시한 바 있죠. 개발진에 누가 있느냐가 그 게임의 우수함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일단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온 게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의 역할은 PMC의 수장입니다. 요원들을 모으고, 이면세계의 침략자인 '침식체'와 경쟁업체들과 싸워나가야 하죠. 이 과정에서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가 드러납니다. 바로 '캐릭터 모으기'죠. 지금까지 공개된 캐릭터는 100여 종에 가까운데, 이중 70% 이상은 고유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에서 카운터사이드만의 컨셉을 볼 수 있습니다.

류금태 PD는 과거 현대적인 전투 병기와 서브컬쳐의 결합을 컨셉으로 삼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투 병기가 꽤 등장합니다. 이른바 '죽음의 천사'로 유명한 미 공군의 건쉽인 'A-130'이나 M1 에이브람스 전차에서 모티브를 딴 장비들이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죠. 리얼리즘보단 어반 판타지를 추구하는만큼 여전히 냉병기를 든 캐릭터들이 날뛰기는 하지만, 꽤 흥미로운 컨셉입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지난 8월 진행된 CBT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재화 수급이나 장비 디자인, 일러스트 등에서 여러 지적이 이어졌죠. 하지만, 이 CBT의 결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CBT 이후 지금까지 5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 정도면 게임을 완전히 바꾸진 못해도 상당 부분 고쳐낼 수 있는 세월입니다. 1월 14일 진행된 간담회에서 박상연 디렉터는 8월 테스트 이후 게임 내 30종 이상의 시스템에 대해 수정했으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죠.

더불어, 이 자리에서 박상연 대표는 정식 출시 시점의 콘텐츠 볼륨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메인스트림과 외전을 포함한 6개의 에피소드, 30만 자 이상의 텍스트와 50장 이상의 일러스트 스토리 컷씬 연출이 준비되어 있죠.


'카운터 사이드'는 2월 4일 출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지난 5개월 간 스튜디오비사이드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다시 다듬어진 '카운터 사이드'가 어떤 게임일지 말입니다.



명일방주
'소녀전선'으로 이름을 알린 AD 해묘의 신작


두 번째 게임, 중국의 '하이퍼그리프(Hypergryph)'가 개발한 '명일방주'입니다. 기본적으로 카운터사이드와 같은 '어반 판타지'를 세계 배경으로 설정했으나, 게임 시스템에서 차이점을 보이는 작품이죠. 정체불명의 광석인 '오리지늄', 그리고 이 '오리지늄'을 통해 진보한 인류와 오리지늄에 감염된 감염자들 간의 대립이 게임의 기본 시놉시스가 되며, 여기에 다양한 팩션과 설정이 덧대어져 '명일방주'라는 게임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보자면, 기본적인 게임 방식은 '타워 디펜스'에 가깝습니다. 방어 요원을 배치하고, 제한된 자원으로 방어선을 배치하며 적 웨이브를 막아내야 하죠. 다만, 타워를 '짓는' 개념이 아닌 요원을 '배치'하는 형태이기에, 같은 요원을 여럿 배치할 수 없고, 요원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탱딜힐' 조합을 해 균형을 잡아야 하는 등 기존의 타워 디펜스와는 구분되는 부분도 보입니다.


개발진을 살펴보면 먼저 총괄 PD인 '해묘'가 보입니다. 소녀전선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고, 그 외에도 소녀전선의 개발에 참여하거나 운영을 맡았던 인물들이 여럿 보이죠. 물론, 단순히 인물이 겹칠 뿐 소녀전선과 별다른 관계는 없습니다만, 일단 명일방주 또한 카운터 사이드처럼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인 인물들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지난 1월 8일 서울 청담동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해묘 PD는 직접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개발 단계에 있었을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한국 팬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한국 팬들의 관심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죠. 달리 말하면, 한국 로컬라이징도 부족함 없이 준비했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말할 수는 없겠죠.

▲ 하이퍼그리프 '해묘' 개발 총괄 PD

명일방주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캐릭터 콜렉팅'에 의존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소 묵직하고 어두운 아트 스타일 때문에 엄청나게 화려한 연출이 펑펑 터지지는 않지만, 게임플레이 자체에 매력적인 재미를 녹여냈죠. 효율적인 요원 배치를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하고, 혹여나 중간에 방어선이 뚫릴 경우 급하게 남는 자원을 활용해 후방 방어선을 구축해야 하는 등, 디펜스 게임 치고는 긴박한 상황 판단을 요구합니다. 게다가 '매니지먼트'의 단계에서도 요원의 병과와 능력치를 고려해 최선의 라인업을 짜내야 하죠.

▲ 캐릭터 베이스 게임 치곤 게임 자체의 재미가 상당한 편

그렇다고 캐릭터가 부실하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고유 캐릭터만 현재 공개된 것으로 120여종에 달하며, 추가가 예정된 캐릭터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검증된 AD들의 작품인만큼 퀄리티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사실상, '명일방주'의 행보에 유일한 걸림돌은 중국 개발사의 게임이라는 심리적 장벽 뿐입니다. 마켓에 쏟아지는 중국 게임 중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게임이 워낙 많다 보니 이런 부분이 허들이 되곤 합니다만, 명일방주의 경우 그런 게임들과는 격이 다르니 색안경을 벗고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명일방주는 지난 16일 정식 서비스되었습니다. 이미 해외 서비스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되었기에 여러모로 검증이 된 게임이긴 합니다만, 의외로 꽤 많은 게임들이 괜찮은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현지화와 운영에서 고전하곤 합니다. 이 부분에서, 앞서 말씀드린 '카운터 사이드'는 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국내 시장에서의 연착륙, 지금 명일방주에게 주어진 지상과제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를 바라고 있을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