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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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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단점투성이 '드래곤볼 Z 카카로트'를 꼭 해보라고 말하는 이유

강승진 기자 (Looa@inven.co.kr)

게임의 예약 구매 버튼을 누른 데엔 2개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예약 특전으로 주는 머그컵. 컵에는 라데츠가 고작 5밖에 되지 않는 전투력에 코웃음 치는 문구가 그려졌다. 이거 하나면 주변 기자들에 소위 어그로 끌기 딱 좋아 보였다. '고작 필력이 5밖에 되지 않는 하찮은 녀석 같으니라고'쯤.

하나의 이유가 반쯤 장난이었다면 다른 이유는 추억이다. 플레이스테이션에 디스크를 집어넣고 게임을 켠 직장인. 광고 속 주인공이 기억하는 어릴 적 모습은 나라만 다를 뿐 내 어릴 적 모습과 똑 닮았더라.

목욕하는 날이면 비누거품 가득한 머리를 바싹 세워 초사이어인 됐다. 친구들과는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을 들이밀며 에네르기파 대결을 하고 체력장 장거리 달리기가 시작하면 계왕권에 변신까지 해가며 에너지를 쏟았다. 물론 그 해 달리기 기록은 반 전체 뒤에서 두세 번째쯤 했지만.

▲ 80, 90년대를 산 게이머라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은 영상

비슷한 또래라면 계왕권까지 쓰진 않았더라도 아마 드래곤볼에 대한 추억쯤은 하나 가지고 있을 터이다.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그 추억에 기댄 게임이다. 패미컴 시절에는 3편의 게임으로 쪼개서 다뤄졌고 이후에 작품에서는 독자적인 스토리를 더해 원작 맛이 약해진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Z'의 이야기를 거의 고스란히 담았다.

사실 그저 IP에 기댄 게임이라기엔 발매 1년여 전 첫 공개 이후 줄곧 공개한 품질이 달랐다. 당시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던 원작의 전투신이 똑같으면서도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1989년 시작한 애니메이션을 뛰어넘는 게 뭐가 대단하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만큼 원작은 뛰어났고 나왔던 게임은 기대 미만이었다고 한다면 이해하려나.

일단 기대감은 충분히 끌어올린 '드래곤볼 Z 카카로트'의 실제 감상을 전하고자 하자. 스토리야 80, 90년대 생이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만큼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느냐에 초점을 맞춰 따라오길 바란다.

▲ '전투력이 5밖에 되지 않는 지구인이라 죄송합니다요! 라데츠님'
예약 특전으로 주어졌던 머그컵



또파킹에 또노버스? 격투에 RPG를 더하라

최근 드래곤볼 게임은 대부분 대전 격투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초창기 카드를 이용한 고전 RPG 시리즈나 간혹 등장했던 플랫포머 액션 정도나 예외로 둘 법하다. 단 그간 출시된 시리즈를 같은 격투 게임으로 구분하기는 어려운데 2005년 '드래곤볼 스파킹'이 등장한 게 그 이유다.

게임은 2차원의 평면 대전 대신 TPS식 3차원 전투를 도입했다. 리메이크된 '드래곤볼 Z & Z3'와 사이드뷰 개발력을 한껏 터트린 아크시스템웍스의 '드래곤볼 파이터즈'를 제외하면 대부분 작품이 스파킹과 후속작 제노버스의 전투 시스템을 따른다.

'드래곤볼 Z 카카로트'의 전투 역시 큰 틀 자체는 비슷하다. 격투와 간단한 기탄 공격, 하늘을 나는 무공술을 활용한 대시 정도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패드를 기준으로 범퍼, 트리거 버튼을 조합해 필살기와 폼 체인지가 이루어진다.

▲ 큰 틀은 스파킹, 제노버스에서 이어진 격투 시스템을 잇는다

강력한 피해를 주는 필살기가 난무하니 회피와 가드는 중요해진다. 이런 부분은 기존 대전 게임을 고스란히 닮았다. 또 순간이동을 통해 공격하는 적의 뒤를 잡아 연계기를 억지로 집어넣는 것도 가능하다. 가드를 뚫는 가드 브레이크 필살기로 스턴 상태로 만들어 무차별 공격도 가능하다.

여기까지 보면 스파킹 시리즈로 대변되는 드래곤볼식 격투 게임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 할 수 있다. 호쾌한 전투는 가능하지만, 순발력이나 콤보 등 파고들 요소가 많은 격투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라면 지레 손사래를 칠 법하다.

하지만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이 대전 격투에 RPG 요소로 곳곳을 가다듬었다. 가드 깨기 정도를 제외하면 따로 익혀야 할 복잡한 관리 시스템은 없다. 필살기를 사용하기 위해 조합 버튼을 누르면 잠시 시간이 느려지는데 이때 여유롭게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또 체력을 회복하는 아이템을 미리 등록해두고 쓴다거나 도저히 클리어 불가능한 적을 만났다면 잠시 뒤로 가 레벨을 좀 올려도 되고 스킬을 업그레이드해도 된다.

격투 게임의 요소도 희박한 게 자연스러운 연계를 통해 반격조차 불가능한 콤보를 욱여넣는 식의 플레이는 없다. 억지로 집어넣는 콤보보다는 꿋꿋이 필살기만 넣어도 되고 멋지게 적 근처로 가 격투 공격을 펼쳐도 된다.

▲ 전투 자체는 위의 제노버스와 비슷하지만

일단 가하는 대미지가 숫자로 뜬다. 별거 아니지만, 이거 하나로 RPG 느낌이 많이 나는데 초반 10단위 들어가던 피해량이 엔딩 후에는 만 단위로 올라간다. 성장에 따라 화끈하게 오른 대미지와 넉넉한 체력 및 기력. 그것만으로 격투 게임 특유의 흐름은 희석된 셈이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대략 '파이널 판타지 15' 정도에 '드래곤볼 스파킹' 시리즈의 옷을 입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이처럼 필살기 활용과 아이템 사용, 서포트 개념의 2인이 함께 배틀에 참여하는 형태로 파티 기반 RPG로의 형태는 잘 드러냈다. 여기에 그간 대전 액션에 사용됐던 틀을 가져오며 드래곤볼만의 속도감 있는 전투까지 구현됐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격투와 순간적인 이동, 그리고 화끈한 필살기까지. 가히 RPG로 대전의 맛을 살렸다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드래곤볼의 전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 바로 솔더뷰 형태의 3인칭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 다양한 스킬 사용은 RPG 느낌을 낸다

일부 원작 구현의 부분에서도 합격점을 주고 싶은데 원기옥이나 계왕권을 쓸 때는 초사이어인 형태가 잠시 풀리는 형태로 구현된다. '드래곤볼 슈퍼' 애니메이션에서의 설정 논란은 있지만, 원작 '드래곤볼 Z'에 나왔던 설정을 전투 장면에서까지 그대로 구현한 부분 역시 지나칠 수 없는 즐길 거리다.

다만 단점이 없지는 않은데 간혹 지상 전투 중 바닥이 파괴되어 파편에 화면이 보이지 않는 등의 시점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또 키보드 조작이 가능하기는 한데 설정란에 있는 조작 체계를 보고 시도조차 겁이 날 정도였다. 이 글을 보고 PC에서 플레이하고자 하는 팬이라면 미리 꼭, 무조건, 절대로 게임 패드를 챙겨두자.

▲ 초사이어인 폼 중 원기옥을 쓰면 자동으로 잠시 변신이 풀린다



성장의 묘미는 어디에 있나요? 스킬에는 있네요

이번에는 RPG적 특징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뤄보자. 사실 전투 자체는 격투 게임의 옷을 입었지만, 게임 곳곳은 JRPG를 플레이하는 느낌을 준다. '개발진이 밝힌 장르 자체가 액션 RPG이니까'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으니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RPG가 가진 성장과 단방향적인 스토리 따라가기가 게임의 핵심이다.

게임에서 주역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경험치 획득을 통한 레벨업, 다른 하나는 요리, 마지막으로 스킬 강화다.

사실 경험치는 중간 보정이 꽤 많이 들어오는데 이게 스토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오반이 체력이 다해 쓰러지기 직전, Z 전사를 구출하기 위해 등장한 오공이 선두를 먹여 살리는 이벤트가 있다.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나면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원작 설정에 따라 오반은 복귀 후 경험치를 획득한다.

▲ '선두다 경험치다, 오반아' 곳곳에 레벨업 포인트가 있어 레벨 압박은 적은 편이다

이런 경험치 추가 구간이 게임에 꽤 빈번하게 등장한다. 거기다 '아직 레벨이 부족하네? 그럼 올려줄게'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후한 경험치가 주어진다. 스킬이 부족하고 전투 노하우가 없는 게임 극 초반을 제외하면 보스전을 포함해 전투 난이도 자체가 높지 않은 편. 여기에 추가 경험치까지 곳곳에서 주어지니 일명 레벨 노가다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요리는 일정 시간 버프와 영구적인 스탯 증가 효과가 있다. 대식가로 알려진 사이어인들 특유의 식사 연출도 재미있게 구현되기는 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스킬이다. 전투 중 사용하는 4종류의 필살기와 전투 중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해 전투를 진행하는 폼 변경 등은 직접 설정하고 강화해야 한다. 일부는 스토리만으로 획득할 수 없으니 수행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얻어야 한다. 성장의 키는 이 필살기 획득 및 강화에 있다.

더불어 실제로 전투에 참전하는 주역뿐만 아니라 원작에 등장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플레이어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캐릭터들은 소울 앰블렘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토큰화되고 이를 적절히 배치해 추가 능력치를 얻는 시스템이다. 스킬 트리마냥 이어진 보드 위에 캐릭터 앰블렘을 올려놓으면 요리, 전투, 추가 재화 획득 등 다양한 부가 능력을 얻는데 이게 캐릭터들의 관계에 따라 추가된다.

한때는 오공의 라이벌이자 이제는 든든한 동료인 천진반, 피콜로, 베지터를 함께 놓으면 '어제의 적은 오늘의 전우'라는 이름의 보너스가 발동되는 식이다. 원작 팬에게는 캐릭터 간의 관계를 확인하고 조합해보며 색다른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다.

▲ 시리즈의 다양한 캐릭터로 버프를 주는 커뮤니티 보드
피라후의 부하 말하는 개 슈와 거북 하우스의 거북이 말하는 동물로 묶이는 등 다양한 조합이 있다

게임의 핵심이 원작을 감상하는 데 있는 만큼 성장에 대한 큰 압박 없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점은 장점이다. 문제는 게임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으니 다양한 성장 요소가 그다지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낮은 난이도는 전투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보스전이야 원작의 이벤트와 컷신을 적절히 활용하며 최고의 재미를 주지만, 일반적인 잡졸 전투는 지겨움과 귀찮음의 연속이다. 전투는 맵에 떠다니는 적과 만나면 로딩 없이 맵에서 바로 진행되는 인카운터 방식으로 시작된다. 이 적들은 게임 내내 똑같은 적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메크 성의 프리저 부하들 정도야 다를 뿐 지구에서 만나는 일반 적들은 초반 등장한 해골 로봇과 재배맨이 색과 레벨만 달라진 채 게임 후반부까지 등장한다. 전투 자체도 색다를 게 없을뿐더러 레벨을 올리는 데 큰 도움도 되지 않으니 싸움을 점점 할수록 피하고만 싶어진다.

물론 원작 자체가 이런 비주역 적들과의 전투가 손에 꼽을 정도인 만큼 다양한 적을 구현할 필요가 없었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중후반까지 해골 로봇이 등장하는 것 역시 실제 드래곤볼 세계와 어울리는지는 의문이다. 이왕 게임 종반까지 인카운터로 적들을 만나게 했다면 시대상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더욱 다양한 적들과 새로운 패턴이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레벨 2로 싸웠던 해골 로봇은 레벨 10때도, 프리저 전 후에도, 레벨 70때도 만난다



재료는 완벽한데 제대로 요리 못한 오픈 월드

이제는 대작 RPG의 기준이 된 것만 같은 세미 오픈 월드. '드래곤볼 Z 카카로트' 역시 이런 자유로운 어드벤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에 따라 보드게임이나 특정 구역, 혹은 가상의 지역을 배경으로 했던 드래곤볼 게임과 달리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게임 속 세계관에 맞는 거대한 지역을 그대로 구현했다.

부르마의 부름을 받아 서쪽 도시 캡슐 코퍼레이션에 들러 이야기를 듣고 카린탑에 들러 선두 재배법을 배운다. 거북하우스에서는 천진반을 찾아 떠난 금발의 런치를 데려달라는 무천도사의 퀘스트도 받을 수 있다. 드래곤볼 속 세계가 구현된 대륙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탐험하는 요소는 그간 원작 팬이라면 꿈꿔왔을 환상적인 체험이다.

▲ 그 어떤 드래곤볼 게임과 비교해도 가장 디테일한 맵 구성

하지만 어디까지나 팬으로서의 이야기지 자유도가 높은 서구권 RPG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맵 자체는 역대 최고라지만 이는 지난 시리즈와 비교한 예일뿐 할 수 있는 게 딱히 많지 않다. 몇 개로 쪼개진 지역 내 도시에는 아이템 구매와 요리를 만들어주는 상점 정도가 전부이며 그마저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 딱히 필요하지 않다.

원작 스토리 진행 중간마다 이루어지는 서브 퀘스트는 스토리 진행을 멈추면서까지 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 이들 서브 스토리 대부분은 특정 구역으로 이동, 전투, 보고. 혹은 특정 구역으로 이동, 아이템 획득, 보고 등 배달과 전투에 그친다.

원작 스토리 외에도 프리저의 형 쿠우라, 슈퍼 사이어인의 자질을 지닌 브로리, Z 이후 정사로 편입된 '드래곤볼 슈퍼'의 내용 등 게임 플레이 중, 혹은 엔딩 후 다룰 콘텐츠가 드래곤볼 시리즈에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모두 제쳐놓은 채 계왕의 애완 원숭이 바부르스가 먹을 과일 조달을 위해 대륙 전체를 돌아다닐 필요가 있었을까. Z 전사의 무공술은 고작 당일 빠른 배송을 위해 배운 게 아닐 텐데 말이다.

▲ 뭔가 거창한 이벤트 같지만 프리저 수하 요리사에게 재료 배달하는 게 전부다

게임 발매 전 강조했던 놀 거리도 GTA나 용과 같이 급에는 한참 못 미친다. 손오반 야구는 배팅볼로 홈런 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운전면허와 레이싱은 서브 퀘스트 정도로 그친다. 거대한 맵에 할 일은 손으로 꼽히니 새로운 경험보다는 탐험을 위한 탐험이 반복될 뿐이다.

서브 퀘스트는 한정된 시간에서만 클리어할 수 있고 과거 시간대로 돌아가 이를 플레이할 수 있는 타임머신 시스템은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이루어질 예정이다. 완벽 클리어를 노린다면 결국 스토리를 뒷전에 두고 휑한 세계를 반복해서 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로딩창은 지역 이동마다 반복되고 콘솔 버전은 그 시간마저 꽤 길다. 개발진이 업데이트로 로딩시간 단축을 약속했을 정도로 참고 넘길 만한 수준은 아니다.

▲ 운전면허 정도가 애니메이션 속 오리지널 이벤트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나마 드래곤볼을 모아 소원을 이루는 콘텐츠 정도가 있는데 이 역시 과거에 등장한 적을 다시 불러 이겨버리는 천인공노할 이야기다(물론 승리 후 다시 죽이지 않고 설득하는 선에서 그친다지만).

맵에서 해야 할 또 다른 '업무'는 바로 오브를 모으는 일이다. 맵에는 소닉 시리즈의 링처럼 다양한 오브가 떠 있는데 이를 사용해 스킬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 전투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맵 이동이 자주 있는 만큼 꾸준히 획득하게 되는 편인데 '드래곤볼 Z 카카로트'의 이상한 이동 시스템 덕에 뇌와 손이 따로 노는 일이 잦다.

▲ 드래곤볼로 살린 라데츠와 전투, 이쯤 되면 누가 악당인지 헷갈린다 (역시 대마왕)

게임의 공중 이동은 왼쪽 스틱과 R1, R2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오른쪽 아날로그로 시점을 바꾸면 이에 따라 이동 방향이 결정되는 여타 오픈 월드 게임과 달리 이동은 왼쪽 아날로그, 시점은 오른쪽 아날로그, 상승은 R1, 하강은 R2라는 방법으로 조작해야 한다. 움직임에 필요한 버튼이 늘어난 만큼 능동적인 이동은 어려워진 셈이다.

맵에서 고속 이동을 하며 적과 부딪히면 약한 적은 전투 없이 바로 격파를, 기타 적은 전투 시작 전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동이 이처럼 부자연스럽고 맵에서는 따로 록온도 안 되니 귀찮은 전투는 피하기란 도망밖에 없다. 그렇게 초사이어인들이 재배맨을 피해 다니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원작을 완벽하게 구현한 맵과 자유롭게 세계를 날아다니는 오공과 친구들. 여기에 매력적인 스토리가 DLC로 추가될 필요가 있다.

▲ 나는 재미가 있는 무공술이지만 메인 콘텐츠로 밀기엔 무리가 있다



다 부족해도 보스전만 보면 '잘 샀구나' 싶네

앞서 여러 단점을 나열했지만 그럼에도 드래곤볼은 '갓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바로 역대급 연출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따라가는 메인 스토리는 리얼타임 랜더링과 컷신, 동영상, 전투 내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져 나간다. 이들은 마치 하나의 애니메이션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단순히 '셀 셰이딩을 통해 만화같이 만들어졌다'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연출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과감한 획으로 역동감을 더하고 비극적인 장면에서는 짙게 깔리는 음악과 함께 비장함을 더한다.

어디에 힘줄지 알고 필요한 데 확실하게 투자한 모양새다. 영 아쉬웠던 연출은 현대적으로 각색도 했고 특정 구도는 아예 원작에서 봤던 그 장면 그대로 만들었으니 더 할 말이 있을까.

일단 이 부분은 단순히 말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우니 영상을 보면 더 쉽게 이해될 듯하다.

▲ 초사이어인으로 각성한 카카로트, 손오공과 프리저의 대결

실례로 인조인간 16호가 셀에 의해 파괴되고 오반이 분노해 각성하는 장면부터 셀을 제거한 후 트랭크스가 미래로 돌아가는 셀전 마무리까지 38분 30초가 걸렸다. 이 중 전투는 고작 7분이며 이동과 탐색 없이 이벤트가 연이어 펼쳐졌다. 실제로 보스전은 전투에서 다양한 원작 장면을 구현한 컷신이 펼쳐지는 만큼 30분 이상을 스토리 연출에 쏟아낸 셈이다.

맵을 탐색하며 느낀 공허함과 로딩의 답답함 등은 보스전을 감상하며 눈 녹듯 사라진다. e북 구매로 만화책 다시보기가 간절해질 정도로 완벽한 연출은 감히 기자 따위가 스킵 버튼에 손을 올려놓을 수도 없을 황홀함을 선사한다.

▲ 마인부우전은 꼭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프리저전과 셀전 모두 놓칠 수 없을 정도

다만 보스전을 제외한 연출 곳곳은 나름의 가감이 이루어졌다. 드래곤볼 RPG에서 꽤 세세하게 다뤄졌던 뱀의 길이나 나메크성으로 향하는 오공의 수련 등은 과감하게 삭제됐다. 드래곤볼 Z 이전, 피콜로 대마왕과의 전투까지 이어지는 오공의 이야기는 과거 역시 추억이라는 수집 형태로 등장하는데 단편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드문드문 삭제된 부분이 꽤 많고 Z 이전의 이야기도 다루지 않는 만큼 원작을 보지 않았던 팬이 드래곤볼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스토리 부분에서는 원작 팬들이 기억할만한 요소들에 집중했기에 전체적인 스토리 텔링 부분에서는 약점을 드러낸 셈이다.

전투 연출과는 달리 일반 지역에서의 그래픽은 영 아쉬운데 캐릭터 자체는 잘 구현됐지만, 맵 바닥이나 암벽 등의 퀄리티는 처참할 정도로 허술하다. 물론 게임 자체의 권장 사양이 여타 콘솔 이식 게임에 한없이 낮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 미니게임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뱀의 길 여정

▲ 빼어난 캐릭터 디자인과 달리 배경은 너무 밋밋하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해야 합니다

서두에 잠시 언급했듯 게임은 어릴 적 보던 만화 드래곤볼에 대한 감성을 자극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작품 내내 이를 자극한다. 드래곤볼과 함께 자라온 이로서 요 며칠 '드래곤볼 Z 카카로트'를 즐기며 게임 실행 전 이렇게 멋진 작품을 즐기게 해준 반다이남코와 사이버커넥트2에 감사 묵념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 원작 팬의 마음을 이해한 다양한 구성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작을 즐긴 이에 한한다. 앞서 설명했듯 게임은 격투로도, RPG로도 완벽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오픈 월드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고 원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는 못 미친다.

문제는 '드래곤볼 Z 카카로트'가 단순히 기존 팬의 심장을 긁어내 팔아내는 작품 따위에 그쳐서는 안 될 작품이라는 점이다. '드래곤볼 Z'의 뒷이야기를 다룬 만화 - 애니메이션 미디어 믹스 '드래곤볼 슈퍼'는 원작 설정의 변경과 기대에 못 미치는 스토리 전개로 혹평받았다. 하지만 작품은 드래곤볼 IP에 관한 관심과 관련 라이선스 상품들의 판매량을 Z 이후 다시금 전성기로 끌어올렸다.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다시 찾아온 흥행을 과거 작품에 관한 관심으로 돌려놓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원작을 즐기지 않은 팬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구성에 그쳤다는 점은 개발사와 출판사 모두에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 작품의 만듦새는 뒤로하고 일단 흥행에는 성공한 '드래곤볼 슈퍼'

이런 아쉬움은 드래곤볼을 사랑하는 팬 역시 마찬가지다. 감탄사를 내뱉는 장면에 단점도 잊고 플레이하는 이 작품을 그저 원작을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사실 완벽하지 않은, 아니 단점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쉬이 추천할 수는 없지만,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예외로 두고 싶다.

단점이 도드라지면 보스전까지 참고 플레이하고 원작을 모른다면 지금 당장 만화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챙겨보라고. 단점을 잊고 원작에 대한 경외감에 즐길 수 있는 게임. 그렇기에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IP 게임의 한계를 느낌과 동시에 한계를 넘어서는 게임이라 부르고 싶다. 그게 명작 '드래곤볼'이 가지는 힘 아닐까.


다른 건 모르겠고 기사가 올라가면 일단 드래곤볼 컬러판 e북을 사러가야 겠다. 지금 안 보면 미칠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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