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5월에 출시된 '오큘러스 퀘스트' 이후, 좀처럼 확산되지 않던 VR의 보급이 가속화되고 있다. 오큘러스 퀘스트는 6DoF를 지원하는 스탠드 얼론 VR HMD로, 기존의 하이엔드 VR HMD와 달리 고사양의 PC도, 별도의 트래킹용 센서도, 케이블 연결도 필요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VR 콘텐츠만 플레이할 수 있는 모바일 기반 VR HMD들과 달리 오큘러스 퀘스트는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임에도 오는 22일에 출시될 예정인 밸브의 최신작 '하프라이프 알릭스' 또한 구동할 수 있는 스펙을 자랑한다. 물론 이땐 별도의 케이블 연결이 요구되지만 말이다.

많은 VR HMD 중에서 오큘러스 퀘스트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2019년 말에 진행된 오큘러스 커넥트6 행사를 통해 VR 업계의 성장세를 유추해볼 수 있는 대략적인 데이터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오큘러스는 해당 행사를 통해 VR 소프트웨어 매출이 1억 달러(한화 약 1,198억 원)를 넘어섰으며, 그중 2,000만 달러(한화 약 239억 원)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큘러스 퀘스트용 소프트웨어 매출에서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VR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벌써 4년가량이 지났으므로, 전체 VR 소프트웨어 매출의 1/5에 달하는 수치를 1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단일 VR HMD로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VR 게임, 2019년 기점으로 '전환점' 맞이했다

VR 헤드셋의 판매량 지표와 달리 소비자용 VR 타이틀의 매출은 쉽게 관측하기 어려운 편인데, 전문가들은 VR 소프트웨어의 매출을 추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앱 스토어에 등록된 리뷰 건수를 확인하는 방식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VR 투자사인 The VR Fund의 창업자 티파탓 첸나바신(Tipatat Chennavasin)은 스팀, 오큘러스 스토어, PSN과 같은 주요 VR 앱 스토어에 등록된 리뷰를 통해 대략적인 VR 소프트웨어의 판매 데이터를 도출했다며, 이와 관련된 수치를 자신의 기고를 통해 소개했다.



먼저 오큘러스 스토어 소프트웨어 판매량 지표를 보자. 2019년을 기점으로 매출 수치가 10배 이상 크게 뛰어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이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시점은 오큘러스의 신규 HMD인 오큘러스 퀘스트와 오큘러스 리프트S의 시장 도입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신규 HMD 기기의 도입으로 '아스가르드의 분노', '비트세이버'와 같은 히트작의 판매량이 덩달아 상승했고, 이러한 모든 반응이 오큘러스의 소프트웨어 매출 지표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신흥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VR 소프트웨어 타이틀이 매출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 원)에 도달하는 시기를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100만 달러 매출을 돌파한 VR 게임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 타이틀이 서비스되는 플랫폼이 건강하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개발자들의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 VR 타이틀은 40개에 채 미치지 못했지만, 2020년 현재 기준으로는 약 100개 이상의 타이틀이 100만 달러 매출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일정 기준을 달성한 이 100개의 타이틀 중 최상위권에 위치한 타이틀이 대부분 인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이다. VR 게임 업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비트세이버'의 개발사 하이퍼볼릭 마그네티즘(현 비트게임즈) 역시 인디 개발사였지만,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백만 장의 타이틀을 판매하며 2,000만 달러(한화 약 24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VR은 과거 시장을 지배했던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새로운 콘텐츠로 가득 차 있다. 오큘러스를 필두로 다양한 기업들이 VR HMD의 보급을 추진하고 있는 지금, 초기 개발 예산이 적어 마케팅 부분에 큰 금액을 할애할 수 없는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VR은 블루오션과 같은 높은 성공 가능성을 품고 있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플랫폼에 출시되며 '메가히트'를 기록한 비트세이버


성공한 VR 게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잘 팔리는 VR 게임들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 모든 VR 플랫폼을 통들어 매출 상위 20위 권에 이름을 올린 게임들의 리스트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리스트 포함된 게임들은 모두 400만 달러(한화 약 47억 원)의 이상의 매출을 올린 작품들이다.


1. VR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상호작용을 극대화한 게임

20개의 타이틀 중에서도 특히 큰 성공을 거둔 게임들은 VR 플랫폼 전용으로 개발된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양손에 들고 사용하는 모션 컨트롤러가 필수적이며, 모두 VR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상호작용을 핵심 요소로 내세우고 있다. VR 태동기로 불리는 2016년에 출시된 애리조나 선샤인, 잡 시뮬레이터, 로보 리콜은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며, 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스테디셀러로서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게임의 명맥은 2019년 말에 출시된 샌드박스형 VR FPS 게임 '본웍스'가 이어 받았다.



2. 원작 IP를 활용한 VR 게임

두 번째로 눈에 띄는 부분은 원작 게임의 탄탄한 IP파워를 이용한 VR 게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 슈퍼핫, 프레디의 피자가게, 언틸던, 보더랜드2, 폴아웃4와 같은 게임들이 이에 해당한다. VR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유저들은 새로운 타이틀에 도전하기보다 안전한 IP의 힘을 믿는 경향을 보였다. 오는 22일에 출시될 예정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또한 유명 IP를 토대로 유저들의 기대를 모으는 VR 게임 중 하나다.



3. 여러 플랫폼에서 플레이, '크로스 플랫폼' 지원 타이틀

세 번째 특징은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는 타이틀이 많다는 점이다. 상위권 게임들이라 할지라도 출시 초기부터 모든 플랫폼을 동시에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초기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 후, 플랫폼 확장으로 신규 유저를 꾸준히 유입시켰기에 오랫동안 살아남고, 매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VR 게임 개발을 생각하고 있는 개발자들에게 잠재적인 유저수 확보를 위한 크로스 플랫폼 방식의 검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2020년 VR 게임 업계,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성공한 VR 게임들의 몇 가지 공통점을 언급했지만, 꼭 기억해둬야 할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바로 이러한 '히트작'들이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 각국의 개발자들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트세이버는 체코에서, 애리조나 선샤인은 네덜란드에서, 잡 시뮬레이터는 미국, 슈퍼핫은 폴란드의 인디 개발사가 만든 작품이다. 비디오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과 달리 긴 역사나 선례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만큼, VR 게임의 가능성은 2020년에도 뜻을 가지고 있는 누구에게나 넓게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슈퍼데이터가 지난 2019년에 공개한 자료에는 오는 2022년까지의 VR/AR/MR 시장의 성장 예측 수치가 담겼다. 해당 자료에서는 VR 시장의 규모가 2022년엔 2019년 수치의 약 두배 이상 크게 성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물론 해당 수치는 게임 이외에도 여러 기업이 설계 및 제조 프로세스에서 사용하기 위한 공간 컴퓨팅, 시선 추적, 제스처 인식 등의 여러 VR 기술의 성장 추이를 모두 고려한 것이다.


'오큘러스 퀘스트'를 시작으로 HTC의 '바이브 코스모스', 밸브의 '인덱스', 그리고 소니가 곧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VR2'까지, 2020년은 1세대 VR이 시작된 지난 2016년에 이은 두 번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여러 기업들이 경쟁하듯 내놓은 신형 하드웨어들의 공세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VR 기기의 보급률이 높아진 시점이기에 , 2020년 한 해 동안 VR 업계에 불어올 새로운 변화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층 향상된 VR 기술들이 반영된 새로운 모습의 VR 게임들이 2020년에는 유저들의 VR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