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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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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VR 기기를 사서라도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해야 하는 5가지 이유

강승진 기자 (Looa@inven.co.kr)

'이게 진짜 VR 게임이다. 그리고 진짜 하프라이프다.'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해보자. 이 게임 하나만을 플레이하기 위해 VR 기기를 사도 될까? 이렇게 묻는다면 무조건 YES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플레이를 위해 VR 기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단 10분이면 충분하다.

눈에 보이는 작은 물건, 이동, 그리고 지역 구성까지 어떻게 해야 하프라이프라는 세계를 손가락 두 개 말아낸 작은 눈앞 렌즈에 옮겨다 놓을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아니, 누가 봐도 깊게 고민했고 또 고민했다.

강렬한 첫인상만이 아니다. 게임은 하면 할수록 다음에 어떤 게 나올지 기대케 한다. VR에서는 그 흔하다는 멀미도 잊고 5시간 남짓을 내리 즐겼다. 안타까운 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든 리뷰를 읽은 독자든, 해외 리뷰어들의 평가를 점수로 퍼 나르는 사람이든, 단지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이 격한 감정을 오롯이 느끼지 못한다는 게 한탄스러울 뿐이다.

최대한 글과 이미지로 게임을 옮기지만, 이를 계기 삼아 어떻게든 직접 해보길 권한다. 심하게 다툰 친구가 VR 기기를 가지고 있다면 당장 화해하고 기기를 가진 사람 얘기를 들었다면 어서 그가 좋아하는 선물을 알아봐라. 이 게임은 그럴 가치가 있고 여기 그 이유가 있다.




1. 집고, 던지고, 쓰고, 때리고.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물리 엔진

뒤통수에 밸브를 꽂은 민머리 아저씨 로고가 지나가고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신작 소식만큼이나 오랜 기간 잊혔던 17번 지구다. 배경은 하프라이프2 시작으로부터 5년 전. 그간 조력자였던 알릭스 밴스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VR 기기를 눌러 쓴 플레이어를 대신하게 된다.

지구 한복판은 목을 활처럼 꺾어야 겨우 끝이 보일락말락 하는 거대한 콤바인의 건물이 자리 잡고 순찰 로봇들이 반군을 찾아 배회한다. 압도적인 스케일에 잠시 놓았던 정신을 벨소리가 다잡아준다. 화상 통화의 주인공은 팬들에게 익숙한 일라이 밴스다. 그의 안내와 함께 게임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만, 그냥 정해진 이야기대로 따라가기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하다.


지붕이 맞닿은 높은 건물 위에 똑 떨어진 주인공 주변에는 낡은 아파트에서 볼법한 갖가지 물건들이 굴러다닌다. 그리고 이런 물건들은 플레이어의 두 손에서 자유롭게 놀아난다. 보통 물리 엔진의 대단함을 설명할 때 `이것도 돼?`라는 말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데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그 어떤 게임보다 이 질문이 무조건반사로 튀어나온다.

쉽게 카드 날리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검지와 중지, 엄지로 카드를 집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손목을 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퉁기며 손을 떼어보자. 그럼 카드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날아간다. 이런 물리 법칙이 하프라이프: 알릭스에 적용되어 있다.

선반 위에 있는 물건을 양손으로 헤집어 밀어내고 주요 아이템을 올려둘 수도 있고 캔을 찌그러트리고 라디오의 주파수를 조정하는 등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물체는 거의 집어서 가지고 놀 수 있다. 마커를 들고 벽에 마음껏 낙서하고 지워도 된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공중에 떠다니는 플레이어의 손에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 바닥에 널브러진 오브젝트 하나마저도 가지고 놀 수 있다

물리 엔진 탓인지 덕인지 초반 30분은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것도 될까'라면서 이 물건 저 물건을 가지고 놀다 보니 그냥 지나칠 길도 세 번 네 번 다시 오갔으니 말이다.

물리 법칙은 그저 물체 하나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물체와의 작용은 당연하고 심지어는 적과의 작용도 이루어진다. 장갑으로 둘러싸인 헤드크랩의 사체는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 던져 적을 비틀거리게 할 수도 있다. 뜯어낸 2X4 나무판자를 날아오는 헤드크랩의 움직임에 맞춰 막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좀비들이 팔을 휘두르며 퉁긴 물체에 피해를 보는 건 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적과의 전투라는 행위에 물리 법칙을 활용할 수 있으니 게임 플레이는 더 다양해진다. 신체 움직임을 인식하는 VR 게임답게 몸을 움직여 은엄폐하는 플레이에 더해 갖가지 물건들을 활용해 게임을 더 쉽게 풀어나갈 수도 있다.

▲ 이게 특별한 무슨 방패 같은 게 아니다. 그저 바닥에 굴러다니는 판자도 훌륭한 방어수단이 된다



2. 내 손이 아니라 알릭스 손이야, VR 맞춤 조작

시작부터 쏟아지는 적과 이를 녹여내듯 소낙비처럼 튀어져 나오는 탄피. 하프라이프 시리즈 자체가 이런 게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투는커녕 블랙메사 연구소 출근길만도 온종일 걸렸던 1편을 기억해보면 알 터.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그보다 더하다. 그간 한정된 무기수는 이번 작품에서 더 줄었는데 처음 주어지는 피스톨, 그리고 각각 권총 모양에 산탄총과 기관총의 특징을 가진 샷건, SMG까지 총 3개다. 그마저도 콤바인 SMG는 중반 이후에야 얻게 되니 꽤 오래 무기 2개로 플레이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야 적은 무기수가 플레이의 다양성을 헤치는 요인일 테지만, 하프라이프: 알릭스에서는 유기적으로 다음 플레이를 잇는 수단 중 하나로 쓰인다.

컨트롤러를 쥔 플레이어의 두 손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데 무기 사용은 오른손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조이스틱을 꾹 누르고 손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그에 맞는 무기로 자동 전환된다. 사실 이런 무기 전환은 게임 플레이에서 중요한데 게임 전체에서 이 오른손에 무기를 들지 않아야 할 순간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 짐 나르고 버튼 누르고 당기고 올리고 알릭스의 두 손은 무기 없어도 할 일이 참 많다

가벼운 종이 상자 정도야 왼손으로 들면 되지만 길을 막은 커다란 드럼통은 두 손으로 잡아 치우지 않으면 꿈쩍도 않는다. 또 한 손으로 문을 열고 그 틈에 다른 손을 밀어 넣어 장애물을 꺼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전투에서도 수류탄을 쓰거나 엄폐물을 세우는 등 양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 무기 수가 많다면 이를 정하다가 두들겨 맞을 게 뻔하다.

그렇다고 무기 3개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없다. 피스톨은 비교적(비교적이다. 총알은 언제나 부족하다) 넉넉한 탄약 수급과 업그레이드를 통한 강화로 언제 어디에서나 쓰기 좋고 샷건은 넓은 범위에 강력한 피해를 주니 빠르게 움직이는 적이나 중장갑 보병을 처리하기 좋다. 다수의 적을 잡을 SMG가 중후반에 등장한다고 했지만, 그전에는 맵 자체가 좁고 등장하는 적이 적은 하수구가 주요 무대니 크게 아쉽지 않다. 게임 디자인 자체가 필요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무기만을 취하도록 세심하게 구성됐다.

상황이나 이야기 전개와는 관계없이 그저 수만 많은 무기를 때려 넣는 게임은 많다. 하지만 맵 디자인과 내러티브, 그리고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를 위한 적절, 아니 정확한 무기를 배분하는 게임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이런 구성은 단지 구상이 아니라 꾸준한 고민과 분석에서 나왔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 교체에 딱 적합한 수의 무기와 그에 따른 인터페이스

게임의 흥미를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중력 장갑이다. 게임의 주력 동료인 러셀이 자신의 이름을 따 `러셀`이라고 부르는 이 장갑은 기존 시리즈의 중력건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양손 컨트롤러에 달린 트리거를 당기면 움직일 수 있는 오브젝트를 선택하는데 이때 총 쏘듯 손목을 튕기면 오브젝트가 중력 장갑 쪽으로 날아온다.

이렇게 중력을 이용한 오브젝트 활용은 먼 거리에 있는 아이템을 줍는 데도 유용하지만 전투에서도 빛을 발한다. 폭발하는 가스통을 중력장갑으로 끌어들이며 총을 쏘거나 급하게 방어용도로 쓸 물건을 집어와도 된다. 이는 물리 엔진과 맞물려 대개 생각하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 이동을 많이 안 해도 물건을 잡게 한 시스템인데 설정을 입혀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중력 장갑


3. 멀미 그게 뭐예요, 울렁증까지 잡아낸 VR이 있다?

VR 게임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는 멀미와 피로도다. 많은 VR 게임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작부터 게임 설정까지 다양한 부분을 고민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이를 위한 해답을 어느 정도 제시했다.

우선 제한적인 자유 이동이다. 일반적인 1인칭 시점의 게임은 마우스의 시점 이동과 조이스틱(혹은 방향키)의 조작으로 캐릭터가 움직인다. 하지만 VR에서 이런 움직임은 플레이어가 인식하는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곧 어지러움으로 이어진다.

스카이림 VR이나 폴아웃4 VR은 이동할 때 화면 좌우를 검게 가려 시야각을 좁히는 방식으로 멀미 현상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동 자체가 빠르게 진행되니 시야각을 가리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자유 이동의 속도를 아주 느리게 설정했다. 달리기 버튼을 구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느림은 답답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리즈 특유의 호러 특성과 맞물려 언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 굴러다니던 여행 가방을 방패 삼아 걸으면 긴장감 6배

또 맵 자체의 구성도 크게는 전방을 향해 일직선으로 길게 구성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구석구석 꺾어지는 모퉁이가 짧게, 매우 자주 등장한다. 긴 직선 구간을 느린 속도로 걸어가는 구간을 최소화했다는 말이다.

게임 분량이 15시간 정도로 기존 VR 게임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긴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특성상 구간 구간 나뉜 챕터도 각각이 길게 이어져 있다. 멀미 유발 현상이 심해 긴 시간 플레이할 수 없다면 이를 쪼개서 플레이하게 되고 온전한 게임 플레이를 경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뭐 사실 멀미가 심해도 자꾸 생각나는 게임 장면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들겨가면서라도 할 테지만 말이다.

▲ 이 짧은 구간도 'ㄹ'자로 굽이굽이 꺾어 지루한 구간을 최소화

그리고 빠른 조작이 가능하고 일반 VR 게임에서 흔히 사용되는 텔레포트 방식도 지원한다. 이동키를 누르면 위치를 지정하고 바로 순간이동 하게 된다. 물론 하프라이프 특유의 감성은 좀 덜하겠지만.


4. 모든 건 하프라이프에서 나오고 하프라이프로 모인다, 신작하려면 꼭 해보기!

하지만 이 게임을 그냥 VR 게임의 혁신으로만 평가하기에는 하프라이프라는 이름이 울 거다. 앞서 설명한 모든 특징과 장점은 하프라이프 IP를 통해 다듬어졌다. 반대로 그 모든 요소는 결국 하프라이프를 VR로 체감하기 위한 하나하나의 장치로 쓰이고 말이다.

우선 게임은 결말까지 분기가 없는 단방향의 진행. 그리고 이를 따라 전개되는 연출 등 하프라이프 하면 떠오르는 특징을 그대로 담아냈다. 그래서 징그러워 몸서리치게 하는 외계인들의 이질적인 공포와 오브젝트를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굴리며 풀어내는 퍼즐 요소도 그대로 느껴진다.

인간과 유사한 모습에 중장갑이나 로봇으로 대변되는 콤바인 병사야 좀 덜하지만, 피떡이 붙어있는 헤드 크랩이나 장기자랑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좀비. 그리고 에일리언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끈적끈적한 배경은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실 화면을 통해 보는 것보다 더 가까운, 코앞에서 이를 본다는 게 더 끔찍하게 다가오니 '고스란히'라는 표현이 썩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 징그럽고 갑작스러운 무언가로부터 만들어지는 특유의 공포 분위기는 여전하다

심지어는 회복하는 방법마저 끔찍하다. 손을 올려놓으면 체력을 가능 한도 내에서 가득 채워주는 헬스 충전기는 별도의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이게 개미귀신 유충이 담긴 거대한 통인데 꾸물거리는 유충과 체력을 채우기 시작하면 유충을 짜내 그 즙으로 체력을 채우는데 그 모습이 매우 그럴듯하게 표현된다. 이런 건 그럴듯하지 않아도 될듯한데 그 탓에 체력을 채울 때 눈을 질끈 감아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문 뒤편, 등 뒤 배관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몬스터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접근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몸을 돌려야 하니 일반적은 FPS 이상의 공포감을 체험하게 된다. 멀리서 들려오는 꾸에엑 소리에 잔뜩 쭈그려 앉은 자세로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은 아마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을 테니 방문은 꼭 잠그고 플레이하자.

▲ 애벌레로 회복하기 극혐

퍼즐 자체의 수는 많지 않지 않고 마땅한 힌트가 없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풀고 나면 머리를 띵 맞은 듯 논리적인 구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힌트가 곳곳에 존재하긴 하는데 게임 내에서 이를 명확하게 구분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점은 소스 엔진에 이어 개량된 소스 엔진2를 활용한 밸브 개발진의 특색이 담긴 특징이기도 하다. 나아가야 하는 길의 작은 손잡이, 벽에 붙은 포스터, 벽화, 움직이는 출입문 등은 게임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오브젝트와 별 차이가 없게 생겼다. 눈앞에 길을 두고도 당연히 막힌 길이겠거니 하며 지나치는 일이 생긴다는 거다.

눈 뻔히 뜨고도 못 보는 셈인데 이게 논리 정연하게 풀이되는 퍼즐과 달리 지나치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때도 있다. 나쁘게 보면 억지로 플레이타임을 늘이고 혼란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감을 더 높이는 장점도 있다. 사실 실제 세계에서 출입문이 빨간빛으로 번쩍번쩍하고 중요 아이템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 여긴 어떻게 지나가나요

▲ 핸들을 찾아 꽂고 돌리면 된다. 알고 나면 이해되는데 그냥 보면 별로 티가 안 난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한 묘사는 불가능하지만 G맨과 함께 상징과도 같은 빠루, 크로우바를 집어 들고 다 때려 부술 준비가 된 지구 최강의 공학도 고든 프리맨이 짧게나마 등장한다. 이를 통해 후속작 암시와 함께 하프라이프 에피소드 1과 2의 이야기도 나름의 변화가 이루어짐이 게임에서 직접 드러난다.

덤으로 말하자면 기존 시리즈의 설정이 뒤바뀌며 기존 팬들에게는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발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프라이프1과 2의 거대한 성공. 그리고 에피소드2를 통해 지나치게 확장된 전개와 결말은 후속작을 맡을 개발진에 말로 못다 할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오랜 기간 새로운 게임 엔진 개발에 매진하며 기존 작품의 개발진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다. 어쩌면 시리즈의 전개를 위해 설정 변화는 정해진 절차였을 지도 모른다. 그 덕에 다시 한 번 하프라이프2 에피소드3, 나아가 하프라이프3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 이번엔 누군지 진짜 알려주나요? 하프라이프3에서 또 보자


5. 새 역사의 시작이냐 시대의 종언이냐, VR게임 역사의 한 페이지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기존 게임의 기준에서 본다면 하프라이프1에서 하프라이프2로 넘어갈 때 보여준 혁신적인 변화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이 게임을 평면의 모니터 화면 안에서 즐긴다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을 눈앞의 가상 공간에 옮겨놓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앞서 줄줄이 나열했듯 VR이라는 공간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갈고 닦았는데 평면의 화면에서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만큼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체험을 강조했다. 숨 막히는 전개와 폭발적인 절정. 그 과정을 함께하는 건 키보드와 마우스도 아니고 트리거 버튼으로 총을 쏘는 패드도 아니다. 이야기는 내 두 손과 중력 장갑이 이끈다. 그냥 서서 쏘고, 피하고의 개념을 넘어 시리즈에 대한 진보적인 이야기도 함축했다.

그러니 어찌 이 게임을 VR이라고 포기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간 VR 게임 시장이 기다렸던 킬러 타이틀인 셈이다. 젤다나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 알릭스의 두 손과 몸, 눈과 귀가 바로 이 게임 경험의 핵심이다

물론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총 이틀, 4번의 플레이에 나눠 엔딩까지 도달했는데 느긋하게 즐겼음에도 10시간이 조금 넘었다. 사실 언차티드 시리즈나 바이오쇼크, 둠 역시 메인 스토리 클리어가 길어야 15시간 언저리니 절대 짧다고는 못하지만, 이 게임은 하프라이프2 에피소드2 이후 무려 13년 만에 등장한 신작이다. 다음 작품의 10시간을 위해 또 13년이 걸릴 일은 부디 없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거다.

또 하나는 이런 게임이 다시 나올 수 있을지에 관한 걱정이다. 출시 첫 주말이 돼야 상세한 판매량 추이를 알 수 있겠지만,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최다 동시 플레이 인원은 43,000명 수준, 스팀 스파이 예상 판매량은 50만 장에서 100만 장 사이다.

▲ 밸브 게임 역사상 최다 수준의 인력을 투입한 게임. 지금 수치에 만족하고 있을까?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앞으로 등장할 VR 게임의 기준이 됐듯, 이 게임의 상업적인 결과는 거대 자본과 인력이 들어간 플래그십 VR 게임 성과의 기준이 된다. 밸브야 자신들의 VR 기기인 인덱스의 판매 견인도 꿈꿀 수 있어 게임 판매로 얻는 수익에 크게 목메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수익을 목표로 하는 다른 대기업들이 VR 시장에 느꼈던 기대를 꺼버릴 수 있다.

이는 곧 하프라이프: 알릭스 급의 게임은 당분간 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게임의 반응에 따라 후속작 여부가 가려질 테니 어쩌면 하프라이프 전용기기가 될 수도 있고.


어찌 됐든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가졌고 그것 이상으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멈추든 넘어서든 VR 게임의 변화는 하프라이프: 알릭스, 그 이후부터 시작이다. 자. 이쯤 읽었으면 안 할 수 없겠지? 빨리 모든 단톡방에 누가 VR 기기를 가졌는지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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