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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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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컨셉 플레이의 끝, '마운트 앤 블레이드2: 배너 로드'

정재훈 기자 (Laffa@inven.co.kr)


⊙개발사: 테일월즈 엔터에인먼트 ⊙장르: 액션, RPG, 시뮬레이션
⊙플랫폼:
PC ⊙출시:3월 30일(얼리 억세스)


2008년 출시된 '마운트 앤 블레이드'는 국내에서는 크게 유명한 게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팬들이야 12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고, 한 때는 10만이 넘어가는 인원이 카페에 모였습니다만,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 게이머들은 잘 모르는 게임이죠.

게임을 슥 둘러봐도, 사실 별거 없어 보이긴 합니다. 제목처럼 말 타고 칼 들고 뛰어다니는가 하면, 복잡한 대화문이 길게 이어지죠. 그래픽은 출시 당시 수준으로도 썩 좋지 않은 편이기에 10년이 지난 지금 보면 구림을 넘어 레트로의 냄새가 납니다.

▲ 충격적이었던 1편의 초기 그래픽

그럼에도, 이 게임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게임을 파악하고, 빠져드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미친 중독성과 모드로 인한 확장성이죠. 게임 내에서 게이머는 일개 모험자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세력을 일구게 되고, 끝내는 나라를 건국해 대륙을 집어삼킬 수도 있죠. 물론,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게이머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샌드박스' 게임입니다. 가상의 중세 시대라는 거대한 모래판을 게이머 앞에 깔아준 거죠. 그 안에서 왕국을 건설할지, 도적단으로 살아갈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주물러갈지는 모두 게이머의 선택입니다. 이렇듯 수많은 플레이가 파생될 수 있는 게임의 기본 시스템에다가, 수없이 많은 모드까지 더해지니 골수 게이머들은 끝도 없이 게임을 계속할 수가 있는 거죠.

▲ '워밴드' 이후 많이 좋아지긴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말, '마운트 앤 블레이드'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인 '마운트 앤 블레이드2: 배너 로드(이하 배너 로드)'가 얼리 억세스(앞서 해보기)로 출시되었습니다. 최초 발표 이후 무려 9년. 너무나 길어진 개발 기간 때문에 듀크 뉴캠과 스타 시티즌처럼 기대와 함께 걱정도 한 몸에 받은 게임이죠.

오늘 리뷰에서는 가급적이면 전작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작과 출시 시기 차이가 매우 큰 만큼, 아예 하나의 독자적인 게임으로서 '배너 로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리뷰를 통해서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무리 없이 게임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말이죠.





중세 컨셉 플레이의 끝판왕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책임도 지시고.

'배너 로드'와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의 특징은 캐릭터 생성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게임들이 섬세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며, 이를 셀링 포인트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아예 게임 라이브 이전에 캐릭터 생성만 미리 가능하게 풀어두는 경우도 있을 정도죠. 게이머라면 두 시간 넘게 캐릭터 얼굴을 만지작대면서 '도대체 잘생김과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건가?'를 고민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배너 로드'의 캐릭터 생성은 조금 다른 의미로 복잡합니다. 외모 커스터마이징과 별개로, 캐릭터의 성장 과정을 몽땅 정해줘야 하죠. 물론 6가지 정도의 프리셋 중에서 선택하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출신 문화권과 부모의 직업과 같은 성장 배경, 그리고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시절에 주로 어떤 일들을 하면서 지냈는지까지 다 정해줘야 합니다.

▲ 내 인생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성장 과정에 따라 초반 지정 스킬이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합니다만, 이런 디테일한 설정의 목적은 스킬 분배가 아닌 '몰입의 유도'에 있습니다. 게이머는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캐릭터에 자신을 이입하게 됩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이끌고 다닌 후, 많은 인물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은 호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사람보다 말과 더 가까운, 능숙한 기마술을 가진 초원의 전사가 될 수도 있으며, 어려서부터 대장간에서 중노동을 하며 자란 피지컬 넘치는 기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비대칭 외모 설정이라는 특이한 커스터마이징 요소를 더해 놔서 어렸을 때 맞아서 코뼈가 부러졌다던가, 성격이 모나서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던가 하는 설정도 덧붙여 줄 수 있죠.


▲ 까불다가 코가 부러진 컨셉도 가능

결국, 이 과정을 통해 게이머는 '게임에서 조종할 캐릭터' 이상의 '게임 속 세상의 자신'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캐릭터에 복합적인 스토리를 부여해 몰입을 높이는 방식은 과거 '매스 이펙트' 시리즈와 같은 게임에서도 제한적으로 쓰이곤 했던 방법이지요.

그리고 이 덕분에 게이머는 게임을 하는 내내 강한 몰입 상태에 머물 수 있습니다. 비록 가상의 세계이지만,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주인공보다 어떻게 살아온지를 다 알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주인공이 훨씬 더 감정적 몰입이 쉽죠. 배너 로드는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따라가기보단 매 판 자신의 플레이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게임이기에 몰입이 강할수록 게임 플레이 가치도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처음엔 그저 '커스터마이징 되게 복잡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배너 로드라는 게임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가문'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로 인해 배너 로드에서는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 안에서 그 어떤 게임보다 다양한 컨셉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도적질로 연명하다 반대 국가에 영입될수도 있고, 지방 유지들과 친분을 다져 무역으로 떼돈을 버는 재벌이 될 수도 있죠. 전투의 달인이 되어 투기장의 강자로 우뚝 선다거나, 결정적 순간에 반란을 일으켜 제국을 꿀꺽하는 플레이는 흔한 편이죠. 그리고 이 모든 플레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내가 조작하는 캐릭터'가 아닌 '나'가 그렇게 행동한다는 몰입을 느끼게 됩니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의 핵심적 게임 가치입니다.

▲ 여섯 문화권은 각각 사는 모습과 병종이 다르다


게이머가 좋아할 '어중간함'
이렇게 다 퍼주는데 어떻게 다 좋을 수가 있겠어

이렇듯 배너 로드는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무한에 가까운 자유와 플레이 방법을 보장하지만, 게임의 각 요소를 서로 떼어놓고 보면, 내노라 할 만한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투 애니메이션이나 시스템은 사실적으로 갖춰져 있지만 강렬한 액션에 익숙해진 게이머들에게는 영 심심한 편이고, 대단위 전투도 '토탈워' 시스템으로 익숙해진 게이머에게는 썩 눈에 차는 편이 아닙니다. 각 세력과의 외교나 정략도 '크루세이더 킹즈'와 같은 게임과 비교해보면 퍽 단순한 편이죠.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이런 점에 대한 불만은 초반에만 느끼게 됩니다. 저렇게 여러 부분에서 다른 게임들과 비교가 가능하다는 건, 달리 말해 저런 각 부분들이 어쨌거나 비빌만 한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는 뜻이니까요. 거기에, 배너 로드는 다른 중세 대전략 게임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팩션을 다뤄야 하기에 거시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미시적 시점에서 게임이 진행된다는 것이죠.

▲ 처음엔 전투가 시작되면 일단 당황. 맞아보면 생각보다 아파서 더 당황.

앞서 말씀드렸듯,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의 핵심 게임성은 '강력한 몰입'에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게이머는 '개인'인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을 따르는 추종자와 병력, 세력을 모두 다뤄야 하죠. 그럼에도 부랑자 신세로 벌판을 떠돌며 거렁뱅이들이나 상대하던 시절이나, 제국을 창업해 세력 운영에 힘을 기울일 때 모두 주인공의 시점에서 게임을 바라보게 됩니다. 심지어 전투조차도 직접 말을 타고 칼을 휘둘러야 하고, 전술 지정도 전투 중에 깃발을 통해 명령해야 하죠.

이론상으로는 병력을 잘게 쪼개 학익진을 펼쳐 적을 쌈싸먹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전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하는 다른 게임과 달리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게임의 많은 부분이 개인의 입장에서 다룰 수 있는 수준만을 보여주거든요.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주인공이 보는 것을 최대한 많이 게이머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모든 게임의 화면은 결국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갑니다.


때문에, 여러모로 어중간한 점들이 많습니다. 주인공이 보는 것을 최대한 게이머에게 표현하려다 보니 각 문화권에 따른 도시의 모습부터 전투 애니메이션, 아이템과 장비의 모습까지 모두 다 게임 내에 포함되어 있죠. 하지만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의 개발사인 '테일월즈'는 그리 큰 규모의 개발사가 아닙니다. 애초에 한 터키 부부가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직접 만들다가 시작된 개발사니까요.

결국, 배너 로드 또한 전작과 같이 퀄리티보다는 다양함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증으로 승부를 보는 게임입니다. 이 정도로 다양한 기능을 가진 게임을 두고 하이퀄리티 텍스처와 연출을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욕심이죠. 그렇기에, 팬들은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의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함을 그리 탓하지 않습니다. 마치 뷔페와 같습니다. 요리 하나 하나를 따져 보면 전문점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애초에 뷔페를 찾는 이유는 최고의 일품 요리가 아닌, 적당한 품질의 다양한 요리를 원하기 때문이죠.

▲ 물품 시세도 주인공이 직접 가보지 않으면 소문으로만 들을 수 있다


정식 출시까진 아직 1년
사두면 '돈값'은 충분히 할 게임

자 지금까지 써온 것을 정리해봅시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2: 배너 로드'는 중세 샌드박스 게임입니다. 문화권부터 성장 과정까지 설정해 만든 주인공으로 시작해 대륙 최고의 존재로 우뚝 설 때까지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전투도, 외교도, 거래도 하게 되고 다양한 퀘스트도 수행하게 됩니다. 직접 전장 선두에 서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도 있으며, 전선에서 한 발 물러서 병사들을 지휘해 승리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물론 패배하고 포로가 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사망하고 주인공 포지션을 자식이나 다른 후계자에게 물려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인생 한방 망하는것도 순간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벌써부터 재미있습니다. 중세라는 컨셉에 흥미가 없는 게이머들도 '한 번 해볼까?'하는 마음을 품게 되고, 중세 팬이라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죠.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사고 실행하면 생각처럼 그리 쉽게 게임에 익숙해지기는 힘듭니다.

가장 큰 벽은 '언어'입니다. 공식 지원이 되었든, 유저패치가 되든,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이지만, 영어에 자신없으신 분들에게는 현재 플레이 자체가 큰 벽입니다. 웬만한 게임들은 일상 영어 수준이면 게임 플레이에 큰 지장이 없지만, 배너 로드의 경우 플레이버 텍스트가 꽤 긴 편이고 중세에나 쓰던 단어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오해하기 딱 좋은 영어들도 많이 등장하는 편입니다. 거기에 게임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다면 더 힘들어지죠.

▲ 말로 설득해야 하는데 읽기도 버거운 판

저만 해도 가족 불화 해결을 위해 오해를 풀어야 하는 마당에 퀘스트 내용을 잘못 이해해 상대 가족을 전부 다 때려죽인 적이 있습니다. 직후 바로 국가의 공적이 되어 체포당했지만, 체포당하기 전까지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죠. 병사를 훈련시켜서 돌려보내야 하는 퀘스트인데 훈련 방법을 모른다거나 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튜토리얼은 전투 조작만 지원하기 때문에 게임을 파악하려면 어쩔 수 없이 글을 쭉 읽어야 합니다만, 영어가 약하다면 문제가 생기죠.

얼리 억세스 단계이기에 버그도 많고(그만큼 수정하는 속도도 빠르지만), 밸런스가 안 맞는 부분도 있는가 하면, 콘텐츠가 다소 획일화되어 보이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똑같이 가족 불화가 일어나고, 똑같이 병사를 훈련해야 하는데 과정이 다 비슷하다 보니 단순 반복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죠.

▲ 퀘스트는 아직까지 다 비슷비슷

하지만, 길게 보면 그리 큰 문제들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테일월즈는 배너 로드의 얼리억세스 기간을 1년으로 설정했고, 이제 그 1년 중 2주째에 접어든 상황이니까요. 전작과 같이 모드 확장성도 뛰어나고, 전작 또한 개발사가 미처 채워넣지 못한 콘텐츠를 유저 제작 모드가 다닥다닥 붙어 채워나갔기 때문에 꽤 희망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정 하고는 싶은데 지금은 엄두가 안난다면 멀티 플레이도 좋은 선택일 수 있죠. 클래스가 분화되는 중세 전투인데 비슷한 느낌의 '쉬벌리'보다는 그나마 초보에게 친화적입니다. 물론 고인물들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지만요.

▲ 어디까지나 '비교적' 쉽다.

다르게 표현하면, '배너 로드'는 일단 한국어 패치만 된다면 수 시간이 아니라 수백 수천 시간은 붙잡고 할 만한 잠재력이 있는 게임입니다. 매번 달라지는 설정과 컨셉, 제련, 무역, 설득과 협박, 결혼과 가정 형성까지 온갖 잡다한 콘텐츠가 다 녹아든 캠페인에 깊고 깊은 게임성까지. 샌드박스 시뮬레이션 팬들에게는 매우 좋은 게임이며, 중세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죠.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려면 아직 1년을 더 기다려야겠지만, 지금부터 찬찬히 맛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꼭 '돈값'을 할 게임이니까요. '배너 로드'는 현재 스팀 얼리 억세스 중이며, 10% 할인된 5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이 쉽지 않은 요즘, 영어 공부도 할 겸 게임을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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