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정규 시즌 중 눈에 띄는 신예는 많았다. 그렇지만 큰 무대에 강한 신예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T1의 탑 라이너 '칸나' 김창동은 자신의 손으로 첫 LCK 결승으로 향할 길을 열었다. 탑 라이너의 기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2일 2020 LCK 스프링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T1이 드래곤X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뒀다. 이전 포스트 시즌 경기들이 풀 세트 접전의 연속이었다면, PO 2R는 T1이 한 세트만 내주고 결승행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경험 많고 유명한 선수가 주로 활약하는 PO 무대에서 신예 '칸나' 김창동이 두 세트나 MVP를 받고 4번이나 솔로 킬을 내면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점이다.

탑은 이번 포스트 시즌 대결 중에 가장 뜨거운 라인이었다. 라인전 단계부터 큰 사고가 일어나 승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핵심 라인에서 버텨만 줘도 신인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고 볼 수 있을텐데, 이를 넘어서는 활약까지 더해졌기에 MVP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LCK 포스트 시즌 시작 전부터 탑 대결이 중요해질 조짐이 보였다. 든든하게 버티면 한타 때 활약하는 '국밥챔' 세트-오른-아트록스 위주의 스프링 1R와 달리, 2R 중반 이후부터 반대편에 '칼챔'으로 불리는 제이스-루시안-카밀-칼리스타 등의 딜러들이 이전보다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렇다. 한쪽에서 꺼낸 칼은 부러지거나 다른 쪽의 방패를 깨뜨리는 결과로 이어졌고, 한 번 간 금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던 게 최근 경기 양상이다.


이런 양상의 결과로 포스트 시즌에선 탑 라이너 간 격차는 제대로 벌어졌다. 단순히 '칼' 하나만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KT-담원 전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활용할 줄 아느냐의 싸움이었다면, 그것을 얼마나 팀플레이로 잘 녹여낼 수 있는지를 드래곤X가 담원을 상대로 잘 보여줬다. 앞선 경기들에서 나온 점을 모두 실천한 경기가 바로 PO 2R의 T1-드래곤X전이었다. '칸나'는 다양한 칼과 오른이라는 방패를 다룰 줄 알았고, 칼을 쥐더라도 어떤 경우에 수비적-공격적으로 임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휘두른 칼과 방패는 의미있는 솔로 킬로 이어져 드래곤X를 당황하게 했다.

'칸나'의 솔로 킬은 경기 전반과 다전제 승부에 큰 영향을 줬다. 드래곤X는 이미 담원 게이밍을 상대로 팀적으로 탑을 푸는 법을 선보인 팀이다. 실제로 드래곤X는 T1을 상대로도 3세트에서 '칸나' 집중 공략에 성공하는 법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정글러가 항상 탑만 바라볼 수 없었다. 잠시라도 정글링과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순간, 탑에서 솔로 킬이 나오면서 드래곤X가 그려온 바를 완성하기 힘들어졌다.



나아가, '칸나'는 1:2 상황에서 신예라고 믿기 힘든 침착한 대처를 선보였기에 상대 입장에서 더 까다로울 수 밖에 없었다. 위 영상처럼 드래곤X는 점멸까지 써가며 달려드는 갱킹을 선보였다. 하지만 '칸나'는 점멸을 아낀 상태로 난입 특성만 활용해 유유히 빠져나왔다. 다시 붙은 교전에서 아껴뒀던 점멸로 '도란' 최현준의 아트록스를 끊어내는 빈틈 없는 판단을 선보였다. 그동안 '도란'은 무난하게 성장했을 때 세트-오른-아트록스 등으로 한타에서 활약했지만, PO 2R 만큼은 '칸나'에 성장이 말리며 활약할 판이 나오지 않았다. 탑을 봐주던 정글러 '표식' 홍창현까지 말리면서 승부는 확실히 T1쪽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그렇게 LCK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신예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도 '칸나'는 확실히 빛나고 있었다.

사실, '칸나'는 시즌 초반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온 건 아니었다. KeSPA컵에서 샌드박스의 '서밋' 박우태를 상대로 아트록스와 제이스를 선보였으나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김정수 감독 역시 시즌 초반부에 T1 전력을 평가할 때 아직 탑 라인의 기량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칸나' 역시 스프링 1R에서는 캐리력보단 안정감에 힘을 줬고, 후반을 지향하는 T1에 맞는 경기를 펼쳤다. 크게 눈에 띄기보단 신예로 내실을 쌓는 단계였다.

하지만 스프링 2R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승자 인터뷰에서 '칸나'는 "스프링 2R 이전에 '칼챔'을 위주로 연습했다"고 말했고, 그 결과가 포스트 시즌에서 빛을 제대로 보게 됐다. 포스트 시즌 이전까지도 담원의 '너구리' 장하권에게 솔로 킬을 내주면서 아쉬운 장면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결승 직행의 무대에서 실수 없이 칼을 다루는 모습으로 돌아온 게 '칸나'였다.

▲ '칸나'는 KeSPA컵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예는 아니었다

신예지만, 신예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 '칸나'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변화를 지켜본 T1의 임혜성 코치는 "상세히 말할 순 없지만, 내가 보기에 크게 두 번의 각성의 계기가 있었다. KeSPA컵 샌드박스전 패배 후, 그리고 김정수 감독님과 면담 이후였다"며 "애초에 열심히 하는 선수지만, 두 가지 일 이후로 더 열심히 해서 잘 된 듯하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소환-익수', '기인-서밋' 등 많은 탑 라이너와 함께 해온 임혜성 코치는 "스프링 2R부터 '칼과 칼'의 대결이 나올 것 같았다. '칼'을 들고 공격적으로 플레이 해야하는 상황과 수비적으로 해야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알려줬다"며 신예 '칸나'의 코칭 방향에 관해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칸나'는 준비된 선수가 됐다. PO에서 그동안 자신이 준비해왔던 것을 이뤄내면서 말이다.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충분히 자신의 기세를 끌어올릴 만하다. 남은 건 이제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벌일 결승전 뿐이다. 물론 우승을 장담하긴 쉽지 않다. '칸나'의 상대는 이번 시즌 라인전 단계에서 빈틈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라스칼' 김광희다. 이전까지 솔로 킬을 낼 때 상대가 점멸 반응이나 귀환 타이밍에 틈을 보였다면, '라스칼'은 팀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선수다. 그런 '라스칼'을 상대로도 탑에서 균열을 낼 수 있을까. 그렇게 우승까지 달성한다면, 자신의 손으로 로열로더로 거듭나게 된다. T1 아카데미부터 1군까지 성장한, T1에 어울리는 탑 라이너, 스프링 PO에서 가장 빛나는 신예라는 이전부터 나오기 쉽지 않았던 특별한 타이틀이 모두 '칸나'에게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