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중세시대 투구 모양의 로고. e스포츠 게임단의 상징치고는 꽤 투박하다. 중국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리그(LPL)의 신흥 강팀으로 떠오른 탑이스포츠(Top ESports)는 우리에게 그 팀의 로고만큼이나 생경하게 느껴진다. 탑이스포츠는 이제 생긴 지 3년째 되어가는 신생팀이고, 국제무대는 리프트 라이벌즈만을 경험해본 초년생이다.

그런데 탑이스포츠가 싹 틔운 떡잎이 굉장히 남달라 보인다. 2019년에는 LPL에서 스프링 시즌 3위, 서머 시즌 2위로 파란을 일으키더니 2020년 스프링 시즌에는 결승전에 올라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선보였다.

이제는 중국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탑 이스포츠. 그들은 어떤 팀이고, 어떤 방식으로 경기하고 있을까?


믿을만한 원투 펀치
초대형 신인 ‘나이트’, 롤드컵 우승 봇 라이너 ‘잭키러브’



탑이스포츠는 미드 라인과 봇 라인의 무게가 굉장하다. 미드 라인을 맡은 ‘나이트’와 봇 라인의 ‘잭키러브’, 이 둘은 중국 내에서도 각 라인에서 최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받고 있다. 탑이스포츠의 승리에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전제조건은 이 두 선수의 활약 여부이다.

탑이스포츠의 미드라이너 ‘나이트’는 2018년 LPL에 데뷔한 이후로 중국의 신인 미드 라이너 중 가장 독보적인 활약을 선보이는 초신성이다. 나이트는 올해 LPL 정규 시즌에서만 23승 14패, 62% 승률, KDA 5.3을 기록했다. 사용한 챔피언만 20개 남짓 되고, 분당 대미지 609.3, 팀 내 대미지 비율은 30%에 이른다.

‘나이트’의 활약이 올 한 해만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나이트’는 지난해, 롤드컵 우승팀 미드라이너 ‘도인비’ 김태상을 제치고 서머 시즌 정규 리그 MVP를 받았다. 지난해, 도인비가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과 팀을 월드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었던 활약을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도 정규리그 MVP를 리그 2위팀인 나이트가 받았다는 건 그가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잭키러브’는 2018 월드 챔피언십 우승 봇 라이너이다. 그는 개인적인 휴식을 가지다가 플레이오프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팀에 합류했다. ‘잭키러브’가 합류한 이후, 탑이스포츠는 정규 시즌에 지난해 월드 챔피언십 우승팀인 펀플러스와의 대결을 포함한 3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플레이오프에는 Team WE, ‘더샤이-루키’가 속한 IG를 다전제에서 모두 꺾고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잭키러브’는 탑이스포츠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라 평가받는다. 그는 봇 라이너로서 최정상급 기량으로 ‘나이트’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있다. 플레이오프 기간동안 ‘잭키러브’는 분당 대미지 637, 30.6%의 팀 내 대미지 비율을 기록했다. 쉽게 표현하면 딱 ‘나이트’만큼 딜을 넣어줬다.

탑이스포츠는 잭키러브가 합류한 이후부터 중, 후반 운영을 지향하는 팀이 되었다. 딜러진이 최정상급이다 보니 안정적으로 후반을 가기만 하면 승률이 오른다. 초반부터 교전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어느새 ‘잭키러브’는 나이트와 함께 시나브로 현상금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탑이스포츠는 잭키러브가 합류한 후 경기 시간 30분이 넘어가는 열네 번의 경기 중, 단 세 세트만을 패배했다.


▲ 두 선수가 탑이스포츠의 경기력의 5할 이상을 책임진다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중, 후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만능 올라운더 정글러 ‘카사’’



잭키러브가 합류하기 전까지, 탑이스포츠는 봇 라인이 약점인 팀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도 탑이스포츠가 준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점은 LPL에서 정상급으로 상체과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 상체를 구성하는 팀원 중에는 ‘나이트’와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정글러 ‘카사’가 있다.

플래쉬 울브즈에서 RNG로, 다시 올해 탑이스포츠로 자리를 옮긴 카사는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정상급 기량을 유지해왔다. 이는 카사가 메타에 영향을 적게 받고, 어떤 팀원들과 함께하더라도 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올라운더로서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타의 영향을 적게 받는 이유는 그가 다룰 수 있는 챔피언 숫자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 동안 25개의 정글 챔피언을 사용했고, 평균 KDA는 4.0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챔피언 중에는 정글 포지션의 스테디셀러 리 신, 엘리스를 포함해 그레이브즈, 니달리와 같은 성장형 정글러, 세주아니, 자크, 그라가스 등과 같이 팀 조합의 힘을 더해주는 정글 챔피언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팀원들의 영향을 적게 받고, 팀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조율할 수 있다는 점도 그의 장점이다. ‘카사’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정글러 ‘닝’이나 ‘mlxg’의 경우, 폭발력은 카사를 상회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메타에 따라, 때로는 팀원들과의 궁합에 따라 저점이 굉장히 낮아지기도 했다. 반면, 카사는 성장형 정글이 유행했던 플래쉬 울브즈 시절이나 봇 라인을 중점적으로 돌봐줘야 했던 RNG 시절, 상체 위주로 경기를 풀어야 했던 올해 초나 중, 후반 운영에 중점을 둔 지금의 탑이스포츠에서도 모두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 '카사'는 IG와의 4강전 대결에 선봉장이었다.



아직도 최고점이 아닌 탑이스포츠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된 두살베기 루키



탑이스포츠의 고점이 더 높아질 수 있는 이유는 탑 라이너 ‘369’에 있다. 그는 2019년 스프링에 팀이 육성한 유망주로서 합류했다. 메카닉이 뛰어나 캐리형 탑솔러에 잘 어울리고 여러 차례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중국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2019년 봄과 올해 리그 올스타팀 베스트 3 탑 라이너에 이름을 올렸다. 막 데뷔한 첫 시즌에 베스트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리고, 두 번째 해에도 여전히 좋은 기량으로 베스트 서드 팀에 속했다는 점은 어리고 발전 가능성이 큰 선수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게 한다. 어느 루키들처럼 경기력의 기복이 있다는 점이 약점이지만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면 중국 리그를 대표하는 순혈 탑 라이너로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 2019년 좋은 활약을 보여준 369



가능성 속에 숨겨진 불안요소
다전제에서 증명이 필요한 선수들


‘369’는 큰 경기에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2019년 정규 시즌에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다가 플레이오프라는 중요한 길목에서는 ‘더샤이’에게 완벽히 무너졌었다. 그의 첫 국제대회인 2019 리프트 라이벌즈에서도 불안한 경기력으로 서브 선수에게 자리를 내줬고, 2019 롤드컵 선발전에서는 팀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369’의 약점은 올해 LPL 플레이오프에서 Team WE와 IG를 연달아 꺾으며 고쳐지는 듯 보였으나, 다시 결승전에서 침묵하며 데뷔 이후 첫 우승의 마수걸이를 깨지 못했다.

이는 ‘나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력은 이미 중국 내 최정상급이라 칭송받는 그이지만, 다전제를 통한 우승 경험이 아직 없다. 이번 스프링 시즌 징동 게이밍과의 결승전에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팀이 역전패를 당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단 한 세트만 이기면 우승이 결정되는 시점에 연달아 아쉬운 실수가 터져 나왔다.

고참 라인 중에도 다전제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있다. ‘카사’는 다전제에서 자신의 실수가 나오면 다음 경기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는 중화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며 올해 플레이오프 IG와 대결에서도 무리한 추격으로 팀의 역전을 허용하게 할 뻔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LP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