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팀들이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개막 전에 기대를 받았을까요.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KeSPA컵 우승을 거머쥐었던 아프리카 프릭스와 준우승의 샌드박스 게이밍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페이커' 이상혁을 중심으로 팀을 전면 개편했던 T1이나 '강동훈 사단'이 합류했던 kt 롤스터, 반지 원정대로 불렸던 젠지도 있었고요.

이들 말고도 주목받았던 팀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한화생명e스포츠였는데요. 이들은 로스터 개편 직후 열렸던 KeSPA컵에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속도전과 공격성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미드 라이너였던 '라바' 김태훈의 바텀 라이너 변신에 팀의 속도전까지 더해져 팬들은 한화생명e스포츠를 '코리안 G2'라고 부르기도 했죠.

하지만 이들의 스프링 스플릿은 힘겨운 가시밭길 같았습니다. 속도전과 공격성은 날이 갈수록 보기 힘들어졌고 최종 성적도 8위였죠.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을 드러낸 팬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한화생명e스포츠는 그 다음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팀을 이끄는 손대영 감독도, 1군으로 콜업되어 데뷔 시즌을 치렀던 '비스타' 오효성도 과거의 아픔에 머무르지 않고 밝고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미래의 반전을 꾀하고 있었죠. 이는 이제 막 1군으로 콜업된 '두두' 이동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과해보일 수 있는 자신감과 밝은 분위기는 이들에게 있어 하나의 원동력처럼 보였을 정도였죠.


Q. '비스타' 오효성 선수는 서포터였다가 바텀 라이너로 포지션 이동을 했어요.

'비스타' 오효성 : 감독님과 코치님이 먼저 바텀 라이너로 포지션 변경을 추천하셨어요. 듣자마자 그러겠다고 했고요. LoL은 후반으로 갈수록 딜러 싸움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일이 잦아요. 거기서 서포터라는 포지션의 한계로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후반이 되어도 제 손으로 경기를 주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죠. 포지션 변경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자신감은 넘쳐요.

▲ '비스타' 오효성

손대영 감독 : 스플릿 시작 전에 바텀 라이너 구상에 애를 먹었어요. 팀에 오기로 했던 이야기를 끝냈던 선수가 계약 하루 전에 갑자기 죄송하다고 연락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오)효성이의 플레이를 직접 봤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딱 보면 그런 선수들이 있어요. 이 친구는 서포터를 하면 안되는 선수라는 느낌. 효성이가 보여준 과할 정도의 공격적인 성향과 뛰어난 피지컬을 보니 서포터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로랭크에서 바텀 라인을 해보라고 시켰는데 곧잘 하더라고요. 로스터에 고민이 많았기에 효성이의 포지션을 바꿔보면 어떨까 고민했죠.

하루는 '노페' 정노철 코치가 "형,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 같겠지만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고 했어요. "어? 나돈데"하면서 대화가 시작됐어요. 알고 보니 둘 다 효성이를 바텀 라이너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라고요. 감독과 코치가 같은 생각을 했으니 뭐라도 되지 않겠냐는 마음이 강해졌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죠.


Q. 실제 대회 경기 속에서 바텀 라이너로 뛴 '비스타'는 어땠던 것 같아요?

'비스타' 오효성 : 라인전이 많이 미숙했던 것 같아요. 한타 페이즈로 넘어가면 다른 바텀 라이너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손대영 감독 : 평소에 피드백 듣고 있는 거 맞지?(웃음)


Q. '리헨즈' 손시우 선수와 듀오로 호흡을 맞췄는데요?

'비스타' 오효성 : 서로 보는 킬 각이 달랐던 경우가 있었어요. 당시엔 왜 다른지, 왜 내가 본 킬 각을 실천에 옮기면 안되는지 잘 몰랐어요. 라인 관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고요. 호흡을 맞춰가면서 (손)시우 형이 많은 부분을 알려주고 도와줬어요. 호흡이 완전하다곤 말할 수 없지만, 완성도가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맞춰가는 단계에서 시우 형이 저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많았을 거예요. 저도 왜 제 생각이 틀렸는지 몰라 답답했던 적도 있었고요. 그래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손대영 감독 : 시우는 테트리스로 따지면 일자 블럭과 같아요. 어디에 끼워넣어도 다 잘 들어맞는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둘의 호흡을 맞추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가만 보면 시우는 약간 '한량' 같아요(웃음).

▲ '리헨즈' 손시우


Q. 본인의 실력이 대회에선 어느 정도 발현됐다고 생각하나요?

'비스타' 오효성 : 10 퍼센트?

손대영 감독 : 스크림 땐 몇 퍼센튼데?

'비스타' 오효성 : 그땐 30 정도...

손대영 감독 : 그럼 넌 언제 100 퍼센트야?

'비스타' 오효성 : 점점 올라가고 있는 단계죠. 아직 발현되지 않고 숨어있는 실력까지 다 포함해서 그 정도라고 표현했어요.


Q. 이제 뉴 페이스에게도 발언권을 줘볼까요? '두두' 이동주 선수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손대영 감독 : 레넥톤 장인 '금똥왁왁'에게 벽을 느끼게 해준 남자!

'두두' 이동주 : 저는 솔로랭크로 따지면 정글러가 제일 싫어하는 탑 라이너라고 할 수 있어요. 흔히 말하는 '탑신봉자' 스타일이거든요. 하지만 팀 게임에 들어가면 스타일을 확 바꾸기도 해요. 종종 솔로랭크만 보시고 제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대회에서는 정반대되는 스타일도 구사할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 '두두' 이동주

Q. LCK로 따지면 '너구리' 장하권 선수와 스타일이 비슷한가요?

'두두' 이동주 : 아직 전 신인이라 실력적으로는 당연히 부족함이 많겠지만, 스타일 자체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났을 땐 공격적으로 잘하면서도 단단한 완성형 탑 라이너가 되고 싶어요.

손대영 감독 : 이건 여담인데, 정노철 코치가 동주의 닉네임을 팬들에게 각인되기 쉬운 걸로 해주려고 했어요. 공격적인 플레이 성향으로 주목받기 쉬운 스타일이니 그걸 더 강조해주고 싶었거든요. 원래는 '페이탈'이라는 닉네임이었는데 정 코치의 추천으로 지금의 '두두'가 됐죠. TFT 모바일 광고에 나오는 '두둥등장'이란 비슷한 발음인 걸 노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콜업 기사 베스트 댓글이 '두두등장'이더라고요. 나중에 (이)동주가 솔로킬을 기록하거나 '순간이동'으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한타를 주도했을 때 김동준 해설위원이나 '클템' (이)현우가 "두두 등장!"이라고 외쳐주는 그림이 벌써 기대가 돼요. 그리고 'ㄷㄷㄷㅈ'이 '두두동주'도 돼요.

'비스타' 오효성 : 오, 그건 저도 몰랐는데. 역시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손대영 감독 : 그건 그렇고 최근 연습생들이 저에게 닉네임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많아요. 제가 옆에 있는 '비스타'도 지어줬고 예전 CJ 시절에는 지금 팀 육성군 코치로 있는 '맥스' 정종빈 코치 닉네임도 정해줬거든요.

그런데 자꾸 촌스러운 닉네임만 만들어준다고, 그만 지어주라고 항의가 들어오더라고요. 엄밀히 얘기하면... '두두'는 완전한 제 작품은 아니거든요! 고영재라는 연습생 닉네임이 무중력이라는 뜻으로 '제로지(ZeroG)'인데... 그것도 제가 만든 거 진짜 아니예요. 제가 추천했던 건 '랩터'였어요. 요새 이런 억울한 면이 좀 있다는 걸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두두' 이동주 : 전 '두두'라는 닉네임이 맘에 들어요(웃음).


Q. 솔로랭크 닉네임은 '맥스 노예'죠. '맥스' 코치를 위한 건가요?

'두두' 이동주 : 맞아요. 원래는 '수달' 김성진 코치님을 위한 '수달 노예'라는 닉네임도 있는데 '맥스' 코치님을 위한 것도 사용 중이죠.

'맥스' 코치님은 개인적인 피드백을 많이 해주셨어요. 경기 내적으로 세세한 내용을 짚어주시는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가르치시는 스타일이 귀에 쏙쏙 박혀서 좋았어요. 하나를 알려주시고 나면 뒤에 꼭 확인 절차를 거치시거든요. "이렇게 해야 하잖아, 그렇지?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뭐라고 했지?" 이런 느낌으로. 가끔 괴롭긴 했지만(웃음) 그렇게 배우고 나니 남는 게 많더라고요.


Q. 1군에 콜업된 만큼 LCK 데뷔전도 얼마 남지 않았을텐데요. 각오를 들어볼까요?

'두두' 이동주 : 데뷔전이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데뷔하면 잘할 자신 있어요. 옛날부터 신인들은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긴장을 많이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시 선수가 아니었던 제가 봐도요. 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감 있는 경기력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손대영 감독 : 공약 하나 하는 건 어때? 데뷔하면 LCK 모든 탑 라이너를 한 번씩 솔로킬 하겠다, 이런 거. 연습실에 내가 탑 라이너들 사진 하나씩 붙여놓을게. 솔로킬 할 때마다 하나씩 떼어내자.

'두두' 이동주 : 데뷔하게 되면 올해 안에 LCK 모든 탑 라이너를 솔로킬 하는 걸 목표로 삼아보겠습니다. 목표는 클수록 좋으니까요.


Q. 다른 팀 소속이지만, LCK에 신인 탑 라이너가 등장해서 우승까지 차지했죠. T1의 '칸나' 김창동 선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두두' 이동주 : 사실 그 선수가 데뷔하기 전에 솔로랭크에서 몇 번 만났거든요. 그땐 솔직히 엄청 잘한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어요. 팀 게임에서는 만나본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칸나' 선수가 데뷔하고 대회에서 뛰는 걸 보니 정말 잘하는 선수라는 걸 느꼈어요. 대회랑 솔로랭크는 정말 다르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기도 했고요. '칸나' 선수가 정말 빠르게 성장했던 것처럼 저도 빨리 성장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탑 라이너가 되고 싶어요.


Q. 같은 팀엔 '큐베' 이성진 선수가 있고 주전 경쟁을 하게 됐어요. 어떤 점을 배우고 싶은가요?

'두두' 이동주 : '큐베' 하면 다들 아시는 것처럼 혼자 버티는 걸 정말 잘하잖아요. 1:1 라인전을 정말 잘하고 포탑 다이브도 잘 받아내고요. 반대로 저는 공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글러가 많이 봐줘야 해요. 어찌 보면 장점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팀적으로 단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경기 중에 정글러가 탑 라인만 봐줄 수 없기 때문에 저도 '큐베' 선수처럼 혼자서 플레이하면서 잘 이겨내는 모습을 습득하고 싶어요.

▲ '큐베' 이성진


Q. '비스타' 선수에게는 바텀 라이너들 중에 롤모델로 삼고 있거나 배우고 싶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을까요?

'비스타' 오효성 : LCK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리그에도 잘하는 바텀 라이너들이 많잖아요. 그중에 전 iG의 '퍼프' 선수가 기억에 남아요. 한타 페이즈에서 남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플레이를 하더라고요. 한타 때 위치선정하는 법이나 딜하는 방법 같은 걸 그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우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선수의 LPL 경기 중에 기억나는게 있어요. '퍼프' 선수가 아펠리오스를 플레이했던 것 중 하나인데요. 드래곤 둥지 쪽 교전이 일어났는데 '절단검' 상태로 스킬을 써서 이동속도를 끌어올리고 앞으로 쭉 나가더라고요. 그렇게 상대 어그로를 다 흡수하더니 팀원들 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서 위치를 잡고 대미지를 뽑아냈고요. 그걸 보면서 저도 저런 외줄타기 플레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됐어요.

라인전에서는 꼭 필요한 딜교환을 적정선으로만 하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 같아요. 거리 조절이라고도 하죠. 딜교환을 적당히 하고 빠져야 하는데 끝까지 하려다가 라인전에서 말리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Q. 이젠 손대영 감독님 이야기를 해볼까요? 중국에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한국 복귀를 선언했어요.

손대영 감독 : 한국에서도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가 컸죠. 아무래도 중국에서 오래 활동하다보니 아내 옆을 지키지 못했던 시기가 너무 길었어요.

한화생명e스포츠를 선택한 이유에는 전 감독이자 저와 오래 함께 했던 강현종 감독님도 있어요. 또, 저는 강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보다 상대적 약팀을 강하게 키우는데 보람을 많이 느껴요.

과거 I MAY 감독을 하면서 그런 부분에 만족감이 컸거든요. 스스로의 재능도 찾은 느낌이었고요. RNG에서도 물론 행복했지만, 그 시절에 제가 선수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재미가 분명히 있었어요. 과거 프로스트-블레이즈 시절처럼요. 선수들과 끈끈하게 뭉쳐서 우리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뭉클한 감정을 줄 수 있다는 거. 한화생명e스포츠와 서로 비전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단기간에 강팀을 만들기보다는 길게 보고 선수들을 성장시켜 팀을 완성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잘됐고요.

▲ 손대영 감독


Q. 팀에 합류했을 때 로스터가 텅 빈 수준이었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로스터를 완성하려 했나요?

손대영 감독 : 처음에는 자리잡기가 먼저였어요. 스프링 직전의 스토브 리그에는 돈이 있다고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FA로 풀린 거의 모든 선수들과 다 만나봤는데 다들 중심이 되어주는 선수가 남아있는 팀에 합류하길 원하더라고요. 당시 저희 팀 로스터에 큰 공백이 생기다 보니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엔 어려움이 있었고요.

그래서 리빌딩의 방향성을 '독기 있는 선수들'로 잡았어요. 여러 팀을 거쳤지만 아직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해서 독기 가득한 선수들을 모았어요. '하루' (강)민승이도 그랬고 '큐베' (이)성진이도 그런 느낌을 줬고요. 선수들이 가진 재능은 많은데 플레이스타일이 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바꿔주고 싶었죠.

팀에 남아있던 '라바' (김)태훈이는 여러가지 색이 다 있어서 오히려 느낌이 잘 살지 않는 것 같았죠. 그래서 바텀 라이너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어요. 예전 소속 선수들이 태훈이에게 "넌 바텀 라이너 해도 잘하겠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고 하더라고요. 선수 개인의 성장에도 도움이 많이 되겠다 싶어서 권유했어요. 어찌 보면 한 시즌 동안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를 하나 준 느낌으로요.

무엇보다 태훈이의 공격성을 극대화해주고 싶었어요. 바텀 라이너를 해봐야 포지션의 취약점을 금방 파악하게 돼요. 그럼 다시 미드 라이너로 플레이했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상대 바텀 라이너를 괴롭힐 수 있는지 더 잘 알게 되고요. 그게 스프링 막바지 젠지전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Q. 바뀐 로스터로 처음 선을 보였던 KeSPA컵에서는 속도전이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손대영 감독 : 많이 지는 팀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지나치게 수비적이라는 거예요. 싸우면 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싸우려고 하질 않아요. 전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이 너무 싫거든요. 그래서 선수단에게 계속 소위 '들이받아'라는 주문을 했어요. 싸워서 져봐야 이기는 법을 알게 되고 손해를 봤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데 아예 싸우질 않으면 배울 기회를 놓치는 셈이죠.

전 여전히 제 철학이 맞다고 믿고 있어요. 그걸 스프링 스플릿에도 계속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선수들이 패배를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심했고요. 그 결과로 갈수록 공격성이 줄어들었고요.

저 스스로도 많이 반성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배우고 만들자는 도전을 강조했는데요. 선수들이 패배가 누적되면서 이기고 싶어하니까 제가 중간에 방향성을 바꿨어요. 특히, 밴픽에서 선수들의 패배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갈수록 안정적인 걸 많이 지향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 운영의 포인트를 계속 놓쳤던 것이 아닌가 싶죠. 선수들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이에요. 그때 저희 팀이 기세를 잘 탔다면 또 다르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전 여전히 가장 공격적인 팀을 추구해요. 먼저 칼을 꺼내들 수 있는 팀, 안될 것 같아도 공격적인 시도를 항상 하는 팀, 냅다 들이받는 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밴픽으로는 '큐베' 이성진 선수의 트린다미어가 떠오르네요.

손대영 감독 : 그 전부터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당시 경기 밴픽 구도 상에서 트린다미어는 절대 뽑으면 안되는 챔피언이었어요. 그런데 선수들의 자신감이 너무 떨어졌길래 "우리가 가장 자신있고 잘했던 걸 하자"면서 트린다미어를 꺼냈죠. 사실 트린다미어가 아니라 뭘 꺼냈어도 힘든 경기이긴 했어요. 다른 쪽에서 초반부터 너무 무너진 게 컸죠.

그래도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는 챔피언이에요. 성진이가 그런 재기발랄한 챔피언들을 잘하기도 하고요. AS 케넨이나 니코 같은 것도 잘 다뤘잖아요.


Q. 스포츠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곤 하지만, 만약 메타 해석대로 경기가 잘 풀렸다면 몇 위를 차지했을까요?

손대영 감독 : 저는 개인적으로 스프링 스플릿은 힘들거라고 예상했어요. 게임 재밌게 해서 6위나 7위? 정말 솔직히 말씀드린거예요. 선수단이 부담을 떨쳐내고 임하는 경기력을 스스로 느끼는 게 처음엔 더 정말 중요하거든요. 아무래도 대회 경기는 시험과 같잖아요.

옆에 있는 효성이도 처음에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어요. '테디' 박진성 선수를 상대로 겁도 없이 달려드는 느낌의 플레이도 했을 정도로요. 그걸 보면서 저랑 정노철 코치와 '사케' 이중혁 코치 모두 승패랑 상관없이 만족했어요. 하지만 사실 선수단 전원이 이런 성향을 갖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거든요. 반대로 보면, 또 누군가는 경기 내에서 그런 공격성을 제어해줄 필요도 있어요. 그것들을 버무리는 게 어렵죠.

이런 걸 종합해보면, 저희는 재미있고 신박한 챔피언 조합으로 즐겁게 경기해서 6위 정도였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APK 프린스의 현재와 비슷했겠네요. APK 프린스는 '익수' 전익수 선수를 필두로 좋은 분위기 속에 똘똘 뭉쳐서 신나는 경기를 보여줬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팀의 방향성도 그와 비슷하거든요.

저희 팀이 승강전의 위협에도 시달렸기 때문에 갈수록 경기력이 더욱 불안정해졌어요. 제가 추구하고 목표했던 것의 반도 다 얻지 못한 스플릿인 것 같아요. 선수단에게 주고 싶었던 목표치의 절반 정도 밖에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섬머 스플릿부터는 승강전이라는 부담도 없을테니 더욱 신나게 부딪히고 도전하고자 해요.

'두두' 이동주 : 오.

손대영 감독 : 왜? 말파이트 할래?(웃음)


Q. 스프링 스플릿을 직접 경험해본 입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뭔가요?

'비스타' 오효성 : 잠시만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손대영 감독 : 막간을 활용해서 에피소드 하나 공개할게요. 누가 봐도 정말 잘하고 존재감 있는 바텀 라이너들 있잖아요, '테디' 박진성이나 '데프트' 김혁규, '룰러' 박재혁 등등. 이런 선수들을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이름값 때문에 부담을 갖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효성이한테 슬쩍 떠봤어요. 예를 들어서 "오늘 상대 '데프트'라서 설마 겁먹었어?"라고요. 그랬더니 "저는 바보라서 겁이 안나요. 상대가 누군지 잘 생각 안해요" 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효성이는 마음가짐은 좋다고 느꼈죠. 아직 경험치가 좀 부족할 뿐이라고요. 개인적으로 바텀 라이너들은 좀 늦게 잠재력이 터져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전 '비스타 코인'을 탄 상태인데 언제 터질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비스타' 오효성 : '바보'가 생각하는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웃음) 드래곤X전이었어요. 저는 방금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 선수의 이름값을 아예 신경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거든요. 그런데 당시에 저희가 자야-라칸을 했고 '데프트' 선수와 '케리아' 류민석 선수는 이즈리얼-카르마를 했는데 벽을 만난 것 같았어요. 원래 조합상 바텀 상성이 밀리는 건 맞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심하게 압박을 받았어요. 정말 숨도 못 쉬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배운 것도 많았어요. 정말 괴로울 정도로 라인전에서 압박을 받고 밀리다 보니 상대를 괴롭히는 법을 알게 됐죠. 정글러도 불러서 다이브 압박도 넣고 어디서 스킬을 어떻게 맞혀야 상대가 허덕이는지를 뼈저리게 맞으면서 배운 셈이었어요.

손대영 감독 : 전 어느 한 경기가 아쉬웠다기보다는 선수들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이 계속 아쉬웠어요. 싸워야 하고 무조건 먼저 걸어야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아쉬움을 보였던 적이 많았거든요. 앞에서 어그로를 끌어줘야 하는 선수가 뒤에 있다거나 앞에서 맞아줘야 하는 선수가 뒤에서 이니시에이팅 각만 보고 있었을 때도 있었고요. 그런 부분을 앞으로도 신경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Q.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바이퍼' 박도현 영입 소식이 드디어 들려왔어요.

손대영 감독 : 아무래도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안정적인 하체가 구성됐다는 것이 팀에게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박도현 선수가 그리핀에 있었을 때부터 저랑 취향이 겹치는 선수가 아닐까 생각했기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박도현 선수 역시 제가 방금 말했던 독기어린 선수들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아주 적합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팀에 합류한 '바이퍼' 박도현 (출처 : 한화생명e스포츠 공식 SNS)


Q. '바이퍼-리헨즈'가 한 번 더 호흡을 맞추게 됐죠.

손대영 감독 : 시우가 코치진의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했던 말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코치진이 "이건 힘든 각이었다"라고 피드백을 해줬을 때 "이거 '바이퍼'와는 성공했던 각이에요"라고 답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효성이 탓을 하는 뉘앙스는 아니었고요. 아무튼 그래서 시우에게 드디어 자신의 말을 증명할 기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시우 입이 열 개는 되거든요(웃음).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둘의 호흡을 잘 증명하리라 믿어요.


Q. '비스타' 오효성 선수에겐 '바이퍼'라는 팀원이자 선의의 경쟁 상대가 팀에 합류한 거잖아요. 처음 알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비스타' 오효성 : 처음 알게 됐을 때...

손대영 감독 : 이 남자... 갖고 싶다?

'비스타' 오효성 : 솔로랭크에서 봤을때 원딜로 순위권을 찍으신 걸 보고 잘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어요.


Q. 그럼 아까 말했던 '퍼프' 선수 말고 '바이퍼' 선수에게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비스타' 오효성 : 라인전을 배우고 싶어요. 위치선정도 마찬가지고요.



Q. 혹시 반대 경우도 있을까요?

'비스타' 오효성 : 저는 자신감이 항상 넘치니까 자신감으로 할게요(웃음).


Q. LCK 준우승과 롤드컵 진출을 해봤던 바텀 라이너가 팀에 합류했다는 게 '비스타' 본인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비스타' 오효성 : 준우승을 해봤던 선수들이라 보고 배울 점이 진짜 많을 거예요. 그걸 다 흡수하고 적용할 수 있게 되리라 믿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가 정상에 설 시간이 많이 단축된 느낌도 들고요.

손대영 감독 : 얘 진짜인가봐... 항간에 그런 소문이 있더라고요. '비스타가 손대영 감독의 약점을 쥐고 있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거가 어딘지 궁금하네요.

'비스타' 오효성 : (웃음)두 선수의 플레이스타일과 운영법을 잘 흡수해서 저의 스타일로 변형시키는게 재미있고 뿌듯할 것 같아요.


Q. 옆에서 봤을 땐 어떤 사람인 것 같던가요?

'비스타' 오효성 : 오늘 운동을 같이 해봤거든요. 어깨가... 오우. 옆에 있으면 제가 소위 '쭈구리'가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옆에 서있으면 안되는 사람?


Q. 긴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각자 해주세요.

'비스타' 오효성 : 여태까지 본 적 없는 바텀 라이너로 성장하겠습니다. '비스타' 만의 색깔을 보유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손대영 감독 : 라인전에서 CS 50개씩 벌어지는 바텀 라이너... 여태까지 본 적 없는 바텀 라이너긴 하지.

'비스타' 오효성 : 그런 걸 이겨내는 모습도 여태까지 본 적 없는 바텀 라이너 중 하나 아닐까요?(웃음)

'두두' 이동주 : 아직 데뷔를 하진 않았지만, 데뷔하게 되면 제가 출전하는 경기들에 많은 기대를 보여주셨으면 해요. 앞으로 성장을 멈추지 않고 한국에선 '너구리' 선수나 '기인' 김기인 선수, 중국에선 '더샤이' 강승록 선수 같은 탑 라이너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제가 육성군에 있을 때 학업과 프로게이머 사이에서 고민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수달' 코치님이 저를 잘 잡아주시고 1군으로 콜업될 수 있도록 성장시켜주셨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맥스' 코치님은 워낙 형 같은 존재라(웃음). 제가 먼저 장난도 칠 수 있는 편안한 사람으로 항상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손대영 감독 : 나도 장난치고 다 받아주고 하잖아.

'비스타' 오효성 : 감독님 스타일은 약간 영화에 많이 나오지 않아요? 약간... 겉으로는 무서운데 마음은 착한... 어깨 형님?

손대영 감독 :음해 세력이 이렇게 많네요(웃음).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말씀드릴게 있어요.

이번 스플릿은 한화생명e스포츠 팬들에게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시기였어요. 예전에 제가 등산하는 느낌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와 정노철 코치의 화끈한 운영 스타일을 원하셨던 분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드린 것 같아요.

힘들고 숨차지만 결국엔 멋진 경치를 보고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등산을 하듯이 다들 뼈저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섬머 때는 정말 멋진, 그리고 정말 만에 하나 섬머 때도 또 실패하면 그 다음 스프링에도. 저희는 끊임없이 도전할 겁니다. 보는 사람이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그걸 위해 선수단과 코치진이 합심해서 정말 많이 노력할테니 끝까지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