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지 않은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시스템 쇼크 2’가 명작이란 소문을 들어 수소문 끝에 CD를 구매해 직접 플레이 했습니다. 당시, 헤매기 쉬울 법한 미로 같은 맵을 어떻게든 뚫어나가며 플레이 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때에도 옛날에 이런 게임이 있었냐며 다양한 시스템에 충격을 크게 받았었는데… 결국 세이브 파일이 도중에 실종되어 그 뒤론 게임을 잡지 않았죠.

‘이머시브 심’. ‘울티마 언더월드’가 시초라고 불리긴 했지만 울티마 언더월드는 여러 위치에서 영감을 부여했던 작품이라면 시스템 쇼크는 이머시브 심이라는 장르의 기본을 다졌습니다. 거대하고 미로같은 맵과 방대한 시스템을 이용해 플레이어가 개발자의 의도를 따라가지 않고도 영리하게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는 장르. 즉, 시스템 쇼크는 생각하면서 게임 해야하는 작품의 원조격입니다.

GOTY를 수상한 명작, ‘바이오쇼크’나 호러 TPS의 귀감, ‘데드 스페이스’ 또한 이 작품의 정신적 후계작입니다. 호랑이 새끼를 두 명이나 낳은 작품이라니…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그 명작이 최신 그래픽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비록 프리-알파 데모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해줍시다. 나이트다이브 스튜디오가 제작 중인 ‘시스템 쇼크’ 리마스터입니다.

▲ 고전 게임 유통을 맡아온 '나이트다이브 스튜디오'

▲ 드디어 '시스템 쇼크'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첫 시작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사건의 원흉인 ‘트라이옵티멈’ 사의 로고가 뜨면서 마치 컴퓨터를 부팅하듯 전원이 켜지고 화면이 전환됩니다. 주인공이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암시일려나요? 수면 캡슐처럼 생긴 곳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이내, 망가진 우주선 주변을 탐색합니다. 처음부터 렌치를 줍는데 어마무시하네요.

▲ 거 데드 스페이스의 '유니톨로지' 같네요

▲ 렌치... 그 깊은 역사...

기본적으로 그래픽은 시스템 쇼크와 시스템 쇼크 2를 각각 섞은 느낌이 납니다. 레벨 디자인과 비주얼 등 웬만한 건 1에서 따왔으나 UI는 시스템 쇼크 2에서 채용한 듯합니다. 그 외, 카메라 디자인은 시스템 쇼크 2와 포탈을 섞은 느낌이며 전반적인 분위기는 프레이나 데드 스페이스 등이 떠오르네요.

둠이 채용한 3D 배경과 2D 포트레이트의 조합을 넘어 이젠 완전한 풀 3D 그래픽을 보여줍니다. 언리얼 엔진 4를 채용한 보람이 있네요. 다만 대부분의 텍스처 질이 좋지 않습니다. ‘리마스터’를 의도해서 일까요? 아직 데모 버전이니깐 이후, 출시될 정식판을 기대해보도록 합시다.

▲ 전체적인 비주얼은 좋습니다

▲ 전반적으로 전작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최신 그래픽으로 조화시킨 모습입니다

▲ 우주를 좋아하는 저로선 대만족!

▲ 하지만 전체적인 디테일이 매우 떨어지네요

'하프-라이프’가 나오기 전이어서 그런지 게임 플레이 그 자체에 스토리가 녹아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색다른 방법을 사용했는데 바로 ‘오디오 로그’입니다. 안 주워도 그만이지만 줍는다면 이미 죽어버린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처음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정보를 모으면 퍼즐이 풀리게 되는 스토리텔링 방식입니다.

전투는 기존 FPS처럼 심플한 구조입니다. 다만 조준은 없고 탄환 수는 제한적이죠. 때문에 근접 무기인 렌치를 많이 사용하게 될 겁니다. 적들의 Ai가 수준이 높진 않아서 근접 공격을 하는 ‘휴머노이드 뮤턴트’ 같은 경우에는 겁먹지 말고 달려가서 렌치로 4대만 치면 곧바로 자리에 눕습니다. 하지만 총을 사용하는 ‘사이보그’ 유형은 조금 다르네요. 이럴 땐 피스톨이나 ‘스파크빔’을 씁시다.

▲ ㅇㅂㅇ

▲ "조용히 하세요!"

▲ 여기선 체력 게이지 밑에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 체력이 부족하다면 '메디 패치'를 붙입시다

시스템은 지금에 와선 살짝 고전적이지만 당시엔 매우 혁명적이었던 ‘인벤토리’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RPG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인벤토리가 FPS 게임에 추가된 것이죠. 그렇기에 시스템 쇼크는 항상 뭔가가 부족하게 됩니다. 총알, 회복 아이템, 주스, 수류탄 등. 모든 것에는 수량이 정해져 있고 수량만큼 사용했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총기도 많이 사용하면 손상됩니다. 시스템 쇼크 2에선 손상된 무기를 고치거나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데모에선 그것까지 확인할 길은 없네요. 그리고 덤으로 게임에서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메뉴에는 세이브/로드 메뉴를 만든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정식판에서나 사용해볼 수 있겠네요. 마치 로그라이크 같습니다.

음악에도 힘을 들였네요. 예전엔 신비로우면서도 고전 게임 다운 테크노 성향의 MIDI가 깔렸다면 리마스터판의 OST는 조금 더 다듬어진 느낌이 납니다. 이제 더 이상, 흥겨운 멜로디는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적에 가까운 OST를 깔며 분위기를 만들어주죠. 위급한 상황에선 상황에 맞는 OST가 나오며 더욱 분위기를 끌어올리지만 위기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집니다.

▲ 오디오 로그만으로도 전체적인 스토리 이해는 쉽습니다

▲ 괜히 물품 정리가 하고 싶은 인벤토리

▲ 퍼즐의 난이도 또한 쉽습니다

▲ 주인공이 윤리 모듈을 제거해준 덕에 마구 날뛰는 SHODAN

시스템 쇼크 리마스터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완성도가 높아 보입니다. 우선 UI가 현대식으로 맞춰져 있고 레벨 디자인은 전작 그대로 따와 매우 훌륭하죠. 선형식이지만 넓은 맵과 어렵지 않은 퍼즐 방식, 몰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OST와 오디오 로그는 이 작품이 어째서 명작이었는가를 설명해줍니다.

그래도 자잘한 부분이 거슬립니다. 확대하면 픽셀이 크게 두드러보이는 텍스처나 적의 Ai 완성도는 실망스러웠네요. 물론 그만큼 적의 체력이 충분해서 밸런스를 어느 정도 잡아놓은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근접형 적이면 렌치 4대만 때려도 공격 한 번도 못 해보고 금방 누워버리니 전투가 좀 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네요. 물론 네 명이 모이면 무섭습니다.

아직 프리-알파 데모 버전이기 때문에 게임 내의 세부 사항은 더 많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Ai도 다듬는 중일 수도 있고 텍스처도 준비가 안 된 것일 수도 있죠. 지금도 킥스타터 후원을 통해 계속해서 피드백을 받고 있기 때문에 베타 버전이나 정식판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습니다. 방향성은 나쁘지 않으니 이머시브 심 장르의 팬으로서 후일, 정식 버전이 기대되네요.

▲ 사이보그로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던 걸까요?

▲ "어이 최강, 내 최약은 좀 아플거다."

▲ "그 날, 나는 해골 세 개를 받았다."

▲ 으악! 여러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