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일 1깡’이란 드립이 생겼죠? 비의 노래, 깡이 너무 고전스럽되, 묘하게 중독되는 멜로디에 영감 받아 만들어진 밈입니다. 물론 비의 깡은 그것 이외에도 하자가 있지만, 저는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고전이 대체 뭐가 나쁜가요? 레트로는 이제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잡았고 끊임없이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죠. ‘리마스터’ 열풍이란 언급도 있을 정도니깐요.

추억은 우리들의 마음 속 한 켠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 추억이라면 역시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거나 친구들과 놀면서 장난감을 만지고 문방구를 돌아다녔던 추억이죠. 그리고 비록 만들어진 픽션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있어선 가상의 생명체가 아닌 진짜입니다. ‘디지몬 어드벤처’. 2000년 당시 한국을 강타한 일본 토에이와 반다이의 합작 애니메이션이죠.

2000년 당시, 디지몬의 인기는 말 그대로 ‘어마무시’ 했습니다. 지금도 억 소리가 날 수준의 매출을 벌어들이는 ‘포켓몬스터’의 인기를 한순간이지만 ‘뛰어넘었으니깐’요. 하지만, 그 인기는 어드벤처에서 정점을 찍고 점점 내려갑니다. 후속작을 표명한 ‘파워디지몬 (디지몬 어드벤처 02)’는 시청자들을 붙잡는데 실패하고 어른이 보여주는 잔혹동화와 같았던 ‘디지몬 테이머즈’로 흐름은 가속화되죠.

결국 KBS에서 방영해주었던 디지몬 시리즈는 투니버스로 넘어가고, 토에이의 판권을 다수 획득한 대원에게 넘어가는 등, 점점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엔 ‘세이버즈’ 이후로 동결되고 맙니다. 저는 암흑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디지몬 크로스워즈’를 정말 좋아합니다만, 솔직히 디지몬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세이버즈 – 크로스워즈 – 어플몬스터 (어플리 몬스터즈)’까지 본 사람은 드물죠.

하지만 토에이의 야망은 계속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해외에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잠깐동안 포켓몬을 뛰어넘었던 디지몬 시리즈를 포기하긴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드벤처의 이야기가 ‘디지몬 어드벤처 tri’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태일이와 그의 동료들이 ‘고등학생’이 된 이야기에 OVA로 야심차게 시작했던 이 작품은 결국, 혹평만 들은 채로 마무리되었죠.

근데 다시 한 번, 제대로 만들 테니 저희에게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봐줬는데, 한 번 더 속을 만하지 않을까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입니다. 이번에는 무려 태일이가 어른이 되어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구몬과의 유대, 추억 등을 벗삼아 나아가는 작품이라는데, 좋은 작품인지는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 저는 개인적으로 '테이머즈'랑 '크로스워즈'를 좋아합니다만

▲ 역시 제일 좋은 추억은 어드벤처라고 생각되네요

▲ 그 추억이 지금 되살아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이젠 어른이 된 그들의 이야기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태일이와 디지몬 친구들의 마지막 여행
추억의 어드벤처, 드디어 막을 내리다

본 작품에서 신태일과 그의 동료들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태일이는 이제 대학 4년생으로 졸업을 눈 앞에 두고 취업 진로를 고민하기까지 하고 있죠. 그러면서 ‘선택받은 아이들’로서 돌발상황을 정리하는 등, 앞날이 창창하지 않습니다. 같은 동료였던 매튜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인생을 고민하는 장면을 보면 제가 다 마음이 아플 정도입니다.

그러던 와중, 디지몬을 연구하던 학자, ‘메노아’는 태일이와 그의 일행에게 조력을 요청합니다. ‘에오스몬’이라는 인공 생명체 디지몬이 선택받은 아이들을 습격하고 있단 것이죠. 이미 사건의 징조를 알고 있었던 태일이 일행은 사건에 협력하게 됩니다. ‘오메가몬’으로 진화시키면서 까지 싸우는 그들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중간에 오메가몬의 진화가 풀리고 만거죠.

결국 에오스몬을 놓친 태일이와 일행들. 그리고 그들은 메노아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디지몬과 헤어져야 한다”라는 말을 말이죠. 지금껏 자신들의 삶의 일부나 다름 없었던 디지몬과의 이별을 납득하지 못하는 태일이와 ‘선택받은 아이들’. 이대로 헤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각자의 고민을 담고서 태일이와 일행들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 그레이몬과 패롯몬의 싸움은 첫 번째 극장판의 오마주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또메가몬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위기에 닥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날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무려 아구몬과 파피몬의 새로운 진화가 나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영화에서 말하는 ‘디지몬과의 헤어짐’
걱정 마세요. 분명 납득할테니깐요.

영화의 구성은 마찬가지로 팬이 구심점이 됩니다. ‘팬이 선택받은 아이들’인 것이지요. 그리고 스크린 속의 등장인물들은 ‘디지몬’입니다. 이제 디지몬 어드벤처의 이야기도 완전히 끝났으니 떠나보내야 한다는 제작진의 메시지지요. 납득이 가지 않는 팬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태일이는 저희들의 손을 떠나 자신의 미래를 붙잡으러 떠났습니다.

애초에 본래 태일이와 아구몬의 이야기는 벌써 ‘파워디지몬’에서 끝난 바가 있습니다. 중학생의 이야기를 끝으로 어른이 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맺었죠. 하지만 개연성이 없는 취미와 장래 간의 불협화음 덕분에 팬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디지몬 어드벤처는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디지몬 어드벤처 tri’가 그 중 하나죠.

결국 디지몬 어드벤처 tri는 혹평을 듣고 끝났지만, 계속 이어버린 이야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아직 완전한 어른이 되기 전인 ‘대학생’의 이야기가 남아있었고, 제작진은 ‘이별’과 ‘성장’을 모토로 다시 어드벤처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엔딩을 보고 아직 이야기를 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는 이것으로 제대로 ‘끝맺음’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선택받은 아이들의 과거를 보여주면서 과거가 좋다고 독촉하는 장면은 흡사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여기서도 옛날 그 때, 그 감성을 그리워해 어른들이 돌변하게 되지만, 결국 미래를 그려 나가기로 약속하죠.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하지만 저희와 디지몬과의 인연을 ‘억지로’ 떼어놓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훌륭하게 짜여진 스토리와 나름 입체적인 배경을 보여준 악역, 그리고 어느 새, 어른이 되어 저희들 앞에 다가온 캐릭터 간의 감동적인 연출들은 이 이상, 말이 필요없다고 느껴지네요. 분명 파워디지몬까지 열심히 챙겨보았던 디지몬 팬이라면 ‘납득할만한 이별’이라고 생각합니다.

▲ 파워디지몬의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전보다 훨씬 두터워진 용기와 우정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아구몬과의 이별이 점점 다가오는 와중에도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 태일이는 싸워나갈 것을 결의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스틸 컷)


이제 작별인사를 할 때야. 어드벤처
그리고 어서 와, 새로운 모험어드벤처

‘디지몬 어드벤처 15주년 기념 작품’인 만큼, 마지막은 유종의 미를 거두며 훌륭하게 마무리를 장식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오점은 있습니다만 이 정도면 어딥니까. 저희들의 마음을 훌륭하게 울린 이 작품은 이미 가치가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파워디지몬의 등장인물들이 제각각 활약하는 장면만으로도 이미 만족했죠.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은 소규모 배급사인 얼리버드픽쳐스가 수입한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특별 상영회로만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죠. 저는 특별 상영회에서 관람했습니다만,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이라도 괜찮습니다. 이제 VOD로 챙겨볼 수 있기 때문에 어드벤처를 아직 추억으로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넓은 방에서 디지몬을 다시 맞이할 준비를 해둡시다.

물론 게임 웹진인 만큼 게임 이야기도 빼놓으면 안 되겠지요? 2020년 발매 예정인 ‘디지몬 서바이브’는 어드벤처를 경험해본 유저들이라면 향수에 빠질 법한 컨셉과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르는 최근 드물게 출시되고 있는 시뮬레이션 RPG기 때문에, 최근에 SRPG에 목말라 해온 유저들이라면, 관심 가지실 만한 게임이네요.

그 외에도, 무브게임즈에서 서비스 중인 ‘디지몬 마스터즈’에서 새로운 모드, ‘럼블체스’를 내놓았습니다. 최근 신드롬을 이끌었던 ‘오토체스’와 디지몬을 결합한 게임으로 정식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최근 롤토체스나 도타체스 등, 다양한 오토배틀러 장르가 출시되고 있는데, 디지몬이 어디까지 활약할 수 있을 지, 정말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드벤처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원점으로 회귀합니다. ‘디지몬 어드벤처: (리부트)’가 최근 일본에서 TV로 방영 중이죠. 태일이가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험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물론 리부트 작품이라 예전 어드벤처와는 관계가 전혀 없죠. 예전과는 전혀 달라진 태일이의 새로운 모험. 벌써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네요.

디지몬 시리즈는 이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분명 디지몬 신드롬이 있었던 과거에 비해선 살짝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죠. 언젠간 다시 포켓몬스터를 뛰어넘는 날이 올 지도. 저도 한 명의 팬으로서 앞으로 디지몬이 다시 한 번, 훌륭한 경쟁작이 될 수 있기를 언제나 빌고 있습니다.

▲ 디지몬과 오토배틀러의 조합, 럼블체스

▲ '도타 언더로드'를 해본 사람으로서 정말 기대됩니다

▲ 2020년 예정으로 잡혀있는 '디지몬 서바이브'

▲ SRPG라는 면에서 전과 다른 독특함을 선사해줄 것 같네요

▲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새로운 모험

▲ 이젠 정말 작별이야, 우리들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