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 롤드컵이 다시 열린다. 2017년에는 LCK 팀 SKT T1과 삼성 갤럭시가 한국팀 간 결승을 벌이며 상해의 경기장을 '도서관' 분위기로 만든 바 있었다. 당시에도 RNG와 '우지'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었지만, 결국 이전까지 롤드컵을 휩쓸었던 LCK가 올라가 우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다시 향하게 된 상해는 지난 롤드컵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최근 2018-19의 롤드컵을 LPL이 가져가면서 LCK와 LPL의 흐름은 그 때와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기세가 올해 미드 시즌 컵(MSC)까지 이어졌기에 더 그렇다.

국제 대회 뿐만 아니라 LPL 내 경기만 보더라도 여전히 위협적이란 걸 알 수 있다. 이는 지난 8월 27일에 진행된 LPL 결승전이 이를 잘 말해줬다. 전 세계가 주목했고, 한국의 커뮤니티에서도 LPL 선수들의 슈퍼플레이에 관한 감탄으로 뜨거웠다. 이들의 경기 방식은 이후 진행하는 타 리그의 중요 경기에도 반영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나아가, 기존 롤드컵 챔피언을 꺾고 합류한 LGD-수닝의 선발전 경기까지 이어지면서 다시 한 번 이들의 경기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경계하는 건 그들의 경기력과 이를 뒷받침해온 새로운 시도들이다. 흔히 나오는 'LPL은 교전을 많이 한다거나 교전 중심적'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어떤 점 덕분에 교전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고 타 리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 LCK는 이제 도전자의 입장에 있기에 이들의 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분당 킬 높은 이유? 주도적인 전투 - LPL 정글러



LPL 경기를 보면, 분당 1킬 이상이 나오는 경기가 많다. 중요한 플레이오프와 롤드컵 선발전, 심지어 결승전에서도 초반 인베이드 싸움을 수없이 벌이곤 한다. 저레벨 구간에서 솔로 킬이 극히 드문 프로 간 대결에서 초반부는 라이너들이 CS를 수급하며 성장하는 시간인데, 어떻게 킬이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이는 LPL 정글러를 보면 알 수 있다. 정글러가 적극적으로 상대 정글로 들어가거나 라인에 개입하면서 교전을 열기에 가능한 킬이 많이 나오곤 한다.

특히, LPL 결승전에서 수차례 나온 화끈한 인베이드 싸움은 많은 것을 말했다. 기본적으로 팀에서 정글러의 성장과 동선을 짜는 데 얼마나 힘을 실어주는지 알 수 있었다. 성장형 정글러가 거의 매 세트 등장하는 요즘 시기에 레벨과 정글 사냥 속도 차이가 초-중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그렇다. 과감하게 카운터 정글을 들어가는 LGD ‘피넛’ 한왕호, JDG ‘카나비’ 서진혁에겐 특히나 중요하다. 성장 격차를 바탕으로 상대 정글러를 말리게 하는 역할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니까.

더 놀라운 건 TES와 정글러 ‘카사’였다. JDG와 인베이드 싸움에서 매번 킬 스코어에서 밀리며 시작한 경기를 뒤집는 능력이었다. LCK에서도 LPL 결승 다음날 비슷한 인베이드 장면이 나왔지만, 한 번 킬을 내준 팀 아프리카 프릭스가 이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젠지에게 PO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카사’는 킬을 위해 상대가 소모한 소환사 주문과 아군 라이너 상성을 정확히 활용했다. 바로 다른 정글 지역으로 올라가 2-3레벨에 탑-미드 라이너를 불러 전투를 벌여 킬 스코어의 균형을 맞춰나갔다. 한 번 밀렸다고 끝이 아니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상대의 무난한 성장을 방해한다. 작은 차이로도 그런 자신감 있는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게 LPL팀과 정글러들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 첫 갱킹은 거의 탑만! 에이스 '줌'키운 '카나비'

성장형 '카나비' 릴리아 맹추격-솔로 킬(출처:LPL ENG)


단순히 정글러의 성장만을 바란 건 아니다. 초반부가 잘 풀린 LPL 정글러는 확실하게 라인에 영향을 준다. 그것도 팀의 에이스가 있는 라인을 풀어줘 한 번의 갱킹이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다. 에이스의 파급력 자체를 초반부터 끌어올리는 것이다. JDG ‘카나비’는 무난히 성장했을 때, 탑으로 첫 갱킹을 연이어 향했다. 타이밍은 다르지만, ‘카나비’는 첫 갱킹을 탑에서 모두 성공시키며 팀의 에이스 ‘줌’의 성장에 힘을 실어줬다. 탱커 위주로 단단히 버티던 ‘줌’이 칼 같은 갱호응으로 킬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물론, LGD는 초-중반 킬은 캐리형 정글러인 ‘카나비’가 가져갔다. 결승전 첫 세트부터 잘 성장한 ‘카나비’가 얼마나 강력한지 릴리아로 잘 보여줬다. 협곡의 전령으로 봇 포탑을 밀어낸 뒤, 바로 TES ‘잭키러브’의 진을 솔로 킬 내면서 성장 속도를 높였다. 정규 스플릿에서 킬 관여율은 정글러 최하위지만, 킬 스코어 1위를 달성한 ‘카나비’답게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은 여전했다. 확실히 눈에 띄는 캐리형 정글러의 모습이다.


▲ '나이트' 성장 위해 대기한 '카사'

그렇다면 성장형보단 라인 개입형에 가까운 TES ‘카사’는 어떻게 ‘카나비’의 빠른 성장을 넘어섰을까. ‘카사’ 역시 확실하게 라이너에게 힘을 실어주는 스타일이다. 팀에 ‘나이트’라는 섬머 MVP이자 LPL 최고의 미드 라이너가 있기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서라도 그를 키워나갔다. 위 장면은 양 팀의 미드 라이너가 초반 교전에서 킬을 몰아서 가져가며 현상금까지 걸린 상황이다. 한 명이 먼저 쓰러졌을 때, 승기가 확실하게 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때 ‘카사’가 확실히 '나이트' 쪽에 힘을 실어줬다. ‘카사’는 제어 와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드 주변 정글링을 하는 ‘카나비’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이후 한 방을 노린 포식자 그라가스의 갱킹이 미드에서 성공했다. 동시에 현상금을 ‘나이트’ 루시안에게 몰아준 장면이다. 해당 갱킹 한 번으로 ‘나이트’는 미드 라인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었다.

나아가, ‘카사’는 ‘피넛’이 감당하지 못했던 ‘카나비’의 카운터 정글은 어떻게 막아냈을까. 정글러 간 레벨 격차가 2레벨까지 벌어졌음에도 TES는 침착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서포터 ‘유얀지아’의 브라움이 ‘카나비’가 들어올 경로를 예측하고 미리 대기한 것이다. ‘카나비’가 아무리 카운터 정글을 잘한다고 한들, TES의 수비에 수차례 쓰러지고 말았다. 칼 같은 대처로 ‘카나비’의 과감한 플레이를 무리한 시도로 바꿔버렸다. 반대로, 갱킹에 집중한 ‘카사’도 팀원들의 힘을 바탕으로 ‘카나비’와 성장 격차를 깔끔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이렇듯 LPL 정글러들은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한다. 새로운 시도가 실패했을 때 흔들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관한 새로운 해답까지 찾아낸다. 세 번째 시드인 수닝의 정글러 ‘소프엠’ 역시 그렇다. 3/4위전에서 케인을 뽑기도 했던 ‘소프엠’은 챔피언-아이템 선택 면에서 남다르다. 한동안 이슈였던 점화-강타 그레이브즈를 프로 경기에서 처음 활용한 선수인 만큼 언제든지 프로 경기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준비가 된 선수다. 리 신으로는 잘 성장한 ‘시예’의 에코가 궁극기를 누를 여유조차 안 주며 제압할 정도로 날카롭게 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번 롤드컵에 진출한 LPL 정글러들은 피지컬은 기본이거니와 이를 바탕으로 자신감 넘치는 시도를 해왔다. 앞으로 롤드컵에서도 어떤 새로운 시도로 다른 지역을 위협할지 모를 선수들이다.

▲ '카니비' 카운터 정글 완벽 대처한 TES




갑자기 탱 메타? 굳건히 굳히는 ‘줌’화된 탑




'줌' LPL 섬머 정규 스플릿 모스트 및 탱커 지표

(모스트1)볼리베어 11회 승률 63% - KDA 4.7
(모스트2)오른 9회 승률 88.9% - KDA 5.3

말파이트 1회 승리 - KDA 5.5
마오카이 1회 승리 - KDA 11

LCK가 섬머 PO가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탑 메타가 변한 듯하다. 케넨-레넥톤-카밀 정도가 무난한 카드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오른과 볼리베어-쉔 같은 탱커들이 그 자리를 서서히 잠식해가고 있다. 두 챔피언 모두 몇 차례 너프를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왔었다. 가끔 쓰이긴 했지만, 확실히 높은 티어에 있진 않았다. 그리고 주류 픽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탱커 중심의 기용은 LPL 경기에선 뚜렷하게 나타났다. 바로 탄탄한 플레이로 유명한 JDG의 탑 라이너 ‘줌’이 이끌어온 메타이기 때문이다. 쉔이야 서구권에서 자주 나온 픽이지만, 오른-볼리베어는 ‘줌’의 섬머 정규 스플릿 모스트 카드다. 섬머 스플릿 동안 두 챔피언을 모스트로 두고 있을 만한 선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줌’은 탱커 챔피언의 장점을 살려 LPL 결승까지 올 수 있었다.

LPL PO에서도 ‘줌’ 오른의 존재감은 확실히 남달랐다. 봇-정글을 주로 뽑는 초반 픽 단계에서 살면 가져오는 픽이 ‘줌’의 오른이었다. 경기 내에서도 확실히 그 존재감을 뽐내며 한 세트를 제외하고 JDG PO 밴픽에 모두 얼굴을 올렸다. 결승전에서는 TES가 5세트까지 모두 오른을 밴 할 정도로 ‘줌’ 오른의 명성은 높았다. 확실히 오른이 밴픽 단계에서 두 번째 픽으로 뽑힐 정도로 티어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들이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타를 통해 오른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레벨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 원거리 딜러 ‘로컨’ 이동욱이 안정적으로 후반으로 갈 수 있고, 그 믿음에 보답할 능력이 충분했다. 그렇게 ‘줌’의 오른은 JDG의 무시할 수 없는 카드였다. 카운터라고 할 수 있는 케일도 ‘줌’의 오른을 막지 못했다. 딜러 챔피언을 선호하기로 유명한 IG ‘더샤이' 강승록까지 롤드컵 선발전에서 오른을 뽑을 정도로 ‘줌’의 오른은 본보기가 됐다.


딜량 1위 '줌' 말파이트 1:2 장면(출처:LPL ENG)

‘줌’의 매서운 점은 다른 픽으로도 캐리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카나비’가 왜 첫 갱킹을 탑으로 연이어 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LPL 결승전 4세트에 나온 말파이트 플레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첫 갱킹을 풀어주니 ‘369’를 상대로 라인전을 압도하더니 1:2 싸움에서 버티며 역습하는 장면까지 만들어냈다. TES가 미드 루시안을 내세우며 AD 딜에 집중했지만, 방어 아이템을 꽉 채워 넣은 말파이트에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반대로 궁극기 활용 한 방에 루시안이 끊기는 장면까지 나오면서 ‘줌’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다. 탱커는 팀에 묻어가거나 이니시에이팅 담당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줌’의 말파이트는 위 지표처럼 딜량 1위를 달성하며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LPL 탑 라인 서열을 확실히 정리한 ‘줌’이 곧 LPL의 메타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항상 탱커만 할 수 없는 법. ‘줌’은 섬머 포스트 시즌 전후로 카밀이라는 카드 역시 준비했다. ‘줌’에겐 나름 새로운 시도라고 말할 수 있는데, 카밀 플레이 역시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빛나는 건 한타가 끝났다거나 열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타이밍에 들어가는 그의 판단이었다. 바론을 가져간 후에 팀원들이 빠질 때도 홀로 들어가 한 명을 묶은 뒤 킬을 만들어냈다. 해당 세트에서 미드로 마지막 진격을 할 때도 포탑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홀로 들어가 그레이브즈를 잡아내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말 그대로 허를 찌르는 기습이다. 이런 변칙적인 움직임이 있기에 LPL 한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줌’ 플레이 자체가 변수가 돼 언제 한타가 열리고 끝날지 모를 만한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카나비’가 첫 갱킹을 그토록 ‘줌’에게만 집중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걸 본다고? 역습의 LPL 서포터


정확하게 '잭키러브' 노린 '리마오' 레오나 역습(출처:LPL ENG)

앞서 ‘줌’이 확실한 굳히기에 능했다면,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역할은 서포터들의 역할이 컸다. JDG ‘리마오’ 바드가 플레이메이킹하는 장면은 스프링 결승 때부터 이번 결승까지 익숙해졌다면, 최근 경기에서는 LPL 서포터들의 반격 능력이 더 돋보인 경기가 많았다.

LPL PO에선 특히 역전에 재역전이 나오는 경기가 잦았다. 이는 불리한 팀의 서포터가 의외의 타이밍에 한타를 열면서 가능했다. LPL 결승에서 두 팀의 서포터는 레오나-쓰레쉬-세트로 그런 역할을 꾸준히 해줬다. 후퇴하는 척하다가 들어가서 상대를 휘젓거나 끊어내는 플레이로 많은 변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큰 격차가 나는 상황임에도 역전을 위해 누군가 한타를 열어야 할 때, 롤드컵에 진출한 LPL팀에겐 믿고 호응할 만한 서포터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될듯하다. 위 영상에서 ‘리마오’의 레오나가 뒤로 돌아 정확하게 딜러 ‘잭키러브’를 물면서 한타가 열려 JDG가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TES ‘유얀지아’ 역시 쓰레쉬로 JDG 성장의 핵심인 ‘카나비’를 수차례 끊어주면서 역전의 서막을 써내려간 경기도 있었다.

최근에도 LCK는 LPL의 역습을 경험해본 바 있다. 미드 시즌 컵의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에서 DRX와 JDG가 맞붙었을 때다. 분명, DRX가 초반부에 킬을 몰아서 가져가며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의외의 타이밍에 들어오는 JDG의 역습에 승기를 내주고 말았다. 유리함을 굳히기 위해 보다 확실한 판단이 필요하며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는 LPL 서포터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할 듯하다.


LPL 여름-결승 MVP, LPL 미드 대표 주자 ‘나이트’



많은 포지션을 언급했지만, LoL에서 미드 라이너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LPL 결승을 보면서 미드 라이너가 저렇게 활약하는 팀은 진짜 우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머 정규 스플릿 MVP이자 결승전 MVP까지 받은 ‘나이트’의 경기력이 그랬다. 1세트부터 세트의 ‘대미장식’으로 역전승을 거두는 장면은 복선이었을까. 5세트에서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신드라의 한 방으로 모든 것을 뒤집으며 우승으로 향할 수 있었다. 희박해 보이는 가능성 속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 TES의 LPL 결승전이었다.

그렇게 섬머 LPL은 ‘나이트’의 무대였다. 미드 라인전 주도권을 잡는 것은 기본, ‘나이트’의 이미지와 다를 수 있는 카르마-세트와 같은 챔피언으로도 제 역할을 해줬다. 마지막으로 극한의 슈퍼플레이를 해낸다는 점에서 ‘나이트’의 MVP는 당연했다.

결승전의 ‘나이트’는 1세트부터 인상적이었다. 탱커 세트로 가장 잘 큰 상대 ‘카나비’를 끌고 다니면서 그사이에 팀원들이 불리한 상황을 조금씩 극복할 기회를 만들었다. 한타 때는 궁극기로 판을 만들었다. 세트-케넨 조합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성장 격차를 만회할 만한 화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의외의 플레이메이킹으로 시작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뽐낸 것이다. 누군가 최고의 미드에게 왜 탱커를 주냐고 물어본다면, ‘나이트’의 플레이가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DRX가 PO 젠지전에서 꺼낸 세트-케넨으로 보여주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 아마 해당 장면이었을 것이다.

2~4세트에선 조이와 루시안 대결을 ‘야가오’와 픽을 바꿔가며 펼쳤다. ‘나이트’가 두 게임 모두 라인 주도권을 잡아줬기에 ‘카사’ 역시 ‘나이트’와 함께 움직이며 원하는 구도를 그려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트’의 진가는 가장 극적인 순간, 마지막 5세트에서 나왔다. 5세트는 의외로 힘겹게 출발했다. ‘야가오’의 조이가 라인전부터 한타 때까지 주도권을 잡고 ‘나이트’를 거세게 압박했다. 킬 스코어 격차마저 벌어진 위기 속에서 신드라의 적군와해 한 방으로 두 명을 제압하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놓을 수 있었다.

MVP와 우승 거머쥔 '나이트' 신드라의 한 합(출처:LPL ENG)

벽을 넘어 생각 이상의 범위까지 가는 신드라의 적군와해를 우린 보통 ‘잡기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나이트’의 플레이를 표현하기엔 한참 부족한 단어다. 가장 중요한 한타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두 챔피언이 뭉친 순간 해낼 수 있는 능력. 큰 무대와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트’였기에 가능했다. 동시대 활동했던 전 프로의 말을 빌리자면, 데뷔 초반 프로 무대에서 솔로 랭크 실력의 절반도 못 보여주던 ‘나이트’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불과 스프링 결승만 하더라도 자신의 무리한 플레이로 마지막을 그르쳤던 ‘나이트’이기에 MSC-LPL 섬머의 우승이란 결과는 놀랍다. 어느새 LPL 대표 스타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이전까지 ‘나이트’가 신예였다면, 이젠 해줘야 할 때 정말 해낼 수 있는 슈퍼스타로 거듭난 기분이다. LPL 결승에서 JDG ‘야가오’ 역시 루시안으로 역습에 성공하고 조이로 분전했지만, 승부를 결정짓는 ‘나이트’의 한 방을 따라 하진 못했다. 결국, 이 플레이를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에서 ‘나이트’가 승리를 거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낼 수 있는 게 TES ‘나이트’였다.


LPL이 무서운 건 최상위권팀이 하는 플레이를 아랫 단계의 순위 팀들까지 해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나이트'의 상징과 같은 신드라는 수닝 미드 ‘엔젤’ 역시 여전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리마오’가 바드-레오나로 보여주는 플레이메이킹 플레이를 중-상위권 팀까지 시도할 줄 안다. 너프된 탑 오른 플레이를 흡수하려는 움직임 역시 많았다. 밑 단계 팀까지 LPL은 무서운 속도로 자신들만의 메타를 확립하고 장점이 있다면 바로 따라하고 있다. 탑-미드의 안정감을 지향했던 JDG가 카밀-루시안 등의 카드를 정규 스플릿부터 준비했듯이 LPL은 새로운 시도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최근 LPL은 2년 넘게 세계 대회에서 타 지역보다 앞서갔다. 2018 롤드컵은 강한 라인전 중심의 ‘상체’ 경기로 IG가 가져갔다. 제이스-르블랑의 티어를 확실히 올려놓았고,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로 완성했다. 2019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FPX ‘도인비’ 김태상이 미드 노틸러스-라이즈-갈리오를 앞세워 로밍-합류전으로 새롭게 우승의 공식을 완성했다. 가장 최근 진행한 2020 MSC에서는 ‘카사’가 리 신의 티어를 끌어올린 바 있다.

올해도 LPL은 전 세계 LoL 씬을 대표할 만한 메타를 만들어갈 것인가. 일찌감치 선발전을 마치고 롤드컵으로 향할 네 팀이 결정된 LPL이다. 결승전과 같은 치열한 기세로 서로 연습했을 때, 어떤 극한의 플레이가 나올 수 있을까. LPL의 기세는 올해도 여전히 매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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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 JDG 이미지 출처 : 공식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