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은 음악이나 회화 등 여러 문화·예술과 비교하자면 역사라고 부르기 민망할 수준으로 짧고, 새롭게 등장한 영역입니다. 그래도 이 짧은 기간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며 다른 문화 이상으로 확장되고 재생산됐죠. 이른바 시대의 첨단 끝에 서서 달리는 셈인데요. 이 조금의 날 위에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게임은 부지기수입니다.

한때는 그래픽 끝판왕으로 꼽혔던 게임도 이제는 눈뜨고는 도저히 못 봐줄 게임이 되고 높은 자유도를 자랑하는 게임은 낡은 디자인을 가진 게임으로 잊히고 말죠. 그래서 고전, 그러니까 클래식한 게임의 가치는 다른 어떤 문화 예술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짧은 기간 숱하게 사라진 작품들 속에서 구식이 아니라 고전적인 것으로 기억되기 너무나 어렵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니까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슈퍼 마리오)는 그런 게임 업계의 고전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고전입니다. 그리고 닌텐도는 이런 고전 프랜차이즈를 어떻게 하면 사업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그 표본을 보여줬습니다.


1985년 등장한 슈퍼 마리오는 매끄러운 움직임과 연출을 구현한 기술력, 지금까지도 극찬받는 맵 디자인 등 당대 게임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오늘날 플랫포머의 기반을 다졌고 평가받았고 일련의 시리즈가 하나의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했죠.

35주년 된 슈퍼 마리오. 닌텐도는 이런 기회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양한 굿즈와 컬래버레이션, 관련 게임 등을 연이어 공개했죠. 티셔츠나 뱃지를 팔고 모바일 게임에 슈퍼 마리오 캐릭터를 추가하고, 리마스터 합본과 이식작을 출시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한 기업이 고전 작품으로 돈을 버는 흔한 모습입니다. 기간 한정 판매라는 방식도 유저들의 지갑을 더 빠르게 열려는 의도가 보였죠. 하지만 닌텐도는 유저들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돈 잘 벌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다고 티를 내는 것처럼요.

우선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유저라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35인 슈퍼 마리오 배틀 로얄을 내놓아 게임 플레이의 연속성을 구현했죠. 집 안에 마음대로 코스를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로 미니 카트를 조종하는 '마리오 카트 라이브 홈 서킷'은 마리오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보여줬습니다.

대미를 장식하는 건 바로 '게임&워치 슈퍼 마리오'입니다. 고작 슈퍼 마리오 1, 2에 시계 기능 정도만 담긴 작은 게임기가 뭐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은 닌텐도 성공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휴대용 게임기 강자 닌텐도의 핸드헬드 서장을 연 게임&워치. 이걸 오늘날 게임 강자 닌텐도를 만든 슈퍼 마리오와 함께 섞는다는 건 그야말로 상상 속 조합인 거죠.


1980년 처음 출시된 게임&워치는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의 성공을 이끈 작품 중 하나입니다. 흔히 전자시계에 쓰이는 Segment LCD를 사용해 화면을 표시했습니다. 저장된 장면을 돌려가며 실제로 움직이는 듯 연출했죠. 90년대까지 꾸준히 생산됐고 복제 게임기도 시장에 꽤나 많이 돌아다녀 8~90년대 생이라면 기억할 수도 있을 만한 게임기입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게임&워치 슈퍼 마리오가 예전 모습 그대로 출시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슈퍼 마리오 게임도 넣어 이걸 플레이할 수 있도록 십자키를 추가했죠. 십자키는 요즘 나오는 스위치 프로콘 형태가 아니고 어릴 때 만지작거리던 패미컴 버전을 그대로 구현했습니다. 화면이 작은 만큼 버튼 크기도 작아 입력 실수가 꽤 있지만, 그래도 옛 느낌 하나는 제대로 살렸죠.

▲ 똑딱똑딱 소리 내며 전자계산기 같은 액정으로 게임 구현했던 게임&워치. 이걸 알면 최소. 알죠?

▲ 황금빛이 감도는 게임

▲ 추가된 십자키는 고전 패미컴 스타일입니다

▲ 장난감 같은 스위치보다 더 견고합니다. 이게 원래 닌텐도 만듦새였는데...

우측의 버튼 세개로 간단한 밝기, 볼륨 조작과 게임 실행, 시계 화면으로 언제든 전환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게임은 별다른 저장 기능은 없지만, 게임기를 완전히 종료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이어 할 수 있죠. 휴대용 슈퍼 마리오 게임기로 마냥 아쉽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포함된 슈퍼 마리오 1과 2가 외형만 게임&워치라면 '볼(Ball)'은 그야말로 예스러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복각판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 게임이자 게임&워치 대표 게임인 볼은 간단한 저글링 게임으로 전자 계산기같은 LCD 특징도 고스란히 구현됐죠.

참, 슈퍼 마리오2는 흔히 국내에서 2편으로 알려진 '슈퍼 마리오 USA'가 아니라 1편의 개량판인 '슈퍼 마리오: 로스트 레벨'입니다. 이게 난이도가 워낙 높은 작품으로 유명해서 약간의 도전 욕구도 불러일으키죠.

▲ LCD 자체는 꽤 밝은 편

▲ 상단 버튼 세 개로 자유로운 메뉴 전환이 가능하고


▲ 대충 티만 낸 게 아니라 진짜로 게임 됩니다

▲ 대신 두께 자체가 얇아 플레이가 쉽지는 않습니다

사실 아무리 닌텐도식 십자키가 추가됐다고 하더라도 크기 자체가 작고 그립감에 영향을 주는 두께도 얇습니다. 은근히 어려운 슈퍼 마리오의 플레이에 적합하다고는 못하죠. 진짜 핵심은 시계 기능입니다. 닌텐도도 이 기기를 게임기가 아니라 게임이 담겨있는 '마리오 시계'로 소개할 정도니 말 다했죠.

TIME 버튼을 누르면 언제든 화면에 현재 시각이 표시되는데요. 슈퍼 마리오 스테이지를 그대로 따서 만든 배경에 블록으로 커다랗게 시간이 그려집니다. 이게 단순히 블록 위치만 변하는 게 아니라 마리오가 굼바나 엉금엉금을 피해 점프하고 밟는 등 다양한 공격이 함께 이루어지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거 하나만 보고 있을 만하게 잘 짜여있습니다.

닌텐도스러운 '숨겨진 요소'도 다수 담겼습니다. 특정 시간이 되면 블럭이 모두 코인으로 바뀐다든가 적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시간에 따라 석양이 지고 밤이 되는 식이죠. 35개의 특별 이벤트가 포함됐다고 하는데 이걸 다 챙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요소라 부를 만하고요.

▲ 신사라면 회중시계, 아니 게임&워치 하나씩은 주머니에 있잖아요?

▲ 동봉된 거치대 위에 올려두면 짜잔

▲ 요런 식으로 모니터 아래 두고 틈틈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죠

▲ 시간에 따라 배경 색상도 달라집니다



이렇게 거치해뒀을 때도 멋지긴 합니다만, 한정 생산 및 판매 제품에 어울리는 건 바로 밀봉 보관이겠죠. 포장 구성부터 소장용에 어울리는 외관을 자랑합니다. 얼핏 보면 한 박스처럼 보이는데 일부 8비트 게임 오브젝트는 여기 플라스틱 바깥 케이스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게 구부러질 때마다 살짝 3D 느낌도 나는데요.

예전에는 탄탄한 외관에 못 미치는 박스 구성이 닌텐도 상품들의 아쉬운 점이었는데요. 이번에는 마리오라는 이름에 걸맞은 확실한 디자인을 선보인 게 눈에 띕니다.

▲ 마리오와 굼바 등 슈퍼 마리오 캐릭터가 그려진 박스같지만

▲ 플라스틱 커버를 벗겨내면 고전 게임&워치 디자인만 남습니다. 신경 많이 쓴 게 눈에 보여요

▲ 박스 안쪽에 새겨진 감사 문구는 '게임&워치 볼' 복각판에서 보여준 적 있습니다.
개봉할 때 은근 기분 좋아요

게임을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꽤 오래됐지만, 사실 그걸 파는 기업 입장에서는 잘 만든 게임도 하나의 상품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상품을 어떤 모습으로 꾸며 파는지도 기업의 몫이죠. 어떻게 해야 잘 팔릴지도 기업의 역량이고요.

요는 이렇습니다. 이미 잘 만들어진 고전 작품에는 그 나름의 팬, 이용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갑을 여는 건 꽤 간단합니다. '게임사가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이렇게나 생각해주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거죠. 그래서 별다른 기능도 없는 이 LCD 시계의 별것 아닌 것 같은 디테일에 감동하기도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것 같습니다. 이걸 구하는 데 쓴 55,000원이 그다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내가 좋아하는 마리오를 이렇게 챙겨주는 기업이라면'이라고 말이죠.

다시 말해 닌텐도는 어떻게 하면 내 상품이 잘 팔릴지 아는 기업이라는 겁니다. 두둑해지는 주머니는 그 결과고요. 그렇게 닌텐도는 오늘도 능숙하게 장사를 하고 슈퍼 마리오는 팬들의 사랑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