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LoL 프로게이머들이 FA 시장으로 나온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선수를 뽑아보자면 '쵸비' 정지훈이 빠지지 않는다. 보통 LCK-롤드컵 우승자가 이적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는데, 우승 경험이 없는 '쵸비' 역시 이적 시장에선 남다른 존재감을 가진 선수다. 새 계약을 할 때 "'쵸비'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선수도 있을 만큼, '무관'이라는 표면적인 기록만으로 말할 수 없는 능력이 '쵸비'에게 있다.

일단, 지금의 FA 시장은 '쵸비'에게 웃어준다. LCK의 상위권 미드 라이너들이 대부분 내년까지 기존 팀에서 활동하기로 계약이 돼 있기에 그렇다. 많은 이들이 LoL에서 미드-정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특히 올해 시즌 중에는 '미드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미드 라이너 한 명의 영향력이 큰 시기가 있었다. 미드 시즌 컵(MSC)를 전후로, 또 롤드컵 선발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미드가 탄탄하게 받쳐주는 팀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중요한 건 FA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넘어서도 '쵸비'는 경쟁력 있는 선수라는 점이다. 분당 CS, 15분 상대와 격차 등 기본기를 나타내주는 지표 외에도 보이지 않는 역할들이 많다. 그동안 '쵸비'는 어떤 모습을 보여왔길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까.


시즌 전반-위기 상황 '쵸비'가 주는 안정감


LoL은 매 시즌 대격변이 일어나고 격주마다 패치가 이뤄지는 변화무쌍한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게이머들도 그 변화에 완벽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단순히 챔피언 폭이 넓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프로 경기에서 팀 게임에 맞춰 소화해낼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프로들도 자신이 강한 메타가 있고, 특정 메타에서 약점을 보이는 순간도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쵸비' 정지훈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선수였다. 가끔 한 두 경기 말리며 패배하는 경기가 있을지 몰라도, 팀의 전반적인 성적을 유지하는데 악영향을 줄 정도로 오랫동안 무너진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그리핀과 DRX에서 2년 연속 롤드컵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챔피언 숙련도 역시 남달랐다. 2019년 스프링 초반부는 많은 팀들이 아칼리가 리메이크 되면서 프로 경기에 쓰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지금이야 아칼리를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익숙하게 다루지만, 초반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프로들도 아칼리 플레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쵸비'는 남다른 아칼리 활용을 선보이며 그 가능성을 끌어올렸다.

그 당시 한 프로팀의 코치는 "아칼리로 미드 라인전을 '쵸비'처럼 할 수 있는 선수가 잘 없다"며 '쵸비'의 높은 챔피언 이해도와 라인전 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렇게 '쵸비'는 2019 스프링에서 7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선보이며 그리핀의 행보에 큰 힘이 됐다. 담원 '쇼메이커' 허수(2승)와 '페이커' 이상혁(1승 1패)의 아칼리 성적과 비교해봤을 때, '쵸비'가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며 이를 프로 무대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칼리 외에도 아트록스-아지르-직스-세트 등 '쵸비'는 메타마다 필요한 챔피언을 시기에 맞게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미드 라이너 한 명의 능력만 봤을 때도 '쵸비'는 매력적인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현 최고의 미드-정글은 당연히 LCK-롤드컵을 우승한 담원 게이밍의 '쇼메이커-캐니언'이다. 그렇지만 미드 라이너 한 명만 놓고 봤을 때 평가는 또 다를 수 있다. 개인 역량면에서 '쵸비'의 능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글러가 많이 봐줘야 힘을 발휘하는, 정글러가 말리면 큰 영향을 받는 선수도 있는데, 정글러 없이도 제 역할을 해내는 선수가 있다. '쵸비'가 바로 대표적인 후자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미드와 달리 나는 정글러 혼자서 알아서 하게 두고 홀로 상황을 해결하는 스타일이다"고 본인이 말한 그대로를 게임에서 보여준다. 신예 '표식' 홍창현이 흔들릴 때, 그리고 사이드 라인을 위주로 공략하는 경기 양상에서도 '쵸비'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라인 관리부터 성장까지 빠지지 않기에 더 놀랍다. 그렇게 '쵸비'가 속했던 그리핀-DRX는 미드가 흔들리지 않아야만 가능한 그림을 얼마든지 그려나갈 수 있었다.

'쵸비'의 탄탄한 기본기는 팀의 위기 상황에서도 잘 드러났다. 올해 스프링 스플릿을 시작할 때, '도란' 최현준이 출전 정지로 '쵸비'가 대신 탑 라이너로 나서 승리한 경기가 있었다. 해당 경기에서 '쵸비'의 기록은 2020 LCK 스프링 정규 스플릿 탑 라이너 중 분당 CS 1위, 15분 골드-경험치-CS 격차 1위로 남아있다. 비록, 3세트라는 적은 표본에서 나온 결과지만, 다른 라인에서도 이런 기록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팀에 큰 변수가 생기더라도 '쵸비'가 있는 한 큰 타격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위권 지키기에 굳건한 캐리력


변수를 없애는 능력 못지않게 '쵸비'의 캐리력 역시 팀 성적에 큰 영향을 줬다. LCK 결승권, 롤드컵 시드권처럼 상위권의 자리를 지켜내는 게 프로팀 입장에서 중요한데, '쵸비'는 상위권 팀과 대결에서 확실한 캐리로 팀에 값진 승리를 안겨줬다. 중요한 경기에서 한-두 세트는 '쵸비'가 가져오면서 팀을 승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섬머 정규 시즌부터 롤드컵 진출까지 치열한 경기를 이어온 젠지 e스포츠와 대결에서 '쵸비'의 진가가 제대로 나왔다. 상대 '비디디' 곽보성이 스프링에 이어 섬머까지 많은 POG에 선발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쵸비'는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젠지전에서 중요한 한 방을 꽂아넣을 줄 알았다. 위 영상은 불리한 한타 상황에서 '쵸비'가 갈리오로 얼마나 침착한지 잘 보여준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타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침착하게 노린 그의 대범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미드 주도권을 바탕으로 게임 전반을 풀어가는 능력 역시 뛰어나다. LCK 결승과 롤드컵 진출을 두고 벌인 젠지와 섬머 PO에서 칼날비 특성을 든 에코로 '비디디'의 대표 챔피언인 아지르를 압박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간다. 라인전 단계부터 상대를 몰아넣고 굴릴 수 있는 스노우볼을 찾아다녔고, 일방적인 흐름으로 경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스프링에서 '쵸비'는 에코로 T1 '페이커' 이상혁을 상대로 비슷한 흐름을 만들어 해당 세트 승리를 거뒀다. 상위권 팀과 경쟁에서 미드 라이너의 힘만으로 한 세트 이상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우위에 서는 것이다.

그만큼 '쵸비'는 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을 수 있는 캐리력을 지닌 선수다. 롤드컵 우승-4강 주자인 담원 게이밍과 TES를 상대로 홀로 캐리할 수 있는 구도가 나오진 않았지만, 두 팀을 제외한 팀과 대결했을 때 '쵸비'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돈이 전부가 아니었던 첫 선택, 올해의 선택은?


그렇다면 팀들 사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쵸비'의 차기 행선지는 어디일까. 작년에 '쵸비'는 거액 연봉의 제의가 왔음에도 DRX를 선택했다. 연봉의 액수보다 높은 곳을 목표로 DRX를 선택한 것이다. 동시에 김대호 감독에게 했던 "올해는 롤드컵에 같이 가요"라는 말을 지켰다. 자신이 추구한 가치와 목표를 결국 이뤄냈다는 점에서 분명 인정받을 만하다.

물론, 활동 시기가 불명확한 프로게이머에게 연봉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이전에 연봉 이외의 선택을 했던 '쵸비'라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어떤 게임단이 '쵸비'가 원하는 조건을 잘 맞출 수 있을까. '쵸비'의 선택이 그대로일지, 바뀐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는 이번 이적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