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명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
  • 개발 / 배급 : 액티비전(레이븐소프트)/블리자드
  • 장르: FPS
  • 플랫폼: 콘솔, PC (배틀넷)
  • 키워드 : #스파이 #슈팅 #냉전기 #음모론

  • 2000년대 초부터 FPS 프랜차이즈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콜오브듀티' 시리즈는 출시를 거듭하면서 두 가지 상징성을 손에 넣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시나리오에 영화적 연출을 덕지덕지 붙은 싱글 플레이 캠페인은 누가 뭐래도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다듬어진 멀티 플레이 건파이팅은 그 이상으로 강력한 시리즈의 상징이 되었죠.

    하지만 꾸준히 인기를 끈 멀티 플레이 콘텐츠에 비해,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싱글 플레이는 부침을 반복했습니다. '모던 워페어'로 최정점을 찍고, '고스트'로 최저점을 찍고, '인피니티 워페어'로 저세상 컨셉의 게임을 내놓는가 하면 블랙 옵스4에선 아예 싱글 플레이를 빼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죠. 바로 전 작품인 '모던 워페어'에 이르러서야 게이머들은 액티비전이 다시 시리즈의 싱글 플레이 캠페인에 신경을 쓴다고 느낄 정도로 그 이전에는 중구난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액티비전은 '블랙 옵스'라는 하위 프렌차이즈를 다시 되살렸습니다. 2차 대전도, 현대전도 리부트를 이뤄냈으니, 사실 순서에 맞는 결과물이긴 합니다. 그리고, 팬들의 기대심이 모였습니다. '콜오브듀티 블랙 옵스'는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게이머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새긴 작품입니다. 레즈노프와 메이슨, 우즈라는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시리즈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시나리오 플롯은 아직까지도 그 장면이 종종 생각나곤 할 정도로 강렬했으니 말이죠.

    ▲ 충격적 과거를 겪은 그들

    이런 배경 상황 때문에, '콜오브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이하 콜드 워)'는 출시와 동시에 엄정한 심판대에 서 버렸습니다. 프렌차이즈적 배경으로는 이제사 다시 싱글 플레이에 힘을 주는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두 번째 차기 주자이며, 동시에 시리즈 사상 최고로 충격적이고 복잡한 시나리오를 보여준 '블랙 옵스'의 후계를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시와 동시에 비보가 울렸습니다. 분량이 너무 짧고 고증 오류가 많다는 등의 혹평이 여기저기서 퍼졌고, 게임을 구매하기도 전에 알아서 걸러버리는 게이머들이 속속 생겼습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이라도, 이 시점이 리뷰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멀티 플레이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고 '싱글 플레이 캠페인'때문에 콜오브듀티 시리즈를 구매하는 게이머는 꽤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번 리뷰는 혹평을 뚫고 게임을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가늠해보려 합니다.


    ※ 본 리뷰에는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분량이 진짜로 짧습니까?

    먼저, 한 가지를 검증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로, 진짜로 싱글 플레이 분량이 4시간 정도에 불과하냐는 것이죠. 콜드 워의 판매가는 일반적은 AAA급 게임에 비해서는 다소 싼 편이지만, 싱글 플레이를 강조한 게임 치고 플레이 분량이 4시간에 불과하다는 건 크나큰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출시된 'WW2'도 부족한 분량이 발목을 잡아 흑역사가 된 바 있으니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콜드 워'의 캠페인 플로우는 다소 특이한 편입니다. 본작의 캠페인에는 세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특정 인물을 살리냐 죽이느냐가 하나고, 새로운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증거를 모으냐 마느냐가 두 번째,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마지막입니다. 이 중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마커만 따라가면서 캠페인을 마무리지을 경우 4~5시간이면 진짜로 엔딩에 다다르게 됩니다. 혹평 그대로죠.

    ▲ 시키는 대로만 하면 솔직히 짧은 게임

    만약 게이머가 게임을 좀 더 파고들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며 스스로의 플레이를 만들어 갈 경우 플레이 타임은 이보다 더 길어지게 됩니다. '콜드 워'의 소재인 '음모론'은 단순히 소재에 그치지 않고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와 같이 쓰입니다. 당연히 게임 내에도 수많은 비밀이 있고, 게이머들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증거 및 등장 인물들과의 대화, 그리고 보너스 미션의 수행 유무에 따라 점점 진실을 파헤치게 됩니다. 그대로 엔딩으로 직행해버리면 사실 게임 내 많은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지요.

    사실 이렇듯 병렬적 구성을 통해 시나리오의 뎁스와 플레이 타임을 늘리는 건 장단점이 존재하는 방식이기는 합니다. 일반적인 레일 슈터의 공식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깊이있는 플레이가 이뤄질 수 없고, 결국 게이머가 발로 뛰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야 게임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형태인데, 이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보다는 게이머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유도력이 약한 만큼 빠른 클리어와 시원한 건플레이를 바라고 게임을 구매하는 게이머들은 다소 맥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냉전기의 비밀 요원에 몰입해 여러 증거를 모으고, 이를 추리해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는 게이머들에게는 퍽 만족스러운 구조일 테지만 말이죠. 그렇게 플레이한다면, 8시간 정도의 플레이 시간은 넉넉하게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길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중간에 셋 정도의 미션을 더 끼워 넣었다면 적절한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개인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 증거가 부족하면 열리지 않고 넘어가는 미션도 있고, 그렇게 엔딩을 볼 경우 "이 건은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자책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시나리오가 꽤 어렵다는 점도 이에 한 몫을 합니다. '콜드 워'는 전체적으로 '블랙 옵스1'의 오마주를 굉장히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전작에 등장했던 장소를 십수년 후 다시 찾아가는 미션도 있고,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천연덕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숱하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은 게이머들에게는 우즈와 메이슨을 왜 저렇게 띄워주는지, 화살에 맞아 죽은 시체를 보고 왜 허드슨을 언급하는지 등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작을 플레이한 팬이라면 자연스럽게 감탄하며 바라볼 장면도 누군가에겐 '저건 또 뭐지?'라는 생각만 들게 하고, 그렇기에 게이머가 이것저것 찾아볼 동기가 되지 못합니다. 전작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적은 게이머라면, 당연히 매우 짧은 분량이라 생각하겠지요.

    ▲ 미션 중 가게 되는 '야만타우' 산은

    ▲ 블랙 옵스1 당시 허드슨으로 쓸어버린 그곳입니다.



    ■ The Picaresque

    분량에 대한 이야기는 마쳤으니, 이제 그 분량을 채우는 내용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입니다. 이번 작품의 서사적 특징은 꽤 많은 편이지만, 가장 주의깊에 봐야 할 부분은 이것입니다. 바로 '절대 악'이 없이, 각자의 대의를 지닌 악인들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대부분은 명확한 '악'이 존재했습니다. 목적은 모두 다르고 대의도 각각 다르지만, 어쨌거나 수많은 선량한 이들을 희생시키려는 악의 세력, 혹은 인물이 존재했고 게이머는 이를 막기 위해 산을 타고 진흙밭을 구르며 싸움터를 전전하는게 일반적인 흐름이었죠. 하지만, '콜드 워'는 뚜렷한 악이 없습니다.

    ▲ 아군의 최고 수뇌조차 최악의 스캔들이었던 '이란-콘트라' 사건의 주인공인 레이건 대통령

    주요 빌런인 '페르세우스'는 유럽 전역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이 핵폭탄이 미국의 것임을 폭로해 서방세계의 몰락을 일으키려 합니다. 나쁜 녀석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핵폭탄 자체는 '그린라이트 프로젝트'라는 이름 하에 미국이 설치해둔 것이 맞습니다. 미국 또한 나쁜 녀석입니다. 주요 인물인 허드슨과 애들러는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는다는 대의를 위하지만, 이를 위해 다른 이의 삶을 파멸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 또한 선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또한, 만만찮은 원죄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렀을 때, 게이머는 편향성 없이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사로 취급되는 엔딩이 있지만, 무엇을 고르든 특별히 더 불쾌한 엔딩은 없습니다. 양 쪽 모두 찝찝한 결말을 맞이할 뿐이죠. 전형적인 악과 악의 구도인 '피카레스크(Picaresque)'의 형태입니다. 그리고 피카레스크에는 절대 해피 엔딩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저 결말만 있을 뿐이죠.

    작중 인물들 중 '제이슨 허드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리고, '러셀 애들러'는 이렇게 말하죠. "선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는 선을 넘어서 싸워야 한다" 이 두 문장은 '콜드 워'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문장입니다. 작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선을 넘고, 악을 저지르며, 거짓된 정보를 퍼트리고 진실을 은폐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모순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 이 두 사람도 주요 아군이지만 모두 악행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플레이 내내, 게임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올바른 행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생포한 주요 인물을 죽이든 살리든,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하든 내버려 두든 모두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선택한 내용에 따라 엔딩이 달라질 뿐이죠. 이는 이번 작품에 대한 부정적 견해 중 하나인 '엔딩이 애매하다'라는 의견의 근거가 됩니다.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어떤 선택을 하든 조금씩은 찝찝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살짝 뒤로 놓고 보면, 게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윤곽이 보입니다. 냉전은 서로의 희생만 낳는 멍청한 행위였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게이머에게 서사 구성의 권한을 주는 시스템은 게임 내 많은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잠긴 문을 여는 열쇠를 얻기 위해, 게이머는 다섯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몰래 독약을 입수해 열쇠를 가진 자를 독살한 후 얻을 수도 있고, 열쇠 보유자를 이중 첩자로 고발하거나 살해되도록 사주한 후 혼란을 틈타 열쇠를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다짜고짜 암살한 후 열쇠를 챙길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열쇠를 만든 후 뇌물을 이용해 재프로그래밍해버릴 수도 있지요. 이런 비선형적 구성은 예전의 콜오브듀티에서도 종종 사용된 바 있지만, 이번 작품은 더욱 신경쓴 티가 역력히 느껴집니다.

    ▲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액티비전판 '악인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연출 기법과 카메라 워크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공포 게임을 넘어서는 몇몇 섬뜩한 장면들은 감탄이 나올 정도지요. 이전 블랙 옵스의 구룡성채 미션이나 보르쿠타 굴라그 탈출 작전, 그리고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노 러시안'과 같이 인상 깊은 미션은 아니지만, 각 미션이 얽혀 만들어내는 서사 흐름은 매우 훌륭합니다. 짧은 분량이 한 번 더 아쉬워지는 부분이었죠.

    ▲ 블랙 옵스의 '크라브첸코', 모던 워페어의 '이므란 자카예프', 그냥 고르바초프가 함께 있는 이 장면은 팬이라면 꽤 놀랄만한 장면



    ■ 까다로운 조건의 수작

    결론을 내 봅시다. 결국 이 리뷰의 이유는 그래서 게임을 사도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니까요. 정리하자면, '콜드 워'는 굉장히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게임이 어렵거나 사양이 높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게임의 재미를 100% 느끼기 위해서라면, 미리 갖춰야 할 조건이 꽤 복잡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게임의 완성도 때문이 아닙니다. 그만큼 소재와 서사 구조가 까다롭다는 뜻이죠.

    2010년 출시됐던 '블랙 옵스'의 팬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고' 하시면 됩니다. 콜드 워는 가격부터 일반적인 AAA급 게임보다 싼 편이기 때문에 짧은 분량으로 인한 아쉬움이 다소 옅어지기도 하며, 우즈와 메이슨의 한글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게임을 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물론 우즈의 욕설은 다소 좀 어색하긴 하지만요. 뭔가 누가 시켜서 욕을 하는 것 같긴 합니다.

    ▲ 보기만 해도 경기가 나는 빨간 문 연출

    또한, 냉전 시기와 음모론에 관심이 많은 게이머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게임입니다. CIA와 KGB의 대립이 주가 되다 보니 이런 소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찰떡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뱐카의 소비에트 연방 보안국을 직접 들어가는 게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경우, 10년 전 작품인 '블랙 옵스'를 구해서 한 번 플레이하고 간다면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겁니다. 10년 전 게임이지만, 지금 플레이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게임이니 말이죠.

    하지만 냉전도, 음모론도, 별 관심이 없고 모던 워페어나 WW 시리즈에서 접하던 전면전과 영웅적 전투를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아마 잘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콜드 워'는 어디까지나 전면전이 아닌, 음지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에 전면전을 상정하는 미션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대부분이 숨어 들어가고, 소음기를 사용하는 미션들이죠.

    이렇듯, '콜드 워'는 다소 조건이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훔치기에는 실험적인 부분들도 보이며, 아쉬운 부분도 드러나곤 하죠. 하지만, '콜드 워'가 제시한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미래상은 퍽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WW2, 모던 워페어 리부트, 콜드 워를 거치며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모든 미니 프렌차이즈들의 리부트에 시동이 걸렸습니다. 아마 다음에 나올 작품은, 모던 워페어 리부트의 완성도와 콜드 워의 서사적 치밀함, 그리고 두 작품과 마찬가지인 한글 더빙이 이뤄진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