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하임(Valheim)'은 날아올랐다. 등 뒤에 날개를 단 발키리마냥, 수직으로 상승해 대기권을 뚫어버렸다. 스팀 스토어에 등재된 게임 중, 이른 시기에 흥행하는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작년에 흥행했던 '폴가이즈'도 단기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지 않았던가?

하지만, 발하임은 그보다 더 특별하다. '폴가이즈'가 아케이드 게임만큼 쉬운 디자인으로 엄청난 수의 캐주얼 게이머들을 끌어들였다면, 발하임은 혼자 하기엔 꽤 어려운 오픈월드 생존 게임이다. 그런 주제에 겉으로 드러나는 '참신한 재밋거리'는 하나도 없다. 여러 게임에서 단물이 다 빠질정도로 우려진 건축 시스템, 작년에 정점을 찍은 '바이킹'테마. 그래픽은 2000년대 초 게임 수준이다.


진부한 시스템과 테마, 저품질의 그래픽, 싱글 플레이에 적합하지 않은 장르 분류까지. 아무리 봐도 붐을 일으키기엔 힘든 게임이지만, 이걸 발하임이 해냈다. 얼리 억세스 출시 후 2주일이 지난 지금 최대 동접자는 39만 명. 스팀 전체 차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갔으며, 전체 평가 중 96%가 긍정적 의견을 보였다.

이쯤 되면 이건 좋고, 저건 나쁘고를 따지는 리뷰는 딱히 의미가 없다. 이미 게임은 흥행해버렸고, 지금껏 동종 장르의 어떤 게임보다 높은 기록을 세우고 있으니까. 중요한 건 차이점의 파악이다. 최근 몇 년, 숱하게 쏟아진 오픈월드 생존 게임들과 비교할 때, '발하임'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게임명: 발하임(Valheim)
장르: 오픈월드, 생존, RPG
출시일 : 2021년 2월 2일(얼리 억세스)
개발 : Iron Gate AB
플랫폼: PC(스팀)
태그: #오픈월드 #바이킹 #협동 #생존



'생존'보다 '모험'에 가까운 생존 게임

▲ 맨몸뚱이로 세상에 내던져지는게 일반적인 생존 장르의 시작

많은 이들이 생존 게임을 좋아하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게이머들이 딱히 달가워하지 않는다. '생존'이라는 태그를 달고 있는 게임들은 일반적으로 끊임없는 긴장 상황을 만든다. 밥을 못 먹어도 죽고, 추워도 죽고, 발을 잘못 디뎌서 죽고, 하여튼 게임 내 곳곳에 '잘못하면 죽는' 장치들이 가득하다. 그래야 생존의 의미가 생기니까.

반면 '발하임'의 생존은 딱히 빡빡하지 않다. 오픈월드 생존 게임에서 부상은 일반적이고, 고난도 게임들은 기생충 감염이나 식중독 등, 판도라의 상자에서나 튀어나왔을법한 온갖 시스템을 넣어두지만, 발하임은 제때 밥만 먹어 주고, 손쉽게 구하는 재료로 모닥불만 만들어 줘도 생존에 큰 지장이 없다. 심지어, 며칠 잠을 안 자도 밥만 잘 먹어 주면 문제 없다. 잘 자고 잘 쉴 경우 버프가 생기지만, 없어도 플레이하는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 집 짓는데 게임 시간으로 하루면 된다.

기존의 생존 중심 오픈월드 게임들이 밀려오는 죽음으로부터 버티는 과정을 그렸다면, 발하임은 게이머 개개인의 향상성을 자극해 위험에 스스로 다가서게 만든다. '더 롱 다크'보다는 '아크: 서바이벌 이볼브드'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 중요한 건 게이머가 스스로 위험에 몸을 던지게 유도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이머가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못할 정교한 난도 조절이다.

'발하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확보했다. '발하임'의 시스템은 일종의 페이즈 시스템처럼 나뉘어져 있으며, 보스 몬스터를 팝업시켜 처치하면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는 형태를 띈다. 그리고 해당 페이즈에서 만들 수 있는 장비만으로도 보스 몬스터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렇게 페이즈가 넘어갈 때마다 돌도끼가 청동, 철제, 전설적 장비로 바뀌고, 이에 따라 외형도 거적떼기 부랑자에서 털가죽과 철제 투구를 둘러쓴 진짜배기 바이킹으로 변한다.

생존 게임을 표방하지만, 생존보다는 모험에 가까운 디자인이 게이머들에게는 먹혀들었다. 타 생존 게임에 비해 플레이 부담은 현저히 적으면서도, 쫓기는듯한 긴장보단 더 강해지고자 하는 게이머 본연의 본능을 슬금슬금 자극한다. 바로 이 점이, 장르에서 오는 허들을 없앴다. 만약 '발하임'이 일반적은 생존 게임의 긴장 곡선을 디자인했다면, 잘 만든 게임은 됐을지언정 대중적 게임이 되긴 힘들었을 거다.

▲ 전반적으로 '모험'이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다.



'액션감' 살아있는 전투, '성취감' 느끼는 성장 시스템

▲ 10점 만점에 12점짜리 사나이

발하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을 하나 더 꼽자면, 전투 구현과 성장 시스템을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생존 게임들은 생존을 위한 기반 시스템 구축에 많은 코스트를 소모하기에 전투 시스템 자체는 평범하거나 기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존 게임 대부분은 총기를 기반으로 한 슈터 형태의 전투 시스템을 차용하는 편인데, 냉병기를 이용한 액션이나 근접전 상호작용보단 슈터가 보다 직관적이고 구현할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하임은 냉병기 중심의 근접 전투를 맛깔나게 구현했고, 이 전투 감각은 게이머들에게도 고평가받는 부분이다. 냉정히 말하면 별 것 없긴 하다. 프리 플로우 액션이나 다양한 상호작용 따윈 당연히 없고 애니메이션은 고정에다 조작감도 그냥 평범한 편이지만, 기대 이상의 타격 이펙트와 효과음, 그리고 다양한 무기 체계로 이를 보완한다. 적의 공격을 정확히 방패로 막아내고, 묵직한 무기를 휘두를 때의 손맛만큼은 AAA급 게임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 덕분에 적대적 개체와의 조우가 타 생존 게임마냥 큰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 장비 종류마다 플레이 감각은 꽤 상이한 편

베데스다의 오픈월드 RPG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숙련도' 개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발하임은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생존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세계와 캐릭터가 이원화되서 저장되기 때문에 오랜 기간 공들여 키운 캐릭터로 친구의 세계에 합류해 돕거나, 각 팀원들이 특정 역할에 특화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도끼와 방패 숙련도를 높여 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차단하는 탱커가 될 수도 있고, 멀리서 활로 약점을 내리는 궁수가 될 수도 있으며, 은신한 채 단검으로 적의 뒤통수를 찌르는 암살자 캐릭터의 육성도 가능하다. 기본은 오픈월드 생존 게임이지만, RPG적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는 뜻이다.

이런 발하임의 시스템 디자인은 또 하나의 허들을 치워 버렸다. MMORPG가 그 긴 시간 동안 인기를 끄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게임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남기 때문이다. 플레이 자체의 재미 뿐만 아니라, 점점 고인물이 되어가는 캐릭터를 보는 성취감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요한 동기다. 발하임도 그렇다. 세계가 바뀌고 같이 하는 이들이 바뀌어도, 내 캐릭터는 늘 한결같으니 플레이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해 봐야 남는 것도 없는 게임'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발하임이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다.

▲ 플레이 내내 캐릭터는 성장한다.



가격과 콘텐츠, 완성도의 삼박자


여기까지 정리하면, 솔직히 말해 그냥 적당히 잘 만든 오픈월드 게임이다. '생존'이라는 장르는 이미 수년 전부터 개발과 변형이 진행되었고, 발하임의 변형 포인트들은 모두 게이머가 부담을 느낄 만한 부분들을 덜어내는 쪽으로 집중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일 뿐, 새롭다라 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고평가를 받는 이유는 게임 내적 요소들 뿐만 아니라,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도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발하임의 세계는 마인크래프트나 노맨즈스카이처럼 난수 생성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지는데, 크기만 보면 무척 넓다. 또한, 지도가 넓은 만큼 콘텐츠도 생각 이상으로 풍부한 편이다. 발하임의 콘텐츠는 사실상 '디자인의 승리'라 봐도 무방한데, 개발사가 하나하나 노가다를 해 가며 콘텐츠를 쌓아올린 형태는 아니라 기본 시스템들이 잘 엮여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형태다.

▲ 콘텐츠는 게이머 하기 나름

예를 들어 초보자들의 공포인 '트롤'은 맵 상을 돌아다니는 적대 생명체일 뿐이고, 괭이질의 경우 단순히 지형을 높이거나, 낮추거나, 평탄화하는 역할을 하는 도구인데, 이 괭이로 해자를 파 트롤의 접근을 막아내는 요새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기를 구우면 식량이 되지만, 너무 구워버리면 탄화되어 석탄이 되어버리는데, 이 석탄은 이후 청동과 구리 제련에 사용된다. 마인크래프트나 '옥시즌 낫 인클루드'처럼 게임의 기본적 법칙을 잘 짜두었기 때문에 게이머 역량에 따라 콘텐츠가 파생되는 형태다.

그러면서도 게임은 무척 가볍다. 용량은 고작 1Gb. 정말 딱 필요한 만큼의 그래픽만 구현했기에 사양도 높지 않으며, 가격도 2만원 초반대이기에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쉽게 살 수 있고, 쉽게 플레이할 수 있으며, 금방 설치되고, 노트북에서도 돌아간다. 앞서 두 파트를 할애하면서 이 게임이 허들이 높지 않다는 걸 설명했으니, 종합하면 정말 아무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 1기가 그래픽 치곤 꽤 수려하게 보일 때도 있다.

동시에, 버그도 찾기 어렵다. 20시간 가까이 게임을 하면서 겪은 버그가 하나도 없었다. 인터넷 상에 알려진 버그는 아이템 복사 버그와 세계 데이터 유실 정도인데, 얼리 억세스 상황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 갈만한 수준. 일반적인 얼리 억세스 게임들이 제대로 된 콘텐츠보다 더 많은 버그에 허덕이며, 정식 출시한 게임들도 한동안 버그와의 씨름을 이어간다는 걸 감안하면 발하임의 시스템 디자인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발하임이 날아오른 이유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극단적으로 허들을 내리눌러 최대한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콘텐츠와 완성도를 확보했으며, 단순하면서 기본에 충실한 게임 내 전투, 성장 시스템으로 '찍먹'을 시도한 게이머들의 발목을 잡았다. 실사같은 그래픽도, 복잡한 상호작용도, 화려한 애니메이션도 없지만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걸 정확하게 노린 디자인. 아마 이후 개발될 많은 게임들이 발하임의 이와 같은 면모를 참고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