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LoLesports flickr

2019년부터 지금까지 정글은 유독 변화가 심했다. 바위게의 등장이나 정글 경험치의 감소, 협곡의 전령을 비롯한 각종 오브젝트의 크고 작은 변화는 정글에 대한 난이도를 크게 높였다. 환경의 변화는 정글러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필요한 능력이 달라졌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정글러들이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었다.

육식형 정글러에게 슬럼프는 필연적이었다. 초원을 누비던 사자가 숲에 살게 되고, 고기가 아닌 풀도 먹어야 했다. 특히, 기존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했던 정글러들이 가장 큰 위기를 겪었다. 갱킹을 즐기던 선수들은 실패했을 때, 다가오는 리스크가 커지자 굶주리는 일이 잦아졌다. 영역 내에 있는 먹잇감도 자리를 비우면 털리기 일쑤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정글러는 도태됐다. 살아남은 정글러들은 사냥 횟수를 줄이고 보다 확실한 기회를 노리도록 진화해야만 했다.

'클리드' 김태민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상위 포식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육식형 정글러의 정점으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자랑하던 '클리드'의 입속에는 풀을 뜯기 위한 어금니가 자랐다. 상대 정글러의 위치에 대한 고민과 대응도 예전보다 더 현명해졌다. 덕분에 가지고 있는 송곳니를 드러낼 기회가 줄었지만, 여전히 '클리드'는 무서운 야수로서 먹이사슬의 상위권을 지켜내는 중이다.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초식 중에도 육식으로 진화한 정글러가 생겨났다. 그중 가장 무섭게 진화한 정글러가 '캐니언' 김건부이다. 원래 '캐니언'은 육식형 정글러로 송곳니가 뭉툭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가진 피지컬도 뛰어나고, 성장하기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데도 너무 순하게 경기를 치른다는 이야기였다.

▲ 사진출처: LoLesports flickr

그랬던 '캐니언'은 조금씩 알게 됐다. 자신의 덩치가 크고, 주어진 환경이 좋다는걸. '캐니언'은 조금씩 다른 정글러의 먹잇감을 빼앗아 봤다. 한 번, 두 번, 상대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때로는 격하게 반응하는 정글러도 있었지만, 부딪쳐 보니 자신의 힘과 덩치로 감당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캐니언'에게는 든든한 아군이 여럿 있었다. 혼자인 자신도 강했지만, 여럿이 붙어보니 힘의 차이가 더욱 크게 났다. '캐니언'은 상대 먹잇감을 빼앗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 조심스러웠던 행동은 서서히 자제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조금 더 조금 상대를 압박하면서 자신의 경계를 넓혔다. 그렇게 2년을 보내자 '캐니언'은 협곡의 정글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 역체정이 됐다.

'캐니언'과 '클리드'는 정글이 변화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꽤 여러 번 대결했다. '캐니언'의 각성 이전에는 '클리드'가 '캐니언'의 천적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캐니언'의 덩치가 커지고 그 힘을 이용할 줄 알게 된 이후부터 둘의 대결은 우열을 따지기 힘들어졌다. 케스파컵까지 포함함 둘의 전적은 16승 13패로 '클리드가' 우위다. 하지만 정규 시즌만 따진다면 13승 13패로 완전 동률이다.

다만, 기량 면에서 '캐니언'의 약 우세를 점치는 사람이 많다. '캐니언'은 2019년 이후로 줄곧 입지가 올라온 반면에, '클리드'는 육식성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파괴력이 좀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클리드'는 간혹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기가 더러 있지만, '캐니언'은 팀의 최전선에 서서 언제 승리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정글러 간의 차이가 이번 경기 승패에 영향을 끼칠 만큼 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보였듯, 정글은 우디르, 헤카림이 주류 픽으로 자리 잡았고 그 외에는 니달리, 그레이브즈, 볼리베어 정도를 꺼내볼 만하다. 두 선수 모두 현 메타 챔피언을 다루는 데 익숙하고 챔피언 폭도 비슷하기에 밴픽 견제는 무의미하다. 두 선수의 대결은 탑이나 봇 라인의 구도에 많은 영향을 받을 걸로 보인다.

거의 대부분의 정글러들을 상대로 상성상 우위를 점하게 된 '캐니언'이지만, '클리드'를 상대로는 여전히 팽팽한 대결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결승전은 '캐니언'에게 오는 10일 열리는 2021 LCK 스프링 스플릿 결승전은 마지막 남은 경쟁자 '클리드'를 상대로 힘의 우위를 명확하게 할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육식형 정글러로 정점을 찍었고, 여전히 강자로 남아있는 '클리드'가 이를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이진 않을 듯하다.


■ 2021 LCK 스프링 스플릿 결승전 일정

담원 기아 vs 젠지 e스포츠 - 10일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