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대통령 리무진에서 불과 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청년 존 힝클리가 쏜 총알은 방탄차에 튕겨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폐에 닿았다. 레이건 대통령은 무사히 목숨을 건졌지만, 영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2016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 언제 암살자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와 마주했다.


낸시 여사의 트라우마가 문득 떠오른 건 지난주 황운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때문이었다. 이른바 게임 동북공정 방지법이다. '샤이닝 니키'의 중국발 한복 왜곡 논란을 시작으로 중국에 별도의 갓 디자인을 추가했다가 중국 유저에게는 해명을, 국내 유저에게는 사과를 한 '스카이'까지. 역사를 넘어 사회, 문화 전체로 확산되는 동북공정을 게임에서만큼은 미리 막아보겠다는 법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뻔뻔하게 역사 왜곡과 문화 잠식을 노리는 중국에 대항하니 법안 발의에 환호하며 반기는 게 일반적일 터. 하지만 스스로 뼛속까지 한국인을 자신해왔는데 발의된 법안 몇몇 구절 탓에 새삼 트라우마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역사 왜곡과 함께 범죄, 폭력, 음란함 묘사나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을 함께 확인하겠다는 문구 때문이다.

오랫동안 게임은 매출이든 코로나 시국의 경제 부양이든 문화 산업의 든든한 축이었다. 하지만 위상은 최하위 랭커 복서처럼 여론에 이리저리 얻어터져야 하는 존재였다. 자녀들의 관리 책임을 부모가 아닌 게임사에 지게 하는 강제적 셧다운제. 무논리로 짜 맞춰진 게임과 폭력성의 연결고리.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 중독 치료를 빌미로 한 게임세까지.

이미 여러 차례 게임을 악으로 구분 짓고 암살하려 한, 아니 대놓고 살해하려는 사회의 '시도'가 있다 보니 심의와 규제 비슷한 것에 '게임의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온 듯하다. 일견 옆에서 동북공정이라는 폭죽이 펑 터지니 적당히 소리에 맞춰 게임법 개정안으로 박수를 쩍 치고, 규제라는 방귀를 뀌었다고 의심될 정도. 그리고 그 냄새는 그저 구린 게 아니라 게임을 죽일 생화학 가스쯤 돼 보인다.

다만, 개정안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걱정은 기우라 볼 법하다.

이번 개정안은 사행성 게임물의 여부만을 확인하는 등급 분류에 제32조제2항의 내용 여부를 함께 확인하도록 하는 비교적 단순한 개정이다.

게임법에는 이미 제32조제2항에 존비속 폭행과 살인, 범죄, 폭력, 음란 등의 내용과 함께 역사 왜곡 우려가 있는 게임물 제작과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 조항들을 게임 등급 분류에 함께 담아 역사 왜곡 게임물을 더 쉽게 관리하고자 했음으로 풀이된다.

거참. 자라를 보고 놀랐더니 솥뚜껑의 손잡이만 보고 자라가 무한 번식해 지구 점령쯤 했다는 망상까지 나간 셈이다. 수많은 핍박을 받았더니 이놈의 트라우마라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잘못된 점은 확실하게 집어내고, 부당한 규제와 핍박은 깨끗하게 잘라내는 정부와 업계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선의가 또다시 게임을 죽이려는 암살자의 총으로 잘못 느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