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7월 1일 출범한 e스포츠공정위원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징계'입니다. 업계서 발생하는 불공정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철퇴를 내리는 심판자라고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초대 e스포츠공정위 위원장을 맡은 조영희 변호사는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규정보다는 대화와 합의를 이야기했고, 서로간 이해를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야 e스포츠 산업이 막힘없이 발전할 수 있다면서요. 잣대와 규정만을 외쳐서는 피로감만이 쌓일 뿐이라는 것이죠.

조 위원장은 공정위를 '나침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스포츠 업계에 불공정이 발생했을 때 해결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 말이죠. 나침반이 있어야 서로 협력하면서 거친 정글과 망망대해를 탐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정위는 앞으로 e스포츠 참여자들이 수행할 대화의 뿌리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대 e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조영희 변호사입니다. 법무법인 세종에서 20년 동안 법조인 생활을 했고, 법무법인 엘에이비를 설립한 지는 3년 정도 됐네요. 최근 몇 년간 법조계에도 변화가 많아요. 이동이나 독립이 활발하죠. 저 또한 변화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따로 법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e스포츠 쪽에도 관심을 두게 돼서 현재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력을 보니 금융 쪽에서 커리어를 보내셨습니다. e스포츠 공정위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금융 관련 변호사 일을 시작한 건 98년 무렵이었어요. 그때는 IMF 상황이었죠. 국제 금융의 맥락에서 우리나라가 워낙 힘들었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리먼 사태라고 하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 위기도 있었죠. 시대 배경에 맞춰 업무를 하느라 자연스럽게 금융 쪽에 몰두했어요. 물론 지금도 금융 업무를 주로 보지만,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금융 이외에도 눈에 들어왔던 하나는 스포츠 산업이었어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고, 젊은 세대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데 있어 스포츠 혹은 또 예능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분야인 거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e스포츠에 관해 잘 알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카나비' 서진혁 선수 사건이 알려지면서 접하게 된 거였어요. 하태경 의원이 대학 때부터 알던 선배예요. '카나비' 선수를 구해달라는 민원이 폭발적인데, 공익적 차원에서 자문해달라고 부탁하셨죠. 해당 사건을 접하면서 e스포츠를 향한 관심이 광범위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새롭게 피어나는 종목이고, 태생적으로도 전통 스포츠와는 아주 달라요. 그래서 더 흥미롭고 관심이 갔습니다.


위원장을 맡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카나비' 선수 사건을 도와주고 나서, 문체부에서도 그렇고 여러 조직에서 관심을 보였어요. 한번은 국회에서 세미나가 있었어요. e스포츠 사건 경험이 있으니 세미나에 와서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그 계기를 통해 e스포츠협회와 연결이 됐고, 공정위원회 참여 부탁을 받았습니다.

공정위원회 첫 모임에 갔는데, 그 자리에서 다들 저를 위원장으로 추천하셔서 갑작스럽게 승낙했어요. 아무래도 가장 최근 사건에 관여했기에 시의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셨던 것 같아요. 위원회 구성은 전통 스포츠계, e스포츠계, 법조계로 크게 나뉠 수 있는데 다들 해당 분야에 관록 있으시고 식견도 넓으세요.



관심도가 높아 부담이 되실 만도 한 것 같아요.

염려는 됐어요. 스포츠도 그렇지만 e스포츠 관련해서는 체계적인 업무를 한 적 더욱 없으니까요. 법조 경력만으로 수행하기에는 무거운 자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만, 공정위원회는 전에 없던 시도이니, 저 같은 인물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의욕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입니다.


공정위원회 체계는 어떻게 되나요?

먼저 공정위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활동할 건지가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필요한 건 규정이었죠. 세부 수정 작업까지 마치는 데 거의 6개월가량 소요됐어요.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 이유는 그만큼 고심이 깊었다는 것이죠.

공정위원회 위원으로 열일곱 분이 계시는데, 이분들 모두가 매번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기는 어려워요.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분과를 나눠 업무를 수행하기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각자가 소속된 분과에 집중하는 것이죠. 다만, 많은 분의 의견이 필요한 주요 사건에는 전체가 모이는 것으로 했고요.


공정위는 세 개 분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공정 분과, 조정 분과, 선수 분과인데요. 공정 분과는 e스포츠가 스포츠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에 리그의 불공정, 선수를 향한 불공정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자율 규제 차원에서 징계권을 발동할 수 있는 분과입니다. 조정 분과는 업계 다양한 참여자 간 분쟁을 조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발생하는 마찰을 줄여 업계 상승을 이끌기 위함이죠.

선수 분과도 있습니다. e스포츠는 참여 선수들의 연령이 특히 어린데, 최근 폭발적인 성장으로 인원이 너무 많아졌어요. 권익 보호가 꼭 필요했죠. 선수 분과는 선수 권익 보호와 교육 등을 주 업무로 합니다. 그 외 기구로는 사무국이 있어요.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고, 사무국의 기능은 현재 협회에서 대신해주고 있죠.



중국발 불법 배팅, 부정행위가 최근 이슈입니다. 공정위에 모니터링 기능이 있던데,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고 있습니까?

일단 협회에서는 클린 e스포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홍보의 기능일 뿐이니, 실제는 어떠한지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현재 종목사별로 제보를 받고 있어요. 공정성이 어떻게 확보되고 있는지 사실적인 측면에서 파악하고 팔로우업 합니다. 그동안 선수나 팬들이 적극적으로 제보를 하는 모습이 엿보였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어요. 제보나 민원으로 알게 된 부분이 많았어요. 아직은 승부조작이나 부정행위와 같은 사례는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민원이나 제보들은 정보의 부족이나 소통의 부족으로 발생한 사건이었어요. 예를 들면, 경기 중에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데 이건 불공정하지 않냐는 제보가 있어요. 그럼 저희 쪽에서 종목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확인하고 규정을 점검했습니다. 대부분 규정상 근거가 있거나 적절한 처리가 있었음에도 공표가 안 이뤄져서 불만을 낳은 것이더군요. 이런 경우에 신고자-제보자에게 답변을 해드렸습니다. 공정위는 감독관이 아닌 의사소통의 통로예요. 서로 확인하고 소명하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거죠.


법률(계약, 해외이적 등) 지원, 행정(비자발급 등) 서비스가 있더군요. 도와준 사례가 있는지요?

선수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선수 분과에 변호사님들도 계시고, 도와드릴 수 있는 제반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선수 계약은 개인정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팀과 선수 간 계약이니까요. 다른 팀이 알게 되어서는 안 되는 비밀 유지 성격을 띠고 있죠. 위원회에서 법률 자문을 자세하게 해드리긴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자문이라는 건 한쪽 입장에서 도와드리는 것이기에 공정하기는 힘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변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중 하나겠죠. 그리고 해외에 진출하시는 경우 비자 발급 문제는 사무국에서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도핑방지를 주요 역할 중 하나로 두었습니다.

위원분들 중에 대한체육회와 체육단체서 활동하신 분들이 계세요. 도핑은 스포츠계에서 점점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죠. 도핑이라는 것 자체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불공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부터 방지 체계를 구축하자는 의견을 주셨어요.

또한 저희는 e스포츠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정식 채택되리라 예상하고 있어요. 아시안 게임에선 이미 채택됐고요. 당연히 도핑 방지를 주요 목표 활동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뜻이 합쳐졌죠. 지금부터 선수들이 자기 관리와 공정성에 관한 인식을 높여야 합니다. 도핑은 위원회 차원에서도 엄격하게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김대호 감독 징계가 공정위의 첫 사건(2020.12.14 징계 발표)이었어요. 진행 과정과 사건 이후 소회를 들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워낙 많은 분들에게 알려진 사건이라, 위원들 모두 정말 조심스러우셨어요. 원래는 공정 분과에서 할 일이었지만, 전체 회의를 통해 심의했습니다. 거의 2개월 정도가 소요됐고, 6~7차례 검토가 있었어요. 언론 보도나 여론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제적으로 제출된 자료들로만 검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였죠. 해당 사건이 앞으로 e스포츠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제출된 녹음 자료와 서면 자료를 자세히 검토했습니다. 이후 실제 당사자들과 오랜 시간 문답 과정을 거쳤고요. 본인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게 했습니다.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위원회 분들이 고민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감독의 시선, 선수의 시선에서 우리가 현장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죠. 모든 시각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이었어요.

결론적으로는 김대호 감독의 입장에서 이해되는 점들이 있더라도, 앞으로 이런 행위는 삼가야 하지 않겠냐고 의견이 도출됐죠. 위원회 역할은 누구를 징계하고 잘잘못을 가르는 것에 있지 않아요. 우리 업계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고자 합니다. 무엇이 공정한 건가, 무엇이 감독-선수-관계자들의 권리이고 의무이냐를 고민하는 것이죠. 사건 당사자는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역할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e스포츠가 제대로 토론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가 어디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느냐, 감독은 어디까지 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요. 처음으로 업계에 있는 분들과 많이 대화하고 소통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하고 싶어요.


징계 과정이 조금 더 투명하고 상세하게 알려지길 원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사실 징계 당사자에게 절차의 과정과 투명성이 중요한 것이지, 제삼자에게 투명하게 알려지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어요. 징계 당사자에게 투명하게 기회를 주는 건 중요해요. 그러나 제삼자의 권리는 아니에요. 팬들의 관점에서 유명인이 관계된 일이니, 궁금해하시는 심정은 이해합니다.

제삼자의 중간 개입이 있다 보면 위원들이 흔들리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꼭 영향력 있는 누군가의 개입이 아니더라도, 과정이 너무 많은 이들에게 공개되면 그 또한 거대한 영향력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또한 제삼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됐을 때 당사자의 권익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공정위에겐 독립성과 중립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요. 보장될 수 있는 근거와 노력이 있을지요.

규정상으로 보장되어 있고, 만약 개입이 있다면 그건 저희로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1년 동안 협회에서 어떠한 개입도 없었고 스스로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세요. 그렇기에 위원들도 사건에 열정적으로 관여해서 바람직한 결론을 내려고 노력한 것이죠.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어요.

현재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단계라고 봐요. e스포츠 특징이 민간에서 태동해서 확대된 산업이라는 건데요. 다른 전통 스포츠는 관 주도로 성장한 측면이 크죠. 당연히 e스포츠는 자율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고, 그 첫 단추를 잘 끊었다고 생각해요.


'고릴라' 강범현을 제외하면 e스포츠 생태계를 피부로 이해하는 위원이 없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었어요. 구성원 비율이 법조인, 전통 스포츠 고위층 위주라는 것이죠.

선수 출신 위원을 많이 위촉하려는 노력은 있었어요. 하지만 선수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시고, 대부분 어려서 수락하기를 꺼리셨어요. 강범현 선수만이 어렵게 수락해주신 거죠.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셨어요. 실제 현장이 어떻게 이뤄지고, 일반적인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자세히 말씀해주셨죠.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이 적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e스포츠 선수분들이 위원으로 위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공정위가 정착되고 방향이 더 명확해지면 다양한 분들을 모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공정한 징계 사례가 많아지면 공정위의 신뢰도가 더욱 높아지겠죠.

개인적으로는 공정위의 활동이 징계 쪽으로만 쏠리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의 시작이 징계 사건이었지만, 태생적인 목적은 징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e스포츠 업계의 자율 규제 기관으로 타당한 방향을 만들어보자는 데 합의점이 있죠.

앞으로 제보나 신고를 받았을 때 징계로 이어지지 않고, 당사자 간 대화와 합의가 잘 이뤄져서 해결되는 사건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공정하지 못한 일을 함부로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저희의 역할입니다. 탄탄한 근육을 만들어서 자정 작용을 끌어내는 거죠.



긴 시간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끝으로 e스포츠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e스포츠 선수들은 젊고 에너지가 넘쳐요. 하지만 그만큼 사회 경험은 적죠. 학업이나 사회활동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아쉬운 점들을 너무 냉정한 시각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같이 성장해나간다는 생각을 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에는 모든 문제가 소통의 부족이고, 경험의 부족으로 생긴다고 봐요. 규정이나 너무 딱딱한 잣대로 비판하고 비난하게 되면 생태계가 삭막해집니다. 그러면 발전이 될 수 있음에도 죽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일에 자부심을 느끼려면 첫째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요. 좋은 사람이 늘어나면 산업이 커지는 것이죠.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기만 하면 멸종할지도 모릅니다. 업계 관계자들이 인간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보니 너무 쉽게 노출되고 코멘트화됩니다. e스포츠를 사랑하는 열정은 이해하지만, 팬들께서도 너무 한 쪽에 서서 감정적이지 않으셨으면 해요. 포용하는 자세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