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주는 즐거움


느긋하다. 이렇게 느긋하고 따뜻하고 아기자기할 수 없다. 코지 그로브, '아늑한 숲', 누군지 모르지만 제목 하나 정말 잘 지었다.

하얀 유령섬에 따뜻한 색을 칠하는데 드는 시간은 하루에 딱 30분이다. 그 이후로는 마음대로 섬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고, 덤불을 뒤지고, 낚시를 하고, 조개를 주우면 된다. 그렇게 얻은 재료들로 요리를 해도 좋고, 가구나 장식품을 만들어도 좋다. 새 한 마리, 화분 하나를 키워봐도 좋다.

그게 싫다면 그냥 멍하니 바다를 바라봐도 되고, 그조차 싫다면 유령들에게 인사를 고한 뒤 다음날 다시 돌아와도 된다. 이 느긋하고 평화로운 섬, 코지 그로브는 그 어떤 것도 강제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동물의 숲이 주는 여유로움, 그 느낌에 가장 근접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게임명: 코지 그로브(Cozy Grove)
장르: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 4. 8.
개발 : Spry Fox LLC
배급 : Spry Fox LLC
플랫폼: PC(Steam, EPIC), PS4, XBO, NSW, iOS

관련 링크: '코지 그로브' 오픈크리틱 페이지


그래 이게 힐링이야


직장인에게 최고의 힐링은 별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일, 그 자체가 힐링이다. 눈부신 햇빛은 암막 커튼으로 가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자면 정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일주일의 고통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그야말로 ‘힐링’되는 기분이랄까.

힐링이라는 건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냥 평소와 같이 뭔가를 했을 때, 그 당연함 속에서 당연스럽게 다가오는 안정감, 그게 힐링이다.

그리고 코지 그로브는 그냥 그런 당연한 안정감을 그대로 게임으로 만들어 둔 듯하다.


이 감성적인 유령섬은 유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 물론 매번 잠에 취해 있는 자그마한 모닥불과 투명한 몸을 흔들며 매일 새로운 부탁을 하나씩 하는 곰들은 살짝 예외다. 요 네모난 곰들은 하루에 딱 한 번, 단 하나의 부탁을 한다. 그리고 곰들에게 얻어낸 유령 나무는 그대로 모닥불의 간식이 된다.

하지만 뭐 그 정도야, 넉넉잡아 30분만 하면 뚝딱이다. 아니 초반부에는 10분도 안 걸릴 수 있다. 배경음악마저 느긋하고 잔잔한 유령섬은 '유령'들이 득시글거리지만 으스스하지 않고 따뜻하다. 이 유령이라는 곰들이 하나같이 어딘가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들여 곰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잔잔하면서도 따뜻하고 어딘가 통통거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모여 있는 임프들 사이를 헤치고 다닐 수도 있고, 열심히 해변에서 밀려온 조개를 줍거나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들을 낚을 수도 있다.

그저 느긋하게, 이 아늑하면서도 생각보다 넓은 섬을 즐기면 된다. 섬 전체가 마치 도화지처럼 펼쳐지기에 원하는 대로 가구를 배치할 수도, 나무와 덤불을 심어 숲을 만들 수도, 혹은 등불을 좋아하는 화분들을 쭉 모아 꽃밭을 꾸밀 수도 있다.


뭐랄까 정말 그냥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해도 된다. 배치한 오브젝트를 내 마음대로 다시 회수해서 또 내 마음대로 재배치하더라도 문제될 거 하나 없다. 하루 종일 낚시만 해도, 하루 종일 땅만 파도 된다. 그리고 하루에 30분을 플레이해도, 24시간 내내 플레이해도 진행할 수 있는 구간은 동일하다.

게임 속에서마저 시간에 쫓기거나 해야 할 일에 쫓겨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오전 10시가 되었든, 오후 10시가 되었든 떠오르는 순간 접속해서 곰들과의 보물찾기를 좀 해주고, 새들도 좀 돌보고 그러면 그만이다.

여유로움 속에서 오는 힐링. 이게 바로 코지 그로브라는 게임이다.




그래 이게 감성이야

이 아늑한 섬은 ‘감성’으로 가득 차있다. 캐릭터 하나하나, 배경 하나하나가 모두 감성 그 자체다.

코지 그로브엔 곰들이 산다. 아 엄밀히는 유령 곰이다. 자기가 곰인지, 나무인지 헷갈려 하는 그런 곰들이다. 옹기종기 몰려있다가도 다다다 달려가면 깜짝 놀라며 연기처럼 사라지는 겁쟁이 임프들도 산다.

매일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령 곰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선장, 우체부, 요리사, 탐험가, 공예가 등등, 처음에는 다 똑같이 생긴 자그마한 등불 같은 유령들이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스케치가 그려지고, 색이 칠해져 현실로 톡 튀어나온다.

이 귀엽고 어딘가 안쓰러운 유령들은 코지 그로브를 좀 더 아늑하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하루에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새로운 대화를 할 수 없는 건 아쉽지만,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네모난 몸을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 한 곳이 가만히 차오르는 듯하다.


게임의 시간은 리얼타임으로 흐른다. 해가 뜬 낮에는 이 느긋한 섬에도 따뜻한 색의 빛이 환히 비치고, 어둑어둑 밤이 내려앉은 시각이면 반짝이는 별과 등불이 남색으로 변한 섬을 잔잔히 밝힌다.

같은 색이 들어찬 섬이지만 낮과 밤의 풍경이 완벽하게 다르다. 낮에는 그냥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섬이라면 밤은 약간 소소하게 으스스한 유령섬이랄까. 어둠 사이로 등불이 아른아른 거리는게 분명히 낮에 비하면 유령섬 같긴 한데 그렇다고 무섭지! 라며 다가오는 그런 으스스함은 아니다.

색이 없는 하얀 섬에 비가 조록조록 내리고, 곰들이 밝혀준 빛의 색들을 열심히 등불을 세워 펼쳐나가다 보면 정말 이 섬을 내 마음대로 꾸며나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같이 차오른다.

기본적으로 곰들 주위 일정 반경은 곰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색이 스며든다. 하지만 그 외의 구간들, 곰과 곰 사이, 곰들이 없는 곳 등은 등불 릴레이를 통해 밝혀줘야 한다. 불을 밝히지 않을 경우 나무 열매나 광석을 얻지 못할 뿐, 색이 없다는 것 외엔 딱히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그렇기에 섬을 색칠하는 건 오롯이 내 마음이다.

바다와 맞닿은 섬의 끝자락이 궁금하다면 등불을 열심히 켜서 그 구간을 색으로 채워넣으면 된다. 하얀 모래사장의 색이 궁금하다면 마찬가지로 무른 나무를 열심히 두드려 만들어낸 등불로 빛을 꼬리처럼 연결하면 된다.


색이 없던 섬과 색이 가득해진 섬은 분명 같은 공간, 같은 시선임에도 너무나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저 하얗게 보이던 것은 단순한 나무 등걸이 아닌 이끼가 낀 바위로 변하고, 당연히 초록색일 줄 알았던 나무의 잎은 꽃분홍색으로 물든다. 흰 화면에서 열심히 주웠던 조개들은 색이 들어온 모래사장 위에서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빛난다.

아무것도 없던 흑백의 섬이 매일매일 새로운 색으로 차오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바닥까지 떨어졌던 감수성이 노곤노곤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코지 그로브는 '색'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엄밀히는 ‘색을 입힌다’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잘 맞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 하던 색칠공부 책을 게임으로 만들면 딱 이런 느낌이 될지도.

색연필, 그중에서도 물을 한 방울 톡 떨어트리면 마치 물감처럼 스르르 퍼져 나가던 제품이 있다. 일반 색연필보다는 훨씬 수채화같지만, 또 물감보다는 깔끔한 색을 칠할 수 있던걸로 기억한다. 코지 그로브의 전체적인 색감이 딱 그렇다. 깔끔하면서도 직접 칠한듯하기에 좀 더 현실의 색을 보는 듯한 감성을 준다.





그..런데 조금 아쉽긴 해

이 느긋한 게임에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어색한 번역이다. 완전히 이해 못할 정도로 엉망인 건 아니지만, 마치 번역기를 돌린 듯 어색한 문장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는 특히 곰들의 대화문에서 자주 보이는데,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으나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곰들과의 관계성이 게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는 꽤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분명히 이 곰이 나에게 자신의 생전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한데, 상황에 맞지 않는 어딘가 딱딱한 단어로 인해 살짝 차오르던 감수성이 차게 식어버리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곤 했다.

다만 감성적인 대화의 번역이 어색할 뿐, 게임 방법에 대한 설명 쪽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건 다름 아닌 곰들의 부탁이다. 게임 전체가 자유롭고 느긋한 플레이 방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딱 하나, 이 곰들의 부탁으로 인해 강제되는 부분이 생겨난다.

마치 일일 퀘스트와 같은데, 이를 진행하지 않으면 섬에 ‘색’이 칠해지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찮더라도 강제로 곰들의 부탁을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

이 부분까지도 모두 ‘선택’에 맡겨뒀다면 어땠을까. 다른 게임이면 몰라도 코지 그로브는 분명 유저에게 모든 걸 맡겨둔 게임이다. 섬을 꾸미는 것도, 비어있는 구간의 색을 칠하는 것도, 접속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도 모두 유저의 마음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기본색은 오로지 곰들과의 퀘스트를 통해서만 채워넣을 수 있다. 뭐랄까,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정작 게임 자체가 훼손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이게 완전 잘못되었다거나 문제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매일 새롭게 색이 채워지는 순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도 하고, 어쨌든 게임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사실이니까.




언택트 힐링, 코지 그로브에 딱 맞는 말이다.

매일 저녁 바쁜 하루를 보낸 뒤 잠깐 접속해서 유령섬을 색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느긋함과 여유로움도 함께 차오른다. 따로 보석 십자수를 할 필요도,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다. 그냥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기분을 모두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규칙 없는 자유로움에 익숙하지 않다면 글쎄, 그저 할 게 없는 그런 게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만큼 코지 그로브는 강제되는 요소가 거의 없는 편이다. 리얼타임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차가 지날수록 게임 속 콘텐츠도 찬찬히 늘어나며, 섬의 크기도 조금씩 증가한다. 즉 초반부에는 정말 더더욱 할 게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반대로 그냥 찬찬히 하루하루를 같이 보낸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하는 게임, 그런 담담한 게임을 찾는다면 이만한 선택이 없다. 특히 아름다운 그래픽의 게임을 찾는다면 더더욱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