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하나의 문장. 그리고 자극적인 문구뿐이다.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 출연해 4시간을 넘게 이야기한 개발자 존 가빈의 경우도 그랬다. 그의 인터뷰 중 극히 일부는 전 세계 게임 업계와 팬들에게 화제가 됐다.

'만약 당신이 게임을 좋아한다면, X발 정가로 구매하세요'

▲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된 존 가빈(좌)

이런 표현이 나온 맥락에 대해 길게 덧붙일 수는 있겠지만, 이 발언이 오랜 기간 업계에 몸담아 온 베테랑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데서 파장이 컸다는 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국내 게임 팬에게는 존 가빈이라는 이름이 영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게임의 스토리텔링과 연출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텍스트 어드벤처 조크(Zork) 시리즈의 개발자 마크 블랭크와 함께 일하기도 한, 최근까지 현업에 있던 업계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다. 당연히 화끈한 발언에 대한 곤욕도 유명세에 걸맞게 온몸으로 치르고 있다.

'정가' 발언에 대한 반박 논리는 이렇다. 출시 당시 실제 게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정가는 지나치게 비싼 대가라는 식이다. 일부는 존에게 체험판을 제공하지 않는 게임을 정가로 구매하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라며 그의 발언을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시장 조사 회사 NPD 그룹의 비디오 게임 산업 책임자인 맷 피스카텔라는 기대 이하의 게임 판매는 게임 자체, 혹은 마케팅이나 가격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판매 부족에 대해 소비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여기까지라면 최근 회사를 떠난 늙은 개발자의 신세 한탄, 심하게는 망언쯤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존의 발언은 현업 개발자와 팬들이 보는 게임의 가치와 보상이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데 진짜 의의가 있다.

존의 이번 발언이 나온 근본적인 이유는 최근 후속작 개발 취소 이야기가 공공연히 퍼진 '데이즈 곤'에 있다. 블룸버그의 리포트를 통해 처음 알려진 후속작 개발 논의 중단 소식은 게임 디렉터로 출시를 이끌고 존과 함께 회사를 떠난 제프 로스를 통해 확인됐다.

▲ 존은 벤드 스튜디오를 떠나기 전까지 '데이즈 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각본가로 활동했다.

존보다 5일 먼저 같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제프는 게임 개발 취소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배경이 후속작을 개발할 만큼 충분한 판매량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제프는 벤드 스튜디오의 대표작인 사이폰 필터에 대해 1편은 10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사이(한화 약 11억 원 ~ 22억 원), 2편은 200만 달러의 개발비가 들어갔다고 공개했다. 이때와 비교하면 '데이즈 곤'은 정말 상상도 못 할 판매량과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수십배 이상 늘어난 개발비를 생각하면 소니가 후속작을 개발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만하다는 게 제프의 추측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손익 분기점 넘기기 위해 400만 장 ~ 500만 장을 판매해야 하는 게임 개발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이었던 숀 레이든은 재임 당시 AAA 게임을 5년간 개발하는 데 8,000만 달러 ~ 1억5,000만 달러(한화 약 890억 원 ~ 1,670억 원)가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데이즈 곤'은 소니 산하 벤드 스튜디오의 야심작으로 큰 초기 예산이 책정됐다. 이후 직원 수가 3배가량 늘며 개발비가 이 예산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제프의 말을 생각해볼 때 1억 달러, 혹은 그 이상의 총 개발비가 들어갔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

존의 '정가' 발언 역시 최근 펼쳐진 일련의 후속작 개발 논의와 맞닿아있다.

최근 '데이즈 곤'의 후속작 개발 취소 소식에 청원 사이트 change.com에서는 소니에 '데이즈 곤2'의 개발을 요청하는 게시글이 올라와 팬들의 높은 반응을 끌어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존은 최근 PS Plus 게임에 등록된 '데이즈 곤'을 무료로 즐겼다는 이야기와 세일할 때 구매해 게임을 해봤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밝혔다.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해 후속작 개발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끝내 정가로 게임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후속작 판매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의 격한 반응을 보인 셈이다.

실제로 센 발언에 묻힌 감이 있지만, 존은 모든 게이머를 비하할 뜻은 아니며 정가로 게임을 구매하지 않아 도움을 준 게 아니라면 불만을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라 해명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비난이 거세지자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돈을 벌지 못하면 후속작을 만들 수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추가로 설명해야 했다.

▲ 존 가빈과 제프 로스

숀 레이든이 말했듯 게임의 개발비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그가 업계에 뛰어든 후 개발비가 10배로 뛰었다고 말했으니 계산한다면 콘솔 세대가 변할 때마다 개발비가 2배가량 뛰어오른 셈이다.

하지만 숀이 업계에 있는 동안 풀 프라이스는 여전히 59.99달러였다. 늘어나는 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계산해 더 많은 게임을 판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더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 등 홍보 비용은 더 커지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드는 위험부담은 더 높아진다.

결국, 게임 자체의 판매량을 올리는 고된 길보다는 게임 추가 판매 콘텐츠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콘텐츠가 게임의 경험을 확장하는 훌륭한 만듦새를 자랑한다면 모르겠지만, 쪼개팔기 논란을 산 DLC나 랜덤 박스 같은 더 쉬운 길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도전은 최대한 자제하고 이미 판매 능력을 인정받은 IP 재생산이 개발 우선순위에 오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판매량이 검증된 프랜차이즈 작품이 아니고서야 섣불리 AAA급으로 개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개발 기간을 강제로 제한하거나 섣불리 게임의 품질을 낮춰버린다면 AAA급 게임이 가지는 게임 완성도와 그에 따른 신뢰에도 영향을 주니 이마저도 쉽지 않은 셈.

끝내 2K 등과 함께 협의한 끝에 소니는 차세대 콘솔의 풀프라이스 가격을 70달러 수준으로 기존 게임 가격에서 10달러가량 높였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가 분석 업체들을 통해 나왔다. 온라인 유통망의 비중이 높아지며 유통 비용 및 실물 상품(리테일)에 투자할 비용이 낮아졌다 한들, 그 이상의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 등 총 개발비는 여전히 게임 판매만으로는 채우기 어렵다는 계산에서다.

상승한 개발비만큼 판매비용을 올리면 될 법한 일이다. 풀 프라이스. 즉 게임에 대한 최곳값을 비싸게 책정하고 소규모 개발사나 인디 게임, 혹은 짧은 개발 기간으로 개발 비용이 적게 들어갔다면 그만큼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 될 일이다. 디지털 판매를 통해 공산품에 비해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적으니 제작비에 비례한 상품 가격을 책정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계산이다.

그렇지만 게임은 단순히 공산 논리로 귀결되지 않는다. 거대한 개발비를 들였다고 게임의 재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들인 돈에 비해 체감하는 만족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정도가 적정 가격일지 일반적인 투자, 공급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셈이다.

가격을 올린다고 추가 판매 콘텐츠나 인게임 아이템이 사라진다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70달러인 새로운 풀 프라이스로 발매된 소니의 '데몬즈 소울'은 디럭스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추가 콘텐츠를 담아 10만 원 이상에 판매했고 이런 모습은 EA, 2K, 유비소프트 등 대형 퍼블리셔의 AAA 게임에는 낯선 광경이 아니다.


더 큰 수익을 내야 하는 게임사. 온 힘을 다해 게임을 만든 제작자. 기대 이하의 게임에 섣불리 돈을 쓰고 싶지 않은 게이머.

이 셋의 미묘한 관계에서 게임 가격에 대한 마땅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또 다른 정가 논란. 세일 게임에 대한 불만. 아스러진 후속작. 그리고 정당하게 게임을 이용함에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게이머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

과연, 지금 즐기는 게임에 대한 적당한 가격은 얼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