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르의 기본기를 갖춘 뱅커, 그러나 좀 더 무르익어야



지난 22일 출시된 전략 액션 플랫포머, '스멜터'는 다른 것보다 장르에 눈이 먼저 쏠리는 타이틀이다. 보통 다수의 유닛을 관리하는 전략 장르와, 하나의 유닛을 컨트롤하는데 극의를 다하는 플랫포머 장르가 더해졌다니. 겉으로 봐서는 고만고만한 16비트 레트로 게임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그런데 스멜터 이 게임,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장르를 잘 끼워맞췄다. 그것도 각각의 기본기도 준수하다. 다만 초반의 좋은 느낌과 달리, 가면 갈수록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었다. 기본은 괜찮으니 여기에 더 무언가 있었으면 하는, 그런 종류의 아쉬움이랄까.

게임명 : 스멜터(Smelter)
장르명 : 전략 액션 플랫포머
출시일 : 2021. 4. 22.
개발사 : X Plus Company Games
서비스 : DANGEN Entertainment
플랫폼 : PC, PS4, XBO,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스멜터' 오픈크리틱 페이지



심플한 조작과 절묘한 레벨 디자인으로 살린 플랫포머의 기본기

▲ 폭발 엔딩...이 아니라 폭발 시작이라니, 뭔가 초반부터 뒤틀렸다

에덴 동산 이야기는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았어도 어디서 주워들은 적은 있을 터다. 스멜터의 첫 시작은 그 이야기처럼 시작된다. 다만 원전처럼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는 게 아니고 에덴 동산이 터진다는, 처음부터 뭔가 단단히 뒤틀린 시작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얼마 지나서 이브가 알 수 없는 동굴에서 깨어나고, 그곳에서 스멜터라는 무언가를 만나 동행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그 전까지는 돌을 깨부수기는커녕 뛰지도 못했던 이브가 스멜터의 힘을 받아 대시는 기본에 벽타기, 돌 부수기 등 여러 동작을 자연스럽게 진행한다. 플랫포머를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대할 법한 그런 동작 튜토리얼은 잔상으로 넘어가고, 바로 그 튜토리얼들을 곧바로 사용해야 할 다양한 기믹들이 등장하는 건 물론이다.

▲ 쉽고 간단한 조작, 그리고 짤막하고 이해하기 쉬운 튜토리얼로 흐름을 이어간다

플랫포머라는 장르가 처음 시작부터 워낙 걸출한 걸작들이 길을 열었으니, 이런 단순한 설명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만 나열하는 셈이다. 요는 이걸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잘 녹여냈냐 여부가 플랫포머의 완성도를 가른다. 주변에 있는 아이템을 획득해서 그걸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갈지, 스킬을 하나하나 습득해가면서 스킬 활용과 컨트롤에 최대한 의존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풀지 말이다.

스멜터의 선택은 후자였다. 필드에 있는 아이템은 나중에 전략 게임 요소와 섞이면서 활용하는 방법이 생기지만, 플랫포머 단독으로 볼 때는 점수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플레이 중간중간 구라비-에레마구-노토루 세 속성 중 하나를 선택한 뒤, 해당 속성에서만 사용 가능한 스킬들과 컨트롤에만 의존해서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조차도 많아봐야 한 속성에 5개 정도. 점차 스킬트리가 늘어나긴 하지만 기본 컨트롤에서 약간 응용하거나 파생하는 정도다. 여기에 적을 점프로 피해다니는 유형보다는 무기를 써서 적과 맞붙는 유형의 플랫포머인데, 전투에 효과적인 스킬은 생각보다 적어서 조금 낯설다.

▲ 이 공격기 좋은데? 라고 생각했겠지만

▲ 이런 식으로 각종 기믹을 활용하는 특수기다

그런데 초반의 튜토리얼 스테이지를 지나서 어느 정도 손에 익을 때면, 그 어긋나보였던 톱니들이 묘하게 들어맞기 시작한다. 일단 점프, 대시, 여러 빛나는 오브젝트에 반응하는 스멜터의 특수기와 속성 스킬이라는 간단한 구성에 맞춰서 설계된 스테이지 디자인은 상당히 직관적이고 정교했다. 특히 곧이곧대로 보면 난이도가 높은 편이지만, 조금 하다보면 각자 실력에 맞춰서 루트를 짜게끔 하는 설계가 돋보였다.

우선 진로방해가 되서 꼭 잡아야 될 적만 제외하면 신경 끄고 지나가도 되는 적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점차 그런 비율이 역전되기는 하지만, 고전식 플랫포머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이 불필요한 전투를 지양하고 맵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필요한 걸 쏙쏙 빼먹는 그 유형에 익숙해지도록 유예기간을 잘 챙겨주는 편이랄까.

전투의 핵심인 보스전은 패턴이 생각보다 빠르게 전환되고 체력도 높긴 하지만, 어떻게 피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막막한 탄막형은 지양했다. 그래서 조금씩 암기하면서 극복해나갈 수 있게끔 디자인이 잘 짜인 편이다. 특히 스멜터의 손을 이용한 이동기는 발동하는 순간에 일순 무적이 되는데, 이를 적극 활용해서 차분히 시간을 들여 공략하면 어지간하면 클리어할 수 있도록 난이도 완화 요소도 잘 갖춰뒀다. 물론 빠르게 스피드런을 하고 싶은 유저들은 패턴을 암기하고 금세 클리어할 수 있는 힌트도 구석구석 찾을 수 있다.

갖가지 기믹이 가미된 스테이지 디자인은 상당히 어려운 편이지만, 그런 기믹이 있는 구간 바로 앞이나 멀지 않은 곳에 체크 포인트를 어김없이 배치해서 바로 재도전할 수 있게끔 해뒀다. 그리고 어려운 기믹이 나오기 전, 그보다 난이도는 낮고 유형은 비슷한 기믹들이 중간중간 배치되어있어서 난이도를 완화시키는 효과도 충실히 챙겼다.

▲ 뭔가 하나 새로운 게 생기면

▲ 하나하나 차분히 밟고 나가는 설계를 잊지 않았다

여기에 기믹도 여러 기믹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거나 하나를 지나면 곧바로 다른 기믹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어느 정도 텀을 두고 배치했다. 그래서 계속 도전하다보면 이를 숙지하고 클리어할 수 있게끔 했다. 스테이지가 가면 갈수록 이런 법칙도 조금씩 깨지긴 하지만, 어느 정도 손에 익을 텀을 주고 난이도가 점차 올라가는 방식이라 중간에 막막하지는 않다.

다만 중간에 스테이지 클리어와는 연관 없이 특별 보상을 제공하는 시험 스테이지가 있는데, 여기는 얄짤없다. 말 그대로 기믹을 피해 없이 넘어가는 기본 컨트롤이 되어있나 시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설명했던 요소들이 주로 플랫포머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이나 다시 접한 유저들이 익숙해지는 데에 필요한 것들이었던 만큼, 코어한 플랫포머 유저라면 아마 이런 시험 스테이지를 더 반기지 않을까. 이마저도 중간에 아무런 제약 없이 이탈할 수 있고 재도전하고 싶으면 굳이 그 스테이지를 안 가고 전략맵에서 바로 갈 수 있으니, 기본적인 편의성이나 배려도 충실히 갖춰졌다고 하겠다.

▲ 컨트롤에 익숙해지면 더 하드한 도전인 '시험'으로 추가 보상을 얻는 등, 단계별로 잘 설계했다



생산-점령-방어, 심플하게 갖춘 전략 게임 요소


플랫포머 구간이 끝나고 중간중간, 스멜터의 이야기는 데굴데굴 대륙을 하나하나 점령해나가는 전략 게임 형태로 진행된다. 산하에 있는 지름이라는 유닛들을 활용해서 앞으로 클리어해나가야 할 스테이지의 봉인을 풀거나 그 구간에 있는 적들로부터 기지를 방어하는 식이다.

지름하우스, 지름막사, 신성한 과수원, 지름초소 총 네 건물밖에 없고 유닛도 지름 하나밖에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원하는 수를 바로 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다보니 전략 게임에 익숙한 유저에겐 낯설다. 지름을 뽑고 싶으면 지름하우스를 지어서 일괄적으로 4명씩 뽑아내고, 과수원은 다섯 명을 먹여살릴 식량을 무조건 생산하는 식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유닛을 뽑아서 적을 공격하는 옵션도 없고, 스멜터를 조종해서 적을 선제공격하면 처음에는 다 잡을 수 있으니 전략이라는 요소가 무색해보인다.

그렇지만 영역이 확장되고 적이 강해질수록 묘한 전략성이 돋보였다. 우선 전선이 길어지는 만큼 생산과 보급이 중요해지는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지역이 굉장히 좁다. 더군다나 자원 채취도 임의로 되다보니 빠르게 대량으로 막사와 초소, 하우스를 지어서 영역을 점령하는 플레이도 제한된다. 그리고 스멜터가 나중에는 원거리 유닛 평타 몇 대에 회색 화면을 보기 일쑤다. 게임오버가 되진 않지만, 5초 간 아무 것도 못하다보니 건물 수리가 안 되서 기껏 지은 건물들이 적에게 유린되는 모습이 자주 나오곤 한다.

▲ 건물을 짓고

▲ 유닛을 배치하는 간단한 구조지만

▲ 잠깐만 손을 놔도 이 모양이 된다.

따라서 매번 점령 후에 시설을 교체하고 지름들을 쉴 새 없이 해산, 재소집하면서 새로 점령할 영역 부근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요구됐다. 미니맵이나 맵에 있는 건물을 클릭해서 바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스멜터를 움직여서 일일이 해당 건물 위에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라 조금 불편하긴 했다. 이는 제단을 활용해서 각 구역을 오가는 식으로 보완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쫄깃한 느낌과 긴장감을 줬다. 건물을 동시 다발적으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두고, 스멜터가 어디에 배치되어야 할지 생각하면서 전황을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관리하는 스릴이 있다. 그게 잘못된다고 해서 바로 게임오버가 되진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덜한 편이다.

미니맵을 보면서 마우스와 단축키를 적극 활용해 왔다갔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멜터 하나만을 계속 움직이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라 패드 조작도 간편했다. 전략과 플랫포머를 왔다갔다하면서 굳이 키보드-마우스와 패드를 번갈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조작 체계가 잘 갖춰져있다고 할까.

▲ 러시 막고 하우스 건설하고 초소 세우고 회피하고...바쁘다 바뻐



문제는 초반과 뒷심


아마 스멜터를 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의아할 것이다. 전략으로서나 플랫포머로서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 진가가 느껴지기엔 좀 애매하기 때문이다. 우선 레트로 스타일 게임이라고 보면 그래픽과 음악은 썩 훌륭하지만, 무언가 크게 자극이 될 만한 건 부족해서 바로 와닿지 않는다는 게 클 것이다.

한국어화도 잘 되어있고 스토리도 클리셰를 뒤틀어놨으니 피식하면서 볼만하지만,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코어한 난이도는 아닌 것도 양날의 검이다. 전략 요소가 더해졌으니 캐릭터가 성장할 것 같은 게임 디자인인데 막상 캐릭터 성장은 거의 뒷전이고 컨트롤만 요구하는 구성에 가까운 터라 플레이하면서 무언가를 이룬다는 성취감은 덜하다.

▲ 이것저것 성장 요소도 더하긴 했지만

▲ 플레이 방식이 기본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체감이 잘 안 된다

▲ 테크 발전도 결국 플랫포머 진행에 따라 진행되는 터라 그 보상이 한 번 건너뛰어서 오는 느낌이다

전략 게임으로 보자면, 처음에는 스멜터가 다 처리하고도 남는 구성이라 전략 게임의 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다. 더군다나 업그레이드는 플랫포머 스테이지에서 각종 시험을 넘거나 히든 루트를 찾아서 클리어해야 하는데 플랫포머가 어눌한 유저에겐 좀 부당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런 구조가 눈에 들어오면 재미가 있지만, 어떤 뚜렷한 목적을 주지는 못하는 게 또다른 문제였다. 각각 다른 장르를 서로의 보상을 제공한다는 식으로 엮은 건 좋지만, 각 장르에서 기대하는 보상심리를 충족할 만한 무언가가 부족했다. 전략 게임으로서는 성장의 체감이 잘 안 느껴지기 때문에 테크를 올리는 맛이 떨어지고, 플랫포머로서는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좀 더 코어한 도전을 풀어가는 묘미는 떨어졌다. 기본은 충실하다지만, 그 이상을 보는 순간에는 다소 부족해보인다고 할까.





최근 즐겨보는 와인 유튜브에서 '뱅커'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보통 은행원이나 일부 테이블 게임에서는 딜러로 번역되곤 하는 단어인데, 어떤 품종의 특성을 뚜렷히 나타내면서도 기본기를 갖춘 와인을 언급할 때 주로 이런 말이 나오곤 했다. 교보재와 유사한 단어라고 할까.

두 가지가 섞였으니 이 용어를 쓰는 게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스멜터를 플레이하면서 이 단어가 뇌리에 떠올랐다. 장르의 특색을 뚜렷히 드러내면서, 준수한 기본기를 갖췄기 때문일지라. 플랫포머든 전략이든, 그 장르에서 기대할 만한 기본 요소가 스멜터 안에는 다 담겨있었다.

이처럼 장르의 표본 같은 좋은 게임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첫맛이 피어오르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장르에서 기대하는 기본 특성은 다 갖췄지만 이를 넘어서 스멜터라는 게임만의 매력을 표현할 무언가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이를 히든으로라도 풍부하게 풀어낼 가닥이 보였으면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딱히 눈에 띄지 않아서 기대치는 낮다.

▲ 지금은 수정됐으나 출시 초에는 오류 때문에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초반의 호평이 무색하게도 처음에는 게임 실행이 안 되는 버그까지 있었으니, 낙관적으로만 이야기하기엔 불안하기도 하다. 다만 기본기를 구축하는 실력이나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장르를 침해하지 않고 잘 엮어낸 설계를 보면 개발자들의 게임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는 게 느껴진다. 그들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면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다음 작품이든, 혹은 DLC로 보완하든, 좋은 기본기 위에 발전된 기량을 기대해봄직하다. 혹은 정통파 플랫포머를 오랜만에 땡겨보고 싶다면, 한 번 관심을 가져볼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