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피카츄 사진. 구도도 포즈도 완벽!


흔히 귀엽고 아기자기한 모습이 많이 강조되어 가려지는 편입니다만, 포켓몬스터의 이야기는 포켓몬들에게는 꽤 폭력적인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트레이너라고 부르는 인신, 아니 포신매매범들이 야생을 살아가는 포켓몬들의 자유를 빼앗죠. 때로는 작은 볼 안에 가둬두고 강제적으로 서로 싸우게 하죠.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도 합니다.

포획과 육성, 배틀이 포켓몬스터의 재미긴 하지만, 포켓몬들 입장에서 정말 바라는 삶일지는 생각해볼 일이죠.

이 게임은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포켓몬이 야생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모습. 플레이어는 그걸 그저 사진에 담아낼 뿐이죠. 포획과 육성이라는 재미 없는 포켓몬은 과연 트레이너들에게 전에 없던 힐링을 줄까요?

게임명: New 포켓몬 스냅
장르명: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 04. 30.
개발사 : 반다이남코 스튜디오
서비스 : 닌텐도
플랫폼 :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New 포켓몬 스냅' 오픈크리틱 페이지


포켓몬을 찍는 것? 야생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

옛날이야기를 좀 해보죠. 게임의 원작. 그러니까 '포켓몬 스냅'은 1999년 닌텐도64를 통해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때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때였죠.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하고 요즘 디카처럼 몇백 장은커녕 20장 조금 찍으면 필름을 갈아줘야 하죠.

막연히 옛날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폰카를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이제 막 덮개가 있는 폴더폰이 나온 시기입니다. 액정 자체를 접는 그런 폴더블이 아니라 기계음 나오는 녹색 화면이 덮는 그런 폴더폰 말이죠. 카메라 되는 휴대폰은 백투더퓨처에서나 볼 법만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집 안에서 가상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을 겁니다. 거기다 포켓몬을 찍는다니, 눈이 돌아갈 만합니다.


하지만 지금 게임 팬들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만으로 큰 감동을 주긴 어렵습니다. '포켓몬GO'를 통해 증강현실로 쉽게 현실 속 포켓몬을 만나고 언제든 사진 찍을 수 있죠. 1999년의 감동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게임은 New라는 이름을 당당히 붙였듯 이번 작품은 단순히 찍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포켓몬들의 상호작용에 집중했습니다.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은 간단합니다. 플레이어는 안전한 탈것 네오원을 타고 초원이나 물속 등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며 포켓몬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사진 찍으면 됩니다. 여기에 소리를 내 포켓몬들의 시선을 끌거나 간단하게 상호작용을 하고 갈림길에서 루트를 선택하는 정도죠.

이동 자체도 플레이어가 따로 조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타임 크라이시스'나 '하우스 오브 데드'처럼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레일 슈터를 떠올리면 되는데 네오원이 알아서 이동하고 플레이어는 시점을 옮겨가며 포켓몬을 찍기만 하면 됩니다.

포켓몬을 관찰하고 사진 찍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신경 쓸 거리가 생각보다 적어 포켓몬의 생태를 보다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죠.


포켓몬들은 플레이어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겁을 먹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또 플레이어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때는 같은 포켓몬 집단, 혹은 다른 포켓몬들과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죠. '실제로 야생 속에 포켓몬들이 살고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켓몬을 동물보다는 포획과 전투라는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위한 수집품이나 강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비 개념에 가까웠던 기존 포켓몬스터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재미를 주죠.

또 드넓은 자연 광경과 함께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포켓몬들의 모습은 진짜 야생의 모습을 구현한 듯 자연스럽습니다. 닌텐도 스위치 자체의 성능이 낮아 여타 9세대 콘솔이나 PC와 절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 블러 효과나 광원을 통해 포켓몬의 귀여움을 최대한 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똑같은 루트라도 밤과 낮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색다른 분위기를 냅니다. 낮에는 활기찬 포켓몬들의 모습을, 밤에는 잠든 포켓몬들과 함께 고요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죠. 일부 야생 포켓몬이라면 낮에는 잠만 잘 테지만요. 부우부는 낮에는 나무 안에 둥지를 틀고 잠만 자지만, 밤에는 깨어 플레이어를 반겨줍니다.

▲ 낮에는 잠만 자는 부우부

▲ 드디어 얼굴을 보여줍니다. 부우부는 밤에 찍는 게 진리

물론 그저 감상만 하는 건 아니고 이미 찍은 사진들로 나만의 앨범을 꾸미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번 찍은 사진은 추후 다시 볼 수 있는데요. 이때는 사진의 구도와 블러 처리 등을 새롭게 해 조금 아쉬웠던 사진을 훌륭히 되살릴 수 있죠. 도감에 올라갈 포켓몬의 모습을 내가 찍은 사진들로 채울 수 있으니 기존의 포켓몬 도감 채우기와는 또 다른 뿌듯함을 주기도 하고요.

그 덕에 새로운 포켓몬 사진을 찍으러 가고 싶게 만들고 이미 찍은 포켓몬의 새로운 모습을 관찰하고 싶게 합니다. 별것 없는 시스템으로 게임을 반복해 플레이하는 동기를 훌륭히 준 거죠. 이게 진짜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냈습니다.

단순히 사진 찍는 행위로 그치는 게 아니라 포켓몬의 사진을 찍는 다는 게임의 재미로 시스템을 성장시킨 셈입니다.

느긋하게 포켓몬의 생태계를 즐길 마음이 있다면요.

▲ 뭔가 아쉬운 사진도

▲ 다시 예쁘게 다듬어 저장하는 게 가능



멋지기만 한데 이 사진이 대체 어디가 부족한 거죠?

하지만 이 게임을 단순히 포켓몬 세계에 대한 체험이 아니라 완벽한 수집을 목표로 하는 컬렉팅 게임으로 다가간다면 꽤 귀찮게 다가올 요소투성이입니다.

하나의 포켓몬은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별 1개부터 별 4개로 구분됩니다. 물론 잘 찍었을 때 더 높은 별을 받을 수 있죠. 그리고 포켓몬 도감에는 각각 별 1개부터 별 4개까지 총 4개의 사진이 등록됩니다. 전부 모으지 못한다고 당장 게임의 콘텐츠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분명 숭숭 구멍 뚫린 도감을 마냥 보고 있지 못할 플레이어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별 개수에 맞는 사진을 찍기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보기엔 정말 잘 찍은 사진이 별 1개에 그칠 때가 있고 그보다 영 모자라게 나온 것 같은 사진이 별 3개를 받을 때도 있죠. 마치 똑같이 트리플악셀을 뛰었지만, 누구는 표현력이 좋아 만점이고 누구는 선이 아름답지 않아 감점인 경우쯤입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이 잘했는데 뭐가 다른지 영 구분하기 쉽지 않은 그런 상황 말이죠.

포즈, 크기, 방향, 위치 등 분명한 평가 기준이 있고 그걸 어떻게 해야 제대로 만족하는지 대충 알려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직관적인 구분은 아니라 원하는 별 개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같은 구간을 반복해가며 포켓몬 사진 찍어야 할 겁니다.


여기에 이런 행동을 위해 끊임없이 조사를 반복해야 하는데 촬영 스팟이 한정된 포켓몬의 경우 기회를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괜히 불편한 반복을 종용당하는 느낌이죠. 사진을 선택하고 점수를 내주는 경박사의 평가 시간이 꽤 의미 없고, 지루하게 다가온다는 점도 이런 느낌을 더하게 하고요.

별 4개짜리 사진은 그냥 운 좋게 찍는 건 쉽지 않고 일루미나 현상 등 특수한 상황이나 포즈를 유도해야 합니다

자연 속의 포켓몬이 그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필요한 별점을 얻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거죠. 이게 개발진이 원했던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좀 더 깊이 있게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이 길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셈입니다.




포켓몬들도 먹고 살아야죠, 근데 왜 얘네들만?

'New 포켓몬 스냅'은 보통 다른 게임과 미디어에서는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와 귀여운 포켓몬들의 모습에 가려져 있던 포켓몬들의 먹이사슬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래도 야생 포켓몬의 모습을 직접 그리고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개 모습의 헬가가 팔다리 머리를 귀엽게 잘라 새끼에게 먹인다든가 벌레 포켓몬 개무소가 살아있는 풀 포켓몬의 몸을 뜯어먹는 수준의 천지개벽 추억 파괴 수준의 요소는 없습니다. 하지만 덫을 이용해 다른 몬스터를 잡아낸다든가 새 포켓몬이 물고기 포켓몬을 낚아채는 정도는 여과 없이 표현됩니다. 먹이가 될 포켓몬을 잡아다가 이동하는 정도의 모습은 꽤 역동적으로 담아냈죠.

그간 볼 수 없었던 포켓몬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겠지만, 포켓몬은 귀여운 포켓몬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사람에게는 썩 반갑지 않은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 토대부기 위에서 잠을 자는 염버니. 이 정도는 괜찮지만

▲ 먹이사슬 ON

하지만 모두가 아쉬워할 요소는 이렇게 다양한 포켓몬의 상호 작용을 제한된 포켓몬 수 탓에 한정적으로밖에 즐길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게임에 포함된 포켓몬의 수는 217마리입니다. 물론 너무 많은 포켓몬이 등장했다면 서로 간의 관계를 모두 게임 속에 담아내긴 어려웠긴 했을 겁니다. 심각하게는 종이 같은 몬스터를 묶어 똑같은 모션으로 구현해 일명 클론 포켓몬의 생태계를 구현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900마리 가까운 포켓몬 중 겨우 200마리 남짓 나오는 건 너무 적은 느낌이긴 합니다. 이미 포켓몬의 선별적 등장으로 아쉬움을 산 '포켓몬스터 소드 & 쉴드'에 이어 이번에도 제한적인 포켓몬이 등장하니 차기작 역시 이런 포켓몬 선별이 굳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도 함께 커집니다.




흔히 리액션 영상이라고 하죠?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처음 'New 포켓몬 스냅'의 발표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는 외국인들의 영상을 몇 번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에서는 닌텐도64 시절 나름 만족할 성과를 내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많은 국내 팬들은 처음 만나는 게임이겠죠. 그래서 기다렸던 게임의 귀환에 헐레벌떡 구매 버튼을 누르는 외국 팬들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게임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추억 보정이 없으니 'New 포켓몬 스냅'은 호불호가 완벽히 갈리는 게임이고 여기에 불호 취향의 게이머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죠. 하지만 반대로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에 잘 올라탈 수만 있다면 전에 없던 힐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 힐링에 대한 대가가 풀프라이스에 어울리는지는 게임을 즐기는 이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요.